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118화 (118/188)

118화

고려 ‘무신시대’의 끝. 천하는 몽골의 ‘원’으로 대세가 굳었다.

원이 유럽까지 원정하였으며, 거대했던 송나라는 남송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제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려 원종은 천하의 대세를 지켜보며, 몽골에 대한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왕은 몽골과 화약을 맺고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리라 마음먹었다.

1270년. 개경 천도.

강화도에서 다시 개경으로 천도가 이뤄졌다.

개경 천도와 함께 버려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평생을 몽골군과 싸운 ‘삼별초’였다.

원나라와 겨우 화평을 맺은 고려왕은 끝까지 몽골에 적개심을 보이는 삼별초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무력 단체’. 절대 곁에 둘 수 없는 세력이었다.

그래서 고려왕은 삼별초를 탄압했다.

삼별초는 왕의 핍박에서 벗어나고, 몽골군과 항쟁을 계속하기 위해, 진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기로 했다.

왕자 온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새로운 왕궁을 진도에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용장산성’이었다.

나는 진도의 관광지인 ‘용장산성’을 보고 있었다.

황금빛이 보였지만, 이미 밤이 되어 발굴 작업은 내일 해야 했다.

윤 교수님과 서울대 팀도 내일 아침에나 도착한다고 하니, 이 근처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용장산성은 아주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라, 주변에 숙박 시설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법 깨끗해 보이는 펜션을 얻었다.

바다에 있는 원유를 치우느냐 며칠 고생했더니, 따듯하게 잠을 자는 것 하나만으로도 피로가 풀릴 것 같았다.

샤워하고 TV를 틀었는데, 바로 잠이 쏟아졌다.

그래서 9시 뉴스도 보기 전에 태경이와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증막 같은 온돌에 누웠다. 뼈마디에 끼어 있는 석유 찌꺼기가 녹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창문 밖으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낭만적이었고 자장가처럼 들렸다.

나는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제 새벽이 되었을까?

뜨거운 곳에서 땀을 많이 흘렸더니 목이 말라, 냉장고 안에 있는 생수를 마시고 싶었다.

이때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군!!!”

어떤 사내가 악을 쓰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용장산성 앞 막사.

“장군!!! 김경방의 개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꿈속인가?

“장군!!!”

나는 강하게 대답했다.

“천천히 말해.”

“개경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왕이 사신을 보내 협상을 원했던 것이 어제였다.

“고려왕이 협상을 원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장교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김경방 놈이 우리를 속이고 밤새 바다를 건넜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기만술에 당한 것 같습니다.”

나는 한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몽골의 개에게 우리가 속았구나···.”

고려왕이 삼별초와 협상을 한다며, 시간을 끌었는데, 진도 바다를 건널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이제 전투밖에 없었다.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서 왕이 보낸 병력은 총 2만1천 명.

고려군 1만명

몽골군 3천명

한족 병사 8천명.

고려왕의 친척인 김경방이 고려군을 선봉으로 이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삼별초는 모두 3천명.

전략은 바로 정해졌다. 바다를 건너온 김경방의 고려군을 깨고, 바로 몽골군을 각개격파 하는 방법뿐.

해가 뜨고 있었고 1만명의 고려군이 깃발을 휘날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몽골 놈의 개가 된 왕 때문에 고려인끼리 피를 봐야 하는구나.”

장교는 나에게 투구를 건네며 말했다.

“모든 전사가 장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장에게 물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떠한가? 기가 죽어 있지 않은가?”

부장은 울 것 같은 얼굴이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별초는 ‘오늘 같은 날’만을 기다린 사람들 아닙니까?”

‘삼별초’는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이 모인 것을 말한다.

그중 진도에 내려온 병력 대부분은 ‘신의군’.

몽골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람이나, 몽골군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로 가려 뽑은 병사들이 바로 신의군이다.

몽골에 대한 적개심이 뼈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가자. ‘잔치’가 벌어지는데 내가 빠질 수 없지.”

용장산성 앞에 모든 병사가 이미 모여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병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령관! 고려왕이 농사꾼을 모두 끌고 오는 모양이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진도에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한데, 잘 되었구나. 모두 죽이지는 말아라.”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족 놈들도 왔다고 하니, 그놈들은 성벽을 쌓게 시켜야겠소.”

“몽골 놈들은 말똥이나 치우라고 해야겠구나.”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났다.

기병대가 달려와 소리쳤다.

“적이 옵니다!!!”

1만 고려 정예 병사의 모습이 점점 다가왔으나, 다행히 겁먹은 신의군 병사들은 없었다.

하지만 고려인들끼리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착잡한 표정.

이때 피 흘리는 수군 복장의 장교 하나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달려와 낮게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제주로 피신하려던 왕께서 몽골군의 매복에 걸려 끝내 승하하셨습니다.”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몽골을 막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되겠다고, 왕실의 편한 삶을 버리고 이곳까지 따라온 젊은 왕자 온을 잃은 것이었다.

왕자 온이 있었기에, 왕궁의 보물과 금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전쟁은 시작도 하기 패배했다. 이제 왕도 잃고, 퇴각할 수 있는 길도 막혔다.

하지만 나의 표정은 처참하게 밝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족을 가슴에 묻고, 죽을 자리만 찾아다닌 인생 아닌가? 마지막 전투를 한다면 ‘몽골군’의 피가 보고 싶었다.

투구를 벗고 성 밖으로 나가 항구 쪽으로 걸어갔다.

“몽골군을 요격한다!”

왕도 없는 용장산성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나는 선두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몽골 놈들의 피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구나! 가자.”

그러자 병사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배중손 장군 천세!!! 만세!!!”

“좋습니다. 배 사령관 만세.”

“배 선장님과 육지에서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세 소리는 나의 손짓에 금방 조용해졌다.

“소리 없이 속보한다.”

이제는 거친 숨소리만 날 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전술 따위는 없었다. 한 덩이로 뭉쳐, 이쪽으로 다가오는 몽골 놈 대장의 목을 베는 일뿐.

산길을 돌았을 때. 몽골군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용장산성에서 고려군과 한족 병사들을 화살받이로 내세우며 편하게 싸우려고 했던 몽골군은 갑작스럽게 별초군이 눈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가자! 신의군이여~. 하늘이 준 때가 왔다!! 가족을 만날 때 챙겨갈 몽골 놈의 머리가 앞에 있다!!!”

이름 모를 병사가 혼을 깨우는 고함을 지르며 몽골군에게 몸을 날렸다.

“이화야! 하늘에서 보고 있느냐!!!”

어떤 병사는 창을 들고 그대로 몽골군에게 돌격하며 외쳤다.

“선복아!! 애비가 간다!”

다른 병사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머니! 아버지! 진성이가 갑니다!”

“윤성 어멈! 내가 곧 가네~”

“애민이 우리 딸! 아빠가 오늘만 기다렸다!”

다들 눈이 뒤집혀 앞으로 뛰어나갔다. 목숨 따위는 상관없었다. 몽골군에게 피를 토하며 묻고 싶었다. 왜 우리 가족을 죽였냐고!

나는 병사들과 하나로 뭉쳐 앞으로 뛰어나갔다.

우리의 엄청난 기세에 겁먹은 몽골 병사의 얼굴이 다가왔다.

나는 손에 익은 철퇴를 휘둘러, 몽골 병사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피가 와락 튀며 피 냄새가 진동했으나, 곧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적 대장기가 있는 곳이었다.

“왼편에 매복이다!”

왼편에 별동대로 있었던 한족의 군대가 우리의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한족의 별동대는 워낙 많은 숫자라 이쪽이 금방 포위되었다.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 날.

수군 대장으로 3년간 전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와 딸 둘은 반쯤 썩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아니 고향마을 전체가 완전한 흉가가 되어 있었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을 가슴에 묻고, 15년을 귀신처럼 몽골군과 싸우기만 했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기억 속 젊은 아내에게 말했다.

‘애들은 많이 컸는가? 나도 오늘 자네에게 가내.’

끝까지 눈에서 떼지 않는 것은, 바로 몽골군의 대장기.

‘내가 자네의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줌세.’

나는 앞을 막는 한족 병사들의 머리에 철퇴를 날리며 한발한발 앞으로 나갔다.

이때 화살 하나가 날아와 나의 어깨에 박혔다.

“큭!”

나는 눈앞에 있는 한족 병사의 머리를 부쉈다.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아와 나의 왼쪽 팔에 박혔다. 이제 확실히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보았다. 한족 뒤에 숨어 말 위에서 사냥하듯 화살을 쏘고 있는 몽골 장수였다.

다시 한번 화살이 가슴에 박혔다. 격통이 밀려왔지만, 다리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 첫 번째 딸 이름을 불렀다.

“달래야~~~!!!”

들고 있던 철퇴를 나에게 화살을 쏜 장수를 향해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던졌다.

퍽!! 철퇴가 시원하게 몽골군 장수의 얼굴을 박살 냈다.

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하늘을 보았다. 아내가 웃고 있었다. 나도 하늘을 보며 같이 웃었다.

“자네 보았는가? 이제 좀 시원한가?”

내 손에 무기가 없자, 한족 병사들이 달려와 창 십여 개를 온몸에 박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헉!!!”

다시 눈을 번쩍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진도 펜션의 지붕.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용장산성의 ‘마지막 날’을 꿈으로 본 것이었다.

가족을 잃은 군대인 ‘신의군’의 마지막 외침이 아직도 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샤워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의 발굴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

새벽같이 출발한 서울대 발굴팀 버스가 도착했다. 피곤한 표정의 학생들이 무더기로 쏟아졌고, 그 사이로 윤준서 교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교수님께 다가가 먼저 인사했다.

“진도까지 오시느라고 고생 많았습니다.”

윤 교수는 살짝 흥분한 얼굴이었다.

“자네 전화에 흥분해서 거의 잠을 못 잤어.”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 것입니다.”

멀리 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번에도 금이 있는가?”

나는 선선히 머리를 끄덕였다.

“골든보이가 있는 곳에 당연히 금이 있지요.”

윤 교수는 나의 말에 조금 서둘렀다.

“바로 지금 현장으로 갈까?”

나는 머리를 저었다.

“어제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30인분 닭백숙을 준비했습니다. 몸을 든든하게 채운 후에 진행하시지요. 보물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닙니다.”

윤 교수는 나의 말에 웃었다.

“하하하. 닭백숙이라, 좋지.”

펜션 아주머니가 새벽부터 닭백숙을 끓여 푸짐하게 꺼냈다. 얼마나 오래 고았는지 닭살이 젓가락만 가도 녹아내렸다. 전라도 ‘묵은지’에 닭죽을 먹으니 끝도 없이 들어간다.

모두 식사를 든든히 끝내고 바로 용장산성으로 들어갔다.

용장산성은 북한의 고려 황궁처럼 건물은 없고 터만 있는 곳이다. 그래서 볼 것은 크게 없었다.

나를 기다린 용장산성 관리인과 문화재청 사람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김성열 대표님. 최대한 도와주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투뷰를 통해서 골든보이가 어떻게 발굴하는지 잘 알고 있는 문화재청 사무관이 말했다.

“물건이 어디 있는지 보이십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금빛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용장산성은 산기슭에 계단 논처럼 9단의 높이로 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높은 9번째 단에는, 돌로 만들어진 건물의 기초 바위가 촘촘히 쌓여 있었다. 아마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유는 근처에서 불탑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금빛이 올라오는 기초돌 위에 섰다.

“여기 밑에서 금빛이 납니다. 확인해 보세요.”

내가 바위를 지정하자 미니 포크레인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중장비가 올라갈 길이 없어서 왼쪽의 언덕에 새로운 길을 만들며 올라왔다.

겨우 발굴지에 포크레인 도착했고 내가 선택한 돌 앞에 멈춰 섰다.

“끌어 올리세요.”

크레인 줄에 조심스럽게 바위를 고정하고 천천히 뽑아 올렸다.

‘흔들흔들’ 거리던 바위가 단숨에 쭉 뽑혔다.

사람들이 목을 뽑으며 안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것은 흙더미뿐.

나는 그 안으로 내려가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 교수님도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는가?”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보일 겁니다.”

곧 딱딱한 돌함이 나왔다.

윤 교수가 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입니다. 이 안에 금이 있습니다.”

“기대되는군.”

교수님의 지시로 힘 좋은 서울대 학생 2명이 다가와서 돌 뚜껑을 열었다.

!!!!

그러자 안에는 황금 투구와 기름천에 둘둘 말려 있는 검 하나가 보였다.

먼저 황금 투구를 살폈다.

황금장식이 많은 전형적인 몽골군의 제식용 투구라고 했다.

말을 타는 기병용답게 시아가 시원하게 열려 있었고, 장군의 권위를 살리는 황금장식이 여러 곳에 박혀 있었다.

“몽골군 제식용 투구는 전 세계적으로 처음인 듯하군.”

투구를 내 머리에 써 보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많아서 꾹 참았다.

윤 교수는 벌써 전문가의 손길로 조심스럽게 기름천을 펼치고 있었다. 거의 삭아 있는 부적이 붙어 있어서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답게 부적까지 잘 떼어 조심스럽게 보관했다.

곧 가죽 천이 펼쳐졌고 안에서는 녹슨 검 한 자루가 나왔다.

검에는 각종 금장식이 있었는데 끝이 날카롭고 살짝 휘어져 있는 전형적인 몽골검이었다. 하지만 너무 낡아서 글씨를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조심스럽게 검을 잡았다.

번쩍!!!

그러자 순간 몽골검에 빛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강한 제논 탐조등을 순간적으로 켰다가 끈 느낌이었다.

다들 놀랐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줄 몰랐다. 누가 핸드폰 라이트를 켰는지 서로를 살폈다.

나는 대가야 유물을 발굴할 때 보았던 ‘시간을 되돌리는 손’ 능력이 사용된 것이다.

몽골검에 있던 녹이 대부분 사라졌었고, 검 본연의 광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 검을 바라보고 있던 윤 교수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방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글자’가 보였던 것이었다.

금석학 일인자답게 바로 글자를 해석했다.

‘살리타이.’

고려를 2차로 침입한 몽골군의 사령관.

2차 침략을 이끈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는 고려왕을 잡기 위해서 강화도로 향했다가, 바다를 건너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려 전체를 불태워 고려왕을 육지로 불러내는 전략으로 바꿨다. 강화도 주변인 김포-부평-군포-수원-용인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약탈을 했다.

용인에서 용구현성을 함락을 했는데, 식량이 이 안에 없었다. 식량을 어딘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사령관은 사방으로 정찰을 보냈는데 처인성이라는 작은 토성이 있었고 그 안에 군량 창고가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처인성은 처인 부곡이 있는 곳으로 ‘천민의 거주지.’

살리타이는 ‘처인성’을 우습게 보았다.

본대에서 500명의 기병을 직접 차출하여 직접 처인성으로 향했다.

이때 승려 김윤후를 대장으로 하는 승병들이 처인성에 막 도착했는데, 그들까지 안으로 들어가기에 너무도 작은 성이라 밖에 매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고려에 기회를 주었다.

살리타이는 도착하기 무섭게 바로 처인성을 공격했고, 주변에 호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를 노리고 김윤후는 바로 살리타이에게 수백 발의 화살을 쏘았다.

살리타이는 화살 15발을 맞고 사살되었다.

총사령관이 죽자 몽골군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승병과 천민들이 성문을 열고 전력을 다해 공격하여 몽골군을 대파할 수 있었다.

2차 몽골군은 총사령관을 잃고 사기가 땅에 떨어져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살리타이의 몽골검과 황금의 투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왜 몽골검과 황금투구가 왜 이곳에 있을까 생각했고, 아까 본 부적을 보며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인 의미로 몽골 사령관의 검을 묻어 놓은 것이라 가설을 세웠다.

삼국시대에 관산성에서 얻은 백제 성왕의 머리를 신라군이 왕궁 계단 밑에 묻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었다.

“제가 본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키자, 학생들이 놀라며 좌우로 비켜섰다.

국보급 보물을 마치 냉장고에서 콜라 꺼내듯 찾은 것이었다. 누가 보면 마치 이곳에 그 보물을 미리 넣어 놓은 것 같이 보였다.

보통은 작은 유물을 찾기 위해서, 온 땅을 뒤집어야 하는데. 골든보이는 족집게처럼 바로 찾았다.

그들의 발굴 상식 따위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발굴이 ‘끝’나 있었다. 약간 허무한 느낌?

하지만 2개의 유물 모두, 확실한 국보였다.

윤 교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국보다. 국보.”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혹시···. 다른 뭔가가 더 있는가?”

나는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주변을 자세히 살폈는데, 더 보이는 것은 없군요.”

윤 교수는 좀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그렇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이곳까지 왔으니, 더 조사해 봐야지.”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친구가 유조선에서 나온 기름을 치우고 있거든요.”

교수가 진도 바다를 쭉 살펴보며 말했다.

“기름 유출 사고가 크게 났다고 했는데. 전혀 기름이 보이지 않는 것 같군···.”

우리가 며칠에 걸쳐 진도 주변을 다 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랑해 봤자, 믿기 힘든 일.

진도의 바다를 좌에서 우로 파노라마처럼 살피고 있었다.

경복이가 타고 있는 ‘원유 흡입선’ 찾고 있는 것이었다. 피곤할 것이니 빨리 가서 교대해줘야 겠고 생각했다.

!!!

길도 없는 아래쪽 바닷가 근처에서 금빛이 보였다. 생각보다 강렬하다.

내가 다급하게 길도 없는 산비탈을 내려가자, 학생 하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김 대표님 어디 가십니까?”

나는 다급하게 대학원생에게 시선을 주었다.

“금빛을 또 봤습니다. 선배님.”

“금빛이라고요?”

우리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길이 없으면 힘 좋은 학생들이 정글도로 길을 만들면서 나갔다.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곳은 바닷가에서 50m 떨어진 산자락이었다.

나는 마치 절벽 같은 지형의 흙을 만지고 있었다.

뒤늦게 다가온 윤 교수가 흥분하며 물었다.

“뭐가 또 있는가?”

나는 황금빛을 보며 말했다.

“이 진흙 절벽 안쪽에 뭔가 있습니다. 조심해서 파보세요.”

“설마 또 황금인가?”

“골든보이가 보았으니, 당연히 금입니다.”

윤 교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대단해. 대단한 능력이야.”

미니 포크레인이 용장산성에서 이곳까지 조심스럽게 길을 만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를 팔까요?”

나는 페인트를 진흙 벽에 뿌렸다.

“이곳을 조심해서 파주세요.”

포크레인 기사의 흙벽을 조심스럽게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눈에 황금빛이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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