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가끔씩 분명히 들었어도, 믿기지 않는 말들이 있다.
만수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왕자는 문서에 사인하던 만년필을 내려놓으며 눈을 크게 떴다.
“새로운 보물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정색하며 말을 또박또박했다.
“'더 엄청난'이라는 수식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붉은눈 카와심의 보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분명 더 엄청난 이라고 ‘비교급’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만수르 왕자는 나의 눈빛을 보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카와심의 보물은 너무도 엄청나서, 어떻게 써야 정치적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까 고민하고 있었다.
게다가 맥 피셔 장군의 검이나 악바르 대제의 황금 코끼리는 영국이나 인도와 외교적 문제가 있을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대비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 머리가 아팠으나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런 엄청난 보물을 던진 골든보이가 다가와, '더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정색하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카와심의 보물보다 더 엄청난 것이라면 얼마나 더 대단하다는 것일까?
“자네 말이 너무도 엄청나서, 내가 쉽게 대답할 수가 없군.”
“쉽게 말씀드리자면, 카와심 컬렉션보다 훨씬 더 대단한 보물입니다.”
만수르는 손을 살짝 떨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골든보이가 허언할 사람은 아니지. 그 엄청난 보물은 어떤 것인가?”
나도 모르지. 아직 황금 나침반에 ‘미리 보기’ 같은 기능은 없거든.
이럴 때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만수르 왕자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유전을 소유하고 싶다는 저의 제안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내가 유전을 왕창 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돌멩이 하나 던질 유전 하나만 주면 돼.
“원유는··· 왕실의 재산이고, 외국인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의 국법이네.”
나는 만수르 왕자의 눈을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왕자님은 상당히 유연한 분이라 들었는데···. 좀 아쉽군요.”
“유전 말고,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네.”
만수르 형! 나 석유 저장기지도 샀어. 그리고 대한민국도 산유국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단 말이야. 산유국의 꿈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남북통일 다음으로 손꼽는 소원이야.
하지만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황금 나침반 못쓰지.
“계약은 일방적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더 엄청난'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자님.”
만수르 왕자는 마른 입술로 나를 불렀다.
“에드워드···.”
“왕자님께서 주시는 너그러운 상을 받고. 두바이를 떠날 준비 하겠습니다.”
만수르 왕자의 얼굴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뒤에 놓인 하이랜드파크 50년산 위스키를 따랐다. 영국에 있을 때 마신 후로 강렬한 느낌을 원할 때 마시는 술이었다.
나에게도 잔을 내밀었다.
내가 술을 빼는 스타일은 아니지.
하이랜드파크 50년은 첫맛이 강렬하다. 하지만 입안에 향이 가득하고, 목을 넘어갈 때 부드럽다. 그리고 곧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만수르 왕자가 위스키 잔을 절반 정도 비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원유인가? 원유보다는 현금이 더 쓰기 편하잖아.”
이미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놓았다.
“한국은 산유국에 대한 로망이 있지요. 석유로 나라가 큰 위기를 2번이나 겪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에도 부자는 많습니다. 하지만 유전을 가지고 있는 부자는 없다고 볼 수 있지요. 일정량의 유전을 소유하고 왕자님과 찍은 사진을 회사에 걸어 놓으면 실제 값어치보다 100배는 큰돈을 쥐고 있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만수르는 살짝 인상을 썼다.
“좀···. 유치하군.”
유치하다는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원래 남자라는 동물이 좀 유치한 면이 있지요. 제가 부귀를 꿈꾸지만, 허영도 아주 큽니다.”
욕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지금은 나쁘지 않았다.
“유전을 소유한 것으로 하고 매년 현금을 받으면 되지 않는가?”
이런 질문을 할 때는, 한국에서 가져다 쓸 것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다 확인합니다. 타진요, 김진요, 소진요, 윤진요, '진실을 요구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집요하게 다른 사람의 비밀을 확인하려 하지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있는가?”
“한심한 사람들이지요.”
“하루 1,500배럴에서 2,000배럴, 일 년에 500억~750억 정도의 수입을 바라고 있습니다. 많으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습니다.”
일단 좀 강하게 불러 놓았다. 그래야 협상할 때 유리하다.
“...쉽지 않은 이야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형네 유전에 수류석만 던지고 갈 거야. 알아서 해.
“거래는 주고받는 것이 맞아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이 성사되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내가 판을 깰 것처럼 행동하자 만수르가 다급해졌다.
“일단··· 시간을 주게. 폐하를 설득해 보겠어.”
“지금 가장 없는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나는 가볍게 위스키를 마시며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을 돌려 드린다면 '망설이면 승리는 다른 사람의 몫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순간 왕자는 뭔가를 떠올리며,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부다비’에서 컨텍이 들어왔는가?”
아랍 에미리트는 7개의 토후국이 모여 만들어진 나라로, 그중 아부다비가 가장 ‘압도적인’ 토후국이다.
아부다비의 원유 생산량을 80으로 보면 두바이가 17 나머지 토후국이 3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두바이를 제외한 다른 토후국은 아부다비가 주는 SOC, 지방 발전기금으로 먹고산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랍 에미리트의 국왕 겸 대통령은 늘 아부다비에서만 나왔고, 두바이에서는 부통령과 총리를 할 뿐이었다.
아부다비, 두바이는 잘 협력 하는 것 같으나, 은근히 경쟁하는 면이 있었다.
만수르 왕자는 아부다비가 골든보이에게 뭔가 제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왕자님께 먼저 기회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대충 거리를 계산해 봤는데, 보물은 두바이 토후국 안에 있었다. 어차피 두바이 만수르 왕자와 끝을 봐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부다비를 붙여주면 나야 감사하지.
하이랜드파크 50년을 단숨에 마시고 뜨거운 기움을 뿜어낸 만수르가 말했다.
“아부다비가 얼마나 불렀나?”
“그것이 무엇이 중요합니까? 저는 왕자님 앞에 있지 않습니까? 아부다비가 붙었다고 조건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만수르는 살짝 쫓기는 얼굴이 되어 있다가 나를 강하게 바라보았다.
“보물이 있는 것은···. 확실하겠고···. 더 엄청나다고? 붉은눈 카와심 컬렉션보다 확실히?”
아직 뭐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과감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원래 인생은 빠꾸없다. 나도 모르게 더욱 강력한 허풍을 터져 나왔다.
“이 보물은 두바이 제1 국보가 될 것입니다. 아랍 에미리트가 나가야 할 길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것이지요. 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물건이 될 것입니다.”
나 뭐라고 하는 거냐? 나중에 감당할 수 있는 멘트인가?
나오는 보물을 보고 그럴듯하게 만들면 된다. 걸어 다니는 구라 토커 윤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아랍 에미리트의 정체성과 두바이의 미래에 대해서 알려주는 보물입니다.”
와. 씨발 말은 멋있는데, 뒷감당은···. 모르겠다.
나는 만수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크크크 뻥카가 먹혔다. 만수르는 궁금해서 미칠듯한 얼굴이었다.
왕자님. 뭔지 궁금하시지요? 사실 저도 궁금해요.
생각은 그렇게 해도 나의 표정은 너무도 근엄했다. 뻥카일수록 강하게 가야 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자님. 이제 결정하셔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손을 내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수르 왕자의 동공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프러포즈한 여인이 '나야!' 아니면 '자기 엄마야'라고 물어본 얼굴이었다.
원유를 넘기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붉은눈 카와심 유물의 충격이 아직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끝내 만수르 왕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의 뜻대로 해주지···. 하지만 나의 말을 믿고, 좀 기다려 줄 수 있겠나?”
아···. 구두 계약. 이거 믿다가 집안을 말아먹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계약'이 아닌 왕자님의 '말'을 믿으라는 말씀이군요.”
만수르 왕자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다. 그리고 자기 손에서 인장 반지를 뽑더니 나의 손에 끼었다.
“나의 약속은 산처럼 무겁다. 내 말을 믿어라. 에드워드.”
어차피 두바이에서 처분하고 가야 하는 물건이었다. 더 튕기면 파토 날 수 있는 확률이 있었다. 아름답게 마무리하자.
나는 만수르 왕자의 손을 잡았다.
“저는 왕자님을 믿습니다.”
만수르 왕자님은 '에드워드 원정대'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은 팀을 만들었다.
지난번 만났던 소령과 왕실 친위대 공병 60명을 붙였고 치누크 헬기를 무려 2대나 지원했다. 포크레인을 물론이고, 자동차에 각종 탐지기, 시추 장치까지 있었다.
왕실 친위대를 움직였다는 것은 만수르 왕자가 왕의 허락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정도면 사장님 결제 난 것이니,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태경이가 슬슬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에드워드 원정대? 크크크, 네가 호빗이냐? 절대반지는 받았지?”
나는 정색한 얼굴로 만수르가 준 인장 반지를 보여주었다.
“만수르 왕자님이 준 절대반지다···.”
“투명 인간으로 변하냐?”
“운명의 화산에서 반지 말고 너를 던져 버릴 거야.”
태경이는 여전히 웃었다.
“식혜랑, 삶은 계란도 함께 넣어라. 아줌마에게 물 좀 뜨겁게 하라고 하고.”
“미친 새끼.”
경복이가 걱정스러워하는 나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나침반 보물 찾으러 가는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워?”
“황금 나침반이니까, 뭐가 나오기는 확실히 나오겠지만. 존나 좋은 것이 나와야 해. 아랍 에미리트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보물이 나올 것이라고 했어.”
“그것은 어느 나라 말이냐? 과거와 미래를 어떻게 이어줘?”
나는 나의 입을 몇 대 가볍게 때렸다.
“몰라.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 이야기했어.”
태경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말이야 막 끼워 맞추면 되지. 나중에 뭐가 나오는지 보고 시나리오 한번 써보자.”
나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 구라 윤 선생만 믿어.”
“걱정하지 마. 시나리오를 팔만대장경 급으로 쓰면 돼.”
이때 경복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헬기가 출발한다!”
나는 태블릿으로 두바이 상세 지도를 확인했다.
아마도 해변 도시인 두바이에서 내륙 오아시스 도시인 알아인 사이의 어딘가로 보였다.
치누크 헬기 2대는 거침없이 남쪽 하늘을 향해 날았다.
두바이를 벗어나자 금방 초원지대로 바뀌었다.
초원지대 사이로 시원한 고속도로가 있었고 그 위로 차들이 속력을 내며 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황무지가 나왔고 얼마 후 모래사막이 나타났다. 아주 가끔씩 작은 마을이 보이다가, 마른 풀 하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사막으로 바뀌었다.
상당한 시간을 남쪽으로 날아갔을 때, 헬기의 진동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치누크 헬기의 동체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고,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는 일들이 일어났다.
내부에 붉은 불이 들어오고,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겼다. 군용 자동차를 고정장치로 묶어 놓았지만 덜컹거리며 이쪽으로 덮치려고 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사막에서는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래서 치누크 같은 엄청난 헬기도 옆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차가운 물을 마셔서 좀 진정하려 했지만 진정하기 힘들었다.
태경이가 품속에서 금속 물병을 넘겼다. 안에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이슬이슬, 이슬이. 프레쉬 이슬이.”
시원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며 강력한 진정 작용을 했다. 조금은 겁나는 것이 없어졌다.
그래도 진동이 점점 심해졌고, 헬기가 좌우로 흔들리며 갑자기 뚝 떨어졌다. 점점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소령이 악을 쓰며 나에게 말했다.
“갑작스럽게 모래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더 이상 비행은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대형 모래 폭풍이 만들어질 확률이 있습니다. 그러니 쉬었다가 가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드워드 원정대라, 나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안전이 중요합니다.”
“가까운 곳에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착륙하겠습니다.”
곧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흙으로 만든 돌집 10가구가 보였다.
치누크 헬기는 마을 옆 큰 공터에 조심스럽게 착륙했다.
갑자기 거대한 쌍발 헬기가 그것도 2대씩이나 착륙을 하자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 게다가 왕실 친위대 복장의 군인들이 쏟아져 나오니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헬기 때문에 양과 염소가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진 것을 사람들이 겨우 달래서 이쪽으로 모으고 있었다.
이곳의 촌장이 소령과 뭔가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촌장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적대감이 보였다. 두바이인과 사막 부족의 오랜 갈등의 역사를 아직도 느낄 수 있었다.
두바이인은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들이고 여러 나라와 무역을 통해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막 부족은 끝까지 대영제국과 대결한 민족이었다. 자부심은 넘치지만, 땅이 가난하고 척박하여 두바이인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사막 부족의 자부심이 튀어나올 때가 있지만, 왕정 국가인 아랍 에미리트에서 국왕 친위대의 권위에 도전할 사람이 있을까?
사막 부족도 왕을 향해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치누크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갔다.
이 마을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70년대 수준이었다. 전기도 발전기를 돌려 잠시 쓸 정도였다.
두바이 씨티만 전 세계가 놀랄 정도의 최첨단 도시지. 그곳만 벗어나면 70년대부터 전혀 변하지 않는 시골이 대부분이었다.
90%의 경제, 사회, 문화가 두바이에 몰려 있었고 다른 지역은 그냥 버려져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었다.
촌장은 늙은이지만 눈치가 빠른 사내였다. 소령이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지시를 따르자 나에게 가장 먼저 설탕을 가득 넣은 홍차를 가지고 왔다.
“고맙습니다.”
홍차는 고마웠지만 익숙하지 않은 차였고, 설탕을 너무 많이 넣었다. 그리고 좀 오래된 냄새가 났다.
할머니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라면이 2년 전 것이라 '군내'가 나는 것과 비슷했다.
동네 사람들은 동양인 사내가 신기했는지 내 근처로 몰려들어 구경했다. 나는 줄 것이 없어서 치누크에 만개쯤 실은 생수 100개를 꺼내서 나눠주었다.
사막에서 물이 가장 귀한 법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아랍 에미리트에서는 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바이에서 강처럼 흐르는 것은 바닷물을 끌어들인 수로라고 볼 수 있었다.
먹는 물은 초거대 담수화 시설로 만들고 있어서 비쌌다. 석유로 물을 만든다고 할까?
게다가 심각할 정도로 점점 사막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강수량은 일 년에 100mm까지 줄어있었다.
그러니 두바이로 사람들이 더 모여들고. 내륙 쪽은 더욱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내륙이 버려지니 식량을 더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값은 더욱 비싸졌으며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나는 생수를 끓여서 한국의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홍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한국 달달이 커피의 강렬한 단맛은 동네 사람이 좋아했다. 박스에 남아 있는 100개의 스틱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모래바람이 더욱 강하게 불었고 병사들은 치누크 헬기에 방진포를 붙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경복이는 눈치껏 병사들 사이에서 힘을 쓰며 돕고 있었다.
나는 원정대 대장이니까 힘쓰는 일은 빠져도 되겠지?
이때 태경이가 매운 라면 5개가 들어있는 한 팩을 챙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오 칭찬해. 바로 커피 물을 끓인 곳에 물을 추가하고 4개의 라면을 끓였다.
꼬마가 보고 있으니 종이컵에 담아서 줬는데 너무 매워서 입만 벌렸다 나는 생수병을 따서 꼬마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랬더니 급하게 생수를 마셨다.
'매운 것에 대한 저항' 패시브 스킬은 한국인만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미안한 감정이 있어서 꼬마에게 초콜릿을 주었더니 꼬마는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오아시스를 찾는 모프레 나뭇가지를 줬다.
지도와 나침반이 있으니 필요 없었다. 그래도 꼬마의 성의가 있으니 받기는 받았다.
받고 나서 느끼는 이 찜찜함.
꼭 이런 것 받으면, 사막에서 조난 당하던데···.
치누크 헬기가 추락하고 나뭇가지 때문에 겨우 살아남는, 이런 뻔한 스토리는 아니겠지.
배가 부르니,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침낭 속에서 일어났다.
모래 먼지 때문에 눈이 빡빡했다. 그래서 억지로 눈을 수십 번이나 깜빡인 후 눈을 뜰 수 있었다.
군인들은 벌써 일어나 치누크 헬기의 방진포를 분리했고 몇 번이나 기계 점검을 했다.
나는 모프레 나뭇가지를 보고, 소령을 불러 헬기 점검을 2배로 하라고 했다.
소령도 만에 하나를 위해서 임시로 할 수 있는 모든 정비를 했다.
각종 오일 체크. 로터 부분 확인, 유압, 연료, 필터, 각종 구동 계통을 확인 완료.
우리는 잘 쉬었으므로, 촌장님의 양 3마리를 2,000달러에 샀다. 촌장님은 좋은 가격이라 아주 좋아했다.
역시 달러는 ‘we are the world’였다.
소령에게 양을 잡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병사들은 사막 쥐도 잡아먹는 놈들이라고 했다.
사막에서 고생할 때 삼겹살은 못 사줘도 양고기는 실컷 줄 수 있겠지.
치누크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고 40분 정도 날았다.
경복이가 나침반을 보며 말했다.
“도착 3분 전!!!”
황금 나침반이 가리키는 지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Landing!!”
치누크 헬기는 목적지를 향해서 천천히 내려갔다.
드디어 황금 나침반이 가리킨 약속의 땅에 도착했다.
나의 눈은 황금빛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