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133화 (133/188)

133화

러시아 과학선 ‘아카데미 블라코프’ 함.

80년대 대표적인 소련 과학선으로, 미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독극물을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 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수명을 다하여 폐기 처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폐기한 것이 아니라. 실종.

오래전에 행방불명 되었던 과학선이 미확인 물체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놀라며 배의 크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러시아 과학선은 '크루즈 여행선'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배의 가장 뒤에는 수영장 같은 것도 보였고, 넓은 공터에서는 공도 찰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즈가 이를 악물며 과학선을 가리켰다.

“당장. 저 배로 가! 이 빌어먹을 바다에서 우리가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곳은 저곳뿐이야.”

헬기 조종하는 요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저기가 지옥이라도 갑니다.”

나도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괴물이 가득한, 유령선이라도 내려야지.”

헬기가 빠르게 과학선으로 다가갔고 반즈가 강하게 외쳤다.

“챙길 수 있는 것, 지금 다 챙겨!”

나는 걸리적거리는 잠수복을 벗고 주변에 보이는 '망치'와 '구조용 신호탄' 등을 등짐에 넣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그대로 떨어지는 기분.

헬기는 고속으로 날아 바로 과학선 갑판 위로 착륙을 시도했다. 하지만 파도가 너무도 강하게 쳐 쉽게 착륙할 수 없었다. 잘못 하다가 배에 부딪혀 헬기가 박살 날 것 같았다.

이 큰 배에서도 착륙하기가 힘든데, 참치잡이 어선에 착륙하려고 했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깨닫고 있었다.

요원은 헬기를 최대한 갑판 가까이 붙였다. 그리고 악을 쓰며 소리쳤다.

“뛰어내리세요! 어서!”

그냥 떨어지기에는 상당히 높았으나,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대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땅을 굴렀다. 중학교 때 맞으면서 몸으로 배운 낙법. 맞은 것은 정말 싫었지만, 지금 도움이 되었다.

관장님 그때 욕한 것 미안해요.

반즈는 거의 자유낙하 하듯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크크크. 아프겠다. 미국에서는 유도 안 배우냐?

조종하던 요원은 최대한 낮게 헬기를 낮추더니 끝내 갑판 위에 착륙했다. 그리고 헬기에서 뛰어 내렸다.

어? 이 새끼 봐라? 착륙 잘하네? 왜 우리보고 뛰어내리라고 했어?

하지만 헬기를 운전했던 요원은 내리기 무섭게 배의 선실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망쳐!”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착륙한 헬기는 아래가 고정되지 않아 흔들리는 탁자 위의 물컵처럼 파도칠 때마다 갑판 위를 미끄러지며 움직였다.

그러다 강하게 파도가 치니 한쪽으로 쭉 미끄러지다가 안전바를 넘어 거꾸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 헬기···

우리는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연료를 구해서 다시 헬기를 타고 이륙할 수 있을 것이라 조금은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아··· 씨발!”

반즈는 헬기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바다에 함께 들어가지 않은 것을 감사하자.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아주 멀리서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었다.

나는 과학선의 선실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낡아 침몰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유령선'이 적당하다.

화성에 사람을 보내냐 마냐 하는 이 시대에, 바다에서 유령선을 볼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분위기는 딱 공포영화 그 자체. 영화에서 보면 괴물 만나서 죽던데···.

이때 요원이 이쪽으로 달려와 나에게 말했다.

“체온 유지를 위해서 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아니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춥기는 춥다. 몇 방울씩 떨어지는 빗물과 부서진 파도가 몸에 닿을 때마다 차가워 깜짝깜짝 놀랄 수준.

북극해에서 내려오는 얼음물에 사람이 빠지면 10초 안에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했는데 단번에 이해가 갔다.

“그래. 들어가자.”

귀신에게 죽으나, 얼어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죽는다면 처녀 귀신에게 죽고 싶다. 러시아 과학선이니까, 러시아 처녀이려나? 내 취향은 아닌데···.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문이 모두 잠겨 있었다.

반즈는 입구의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고 있었으나 헛돌고 있었다. 그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문이 잠겼는데? 다른 입구를 찾아야겠다.”

이때 나는 멋지게 헬기에서 챙긴 망치를 꺼내 들었다.

“사람이 준비성이 있어야 한다.”

“오. 망치 좋아.”

“박수 칠 준비나 해.”

반즈가 옆으로 비켜섰고 나는 망치로 창문을 강하게 찍었다.

텅~!!!

하지만 망치가 강하게 튕겨 나왔다.

나는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쪽팔리게~

한국인의 가오가 있지. 다시 한번 더 강하게 찍었다. 하지만 유리는 특수처리 되어 있는지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반즈가 그것을 보고 갑자기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알을 아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비켜봐.”

“알았어. 잠깐.”

나는 반즈 뒤로 숨었고, 그가 권총으로 유리창을 쏘았는데 살짝 금만 갔을 뿐, 깨지지 않았다.

우리가 난감한 표정으로 문을 보고 있을 때, 요원이 왼쪽으로 돌더니 열려 있는 문을 발견했다.

“이쪽에 문이 열려 있습니다.”

나는 살짝 민망했으나 품에서 달달이 커피를 꺼내며 말했다.

“추운데, 들어가서 따듯한 커피나 한잔할까?”

반즈도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러시아 놈들이니까, 반드시 보드카가 있을 거다. 나는 그 빌어먹을 것이 필요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어깨에 달린 랜턴을 꺼내 들었다. 아직 낮이라 빛이 있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고 배 안은 조명이 없어 꽤 어두운 편이었다.

반즈가 엄청난 먼지와 거미줄을 보면서 말했다.

“이 배의 정체는 뭐야? 당장 침몰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나는 방금 받은 미션을 떠올리며 말했다.

“러시아 과학선 ‘아카데미 블라코프’함이다.”

나의 대답을 들은 반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흠. 미션에서 보았다는 말은 할 수가 없고···. 뭐라고 말하지?

이때 요원이 나서서 말했다.

“배의 선두에 '과학선 아카데미 블라코프'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이스 설명~ 아주 칭찬해. 나는 반즈를 보며 강하게 한마디 했다.

“반즈. 눈을 뜨고 다녀. 다른 사람들이 다 본 것을 왜 혼자 못 봐.”

반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장님이 된 기분이군.”

일단 가장 먼저 3층 선두에 있는 조타실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이 배에 대한 뭔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반즈 선두에 서. 권총을 들었잖아.”

반즈가 살짝 짜증을 내며 나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 늘 뒤에서 습격당하지.”

나는 요원을 밀어내고 가운데로 들어갔다.

“충고 고맙군.”

반즈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미국 전략무기만 아니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어서 3층 조타실로 가자.”

우리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살피며 걷고 있었다. 어딘가에 3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을 것이다.

배가 커서 그런지 파도가 강렬하게 치고 있음에도 흔들림이 걱정한 만큼 심하지 않았다. 사실 배의 동력이 없으면 아주 크게 흔들려야 하는데 묵직하게 움직이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다.

반즈가 배의 진동을 느끼며 말했다.

“배의 움직임이 좀 이상해. 뭔가 동력이 있는 것 같아.”

요원이 말했다.

“톤수가 많이 나가면, 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인터폰이 울렸다.

띠리리리리-

우리는 셋 다 깜짝 놀랐고, 인터폰을 받을 생각도 못 했다.

10초간 울리던 인터폰이 꺼졌다.

반즈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인터폰이 울리는 거, 나만 들은 것은 아니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즈. 너를 찾는 전화니까 받아봐.”

반즈도 떨떠름한 얼굴이다.

“소련 애들은 CIA 싫어해. 네가 확인해봐.”

나는 몸속에 있던 10년 전 용기까지 짜내서 인터폰을 들었다. 놀랍게도 인터폰에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이게 지금까지 작동한다고?

나는 반즈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인터폰이 작동되는데?”

나는 숫자 333을 눌렀는데, 어딘가로 신호가 갔다. 설마 받지 않겠지? 다행히 신호가 가다가 자동으로 끊겼다.

반즈도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인터폰이 된다고?”

“그런 것 같다.”

이때 요원이 계단을 발견하고 강하게 말했다.

“이쪽에 계단이 있습니다.”

반즈는 인터폰이 울리고 난 후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2층으로 올라왔더니, 1층 복도 보다 조금 더 밝았다.

하지만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있을 줄 알았는데,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짜증을 뱉어냈다.

“어느 멍청한 새끼가 이따위로 설계를 했어. 그러니까 소련이 붕괴하지.”

우리는 2층 복도를 살피며 걸어가고 있는데 중간에 열려 있는 문이 있었다.

“조심해···.”

반즈가 권총으로 겨누며 천천히 다가갔다. 순간 방 안으로 총구를 겨누었는데, 테이블에 엎드려 죽은 백골화 된 시체 2구가 있었다. 손은 아직도 카드를 쥐고 있었다.

한 명은 스트레이트, 한 명은 플러쉬. 더 큰 해골의 승리.

반즈는 그것을 보더니 낮은 신음을 냈다.

“카드를 치다가 바로 죽었다. 조금도 발버둥 친 흔적이 없어. 여기 있는 2명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죽었다는 의미야.”

나는 인상을 썼다.

“어떻게 죽어야지 이렇게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거야?”

“수면제로 자살한 시체를 보면 이런 면이 있어.”

“포커 치다가 단체로 수면제를 먹었을 것 같지 않은데···.”

우리는 다시 2층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카펫에서 먼지가 올라왔다는 것 빼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요원이 먼저 복도 중앙에 있는 노란색 물체를 확인했다.

“앞에 뭐가 있습니다.”

복도에는 바닥에 쓰러져 백골화가 된 시체가 있었다. 이 사람은 레벨 D급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반즈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방호복이라···. 생물학적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요원이 한마디 했다.

“이 정도 백골화되었으면 그 생물학적 문제도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

숙주가 죽다 못해 백골화가 되면, 병균도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기분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겠지.”

시체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갔을 때, 중앙에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저기 계단이 보인다!”

옆에 3F라고 쓰여 있는 안내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주춤했다.

3층으로 올라가는 입구 앞. 책상과 의자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다가 만 것이 보였다. 아마도 바리케이드를 만들기도 전에 일이 끝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막으려고 만든 것이 맞지?”

반즈는 석유통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옆에 석유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까지 붙이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혹시라도 기름이 있을까 발로 차 보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배 안에 불까지 지르려고 했을까?

“조타실로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자.”

나는 3층 복도에, 방독면 20개가 연속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중 하나를 꺼내 확인하고 있을 때. 반즈가 혀를 차며 말했다.

“방독면은 유독가스를 막아주지. 병균을 막아주지 못해.”

나는 방독면을 바닥에 던졌다.

“너무 오래돼서 쓸 마음도 없었어.”

“뭐가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 시간이 흘렀다면 다 죽었을 거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아무래도 그렇겠지.”

드디어 조타실(steering house)이 보였다. 문이 닫혀 있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안을 바로 확인해.”

나는 망치를 허리에 차고, 벽에 걸려 있었던 방화용 도끼를 집어 들었다.

“오케이!”

우리는 조금 거칠게 조타실 안으로 들어왔지만 민망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3개의 원형 조타키가 보이고, 라운드 형태의 각종 콘솔이 가득 보였다. 하지만 모두 너무도 오래되어 고철이 되어 있었다.

최소 수십 개의 해골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안에 들어온 반즈와 요원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가득.

“이래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겠어.”

그럴 것으로 예상했지만, 모든 것이 너무도 낡아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20~30년 지난 배가 정상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웃기다.

조타수 옆에 붙어 있는 배의 제작 연역을 보았는데 무려 1985년에 만들어진 배였다.

반즈가 크게 실망하며 한숨을 쉬었다.

“살아 있는 인터폰을 보고 조금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군.”

요원은 콘솔 부분의 키보드를 몇 번 쳐보고, 반즈를 바라보았다.

“팀장. 위성 전화는 아직도 안 됩니까?”

반즈가 다시 확인했지만, 위성 전화는 여전히 통화권 이탈 상태. 땅속이라 안되면 이해가 갔지만 뻥 뚫려 있는 바다에서 통화권 이탈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했다.

요원은 혹시나 하며 콘솔 아랫부분을 열어서 확인하고 있었고, 반즈는 다시 한번 위성 전화를 체크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해적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회전 조타수를 왼쪽으로 확 돌렸다.

촤르르르르르르-

조타수가 미친 듯이 돌았다.

이때 갑자기 바람이 확 불면서 콘솔과 모니터에 있던 녹이 떨어지며 방안으로 뿜어져 올랐다.

'시간을 돌리는 손.'

오래된 보물이나 문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되돌려주는 능력.

이번에는 너무도 오래되어 고장 나 있는 배 안 콘솔과 모니터를 어느 정도 돌려놓았다.

“콜록콜록.”

반즈와 요원은 입을 막고 기침을 하며, 갑자기 불어온 쇳가루를 뱉어냈다.

“뭐···. 뭐야?”

요원이 깜짝 놀라며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콘솔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낮은 기계음이 들리고 컴퓨터가 부팅되는 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돼. 전원이 들어왔어.”

머릿속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요원의 몸은 콘솔 앞에 앉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며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헬기도 운전할 줄 알고, 컴퓨터도 잘 다루고, 매우 유능한 요원.

나는 요원에게 물었다.

“하버드 나왔나?”

그러자 요원이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역시 골든보이는 다 아는군요.”

이때 반즈가 나를 추궁하듯 물었다.

“이것은 어떻게 된 건가?”

설명하자면 복잡하다. 이럴 때는 시치미를 떼는 것이 가장 적당했다.

“뭘 말이야?”

“갑자기 콘솔이 돌아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어. 이런 일을 일으킬 사람은 자네밖에 없다.”

“유령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

“지금 자백해.”

“지금 그것을 따질 때인가? 잘하면 외부와 연결 할 수 있는데? 그게 중요한 거다.”

반즈는 이를 한번 깨물고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은 그냥 넘어가지.”

요원은 미친 듯이 콘솔을 두드리고 있었다. 너무도 옛날 시스템이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거의 1시간을 두드리고 나서 뭔가 깨달은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반즈가 다급하게 물었다.

“뭔가 확인한 것이 있나?”

“이제 현관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외부와 통신은 어때? 가능하나?”

요원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통신 쪽을 연결 해봤는데, 내부 통신망은 가능하지만, 외부로는 나갈 수 없었습니다.”

“아. 젠장. 왜 안 되는 건가?”

“외부 통신장비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파도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으니 아마도 그럴 수 있겠지요. 팀장님의 위성 전화도 아직입니까?”

“여전히 먹통이야. 원래는 핵폭탄이 터져도 돼야 하는 것인데···.”

“통신 말고 다른 것도 최대한 빨리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단 현관문은 열었으니, 다른 문을 쭉 열어봐. 그러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겠지.”

요원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말했다.

“전력을 확인해 보았는데, 배 아래를 흐르는 조류 발전기가 있어, 전기가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전기가 흐르는 이유가 있었군요.”

나는 요원에게 부탁했다.

“콘솔 안에 배 지도는 없습니까? 배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것을 우선순위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미션에서 이야기한, 황금인의 '에픽' 보물을 생각했다. 그러니 함선의 구조를 아는 것이 급선무.

요원이 콘솔을 만지고 있는 동안, 나는 눈에 힘을 주며 주변을 살폈다. 각종 구리줄이 어지럽게 보여서, 눈이 피곤.

그래도 아주 작은 금반지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봐서는 서랍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공간.

나는 힘을 주어 그곳을 툭툭 치다가, 확 잡아당겼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는 보드카 2병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반즈가 그것을 잡으며 웃었다.

“자네 초능력은 정말 마음에 들어.”

나는 보드카 옆에, 쌓여 있는 문서에 시선을 주었다. 해도와 해류도, 해저 지형도 등의 지도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꼭 필요했던 배의 구조도가 나왔다. 나는 그것을 펼쳐 보며 활짝 웃었다.

“식당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굶지는 않겠군.”

나는 배의 지도를 쭉 살피다가 한 곳을 집었다. 배 하단 끝에 있는 공간.

쌍끌이 어망 어선.

바닷속의 넓은 그물을 뿌리기 위해 모함과 분리되어 움직일 수 있는 어선.

나는 강한 눈빛으로 반즈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타고 탈출할 수 있겠어.”

“그것도 고장 났을 가능성이 큰데···.”

이 배가 나타나고부터 통신할 수 없어졌다. 이 배에 통신을 막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이 배에서 벗어나면, 외부와 연락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나?”

이때 요원이 모니터를 보며 놀란 얼굴로 한마디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진행했던 비밀 연구 이름이 '퍼스트 셀'이고 연구 설명이 '우주에서 온 세포 배양'이라고 합니다.”

반즈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우주에서 온 세포?”

나는 사람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우주가 아니라 지옥에서 왔어도, 시간이 너무 흘러 이미 다 말라 죽었을 거다. 노벨상 탈 거 아니면 신경 쓰지 말자.”

나는 지도를 쭉 펴고 가장 아래층 쌍끌이 어선으로 가는 루트를 살폈다.

“여기서부터 지하 3층까지 가야 해. 아무래도 실험실을 뚫고 가야 할 거 같다. 내 말에 이의가 있나?”

반즈는 인상이 어두웠으나 생각나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직감적으로 반대하고 싶은데, 대안이 없군.”

나는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골든보이야.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지. 이렇게 답이 없을 때는 나를 그냥 따라.”

인생의 최고 승리자는 운 좋은 놈이다.

그냥 나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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