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127화 (127/188)

127화

도쿄 최대 야쿠자 ‘관동회’의 비밀금고.

금고 안에는 ‘엔화’가 쌀가마니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대부분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상태. 은행에서 바로 이곳으로 온 것으로 보였다.

즉각 나갈 수 있도록, 밀차 위에 엔화 뭉치 10덩어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왼쪽 벽에는 철제 선반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달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것도 대부분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상태.

100달러 지폐를 묶어 5만 달러 벽돌을 만들어 놓았고, 달러 벽돌은 왼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곳의 현금은 뇌물 혹은 비밀스러운 사업 자금으로 바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마약도 하나 가득 있었다.

관동회의 주력 상품인 코카인 마약 1kg짜리 8000개가 금고 중앙에 정사각형으로 쌓여 있었다.

또한, 정면 벽에는 합성 마약이 도서관의 책처럼 선반에 가득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쌓아 놓은 엔화를 만졌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추수를 모두 끝낸 만석꾼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쌀가마니를 확인한 느낌.

여기 있는 것을 내가 챙겨도 되는 것 아닌가?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승자의 권리.

이때 선 대위와 수행과 직원들이 들어왔다. 이럴 때 인심을 팍팍 쓰는 것이 좋다.

나는 5만 달러 벽돌을 4개씩 20만 달러(2억5천만 원)를 나눠 주었다.

“작전 수당입니다. 거부는 없습니다.”

생명을 걸고 싸웠으니 정도 금액을 챙길 자격은 충분.

막는 새끼가 있으면 내가 가장 먼저 달려가 죽빵을 날릴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비어 있는 보스턴 백 20개 정도를 보았다. 그것들은 바로 쓸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보스턴 백에 일단 최대로 때려 넣어 봅시다.”

선 대위가 조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밖에 미군도 있는데 ‘돈’을 챙겨도 되는 겁니까?”

“이것이 미군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임자가 없으니, 최대한 챙깁시다.”

수행과 직원들이 보스턴 백 20개로 금고에 있는 달러를 최대한 챙겼으나 모래사장에서 한 줌의 모래를 던 것과 같았다.

구석에 한국 5만원 권으로 대략 20억 정도가 있었다.

“한국돈은 우리가 다 먹을 거니까. 모두 챙기세요.”

어디선가 또 보스턴 백을 발견하여, 5만원권 20억 정도를 가득 넣으니 딱 들어갔다.

그렇게 챙겼어도 금고에 돈은 조금도 줄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것을 모두 챙겨갈 수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너무 아까운데?

이때 태경이가 쓱 들어와 말했다.

“야. 네가 대령이니 여기서 계급이 높잖아. 미군 헬기로 돈을 옮겨서 다 털어먹자.”

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헬기로 옮겨 다 먹자고?”

“주인이 없는 돈이잖아. 피 같은 돈을 놓고 갈 이유가 있나?”

나는 웃으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 헬기 한번 빌리는 것이 뭐 대수라고.”

태경이가 심각하게 말했다.

“가서 미군이랑 잘 쇼부 봐봐. 안된다고 하면 미군의 전략무기랑 전투를 벌여야 할 거라고 겁줘.”

나는 손가락 하나를 펴서 좌우로 들었다.

“미군이랑 싸우는 것은 절대 안 돼.”

“그럼 어쩌자구?”

“협상이라는 것을 해야지. 엔화는 우리가 먹고 달러는 미군 주자. 우리를 구해줬으니까 깔끔하게 5:5”

태경이의 눈이 커졌다.

“5:5? 좋다.”

“미군에게 달러를 넘기고 소화제를 좀 달라고 하자. 혼자 소화시키기 힘들다.”

경복이가 아프간부터 인연을 이어온 진 소령을 지하 금고 앞으로 데리고 왔다.

“나누고 싶은 전리품이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현금을 보고 진 대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골든보이는 보물을 찾는군요.”

“이 전리품을 챙기고 싶습니다.”

진 소령은 쓴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제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군요. 어차피 사령관님과 통화해야 하니 직접 해결해 보세요.”

진 소령은 아프간 러셀 사령관과 영상 전화를 연결했다.

사령관은 나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에드워드. 자네 제정신인가? 자네 몸이 미군에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아프간 사령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작전을 나갈 때만 풀어줄까?

나는 조금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이번은 정말 happening 해프닝 혹은 accident 엑시던트 입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싸움이었지요.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더 조심하겠습니다.”

-자꾸만 강제력을 행사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

“미국은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 아닙니까?”

-할 일 없는 서부 놈들이나 그런 말을 하지. 동부의 신사는 규율과 책임을 중요시한다네.

“제가 좀 서부 스타일이지요.”

-자네를 가까이서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본인의 중요성에 대해서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나는 낮게 웃으면서 말했다.

“화가 풀어지게 2200만 달러를 보내려고 합니다.”

그러자 사령관이 살짝 놀란 목소리가 되었다.

-2200만 달러?

“한 번도 쓰지 않은 깨끗한 돈입니다.”

-아. 야쿠자 놈들이 숨겨 놓은 돈을 발견한 모양이군.

“맞습니다. 사령관님. 제가 확보한 전리품입니다.”

사령관의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먹어도 탈은 없겠어.

“제 몫으로 엔화만 챙기겠습니다. 나머지 달러 2,200만 달러는 총알값이랑 제 몫의 엔화를 처리해 주는 값으로 드리겠습니다.”

-엔화가 얼마인가?

“2,000만 달러 정도 됩니다. 반즈에게 부탁해서 제 미국 통장에 넣어 주세요.”

-엄청난 금액이군. 제대로 은행강도 짓을 했어.

“마무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령관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야. 바로 자네라고. 달러 따위는 그냥 윤전기 돌려서 찍으면 끝이야.

“사령관님께서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쓸만한 문서가 있습니다.”

-문서?

금고 안에서 챙긴 문서 하나를 확인하고 있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관동회 회장이 누구에게 뇌물을 주었는지 정리한 문서 같습니다.”

문서에 쓰여 있는 숫자와 이름, 날짜 등을 유추해 보면 그렇게 보였다.

-CIA 놈들이나 좋아하겠군.

“같은 미국 아닙니까?”

사령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최소 육군과 해군은 같은 편이 아니야. CIA도 거들먹거려 마음에 들지 않아.

“이 돈은 헬기로 ‘육군’에 보내겠습니다.”

-CIA 반즈가 가고 있어. 그놈이 잘 처리할 거다.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제가 나중에 따로 사령관님께 인사하겠습니다.”

사령관은 살짝 욕심을 내고 말했다.

-아프간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면 국방부 장관 혹은 정치인이 되겠지. 그러면 내 파티에 묵직한 가방을 가지고 와. 그때는 돈이 필요할 거야.”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그때도 저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일단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배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군. 소령을 바꿔 주게.

소령은 부동자세로 사령관의 명령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이때 야마토가 흐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미군이야? 조센징이 아니라?”

나는 야마토의 볼을 살짝 건드렸다.

“오늘 너의 활약상은 잘 보았다. 잘했어. 야마토.”

야마토는 아직도 약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웃었다.

“아버지가 죽었으니. 관동회는 내꺼야. 내꺼라고.”

나는 혀를 차고 말했다.

“병신아. 관동회는 끝났어. 다 뒤졌다고.”

소령은 살아남은 야쿠자들을 이용하여 죽은 야쿠자 시체를 헬기에 실었다.

미군은 야쿠자 시체 발목에 시체돌을 채우고 있었다. 바다에 던지면 100년 동안 뜨지 않는 장비.

헬기에 실은 시체만 80구.

진 소령이 야마토를 보며 말했다.

“이 마약쟁이가 신경 쓰이면 같이 바다에 던져버릴까요? 갈 수 있을 만큼 멀리 나가 태평양 한가운데 던져 버릴 겁니다.”

이때 검은색 차 한 대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미군이 앞을 막았지만, 안에 타고 있는 것은 CIA 반즈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나에게 빚이 있어. 골든보이.”

나는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인정하지. 고마워.”

“고마운 눈빛이 아닌데?”

“갈 때 달러 좀 챙겨줄까? 몇 덩이 없어져도 신경 쓰는 사람 하나 없다.”

반즈는 당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곳의 모든 달러는 우리가 챙길 거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승자는 CIA이군.”

반즈가 짧게 한숨을 쉬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자네는 미국의 중요한 자산이야.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수준이지만, 오늘 같은 일이 또 있으면 보호 정책을 변경할 생각이야. 안전가옥에 가두고 용병 50명을 주변에 깔아 놓는 수가 있어.”

“잔소리는 사령관이 이미 했어.”

“부족해.”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골든보이에게 죽을 자유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사람이 아닌 ‘무기’로 생각하는 건가?”

“그냥 무기가 아니지. ‘게임체인저’ 급 무기야. ‘전략무기’라 할 수 있다.”

“평가가 과한데?”

“평가는 상대가 하는 거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부상자와 시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오늘 일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일본의 반발이 클 수 있을 것 같아.”

반즈의 표정은 아주 가벼웠다.

“대통령께서 이미 전화해 각자 먹을 몫을 정했네. 그래서 일본 정부도 반발이 없어.”

벌써 대통령이 알고 있다는 말에, 나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오바바 대통령께서 직접?”

“우리 대통령은 생긴 것에 비해서 머리가 아주 좋아. 특히 고기를 잘 나누지. 정치나 외교적으로 뛰어나다. 지난번에 러시아 전함에서 금괴를 발견했을 때도, 고기를 순식간에 나눠 포커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했지. 일급 정치인의 능력은 바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도 낮게 웃었다.

“엔화를 다 챙기기로 해서, 오늘은 매우 만족스러워.”

“대통령께서 허락한 일이니 감사하라고. 대신 나중에 어려운 부탁을 할 수도 있다.”

“난 원래 친미주의자였다. 미국 대통령의 부탁을 거부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반즈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 자세 좋아. 미국의 품 안에서만 진정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아 둬.”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 같이 미국의 품을 사랑하는 친미주의자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나?”

“뭔가?”

“바로 ‘배금주의자’라는 사실이지. 금고에 엔화를 모두 세탁해서 내 통장에 넣어줘.”

“지난번 통장으로 넣어 주지.”

“반즈 자네의 몫도 있나?”

“각자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은, 묻지 말고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OK. 그러지.”

우리는 당장 헬기를 타고 일본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바로 주일 미군 사령부.

선 대위의 총상 수술이 시작되었고, 다친 수행과 식구들도 편하게 치료를 받았다. 이번 사건이 좀 더 깔끔하게 처리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3일 정도 기다리기로 했으니, 마음 편하게 미군들과 농구와 축구를 하며 즐겁게 지냈다.

나는 일본 스케줄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그래서 반즈에게 전화를 했다.

“일본 정부의 반발은 없었나?”

-오바바 대통령께서 일본 총리를 가볍게 꾸중했다. '미국과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일본 여당에 치명적이니 반발이 없을 거야.”

“원래 신의가 없는 놈들이라 믿어지지 않는데?”

-일본 정부 놈들도 먹을 것이 있어. 전국에 있는 관동회 재산을 챙기기로 했지. 먼저 손에 넣는 사람이 임자가 된 상태니 침을 흘리더군.”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내가 고생했는데, 이상한 놈들이 쉽게 돈을 버는군.”

-나머지 관동회를 완전히 소탕하고, 마약을 압수한 전공 정도는 일본 쪽에 줘야겠지.

나는 관동회가 뇌물을 준 리스트와 산처럼 쌓여 있던 코카인이 생각났다.

“한동안 일본이 시끄럽겠어.”

-그래서 적당한 악역 배우를 섭외했지.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바로 야마토.

“설마 그 마약쟁이?”

-역시 골든보이군. 그림을 그릴 줄 알아.

얼마 후 관동회의 뒷돈으로 움직이던 중앙 정치인들이 칼을 뽑아 들고 관동회를 앞장서 죽이기 시작했다.

중앙경찰을 움직여 조직원을 모조리 체포했고, 관동회 회장과 아들 야마토 사이의 권력투쟁이 일어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처리되었다.

야마토가 끝까지 항변했지만, 마약쟁이 야쿠자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로 사형을 구형받고 구치소에 갇혔는데, 그곳에서 자살(?)을 당하여,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는 삶이 마무리되었다.

일이 마무리되는 동안 이쪽에서도 보안과 고 과장님이 열심히 움직였다. 원룸에서 사라진 하루마의 물건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단서를 찾은 것이었다.

원룸 주인에게 여동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밀린 4달 치 집세를 내고 모든 물건을 찾아갔다고 했다.

하루마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는데, 여동생이 어떻게 주소를 알았을까?

야마토가 하루마를 정신적으로 무너트리기 위해서 여동생을 인질로 삼기로 했고 그녀의 집으로 하루마의 주소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를 납치하기 위해 하루마의 원룸에 함정을 팠다. 봉고차 안에 마약까지 챙겨 놓았을 정도였다.

하루마의 원룸 근처에 조직원을 매복했는데, 여동생 곁에 따라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경찰 고위 간부의 딸로, 경찰 둘을 호위로 붙이고 왔다.

야쿠자가 경찰을 건드리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하는 일.

여동생은 집주인에게 자신의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남겼고 우리는 그것을 지금 챙길 수 있었다.

우리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마의 여동생이 있다는 마을로, 자동차 4대에 나눠 타고 이동하였다.

나는 뒷좌석에서 가볍게 말했다.

“집안에 문제가 있는 거 알아. 하지만 2가지면 대부분 해결이 되지. 바로 시간과 돈이야. 7년이나 지났으니 시간은 충분한 것 같고, 돈은 내가 준비하지.”

경복이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오래된 갈등도 돈으로 다 해결이 되냐?”

“돈으로 다 된다는 생각을 버려. 한 98.5% 정도 해결된다.”

경복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돈이 최고구만.”

“당연하지. 돈 많으면 가족끼리 싸울 일이 없다.”

하루마가 집을 나온 지 7년.

우리는 하루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어부인 아버지와 몸이 약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부모님의 사랑 속에 행복하게 자랐지만,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고 크게 건강이 상해 하루마가 9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어부인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너무도 슬퍼 술로 세월을 보냈다. 자살을 2회나 시도하고 술에 취해 동네 사람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하루마도 어머니를 잃고 심하게 방황하며 아버지와 사사건건 싸웠다.

그래서 끝내 15살에 집에서 도망쳐 도쿄로 올라왔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연명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때 여동생이 크게 아팠고, 딸을 살리기 위해서 아버지는 술을 끊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정신을 차렸고, 곧 아들을 찾았으나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야마토 덕(?)에 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하루마에게 다시 한번 다른 백인 황금인에 관해서 물었다.

“그 백인 남자의 인상부터 이야기 해봐.”

“키는 180cm에 몸무게는 60kg으로 아주 말랐습니다. 나이는 30대의 민머리 얼굴로 이마에 흉터가 있었고, 영어로 이야기했는데, 덩치 큰 부하 10명 정도가 따라다녔습니다.”

“조직원인가? 설명은 그런 느낌이네.”

“목소리가 늘 느긋했고, 여유로웠습니다.”

나도 그와 통화한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말투 끝이 약간 늘어지는 느낌?”

“네 맞아요. 어떻게 아시나요?”

“나도 통화한 적이 있다.”

하루마는 그와 통화할 때 녹음한 것이 생각났다.

“제 물건 중에, 통화를 녹음한 파일과 명함도 있습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둘 다 꼭 확보했으면 좋겠다.”

“물건을 버리지 않았으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화테 현의 궁고 항구.

한눈에 봐도 참으로 평화로운 항구마을이었다. 그렇게 큰 항구는 아니었으나 마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을 중앙에 긴 수로가 있었고 선착장에 50여 척의 어선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에서 가리키는 집 앞에 섰다.

뒤를 돌아보니,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이었다.

참돔 50여 마리가 건조대에 놓여 있었고 그 앞에 고양이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열 명이 넘는 사내가 들어왔지만, 고양이는 잠깐 눈을 떴다가 계속 잠을 잤다. 작은 시바견도 있었는데, 짓기는커녕 좋다고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하루마가 망설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계신가요? 여보세요?”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나? 그렇다고 집안을 함부로 뒤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기다리기 심심하여 고양이를 만지려고 했는데, 고양이는 도망쳤고, 어쩔 수 없이 시바견과 놀면서 1시간이나 기다렸다.

덩치 좋은 사내들이 마당을 점령한 것을, 동네 사람들이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지나갔다.

아. 혹시 우리를 깡패로 봤을까?

하루마가 결심한 듯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방문 하나를 열었다. 거실 안에는 사진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하루마의 시선을 잡았다.

바로 하루마의 어머니 사진이었다. 젊은 엄마는 어린 하루마를 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

하루마는 그것을 보고 활짝 웃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기다리는 것뿐.

하루마가 한동안 울다가 나에게 어머니 사진을 가지고 와 말했다.

“우리 엄마 예쁘죠?”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미인이시다. 네가 어머니 닮아서 잘 생겼구나.”

하루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마당에서 뛰어노는 나를 보며 활짝 웃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요.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따듯한 목소리가 들리죠.”

“그럼, 여기가 너희 집이야?”

“어머니가 이곳에 계시니 그렇겠죠.”

하루마는 이제 집을 거침없이 살피고 있었다. 도둑이 없는 마을이라 그런지 문을 다 열어놓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거실, 안방 등을 확인하다가, 끝에 있는 방을 열고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집을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방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방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가 하루마를 기다렸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하루마는 나의 시선을 느끼고 그 '봉인된 박스'를 찾았다.

“잠시 기다리세요. 물건을 찾아볼게요.”

“천천히 해.”

어지럽게 방안을 뒤지던 하루마는 끝내 찾던 물건을 확인했다.

“여기 있습니다.”

책상 아래서 상자 하나를 찾았는데, 안에는 스크랩해 놓은 신문이 가득 있었고, 그 사이에서 오래된 핸드폰과 명함이 나왔다.

명함은 '아무르 무역'이라는 회사명과 함께 블라디미르 블랙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내가 명함 앞뒤의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하루마는 오래된 핸드폰을 충전하며 전원을 켰다. 그랬더니 핸드폰에 전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핸드폰 안에서 한 음성 파일을 실행시켰다. 굵은 목소리의 사내가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미션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으니, 이번 미션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이미 핸드폰을 켜서 반즈에게 이 녹음 파일을 들려주고 있었다.

“어때?”

반즈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녹음 파일과 명함 사진 파일을 보내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과가 있을 것 같아?”

반즈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말투를 들어보면, 러시아 발음이 들어 있어.

“러시아?”

-그리고 말투에서 군인이었던 느낌이 난다. 몇 가지 조건으로 음성 검색을 하다 보면 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CIA.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부탁하지.”

-엔화는 네 통장에 넣었다. 원래 수수료를 떼고 넣어야 하는데, 그냥 다 넣었어.

“CIA에서 2200만 달러를 챙겼으니, 그 정도는 서비스 해줘야지.”

-그러니 음성 검색까지 해주잖아.

나는 살짝 다급했다. 이러다가 나도 하루마처럼 ‘탈락한’ 황금인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특급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급행료가 필요하다면 줄 수 있다.”

-돈은 필요 없고, 나중에 신세나 갚으라고.”

이때 심부름 갔던 수행과 직원들이 돌아왔다.

관동회 회장의 금고에서 챙겨온 한국돈 20억 중에 수행과 직원을 보내서 10억을 엔화로 바꿨다.

12개 은행을 도는 수고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큰 가방에 가득 넣어 하루마에게 주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로 하려고 하지마. 돈으로 해라. 그것이 골든보이의 방식이다.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

하루마는 놀란 눈으로 돈이 들어 있는 군용 가방을 들었다.

“저에게 이것을 주신다고요?”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황금인을 곁에 두고 싶다. 나를 도와줘.”

이때 하루마의 여동생이 들어왔다.

“하루마 오빠?”

나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여수에서 봤던 바로 '사츠코'.

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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