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김선달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다시 ‘아부다비’로 가는 길.
나와 태경이는 비행기에 올랐고, 경복이는 한국에서 수류석을 움직일 사람이 필요했기에 한국에 남았다.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12시간의 긴 비행 끝에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도착.
여전히 아랍 에미리트는 매우 덥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때 검은색 리무진 한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40대의 한 사내가 반갑게 인사했다.
“김성열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DW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김 대표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영재 회장이 중동 총괄 이사 조일환을 보낸 것이었다.
그는 ‘이라크 스마트 시티’를 완공시킨 사람으로 중동지방의 베테랑이었다. 외모는 사막 부족 사람처럼 검은 구릿빛 얼굴을 가지고 있어 마치 이곳에서 쭉 살아온 토착민처럼 보였다.
나는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 이사도 같이 머리를 숙였다.
“본사에서 ‘전략가’를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면 분명 길이 있을 겁니다.”
“동감입니다. 대표님.”
하지만 조 이사는 말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경쟁업체는 국가적으로 힘을 모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쪽은 맨손으로 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업 철수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하며 남은 직원들의 자리를 걱정하고 있을 때, 허영재 회장이 자신을 부르더니 내륙 도시 사업의 성공 열쇠를 가진 ‘전략가’가 온다고 했다.
그 전략가의 이름은 ‘골든보이’.
어디 ‘호스트바’ 가게 상호로 쓰면 딱 맞을 것 같은 이름.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용히 뒷조사를 해봤는데,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이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기꾼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특히 최근에 만수르 왕자의 신뢰를 받고 아부다비 왕의 초대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조 이사는 오래 회사생활을 한 사람답게 처신이 부드러웠다.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되었으니, 준비한 숙소에서 푹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이사님.”
우리는 오랜 비행기 때문에 약간 멍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부다비 DW의 건설 본부에 짐을 풀고 하루를 푹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싱싱한 기분으로 사무실로 내려갔다.
사무실 지도에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이 만들고자 계획한 내륙 도시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지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도를 보면 내륙 도시라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내륙 도시가 아니라··· 해변 도시?
4곳 모두 해변에 내륙 도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담수화 시설을 통해서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야지 도시가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조일환 이사가 깔끔한 모습으로 들어와 이쪽으로 다가왔다.
“김 대표님. 아침 일찍부터 나오셨군요.”
나는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조 이사님. 저는 세상모르고 푹 잤습니다.”
“시원한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있으니, 아침이 제법 맛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이 만들 내륙 도시도 해변에 있군요. 이것은 해변 도시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해수라도 있어야 담수화를 통해서 물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맞는 말씀이지만, 전략적 내륙 도시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군요.”
“하지만 물 없으면 생명 자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부다비 해변의 다른 나라 내륙 도시 후보지를 살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무슨 전략적 이점이 있습니까?”
사실 전략적 이점이 거의 없었다.
“흠··· 사실 전략적 이점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솔직하겠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다른 나라보다 공사비가 좀 더 쌉니다. 저희는 이라크 스마트 시티를 만든 적이 있으니까요.”
DW가 가장 적은 공사비를 책정한 것은 맞지만 다른 기업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실제 입찰을 할 때는 상대도 가격을 더 깎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나라가 제공하는 금융 이익이나 다른 정치적 어드밴티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게다가 해변 도시를 만들려면, 다른 국가처럼 아부다비와 두바이 사이 즉, 서쪽 해안에 만들어야지, 아부다비 동쪽 해안에 만드는 것은 전략적인 미스로 보입니다만···.”
맞는 말이지만 아부다비와 두바이 사이의 쓸만한 곳은 모두 다른 강대국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 이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업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다 필요 없다.
이제 해결 방법을 가진 ‘전략가’가 이야기할 시간이다.
나는 지도를 오랫동안 살펴보다가 작은 대한민국 국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내륙 한복판에 박았다.
“우리가 만들 도시는 내륙 깊숙이 있습니다.”
조 이사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물이 없는 곳에 어떻게 도시를 만든다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만들 내륙 도시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나의 시선을 받은 조 이사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고, 나의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폭포’와 ‘강’입니다.”
조일환 이사는 나의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폭포와 강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허 회장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까?”
생각해보면 허 회장도 ‘어떤 미친놈이 사막 한가운데 강을 만들 거다.’라 말하기 거북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조 이사를 간단하게 이해시켰다.
“지난번에 제가 사막 한가운데서 지하수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물을 제공할 것입니다.”
조 이사는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두바이에서 엄청난 지하수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것을 김 대표님이 찾았습니까?”
지하수를 찾은 것 사람이 ‘에드워드 공’이고 그 사람이 김 대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사막 한가운데서 솟아 나오는 물줄기를 볼 겁입니다.”
조 이사는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번에 지하수를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100%”
높은 언덕이나 산이 있어서 폭포가 쏟아졌고 그 물은 강을 이루며 도시 가운데를 흘렀다.
그 물은 가까운 곳에 호수를 만들었고, 그 근처에는 넓은 숲과 공원이 있었다.
이와 같은 도시를 만들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 번째로 높지 않더라도 폭포가 떨어질 정도의 절벽이 있어야 했다.
두 번째로는 시멘트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바닥이 딱딱하여 강이 흐를 수 있어야 했다. 모래 속으로 물이 사라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 번째로 바닥이 굳은 넓은 구덩이가 있어서 호수를 만들 수 있어야 했다. 그러면 공원과 숲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언덕’과 딱딱하게 ‘굳은 수로’ 그리고 ‘넓은 구덩이’. 위의 3개가 동시에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내가 조 이사에게 찾아야 할 땅 조건을 말하자, 그는 불도저처럼 움직였다.
바로 헬기 4대를 준비하여 바로 탐사 편대를 만들었다. 한대는 산을. 한대는 구덩이를. 한대는 수로와 비슷한 것을 확인하는 시스템. 예비 헬기까지 마련되어 있다.
아부다비 전체 땅을 확인하는데 대략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스케줄.
놀라운 추진력으로 아부다비에 도착한 지 단 이틀째 아침. 헬기 4대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헬기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내가 상상한 ‘풍수지리’를 봐야 했다. 하지만 하늘에서 땅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산모양이 아름답고 특별해서 확인했으나 주변이 완전히 모래밭이었고. 자연적으로 파진 구덩이가 있어서 확인했지만, 구멍 뚫린 현무암이라서 물을 담을 수 없는 곳이었다. 도시를 세우기 적당한 딱딱한 땅을 발견했으나 엄청난 바위가 전체적으로 박혀 있어서 기본 토목 작업을 하기가 너무도 어려워 보였다.
다음 날에는 내륙 사막 도시인 아민까지 가는 코스였다. 종일 확인했으나 역시나 3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모두 버리고, 물이 흐를 수 있는 딱딱한 수로를 가진 땅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헬기 4대가 넓은 섹터를 뒤졌지만, 나의 마음에 드는 지형을 발견하지 못했다.
끝내 밤이 되어 사막 도시 ‘아민’에 도착했다.
아민은 작은 오아시스가 있었고 그 주변에 시골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부다비나 두바이와 다르게 이곳은 진정한 사막 부족의 지역 문화가 살아 있었다.
로컬 음식으로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수프, 밀가루 전병, 설탕에 절인 과일 그리고 홍차가 나왔다.
나와 태경이 그리고 DW의 젊은 직원들 모두, 이것저것을 조금씩 집어먹다가, 향신료가 들어간 수프는 더 이상 손도 못 대고 설탕에 절인 과일을 이빨 끝으로 조금씩 끊어 먹었다. 생수로 희석한 홍차와 밀가루 전병만 겨우 조금씩 띠어 먹고 있었다.
중동 생활을 오래 한 조일환 이사만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특히 수프가 진하니 맛있다며 주방 아주머니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끌어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민 주변을 며칠 동안 확인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후보지를 찾지 못했다.
나는 며칠 더 여유가 있었지만, 이곳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민은 버리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갑시다.”
다음 지역은 아부다비 내륙 도시 중에 제법 큰 ‘아라다’로 이동했다.
아라다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과 가까워 ‘군사기지’가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3일 동안 헬기 정비를 하기로 했다. 사막에서 비행하면 반드시 자주 정비를 해야 했다.
군인들이 헬기 정비 시설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내가 왕궁에 전화 한 통화를 했더니 기지 대장이 뛰어나와 우리를 반겼고, 무료로 헬기 기름까지 가득 넣어 주었다.
헬기가 정비하는 동안, 우리는 아라다의 낡은 호텔에 누워서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지금까지의 탐색 방법은 너무도 비효율적이었다.
뭔가 스마트 하면서 새로운 탐색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은 체력과 심력의 소모가 너무도 컸다.
이때 태경이가 비명을 지으며, 찾아낸 새로운 탐사 방법은 바로 ‘구골 어스’.
모든 직원은 각자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위성사진으로 사막을 살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이 이 정도까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누가 생각했을까?
헬기로 돌아다니며 일일이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략적인 윤곽은 확인할 수 있었다. 최소 산이 있거나 거대한 구덩이가 있는 곳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3일 동안 조사하여, 확인해야 할 30여 곳을 표시했다.
최소 사막을 모두 살피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헬기가 정비된 아라다 군사기지로 갔을 때, 기지 대장이 마중까지 나와 있었다. 왕궁에서 우리를 잘 보호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기지 대장은 이곳에서만 30년 넘게 군 생활을 한 사내였다. 그는 우리가 무슨 조건의 땅을 찾고 있는지 알았다.
그래서 추천한 구역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반달 사막강’ 지역.
우리는 그곳을 구골 어스로 살폈으나 기지 대장이 말한 조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장은 확신에 차서 태블릿의 화면을 보며 여러 가지 추가 설명을 하였다.
눈으로 보는 것과 인공위성 지도로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인가?
첫 번째로 탐사하려는 지역이 ‘반달 사막강’ 근처에 있어 가는 길에 들러 보기로 했다
일단 계획대로 구골 어스에서 확인한 포인트 몇 곳을 탐사하였다.
계획과 현실의 차이.
위성지도에서 본 것과 실제 눈으로 확인한 것은 차이가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철수할 시간이 된 것이었다.
“반달 사막강에 잠깐 들렀다가 갑시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반달 사막강’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낮은 언덕이 있는 산이 있고, 절벽을 따라 강이 흘렀던 흔적이 있었다.
태경이가 아주 오래전에 강이 흘렀던 것 같은 땅을 만지더니 말했다.
“땅이 딱딱하다. 물이 흐를 수 있겠어.”
태경이가 생수 한 병을 그대로 쏟았는데 지면을 타고 흘러냈다.
주변 땅도 모래사막이 아닌 딱딱하게 굳은 퇴적토 지역이라 건물을 올리기 적합한 지형이었다. 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는 깊은 구덩이도 있었다.
나의 표정이 아주 밝아졌다.
“지금까지 본 곳 중에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나는 헬기를 타고 주변 지형을 살피며 상상에 빠졌다.
낮은 산에 폭포를 만들고 그 물이 반달 사막강을 따라 흐르며 좌우로는 도시가 펼쳐져 있고 도시 중앙에는 거대한 호수 공원이 존재했다. 호수에 있던 물은 계속 흘러서 북쪽 해안으로 강처럼 흘러 내려간다.
방향은 제2의 항구 도시 ‘타리프’ 쪽으로 흐르게 되었는데 중간마다 모래사막이 있어서 정확하게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운하 작업을 한다면 원하는 대로 물을 흐르게 할 수 있었다. 그 옆으로 야자수 나무가 펼쳐진 고속도로까지 만든다면 참으로 아름다울 것 같았다.
도로와 수로를 따라 여러 개의 도시나 마을도 자연적으로 생겨날 것이었다.
이보다 좋은 땅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탐사 종료 선언.
해가 떨어지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헬기 안에 있는 소고기와 양고기를 넉넉하게 구웠다. 이슬람 국가라 삼겹살을 챙겨 오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헬기에 숨겨두었던 한국 소주 한 병과 양주가 나왔다.
물컵에 가볍게 한잔하면서 양고기와 소고기를 양껏 먹었다. 역시나 한국 사람들답게 소고기는 다 먹었는데 양고기는 많이 남겼다. 양고기의 누린내를 아직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음식이 풍부하여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헬기를 타고 탐사하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래서 술 한잔에 술기운이 올랐고 피로와 취기가 하나 되어 나를 이동 숙소로 몰고 갔다.
아 정말 힘들다.
침낭으로 들어가 단 1분 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까지 깊은 꿀잠을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귀걸이를 한 귀가 아파왔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아주 오래전 아랍제국의 사막.
내 눈에 제법 규모가 있는 오아시스가 보였다. 그 주변에 수백 가구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반달 마을’이라 부르는 곳.
이 마을에는 특별한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는데. ‘지혜로운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마을에 문제가 생겨, 그 노인에게 찾아가 해결책을 물으면 모두가 납득할 지혜를 내려주곤 하였다.
하지만 사람 중에는 그 노인을 ‘노망난 늙은이’라 부르는 일부 사람들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배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왜 배를 만드냐고 물어보면 세상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막과 대홍수.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좋게 보았던 사람들도 노인이 이제 노망이 났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노인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언덕에 배를 만들었다.
그런데 배의 모양이 특이했다. 돛도 키도 없었으며 뚜껑만 있는 모양이었다. 사방에서 파도가 몰아쳐도 버틸 수 있게 만든 배였다.
자신이 죽으면 배에 불을 질러 화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자손들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가 천수를 다 누리기도 전에. ‘예언의 그 날’이 왔다.
그 노인은 엄청난 비가 올 것을 알았다. 천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이 전 세계를 누비며 모은 보물들을 한둘씩 배 안에 숨겼다. 그리고 자손과 낙타, 양, 염소 암수를 배에 태웠다.
사막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미량의 비가 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야말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오아시스는 빗물에 불어나 거대한 호수가 되었고 주변에 있던 마을은 물에 잠겼다.
노인과 가족들은 겨우 홍수에서 도망쳐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배에는 돛도 없고 키도 없었다.
맹렬하게 몰아치는 홍수에 떠내려가는 가랑잎처럼 어지럽게 흔들렸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의 힘.
배가 급류에 휘말려 침몰하고 진흙 속에 깊게 파묻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꿈에서 깼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이었다.
옆에서 자는 태경이를 깨웠다.
“산책하러 가자.”
태경이는 눈도 못 뜨고 말했다.
“벌써 다 늙어서 새벽잠이 없냐?”
“잠깐만 나갔다가 오자.”
“밖에 귀신이 있어서 안 돼.”
“처녀 귀신이야. 괜찮아.”
“중동 처녀 귀신은 내 스타일 아니야. 내가 양보할게.”
“씨발놈아 고맙다.”
나는 태경이를 그대로 두고 폭포를 만들기로 했던 낮은 절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해가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오아시스 반달 마을이 발아래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노인이 만들었던 배가 어디로 휩쓸려 갔는지 생각해 냈다. 나의 눈이 그 배를 따라 먼 북쪽을 바라보았다.
!!!!
북쪽에 있는 작은 언덕 아래 작게 금빛이 빛나고 있었다.
아! 금빛이다!
나는 헬기에 실어 온 사막 버기카를 타고 황금빛이 나는 곳으로 몰고 갔다.
버기카로 오프로드 운전을 하기 쉽지 않았지만, 황금빛을 향해 속력을 냈다.
버기로 20분쯤 달렸을 때, 드디어 확실한 황금빛을 확인했다.
나는 버기에서 내려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은 생각보다 딱딱해서 잘 파지지 않았다. 그래서 전동 드릴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사막의 아침은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해가 뜨자 점점 뜨거워졌다.
해가 뜬 지 1시간이 지나자 확실히 더워졌다.
“뭐? 골든보이가 없어?”
임시기지에서는 내가 사라져 난리가 났고 사람들은 사방으로 나를 찾아 돌아다녔다.
태경이가 언덕에서 망원경으로 나와 버기카를 발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헬기를 타고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내가 미친 듯이 땅을 파고 있자 태경이 놀랐지만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물었다.
“무슨 색이냐?”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황금색.”
“오 씨발.”
태경이도 함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조 이사가 나에게 물었다.
“왜 땅을 파고 있는 것입니까?”
“골든보이 채널을 확인하셨지요? 골든보이가 왜 땅을 팝니까?”
나의 말에 몇 명의 탐사 대원이 내려와 땅을 파기 시작했고, 헬기 기장은 조 이사에게 저장한 골든보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조 이사가 놀란 눈으로 기장을 바라보았다.
“사막 한복판에 금이 있다고?”
“골든보이가 땅을 파니··· 아마도 그렇겠죠?”
조 이사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 금이 있어서 땅을 파는 것입니까?”
나는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홍수를 대비하며 방주를 만들었던 한 노인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조 이사는 골든보이의 말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방주를 만든 노인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