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골든보이 납치 사건.’
아부다비와 두바이 간에 보이지 않는 마찰이 있었다.
내가 헬기로 납치되어, 아부다비 국왕과 면담한 것을 알고 두바이에서 강력한 항의를 하였다.
하지만 아부다비 왕은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왔다고 해명했다.
자신과 관계없이 본인의 의지로.
한국 대통령의 권유로.
할 말은 많지만, 100% 나쁜 인연은 아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바로 헬기를 타고 두바이로 넘어갔다. 항상 첫 번째 인연은 중요한 법.
나는 만수르와 만나 솔직하게, 아부다비 왕이 보물과 물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고,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역시나 만수르 왕자는 반가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만의 여자라 여겼는데, 다른 사람과 ‘썸’타고 있는 것을 안 느낌.
뭐. 어쩌겠는가? 나는 두바이의 국민도 아니고 만수르의 신하도 아니다.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인데 만수르의 뜻대로만, 혹은 두바이의 뜻 대로만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만수르 왕자의 약점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만수르 왕자님도 아부다비 국왕 폐하를 이기지 못하는데.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분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만수르 왕자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부다비 왕의 힘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를 더 했다.
“앞으로 마크툼 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아부다비의 자금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만수르 왕자는 입을 열었다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불가능하겠지. 아랍 에미리트에서 아부다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두바이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놈의 돈이 뭔지···.
한국에서 돈 많은 것의 대명사인 만수르 왕자도 ‘그놈의 돈 때문에’ 아부다비 국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송 회장에게 가서 ‘돈 많으니까 든든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보라. 그럼 회장이 ‘나 돈 없어 죽겠다.’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
나는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내륙에 도시 2곳이 있으면 서로 물류를 주고받으며 더욱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부다비나 두바이 모두 같은 나라 아닙니까?”
와. 우리나라만 지역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도 눈에 보이게 심각했다.
만수르는 조금 평정심을 찾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받아드리지 못하는구나.”
나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왕자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왕자님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왕자님을 도울 것입니다.”
왕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두바이의 스승이자, 두바이 왕족이라면 나만의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전 세계가 하나 되는 세상입니다. 마음만 열면 모두 친구가 되는 세상이지요.”
Do you know ‘we are the world’?
만수르 왕자의 눈빛은 나에게 박혔다.
“골든보이는 전 세계에 하나뿐이다. 귀중한 시간을 ‘쉐어’하고 싶지 않다.”
“서울에서 두바이까지 하루면 옵니다.”
만수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너에게 좀 귀찮은 친구가 되어야겠구나.”
“왕자께서 불러 주시면 반드시 오겠습니다.”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 두겠다.”
우리는 대통령이 타고 온 전용기를 얻어 타고 편안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를 살뜰히 챙겼다.
청와대 직원이 그러니 부담스러운데?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봉이 김선달 프로젝트’
수류석을 사용하여, 물줄기를 그냥 만들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임팩트가 약하다.
미국의 군사동맹.
중국의 20조.
일본의 반도체 기술.
이런 것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우리 행보관님이 그랬다. 일하면 ‘티’를 내라고···.
사회에서 일하는 티를 ‘프로페셔널’ 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청와대 서진택 의전 비서관이었다. 그의 손이 닿으면 그다지 성과 없는 일도 잠시 동안 대단하게 보였다.
진정한 능력자.
그 서진택 의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내 회사에 찾아왔다.
나는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비서관님을 모셨다.
“어서 오세요. 서 비서관님.”
서진택 비서관은 활짝 웃으면서 나와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김 대표님. 아랍 에미리트에서 일이 잘 풀렸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우리는 사장실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만수르 왕자의 ‘친구’이자 ‘스승’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저보다 똑똑하고 나이가 훨씬 많은 형님입니다. 스승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서 비서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김 대표님의 능력을 보았으니, 분명 만수르 왕자가 욕심을 냈을 겁니다.”
나는 말을 돌리며 웃었다.
“비서관님도 그간 잘 계셨습니까?”
“제가 대통령의 심복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 대표님께 그 자리를 빼앗긴 것 같습니다. 아부다비 왕과 만난 자리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안 하십니다. 그저 김 대표님을 도우라고만 하시는군요.”
나는 낮게 웃었다.
“정말 아무 말씀도 못 들었나요?”
“허허허 ‘봉이 김선달 프로젝트’라는 한 단어만 들었습니다.”
서 비서관이 내가 하는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 몰라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봉이 김선달 프로젝트’는 아랍 에미리트 내륙 지역에 ‘강’을 만드는 것입니다.”
서진택 비서관은 나의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분명 내륙에 강을 만든다고 하셨습니까? 그곳은 거의 사막 아닙니까?”
나는 분명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사막에 강을 만드는 것입니다.”
서 비서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김 대표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기 싫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내가 말하고도 상대가 믿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 힘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믿어주세요. 골든보이는 항상 묻습니다. ‘골든보이’를 믿냐고 말이지요.”
서진택 비서관은 굳은 얼굴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얼굴을 풀었다.
“광명 황금 광산이나 철원 땅굴, 게다가 남북 정상회담을 끌어낸 것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강물이 흐르는 것도 당연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어야지 이번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서진택 비서관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김 대표님이 한국에서 석유가 펑펑 난다고 해도 저는 믿습니다.”
‘아···. 사실. 이제 고령에서 석유가 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이야기는 먹어 삼켰다. 더 혼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진택 비서관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아부다비 사막에서 물을 뿜어내는 일은 제가 할 것입니다. 서진택 비서관님이 해야 할 일은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아부다비 국왕에게 어떻게 멋있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시면 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말이죠?”
“엄청난 물줄기가 솟구쳐 오를 것입니다.”
그냥 쉽게 이해시키자.
“쉽게 생각하면 물탱크를 묻어 놓고 물줄기는 뿜어낼 것인데, 그것을 가장 ‘한국 스타일’의 멋진 퍼포먼스로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서진택 비서관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사막에서 하늘로 뿜어내는 물줄기라···. 정말 환상적이겠군요.”
나도 사막 부족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내륙지방에서의 물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사막 부족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은 모지신의 ‘젖’이자 ‘피’라 하였습니다.”
나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서진택 비서관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젖과 피라···. 갑자기 뭔가 영감이 오는 것 같군요.”
나는 놀랐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벌써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
“스치고 지나간 이미지가 있습니다. 좀 확인해 보고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비서관님이라면 믿을 수 있지요.”
서진택 비서관은 아주 밝게 웃었다.
“대통령님의 임기가 거의 남지 않았는데,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춤출 수 있는 무대가 있어서 너무도 행복합니다. 춤추다 죽는 것이 제 소원이지요.”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두바이 사막에서 챙겼던 ‘젊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금화를 선물로 줬다. 만수르 왕자에게 받은 20개의 금화.
“춤 값을 미리 드리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금화를 받아 든 서진택 비서관은 매우 놀라며 말했다.
“이 정도 값이라면 정말 멋진 춤을 춰야겠습니다.”
서진택 매직은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공연 값을 미리 지급한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서진택 비서관과 헤어지고 나서, 바로 서진식 상무와 함께 KTX와 회사 차를 타고 고령 석유 기지로 이동했다.
고령 석유 기지에서는 채굴 펌프가 움직이고 있었고 석유는 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소유한 두바이 유전에서 수류석을 통해 두바이 유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채굴 기계와 관계없이 원유를 직접 저장고로 연결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몇 달 안에 채굴 기계는 보여주기용으로 변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석유 채굴 장치가 필요한 것은 석유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설명할 장치.
호주에서 넘어온 채굴 기사들을 ㈜엘도라도 직원으로 채용하여 기지에 배치했다. 자동으로 석유가 저장고에 쌓이고 있으니 특별하게 할 것은 없지만 인력은 꼭 필요했다.
생각보다 석유가 많이 나와, 대충 6개월에 한 번은 유조선 분량의 원유를 팔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서 상무와 나는 고령 기지에서 기차를 통해 여수 석유화학 기지로 보내는 수송 루트를 확인했다. 이제 6개월마다 900억~1,200억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서 상무에게 ‘매달 500ℓ 휘발유 무료 제공’ 같은 직원 혜택을 줘야겠다고 말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하고 오라 했다.
다음 날. 나는 인화 자원개발 대표의 자격으로 인화 물산에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정문에 도착하기 무섭게 비서실 직원들이 달려 나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지난번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
회장실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안내받아 바로 올라갔다.
회장실에는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내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여전히 살점 하나 없는 모습이었지만 혈색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회장님.”
한국의 모든 그룹 회장 손자 중 가장 화려한 행보를 하고 있는 핏줄이었다. 김산 회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울 수밖에 없었다.
“앉아라.”
회의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을 때, 할아버지는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가 정말 건강한 것이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사라 뭐라고 합니까?”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온몸에 독소가 퍼져 있어서 숨쉬기도 힘들어야 한다고 말했지.”
“평온한 얼굴로 보입니다.”
할아버지가 나의 눈동자를 강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준 약 덕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겠지?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는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수명을 연장한다고 했으니까요.”
“누가 준 것이냐?”
나는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더 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초연한 듯 보였다.
“윤 박사가 내 몸 상태를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지. 얼마나 이 몸이 유지되는 것이냐?”
“할아버지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할아버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밥은 하루에 한 끼 정도 먹고 있는데··· 사실 잘 안 들어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머리를 깊게 숙였다.
“뭐 하나 장담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이렇게 인생을 마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죽기 전까지 호랑이로 포효할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
“한번 산의 주인은 영원할 겁니다.”
할아버지는 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 산 주인이 되고 싶지 않으냐?”
나는 낮게 웃었다.
“산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산은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저만의 산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의 저의 생각이고 의지입니다.”
할아버지는 나의 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새로운 산을 만든다고?”
“아직 작지만 순조롭게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고 물었다.
“두바이의 원유 지분을 확보했다고?”
“두바이 국왕에게 지하수를 찾아 주고 원유 채굴권을 얻었습니다.”
“대단하구나.”
“그 정도로 대단한 양은 아닙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아부다비 국왕의 얼굴을 찾아 할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아부다비 국왕에게 새로운 물을 찾아 주는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내륙 도시 개발과 맞물려서 좀 복잡해졌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DW의 허영재가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도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허 회장 그놈이 나에게 전화해서 이상한 손자 놈을 뒀다고 말했다. 엄청난 놈인지. 사기꾼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다고 했지.”
나도 낮게 웃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자네도 골든보이를 믿으라고 말했다. 하하하.”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국가사업이 되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퍼포먼스와 기계장치를 만들고 있지요. 군대의 도움까지 받을 예정입니다.”
“군대까지?”
“한강물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아랍 에미리트의 돈으로 정화하는 일까지 할 겁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보는 시야가 ‘사업가의 마인드’를 뛰어넘었구나.”
“저는 골든보이 아닙니까? 하나를 주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10개를 만들 생각입니다.”
“일했으면, 값을 톡톡히 받아내야 한다.”
“허 회장님, 대통령님께도 값을 확실히 받아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의 산이 조금 더 높아지겠구나.”
“산이 커지면, 많은 사람이 나의 산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할아버지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네가 만들고 있는 산에, 나도 몇 삽 채워주랴?”
“사양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모래 하나도 소중하니까요.”
“네가 만드는 산은 얼마나 크겠느냐?”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금방. 제 산이 점점 커져, 할아버지 산까지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정말 크게 웃었다. 지난 몇 년간 보았던 가장 큰 웃음이었다.
다음 날 저녁.
청와대 서진택 비서관이 전화해서 뮤지컬을 함께 보자고 했다.
뮤지컬?
조금 의아했지만, 서진택 비서관님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허락했다.
사실 우리 촌놈 3형제는 뮤지컬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완전히 정장을 차려입고 약속 장소인 국립예술회관으로 갔다.
경복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울 왔으면 당연히 뮤지컬 같은 것을 봐야지. 그래야 문화인이다.”
태경이도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뮤지컬 ‘시카고’나 ‘리베카’ 아니면 ‘지킬 엔 하이드’보고 싶다. 오늘 뮤지컬 제목은 뭐야?”
“제목?”
생각해보니 제목을 물어보지 않았다. 이럴 때는 뻔뻔하게 나가야 했다.
“멍청한 놈들! 우리가 지금 진짜 뮤지컬 보러 가냐? 일하러 가는 거잖아.”
태경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네가 뮤지컬 보러 가자며?”
“뮤지컬 보는 것이 일이야.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마.”
“그러니까 일에 집중하게 제목이 뭐냐고?”
이때 서진택 비서관은 가벼운 복장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사람도 청바지에 티 같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정장을 입은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서진택 비서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멋지게 입고 오셨습니다. 김 대표님.”
나는 애들의 눈길을 느끼며 말했다.
“일한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각오가 대단하시군요. 어쨌든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들어가시지요.”
우리는 정신없이 들어가 VIP석에 앉았다.
앉기 무섭게 불이 꺼졌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는 삼국시대 신라.
신라의 젊은 귀족과 공주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골품이 다르고 왕의 허락을 받지 못해 혼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젊은 귀족은 모든 번뇌를 버리고 스님이 되었다. 젊은 귀족은 전국을 돌면서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큰스님’이 되었고 이제 왕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젊은 귀족은 오랜만에 공주를 만나게 되고, 둘은 더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둘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귀족들이 공주가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한 것을 알고 골품의 질서를 어지럽힌 ‘큰스님’을 사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젊은 큰스님은 모든 비난을 끌어안고 공주를 위해 참수형 받는다.
망나니의 칼날이 쏟아지고 큰스님의 목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의 목에서 하얀색 피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뮤지컬 이차돈.’
이때 서 비서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연출이 마음에 드십니까?”
사람의 목을 베고 지하수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차돈 순교를 컨셉으로 잡을 것이라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이고, 매우 웅장하며, 물 솟아오르는 퍼포먼스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대사 없이 음악과 춤 그리고 마임으로 20분 공연을 만들 겁니다. 스케일은 이것의 100배쯤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차돈 뮤지컬 단장을 불러서 바로 20억을 입금하고 바로 계약했다. 그리고 물을 뿜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위한 연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서 비서관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차돈의 머리를 자르고 물이 관객석까지 튀어 오를 때의 놀라움은 마음속에 잔형으로 오랫동안 남았다.
아랍 이차돈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