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아부다비 제1 별궁.
아랍 에미리트 최고의 손님만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진정 아름다운 곳이었다.
정원에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싱그럽게 자라는, 아랍인이 생각하는 지상낙원을 컨셉으로,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 아틸란제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었다.
햇볕을 받았을 때는 이슬람의 백색 대사원으로 보이지만, 밤이 되어 각종 조명을 쏘면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비로운 궁전이 되는 곳.
대통령은 이 아름다운 정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을 끌어올 수 있다는 말. 허언이 아닌가?”
나는 대통령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또 한 번 같은 질문을 해야겠군요. 골든보이를 믿으십니까?”
대통령이 눈을 크게 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 골든보이를 믿어야지.”
“저를 믿어야지 모든 일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보고 받았어. 지하수가 있나?”
나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지하수 아닙니다. 한강물을 쓸 것입니다.”
대통령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한강물이라고 했는가? 비유 같은 것인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한강물입니다. 한강물을 쓰고 그 값은 원유로 받을 수 있게 진행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은 강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이 조금 전의 말을 했다면 장난하냐며 화를 냈겠지만, 상대는 골든보이였다. 허황된 이야기를 몇 번이나 현실로 구현한 사내였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자신 있는 모양이군.”
나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끄덕였다.
“지금처럼 지켜보시면 알 겁니다.”
아무리 아랍 에미리트 국왕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헬기를 보내는 것은 외교적으로 크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납치하듯 데리고 온 것으로 보아 대한민국 대통령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내가 총영사관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납치 같은 초대를 허락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께 항의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아부다비 국왕이 선물한 귀한 포도주를 비서관에게 넘기자, 곧 간단한 안주까지 세팅되어 안으로 들어왔다.
“한잔하겠나? 프랑스 어디 64년 산이라고 하더군. 와인을 별로 마셔본 적이 없어서 비싸고 귀한 것이라고 해도 잘 모르겠어.”
이것은 나와 대통령의 공통점.
“저도 와인을 즐기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술은 소주가 최고죠.”
“그래도 오늘은 색다른 이국의 정취가 있으니 아랍 왕의 어사주로 한잔하지.”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부다비 왕 어사주를 대통령께 대접받다니 영광이 두 배입니다.”
정동일 대통령도 주름까지 만들며 웃었다.
“더블 어사주를 먹는 사람은 자네가 대한민국 최초일걸세.”
우리 둘은 가볍게 건배하고 포도주의 맛을 보았다.
흠···. 괜찮은데? 와인은 드라이한 편이었으나, 마시면 마실수록 시고 단 맛이 깊게 어우러진 숙성된 맛이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은 와인을 절반쯤 마시고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내 지지율 봤나?”
“두바이 일이 너무 바빠. 한국 소식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통령은 남은 포도주를 단숨에 모두 마셨다.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지지율이 올랐는데, 우리당 당 대표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최선호에게 뒤통수를 맞았네. 대통령이 북한 빨갱이 괴수와 손을 잡았다고 공격해 왔다. 같은 당에서 공격은 치명적이었어.”
“여당 사람이 대통령을 공격한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임기가 거의 남지 않은 인기 없는 대통령을 때릴수록 자신의 색이 명확해지며, 인기 없는 정부와 자신은 결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그래서 그놈은 지지율이 확실하게 올랐어.”
공화당 대통령이 북한과 가까이한 것은 사실 도박에 가까웠다.
“승부수를 던진 결과가 좋지 않군요.”
“정치평론가가 말하기를 내가 산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 집토끼를 총으로 다 쏘아 죽였다고 표현했지. 틀린 말은 아니야. 공화당 안에서는 북한과 멀리하는 길뿐이었는데, 쓸데없이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어.”
“결과가 좋지 않아 유감입니다.”
대통령은 머리를 흔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가지고 온 공민왕 그림 3점을 북한에서 가져온 전리품으로 포장해서 국립박물관에 넣고 조금은 면피했네. 참으로 창피한 일이야.”
“정치는 생물 같아서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자네는 기대 이상 해줬네. 그대를 임기 초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만난 것이 중요합니다.”
대통령의 넋두리가 계속되어, 살짝 분위기를 환기했다.
“아랍 에미리트 순방은 어찌 오신 것입니까? 중요한 국사가 있습니까?”
대통령은 자조적으로 낮게 웃다가 말을 던졌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은 밖을 돌아다녀야, 나라가 조용해. 욕할 사람이 없거든.”
미션에 아부다비 왕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습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제가 돕겠습니다.”
대통령은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가볍게 설명했다.
“대한민국이 수입하는 원유 대부분은 ‘두바이유’라고 할 수 있지. 이곳은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 외교적으로 잘 다져 놓아야 하는 곳이야. 정치적으로는 UN 비상임이사국 선출을 위한 지지 작업을 해야 하고, 군사적으로는 여기에 있는 아크 부대 장병을 위문하고 T-50 골든이글 판매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네. 경제적으로는 국왕이 진행하고 있는 칼리파 시티 수주를 도와주려고 왔지.”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냥 왔을 리가 없었다.
“국사가 막중하군요.”
“하나같이 만만한 것이 없어. 특히 T-50 훈련기 판매와 칼리파 시티 건설 수주는 부정적이야.”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대통령은 역시 침통한 표정이었다.
“아랍 에미리트는 우리가 T-50을 팔려면, 이곳에 공항을 짓고 훈련 교관을 파견하기를 원해. 적이 침공하면 함께 싸워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하지만 훈련기를 팔겠다고 공항을 건설하고 공군을 보낼 수 없어. 야당이 탄핵하겠다고 덤빌 거다.”
이때 벨이 울리더니 비서실의 목소리가 들렸다.
-DW 그룹 허영재 회장님이십니다.
“들여보내”
DW 그룹의 허영재 회장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오며 가볍게 웃었다.
“대통령님 저 왔습니다.”
대통령은 친구가 온 것처럼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어서 와 늦었군.”
허영재 회장은 앞에 놓인 64년산 와인을 보며 표정이 바뀌었다.
“정신없이 바쁜 사람을 부른 이유가, 이 64년 몬테뷰 와인이라면 아주 잘 부르셨습니다. 형님이 이렇게 센스 있는지 몰랐습니다.”
대통령은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여기 왕이 준 어사주를 혼자 먹기 아쉬워서 말이지.”
“형님이 대한민국 왕이지 않소. 형님이 주신 소주도 어사주로 알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동일 대통령은 포도주병을 들었다.
“왕이 준 어사주를 대한민국 왕이 직접 따라 줄 테니, 한잔 마셔.”
대한민국 정동일 대통령과 DW 회장 허영재는. 휘문고, 고려대 3년 선후배 사이다.
실제 허영재의 돈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자신의 유일한 취미가 '대통령 만들기'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친했다.
하지만 대통령을 만들고 나서는 특별하게 청탁하는 것도 없었다. '나라님'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시대라고 하며 웃었다.
대통령이 잔에 포도주를 적당히 따르고 말했다.
“칼리파 시티 수주는 잘 될 것 같나?”
허영재 회장이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이 이곳 왕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나에게 공사를 준다고 합니까?”
“능구렁이 같은 왕이야.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어.”
“그 양반이 좀 그럽디다. 돈을 얼마 주면 되냐고 이야기해도 대답이 없소.”
대통령은 허영재 회장의 직설적인 말에 낮게 웃었다.
“돈 많은 왕에게 돈을 준다고 하는 게 먹힐까?”
허 회장은 정색하며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내가 돈 많은 것으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사람인데,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돈을 밝히는 법이요.”
대통령이 나를 살짝 보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돈 말고 ‘금’은 어떤가?”
“금이요? 금도 좋지요. 자고 나면 금값이 오르더만요.”
대통령의 손이 나의 어깨에 올라왔다.
“사람을 하나 소개해 주지. 인화자원개발 김성열 대표야.”
허 회장의 시선이 드디어 나를 향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이 되었는데 나를 비서관 중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 인화 김산 형님이 자랑했던, 그 손자 놈이군요.”
대통령이 활짝 웃었다.
“나랑 김정은이랑 손잡게 해준 사람이야.”
“그러고 보니, 셋이 판문점에서 손을 잡는 장면을 TV에서 본 것 같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영재 회장에게 머리를 깊게 숙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끈 존경할 만한 기업인이었다.
“김산 회장님의 손자. 김성열입니다.”
“하하하. 그래그래. 영월광산 노조 놈들을 박살 낸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어. 요즘 젊은 놈답지 않게, 거칠게 놀 줄 알더군. 마음에 들어.”
이제 누구를 만나도 주눅들 필요가 없었다.
“김산 회장님의 손자인데, 자기의 밥그릇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이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김 대표를 '젊은 놈'이라고 하면 안 돼. 두바이 왕의 스승이자 왕족이고. 두바이 펀드 상임 위원이야. 이번에 개인 유전도 받았어.”
허영재 회장의 놀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대통령은 마치 자기 손자를 자랑하는 것 같았다.
“우리 김 대표가 두바이 왕에게 고대 유물을 발굴해서 상납하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발견했지.”
“마크툼 시티 프로젝트 지역 밑에서 나온다는 그 지하수 말입니까?”
“맞아. 김 대표가 발견했어. 그래서 시티 오브 마크툼 프로젝트 상임 고문이자. 만수르 왕자의 측근이 되었다고.”
허영재 회장이 나를 보는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 형님이 허언하시는 분이 아닌데.”
대통령이 한마디를 던졌다.
“자네는 아부다비 왕의 얼굴을 보았나?”
“제발 만나게 해주십시오.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게.”
“여기 있는 이 친구는 아부다비 왕이 보낸 헬기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왕을 만났어. 지금은 제2 별궁을 쓰고 있지.”
별궁을 쓴다는 것은 국가 원수급 손님 혹은 왕족이라는 의미였다.
허영재 회장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별궁을 쓰다니···. 대단하군요. 나보다 낫습니다.”
칼리파 씨티 수주에 관한 관심이 생겼다.
어차피 ‘봉이 김선달 한강물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니. 그 한강물을 잘 이용하면 칼리파 시티 수주까지 쉽게 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정색한 얼굴로 허 회장님을 보았다.
“칼리파 시티 건설 수주에 대한, 현재 경쟁사의 상황과 DW의 수주 전략을 들을 수 있을까요?”
허 회장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혹시 아부다비 왕에게 로비해주는 것인가?”
“‘컨설팅’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네 컨설팅은 특별한가? 몇몇 놈들을 만났는데 시간 낭비였어.”
나는 자신 있게 웃으면서 허 회장을 바라보았다.
“제 컨설팅은 비싸지만 아주 특별합니다.”
허 회장은 강한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대통령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하면··· 김산 회장님의 손자가 얼마나 똑똑한지 이야기를 들어볼까?”
나는 차갑고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먼저 사업 브리핑 부탁드립니다.”
허 회장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번 칼리파 도시 건설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부다비 전략적 내륙 도시 개발사업의 총사업비는 400억 불 (50조)
전 세계의 모든 건설회사가 뛰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이제 4곳으로 압축되었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단지 싼 가격에 건설 수주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각 나라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은 어드밴티지를 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싸움이었다.
미국은 이번 사업을 수주하면, 추가 군사동맹을 맺고 2,000명 규모의 방공 미군 기지를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아랍 에미리트의 군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중국은 이번 사업을 수주하면, 20조의 국가자금을 조달 제공하겠다고 했다. 공사비의 절반을 중국돈으로 쓰니 엄청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은 이번 사업을 수주하면, 기술 제공하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아부다비 왕이 꼭 소유하고 싶었던 반도체 제조 기술을 한 번에 확보할 기회였다.
반면 한국은 가장 매력이 떨어졌다.
한국은 이라크에서 이미 완료한 스마트 시티를 기반으로 가장 싸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뿐.
그래서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가장 떨어졌다.
나는 정색한 얼굴로 허 회장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제안이 가장 실제적이고 본질적이지만··· 왕의 입장에서는 매력이 떨어지는군요.”
“다른 나라는 국가적으로 힘을 모아서 덤비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
대통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힘이 있을 때, 일을 시작했어야지. 지금은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줘.”
허 회장은 배에 힘을 주어 말했다.
“외국 놈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사막에 도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대한민국이 최고라고 확신합니다.”
대통령은 핵심적인 단어를 던졌다.
“왕이 원하는 것을 줘야지 수주할 수 있어. 공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왕. 그 양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십니까?”
대통령은 잠깐 생각하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친구에게 왕이 부탁을 했지. 원하는 물건이 있다고.”
허영재 회장은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왕께서 자네에게 뭘 원하시던가? 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대신 구해보지.”
나는 거침없이 핵심만 이야기했다.
“왕께서는 보물과 물을 원하셨습니다. 두바이에 주었던 것이지요.”
“보물과 물이라···. 그래서 자네는 뭐라고 대답했나?”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했습니다.”
허영재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긍정적이라고? 보물이 땅을 판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다시 한번 수류석을 만지고 말했다.
“보물은 모르겠지만···. 물은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물을? 사막 한복판에서?”
“제가 원하는 곳에 물이 흐를 겁니다.”
허영재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흘리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네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한국말을 제대로 듣고 있나? 라는 생각을 했네.”
“물은 이미 확보했습니다. 다만 어떻게 화려하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허 회장은 입만 벌리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허 회장님이 칼리파 시티 사업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요?”
대통령은 기대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것이 가능하겠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가능하게 만들지요.”
“나는 이 친구를 돕고 싶어. 아니 대한민국을 돕고 싶네.”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을 먼저 생각해 달라고 했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광명 황금 동굴 앞에서 나를 만나고 떠나면서 했던 말이었다.
대통령은 진심으로 말했다.
“대한민국이 승리하게 해주게.”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아부다비 왕이 먼저 다가와 대통령님의 손을 꼭 잡게 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듯 크게 웃었다.
다시 한번 수류석을 만졌다.
수류석으로 대한민국이 만드는 칼리파 도시 중앙에 강이 흐른다면?
흐흐흐. 이것으로 다 끝이다.
미국 동맹군? 중국 돈? 일본 반도체? 다 좆까라고 해. 내륙 도시 사람들이 쓸 물을 어떻게 구할 거야.
핵심이 없이 정치적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이 흐르는 도시.
그것이 대한민국이 만드는 칼리파 도시의 ‘미래’였다.
나는 허 회장에게 말했다.
“DW 건설이 만든 칼리파 시티 중앙에는 강이 흐릅니다. 이것으로 게임이 끝납니다. 진정한 게임 체인저라고 할 수 있지요.”
허 회장은 순간 말을 할 수 없었다.
도시 중앙에 강이 흐른다고?
“지하수를 확인했다는 말인가?”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군요.”
허영재 회장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그려졌다.
“지하수를 통해서 도시 중앙에 강이 흐를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야.”
나의 수류석을 써야 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공짜로 해줄 마음은 없었다.
“도시에 강이 흐를 수 있게 해준다면 저에게 무엇을 해주겠습니까?”
설마 공짜로 해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허 회장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수주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지.”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쉽게 대답하지 마세요. 회장님. 저는 그런 말이 가장 싫습니다.”
허 회장은 놀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미안하네. 따로 컨설팅 비용을 책정하도록 하겠네.”
나는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사막 한가운데서 강이 흐르는 것을 아부다비 왕에게 직접 보여줄 것입니다. 그것으로 이번 싸움을 끝내겠습니다.”
허 회장은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나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골든보이를 믿습니까?”
허 회장은 솔직한 사람이었다.
“처음 본 누군가를 온전하게 믿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골든보이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시선을 주었다.
“대통령께서는 골든보이를 믿습니까?”
“나는 자네를 믿네.”
“T-50 훈련기도 도시에 흐르는 강을 통해서 팔게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무엇이든 해주지.”
나는 대통령께 강한 시선을 주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비싼 청구서가 날아갈 것입니다.”
“자신 있게 말하니, 나까지 기분 좋아지는군.”
“나중에 너무 비싸다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서로가 가진 카드를 맞춰 봐야겠어.”
“비싼 카드를 가져가겠습니다.”
사실, 황금 나침반 충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류석을 사용해야 하니 대통령과 허 회장에게 그 값을 받아내야 했다.
대통령이 먼저 물었다.
“내가 먼저 무엇을 도와줄까?”
먼저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 비서관님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미소를 보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화려하게 보여줄 모양이군.”
“이번에는 할리우드급으로 연출할 생각입니다.”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설명하고 나는 제2 별궁을 돌아왔다.
그러자 지겨움에 몸을 떨고 있던 태경이와 경복이는 나를 반겼다. 아직도 셰이크 복장도 벗지 못하고 있었다.
태경이가 개처럼 킁킁대며 말했다.
“뭐 하는데 이제 왔어? 응? 술 냄새?”
나는 입김을 날리며 말했다.
“폐하께서 주신 어사주 한잔하고 왔다.”
“그 맛있는 것을 혼자 처먹었냐? 목구멍으로 그게 넘어가디?”
나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 수류석을 쓰기로 했다.
“수류석? 아부다비 석유도 한국으로 보내냐?”
“한강물을 아부다비 사막에 흐르게 할 거다.”
경복이가 놀라는 얼굴로 물었다.
“왜 사막에 물을 뿜어? 논농사라도 지을 생각이냐? ”
나는 허 회장님에게 받아온 칼리파 시티 프로젝트 서류를 펼쳤다.
“아부다비 왕이 만드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 강이 흐르게 할 거다.”
둘은 칼리파 시티 조감도를 보며 말했다.
“이 도시 한가운데 수류석으로 물이 흐른다고? 오 수도세를 받겠다는 말이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물값은 원유로 받을 거야.”
태경이가 말했다.
“수류석으로 한강물 쓰려다가 한강물도 마르는 것 아니야? 그냥 양자강 같은 곳에 넣으면 어때?”
“양자강은 한강물보다 더 똥물이잖아. 나중에 손해 배상해야 하는 수가 있어. 그리고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게 고정장치 안에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중국 놈들이 훔쳐 간다.”
경복이도 한마디 했다.
“나중에 수류석이 뭐 하는지 알면 물값으로 엄청나게 뜯어낼 놈이지.”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밖에 없다.”
태경이도 까칠해진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한강물을 너무 많이 빨아드릴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이 형님이 구상한 기계장치가 있다. 자동으로 물 흐름을 관리해 주는 것이지.”
“네 머리로 뭐를 막 구상하고 하면 안 되는데···”
나는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실제 일을 진행할 사람은 서 비서관님이야.”
“네가 사단장이냐? 상상만 하면 다 이뤄지게?”
“원래 상상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법이다.”
나의 머릿속에 칼리파 시티 가운데를 흐르는 강물이 눈에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