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머릿속에서 ‘핵폭탄’ ‘서울’이 두 단어가 돌아다녔다.
두 단어가 머릿속에서 부딪칠 때마다 나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CIA 반즈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어왔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반즈?”
반즈의 목소리는 아직 가벼웠고, 반가움이 묻어 나왔다.
-골든보이가 이 시간에 직접 전화를 주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번에 아프간 일로 내가 승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그의 반응과 다르게, 나의 목소리는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내 말 심각하게 들어. 앞으로 할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야. 반즈. ”
이제서야 반즈의 목소리도 딱딱해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잠깐 망설였지만, CIA에 확인하는 것이 지금은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다.
“CIA에 ‘북한핵’에 관한 특별한 정보가 없었나?”
반즈의 목소리가 더 놀라고 있었다.
-북한핵에 대한 특별한 정보라니?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어. 자세히 말해봐.
CIA도 정보가 없다는 말인가? 나는 길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북한 핵미사일이 서울로 발사될 것이라는 ‘믿을 수 있는’ 정보가 들어왔다.”
반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정보? 도대체 정보 소스가 어딘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무슨 말인지 물어볼 거면, CIA 때려치워.”
반즈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렇게만 던져주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CIA가 가지고 있는 파이프 돌려봐. 뭐가 나와도 나올 거야.”
-그래도 서울에 핵폭탄이라니 너무 황당하잖아.
“아프간에서 작전할 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아무 바위나 ‘공격점’을 찍은 것으로 보였지. 하지만 그곳에는 다 탈레반이 숨어 있었어. 그때도 황당하지 않았나?”
반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 젠장···.
나는 강하게 말했다.
“긍정적인 대답이지?”
-퇴근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밤새야 할 거야. 진한 커피나 준비해.”
-골든보이가 아니었다면··· ‘미친 새끼’라고 하고 싶군.
“시간이 흐르고 있다.”
반즈는 놀라며 되물었다.
-시간이 흘러? 설마 타이머가 있나?
“5시간 30분 정도.”
반즈는 강하게 욕을 하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제길. 오늘 잠은 다 잤군.
“오늘은 자네 인생에서 가장 터프한 날이 될 거야.”
-알았어. 끊어. 당장 파이프에 불을 붙여 봐야겠어.
“수고하게. 반즈.”
-골든보이. 나에게 빚이 있다는 거 기억해.
“장부에 올려두지···.”
반즈와 통화를 끊기 무섭게 발신자 제한 전화가 왔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보통은 스팸 전화라 생각하고 받지 않는데, 지금은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보세요?”
-김성열 대표님 되십니까?
차분한 목소리. 분명 기관원이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김성열입니다.”
-청와대 중요 인물 보호 프로토콜에 따라 긴급 대피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위치가 청담동 어디에 계십니까?
“청담동 예진 호텔 9층에 있습니다.”
-지금 김성열 외 2명을 확보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곳까지 5분 안에 도착합니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다급하게 내려가, 경복이와 태경이가 있는 테이블로 갔다. 여인들은 아름다웠고, 태경이의 몇 마디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서 뭐라고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 테이블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분위기 좋은데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일어나야겠다.”
태경이가 눈을 크게 떴다가 웃었다.
“무슨 소리야? 하하하 아까 분위기 좋게 나가더니, 또 까였냐?”
“그게 아니라.”
갈색 머리의 미인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골든보이다.”
태경이가 인상을 쓰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이렇게 끼어드는 것은 상도덕이 아니지. 짝이 안 맞아.”
나는 웨이터를 불러, 싱글몰트 글렌피딕 양주 한 병을 추가로 계산하고 이곳의 일을 마무리하였다.
“오늘은 아가씨들끼리 즐겁게 마시세요.”
경복이가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 갑자기 파장 분위기로 몰고 가지?”
나는 시계를 잠깐 보고 말했다.
“곧 영업 종료야.”
태경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에 ‘이따위’로 나오면 진짜 ‘파국’이 뭔지 보여줄 수 있어.”
경복이와 태경이는 정말 실력행사 할 분위기였다. 아름다운 서울 여인과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미 ‘파국’이야.”
“그게 뭔 개소리야?”
“이곳에서 설명하기 좀 그렇고, 곧 사람이 도착할 거야. 가야 해. 시간이 없어.”
경복이가 살짝 술이 깨는 얼굴로 말했다.
“누가 오는데?”
“여기서 설명하기 좀 그러니, 직접 확인해라.”
이때 경호용 이어 마이크를 찬, 검은 양복을 입은 3명의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와 다급하지만 정중하게 말했다.
“김성열 선생님. 프로토콜에 따른 대피 프로세스를 진행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김 선생님 외에 2명은 누구입니까?”
나는 경복이와 태경이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두 사람입니다.”
청와대 경호원은 태경이와 경복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대피 프로세스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나는 두 사람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시간이 없어. 당장 나가야 해.”
청와대 경호원 사람들의 심각한 분위기에 이끌려 우리는 휩쓸리듯 밖으로 나왔다.
선 대위와 수행과 사람들을 향해서 한마디를 했다.
“연락이 없으면,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여러분 가족까지 챙겨 서울을 탈출하세요. 그리고 부산으로 가세요.”
선 대위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지만 나는 대답 없이 강한 눈빛으로 마무리하였다.
태경이가 빠르게 이동하며 다급하게 물었다
“뭔데? 어디로 가는데?”
“차에 타면 이야기해줄게.”
1층에 대형 검은밴이 서 있었고 우리는 몸을 던지듯 차에 탔다. 차에 타자마자 태경이가 화를 내는 것처럼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거사’가 성공하기 직전이었다고. 그리고 ‘탈출’은 뭐고 ‘부산’은 뭐야?”
나는 태경이와 경복이를 냉정하게 바라보다가,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지난번 말했던 <<돌발>> 미션이 떴다.”
“돌발? 아 그때 말했던 돌발? 무슨 미션인데 그래?”
“북한의 핵미사일이 ‘서울’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미션이다.”
태경이가 경악하며 말했다.
“뭐? 서울?”
경복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뭔 개소리야. 지난번에 네가 김정은 그놈은 매일 기쁨조 끼고 로열살루트를 먹을 수 있는데, 전쟁을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했잖아.”
나는 미션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하지만 미션에 북한 핵이 서울에 떨어지니 그것을 막으라고 되어 있어. 앞으로 시간이 5시간 22분 남았다.”
경복이가 경악하며 말했다.
“5시간 22분? 벌써 카운트 다운이 들어갔어?”
나는 보조석에 앉은 사람을 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가능하다면, 현재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분의 소속을 밝혀 줄 수 있습니까?”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대통령 경호실 7팀 배한경입니다.”
“배 팀장님.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일단 북악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는군요.”
“비상 프로토콜이 발령되어, 긴급 대피 시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는 최소의 인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검은색 대형 밴은 청와대 뒤편에 있는 북악산 스카이웨이 쪽으로 길을 잡았다. 아직은 사람들이 여유 있게 야간 산책을 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스카이웨이에 다 못 가서, 평소에 막혀 있는 숲길이 있었는데, 오늘은 101경비단 경찰들이 우리를 보고 야광봉을 흔들며 이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신분증과 지문을 확인했다.
“경호 7팀입니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세요.”
자동차는 숲길로 10분 정도 들어갔고,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동굴형 벙커였다.
배 팀장과 검은색 밴은 다음 요인을 확보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고, 우리는 청와대 수행원들을 따라 북악산 E 벙커로 들어갔다.
태경이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핵폭탄 이야기 진짜야? 정말? 개소리 아니야? 제발 뻥이라고 이야기해줘.”
나는 벙커 안을 구경하며 말했다.
“너 놀리려고 이 엄청난 것을 만들었겠냐? 대통령 경호실과 청와대 사람들까지 동원하면서?”
태경이는 자기 머리를 잡았다.
“아 씨발. 말도 안 돼.”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려 7, 8층 깊이로 내려간 것 같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철저한 몸수색이 있었다.
북악산 E 벙커는 김대중 대통령 때 지은 것으로 비교적 신형 벙커였지만, 벌써 십 년도 넘게 쓰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거미줄도 많았고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전구도 많았다.
그래서 복도는 어두운 편이었다. 물이 고여 있는 곳까지 있었다.
넓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50개가 넘는 의자가 있었는데, 각각 번호가 붙어 있었다.
“여기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33,34,35번에 앉으세요.”
우리는 지정해준 숫자 의자에 앉았다.
넓은 회의실에 이제 우리 3명밖에 남지 않았다.
태경이가 앞에 앉은 컴퓨터를 보았는데, 골동품에 가까웠다.
“우리를 공격하는 주체가 혹시 북한이 아니라 ‘사이버넷’ 아니냐? 영화에서 이런 벙커를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터미네이터 3편에서 나오는 벙커 말이냐?”
“영화랑 너무도 똑같아서 무섭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그따위 SF영화 같은 것이 아니야. 미션에 분명 ‘북한의 핵’이라고 쓰여있어.”
철컥.
갑자기 C25라고 쓰인 문이 열리고 양복을 입은 노인이 들어왔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비서실 사람들과 경호원들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며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반갑다고 인사해야 하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김 대표.”
나는 대통령과 악수하며 말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은 자리에 털썩 앉아 말했다.
“그동안 기적 같은 일을 보여줬기 때문에 일단 이곳으로 들어왔네. 하지만 100% 믿은 것은 아니야.”
“그럴 수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농담으로 넘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자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골든보이를 믿으십니까?’ 이 말이 떠올랐네.”
“믿으십니까?”
대통령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51%”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곧 진실이 확인될 겁니다.”
이때 비서실 사람이 핸드폰을 넘기며 말했다.
“국방부 전화입니다.”
대통령은 나를 잠깐 보더니, 스피커 모드로 바꿨다. 그리고 묵직하게 말했다.
“지금 북한군 상황은 어떤가? 특별한 동향이 있는가?”
참모총장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전방의 모든 부대에 현재의 북한 상황을 살피라고 명령했는데, 특별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찰기나 감청기도 띄웠는데, 북한 쪽은 평소와 완전히 같습니다. 도발할 증후는 전혀 포착되지 않습니다.
“서해 5도 쪽은 어떤가?”
-그쪽도 확인해 봤는데 특별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군 쪽에서 넘어온 정보는 없나?”
-이쪽으로 넘어온 특별한 정보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연합사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알았네. 수고했어. 계속 살펴주게.”
비서관이 다른 전화기를 넘겼다.
“국정원입니다.”
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이고 스피커 모드로 바꿨다.
“평양 쪽은 어떤가?”
-평양 쪽,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휴민트나 능동 감시 시스템 모두 특별한 동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알았네. 오늘은 계속해서 확인해 주게.”
이때 비서실장이 들어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은 비상 소집훈련으로 연락했습니다.”
대통령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훈련으로 잡아 놓았네. 확실한 물증도 없이 ‘핵’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시간이 5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 비서실장이 낮게 뭐라고 말했고 대통령은 나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경복이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가족들에게 피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선 대위에게 이미 말했다. 알아서 잘할 거야.”
우리 세 명은 들어오는 길에 핸드폰을 빼앗겼다. 절대적인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프로세스였다. 보안 1급 인원들만 핸드폰을 들고 있을 수 있었다.
이때 서 비서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김 대표님. 들어오셨군요.”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북한이랑 직접 통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번 일을 가장 빠르게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연락받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욕이 터져 나왔다.
“씨발놈들. 문제가 터졌으면 전화를 받아야지.”
서 비서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곧 이곳에서 NSC 회의가 진행될 겁니다. 모든 질문이 김 대표님을 향할 겁니다. 다들 당황하여 분노할 수 있습니다.”
“욕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둘씩 넓은 회의실에 들어왔다. 다들 서로 보면 반갑게 인사했는데, 나를 보고는 쑥덕거리기만 할 뿐 말을 붙이지 않았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50개의 의자에서 20명쯤 앉았을 때, 대통령이 방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대통령은 앉아 있는 20명을 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긴급 대피 훈련을 했는데 겨우 23명이 전부인가? 다들 어디 있는 거야?”
여기 앉은 사람 중 대부분은 잠옷이나 추리닝 바람에 끌려 왔는데, 혼자 완벽하게 양복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표명석. 하버드 졸업, SBN 앵커, 큰 키에 잘생긴 얼굴, 화려한 언변, 차기 대통령감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인기 없는 대통령이랑 거리를 두면 둘수록 인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언사가 선을 넘고 있었는데, 인기 있는 장관을 그냥 자를 수도 없고 참으로 골치 아픈 존재였다.
“대통령님. 오늘 이 훈련이 한 유투버의 말을 믿고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핵폭탄이 서울에 떨어진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이 회의가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종교인이나 무속인의 말, 비인가 된 지인들의 말을 듣고 국정을 운영하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나를 협박하는 것인가?”
“유투버의 말을 믿고 북안산 벙커에서 NSC 회의를 한 것을 일반 국민이 안다면,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겁니다.”
국무총리가 크게 한마디 했다.
“대통령께 지금 무슨 말버릇인가? 자네 미쳤나? 이것은 훈련이라고 했잖아.”
표명석 장관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골든보이. 김성열 대표가 앉아 있지 않습니까?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대통령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아. 북한 핵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네.”
표 장관은 더욱 언사를 높이며 말했다.
“이 시국에 ‘핵’이라니요? 오늘 이야기가 시중에 퍼지면, 국가에 얼마나 큰 혼란이 야기 되는지 예상해 보셨습니까? 당장 주식시장부터 박살 나고, 한 줌 붙어 있는 우리 지지자도 다 떠나는 겁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표 장관을 보며 강하게 말했다.
“핵이 터지면 주식시장만 터지겠습니까? 서울 전체가 터지고 장관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다 죽습니다.”
표 장관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 눈에만 미션창이 보일 뿐 누구도 이것의 존재를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강하게 나가야 했다.
“확실한 정보 라인이 있습니다. 핵으로 서울을 노리는 북한 세력이 있습니다.”
“설마 북한 ‘김정은’이 새벽에 서울에 핵을 쏘고 남침한다는 말입니까?”
국방부 장관이 우리의 말에 끼어들었다.
“‘대대적인 남침’ 그것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전면적인 남침을 하려면 뚜렷한 징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방이나 후방 모두 그런 징후는 없습니다. 전쟁은 버튼만 누른다고 바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지요. 우리는 24시간 그것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미션창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핵폭탄이 터진다고 했지.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표 장관이 테이블을 주먹을 치며 말했다.
“서울에 핵이 떨어지는 것이, 전쟁과 같은 말이 아닙니까?”
복지부 장관 표명석의 말이 맞다. 지금은 핵을 쏜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고, 그것을 ‘방증’하는 북한의 움직임도 없다.
하지만 미션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서울에 핵이 떨어질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완전한 사실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지금의 기회를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앞으로 5시간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표명석 장관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이 야밤에 사이렌을, 그것도 실전 경보음을 울리는 순간, 안보 대참사로 기록되고 앞으로 30년은 집권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도 완벽하게 무능한 대통령으로 영원히 남을 겁니다. 그것도 유투버 말을 듣고 국정을 진행했다고 야당 사람들이 끝까지 물어뜯을 겁니다.”
나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무능한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국방부 장관의 전화가 깜빡였다. 그리고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받았다.
“초계기와 정보수집기가 추가로 모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정보부서는 모두 배치되었습니다. 정보 수집 최고 단계가 되었습니다.”
“추가 정보가 있습니까?”
“확인 중에 있습니다. 공군을 긴급 출동 대기 시킬까요?”
대통령은 심각하게 머리를 끄덕였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참모총장의 전화가 왔다. 국방부 장관이 전화를 받았다가 스피커 폰으로 바꿨다.
-대통령님 갑자기 북한의 전방 통신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전방 병력 장악을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대통령의 눈동자에 이제 힘이 들어갔다.
“그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전화선에서 특별한 이름을 찾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름이요?”
-‘조진평’ 준장을 찾고 있습니다.
“‘조진평’이 누구입니까?”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확인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나는 한마디 더 했다.
“앞으로 4시간 40분 남았습니다.”
표명석 장관이 더 강하게 나에게 말했다.
“그 정보 소스가 어디 출처인지 말씀해 보세요. 그래야 우리가 믿을지 말지 결정할 것 아닙니까?”
미션이라고 죽어도 말할 수 없다. 진짜 미친놈으로 매장당한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잠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행정학’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쓰레기통 이론’인가 ‘사이버네틱스 이론’인가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문제가 터져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정보의 소스가 어딘가를 중시하고, 결론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손실에 대해서만 걱정한다고 나와 있지요. 그때는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흘러가고 있군요.”
“지금 우리가 무능하다 하는 것입니까?”
이제 나의 눈빛이 바뀌며 표명석 장관을 깔아 보았다.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멸망’할 수 있는 위기에 빠졌는데, 주가를 걱정하고 다음 정권 이야기나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신 빠진 소리지요. 핵이 터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대통령이 맨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나에게 물었다.
“자네가 배웠다는 그 행정학에서는 ‘정답’은 뭐라고 하던가?”
“토론하지만 어차피 이해관계의 상충 때문에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 집권화된 결정권자가 최종 결정을 한다 입니다.”
대통령이 낮게 웃었다.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군.”
나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말했다.
“‘쓰레기통 이론’은 일이 터져야, 대응한다는 이론입니다. ‘핵’이 터지고 뒤처리를 하는 이 모델만은 채택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서 비서관이 들어와 대통령께 뭐라고 말하자 그가 한마디 했다.
“반즈라는 자가 자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군.”
“반즈요? 연결해 주세요.”
나는 주변 사람들을 쭉 돌아보고 한마디 했다.
“CIA입니다.”
스피커로 연결된 반즈의 목소리는 흥분해 있었다.
-골든보이! 너 이것을 어떻게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