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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81화 (81/188)

81화

김정은 위원장은 엄청난 크기의 은행 금고를 보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우하하하.”

김정은의 눈에서 무서울 정도의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 여기 숨겼어. 여기 있었다고!”

힘 좋은 장교와 병사 십 수명이 달라붙어 은행 금고를 확인했다. 하지만 금고를 열 방법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힘으로 열 수 있으면 금고가 아니겠지.

류경수 탱크부대의 늙은 장군이 머리를 숙였다.

“금고 문 열 방법을 최대한 빨리 찾겠습니다.”

포크레인 따위를 이용하여, 물리적으로 부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폭약으로 폭파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을 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지만, 잘못하면 안에 있는 내용물까지 다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럼 폭약 책임자의 목숨도 함께 날아가겠지.

남은 방법은 금고 전문가를 부르는 길뿐.

장군은 조급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평양 안에 있는 금고 전문가를 모으고 있습니다. 몇 시간 안에 열어 보이겠습니다. 장군님.”

김정은은 차가운 눈길로 머리를 끄덕였다.

“김 선생이 준 선물을 받았는데, 포장을 못 벗기고 있으니 답답하군그래.”

“최대한 시간을 당겨 보겠습니다.”

“보안에 신경 쓰겠지요?”

“기술자를 제외하고, 내부에는 보위부 1호 병력만 있을 예정입니다.”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김정은은 장성택의 집안에서 기다리려고 하다가, 뭔가 재수가 없다고 생각되어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폐가에 있다는 것은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마당으로 나와서도 상당히 초조해했는데, 대학입시를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 같은 표정이었다.

“김 선생 술 하나?”

“대동강 맥주와 평양 소주를 맛있게 마셨습니다.”

“그럼 가볍게 한잔하지.”

김정은을 태운 차량이 이 근처 ‘량강 호텔’로 이동했다. 갑자기 장갑차와 함께 벤츠가 도착하자 량강 호텔은 완전히 뒤집어 졌다.

사실. 량강 호텔은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호텔은 아니었다.

호텔스닷컴에서 별 다섯 개 중 별 한 개만을 받은, 거의 막장 수준의 국제 호텔이었다. 손님이 거의 없으니, 기본적인 서비스도 유지되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김정은은 이곳을 찾았다. 손님이 없으니 보안상 문제가 가장 적었다.

량강 호텔 총지배인은 놀라 달려와 인사했으나, 위원장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아, 전원을 끄고 멈춰 놓았는데, 엘리베이터를 다시 가동하게 시킨다며 잠깐 소동이 일어났다.

다시 가동된 엘리베이터는 뭔가 소리가 수상했다.

아~ 이 엘리베이터 타도 되나?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아무 문제 없이 꼭대기 레스토랑 층으로 이동했다.

호텔에서 식사하던 중국 손님 한 팀이 있었는데, 보위부 사람들에 의해서 강제 퇴거당했다.

김정은은 레스토랑 오른쪽 끝에 있는 바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텔 바는 좀 더 아늑하고, 프라이빗 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레스토랑에 바를 두다니 완전히 잘못된 배치였다.

헐레벌떡 바텐더가 달려와 온몸을 덜덜덜 떨면서 자세를 잡았다.

김정은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담배라니···. 미쳤군.

아니 멋지다고 해야 하나? 역시 북조선 일인자답다.

말보루 레드. 이 양반이 미제국주의 표상인 말보루 담배를 피우다니.

이 양반아. 이렇게 독한 것을 계속 피면 금방 죽어.

흠··· 김정은이 죽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우리의 소원 아닌가? 형. 그럼 2대 피워. 필터까지 쭉~

독한 담배 연기가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비흡연자라 담배 연기를 마시기 힘들었으나, 상대는 김정은이다.

담배 연기가 내 얼굴을 쓸고 가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하루에 한 갑씩 피는 사람처럼 보였을까?

그는 나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김정은과 맞담배라 나쁘지 않군. 하지만 형. 나 비흡연자야. 길빵 하는 애들 한 대 때리고 싶은 사람이야.

담배는 극혐.

“괜찮습니다. 위원장님.”

“그래?”

김정은은 아직도 흥분하고 있어서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그가 담배 연기를 몇 번 뿜어내더니 바텐더에게 말했다.

“위스키.”

바텐더는 로열살루트 병을 열더니 언더락 잔에 조심스럽게 부어 김정은에게 내놓았다.

그러자 김정은은 단숨에 원 샷을 보고, 다시 빈 잔을 내밀었다. 바텐더는 놀라며 다시 술을 따랐는데, 김정은이 인상을 썼다.

“아끼지 말고! 가득!”

바텐더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언더락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렇게 연속으로 3잔을 마시고 김정은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시작 전 삼배三拜 아니겠어?”

눈치를 보던 바텐더가 이제서야 나를 바라보았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나는 무엇을 시켜 먹을까 생각하다가, 번뜩 007의 대사가 떠올랐다.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바텐더는 나를 미친놈 바라보듯 눈을 부릅떴다. 국무위원장 앞에서 미제국주의 암살자 007 대사를 말할 줄이야.

바텐더. 007은 영국 놈이니까. 괜찮아.

007 마티니, 사실. 옛날부터 무슨 맛인지 궁금했어.

바텐더가 뭔가를 넣더니 마지막에 올리브를 하나 띄웠다.

오~~~ 뭔가 맛있어 보인다.

나는 가볍게 한 모금을 넘겼다.

으악~~~!!!

어떻게 표정이 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쓰고 맛이 없었다. 각종 쓴맛과 와인의 떫은맛을 농축시켜 놓은 느낌?

엄청 드라이하면서 가루약처럼 쓰다.

바텐더. 너 이 새끼. 나 일부러 엿 먹이려고 이렇게 만들었지?

나의 이상한 표정을 보더니 김정은 폭소를 터트렸다.

“007 대사 때문에 유명해져서 그렇지. 007 마니티는 원래 맛이 없어. 나도 스위스에 있을 때 한번 시켜봤는데. 토할 것 같은 맛이더군.”

“마셔 보셨습니까?”

“그 대사를 쓴 작가조차도, 그런 방식으로 마셔 보지 않고 대사를 썼다고 하더군. 그냥 상상의 산물이지.”

“아 그렇습니까?”

김정은이 갑자기 옛날 호주에 있었던 골든보이 콘텐츠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골든보이 콘텐츠 중 인종차별 하던 재규어 팀 팀장은 어떻게 되었나? 뒤로 이야기가 없어서 말이야. 그놈의 턱을 부숴 놓았나?”

“계속 실종 상태입니다. 아마 홍수에 휩쓸려 사망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주에서 한번 실종되면 1/3은 시체도 찾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김정은이 나의 콘텐츠에 대해서 묻고, 대답하는 ‘구독자와 1:1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입을 털었고, 다행히 김정은은 자주 폭소를 터트렸다.

그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북조선에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 기탄없이 말해 보게.”

그때··· 그. ‘기쁨조’ 아가씨 다시 만나고 싶어요. 정말 예뻐. 좀 쌀쌀맞은 표정이었지만. 그래서 더 기억난다.

하지만 여기서 기쁨조가 웬 말인가?

나는 ‘기쁨조’라는 단어를 겨우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아련한 표정으로 생각나는 아무 말을 했다.

“고려 황궁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사실 아직 경복궁도 가보지 못했다.

“고려 황궁?”

“만월대처럼 훌륭한 유적지가 아직 ‘터’로만 남아 있어서 너무도 아쉽습니다. 언젠가 제대로 복원하여 웅장한 고려 황실의 위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고려 황궁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설계부터 중요합니다. 엉뚱한 것을 복원하면 아니 한 것만 못하지요. 남북이 하나로 모여 설계부터 차곡차곡 진행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선 초기 건물과 경복궁 같은 궁궐들을 참고하여 고려 황궁이 설계될 것이었다.

단청의 색을 진하게 넣고. 전체적으로 붉은색 흙돌을 사용하며. 구리와 철 장식을 많이 넣어 좀 더 강렬한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어차피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면, 멋있고 시각적으로 강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김정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도 고려 황궁을 복원하고 싶었어. 하지만 예상 예산이 엄청나더군. 시작해 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였지.”

김정은은 다시 위스키 더블을 쭉 마셨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남한과 너무 국력 차이가 나.”

“···”

“국방, 경제, 외교 뭐하나 극명하게 차이 나지 않는 것이 없지.”

김정은은 바텐더에게서 병을 빼앗아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의 손이 조금씩 떨렸다.

그러자 멀리서 보고 있던 의사가 달려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너무 술이 과하십니다.”

김정은의 표정은 너무도 차가웠다.

“저리 가.”

의사는 두 번 권하지 않는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김정은은 술을 따라 마시고 약간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남한과 힘을 합하여 일을 진행하면 되는데, 왜 안하지? 그냥 휴전선 열고, 편지, 전화, 왕래를 왜 자유롭게 하면 편한데 왜 안하지? 그런 생각을 할 거야.”

김정은은 혼자 말하고 낮게 웃었다.

“북한이 개방되면, 남한 사람들에게는 좋아. 내가 가장 불쌍한 줄 알았는데, 정말 불쌍한 놈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지. 저놈들과 비교하면 나는 살 만한 것이군 하며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어떻게 되겠어?”

김정은은 다시 술을 쭉 마셨다.

“개방하는 순간. 북한에 지옥이 펼쳐지는 거야.”

“지옥이요?”

“북한 모든 인민은 똑같이 가난해. 그래서 서로를 보며 모두 나와 비슷하게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하여 세계 선진국 사람들, 아니 남한 사람의 삶을 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자신들이 얼마나 못 사는지. 얼마나 불쌍하게 사는지를 깨닫겠지.”

김정은이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스위스에서 살았지?

김정은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태어나서 오늘까지 별 생각 없이 살았는데, 갑자기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질 거야. 그러면 인민들이 묻겠지. ‘왜 우리는 이렇게 못 사는 것입니까?’ 그러면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겠나?”

나는 김정은의 눈동자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김정은 담배에 급하게 불을 붙이고 말했다.

“개방하여 남한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 우리 인민들은 같은 민족인데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차이 나지? 남한은 이렇게 잘 사는데 우리는 뭐 한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남한만큼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겠지. 하지만 무슨 방법을 써도, 단기간에 남한만큼 잘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다.”

뉴스에서 남한과 북한의 국력 차이가 53배 차이 난다고 나와 있었다. 그것을 단숨에 따라잡을 방법은 없었다.

개성 공단 노동자가 월급으로 ‘10만원’ 가지고 갈 때, 우리가 ‘2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면 엄청난 박탈감을 느낄 것이었다.

“길이 없으면 사람은 절망하게 되고, 그 불만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찾게 된다. 그럼 모든 분노는 나를 향하게 되지.”

“너무 어둡게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지. 리비아에 ‘카다피’라고 아나?”

누구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그 사람은 국민에게 화형당해 죽을 뻔했어.”

“아···.”

“카다피가 죽고 리비아에 내전이 벌어졌다. 그것처럼 여기도 전쟁이 터질 수 있어. 그렇다면 남한은 안전하겠나? 북조선이 사람들이 같이 죽자고 횃불을 들고 덤비면 어쩌겠나? 바로 한반도에 엄청난 불길이 치솟을 것이야.”

“대한민국은 ‘적극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남한 돈이 북한으로 나가면 야당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당장 정권이 바뀌겠지. 그때 가장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바로 중국이 꼭두각시를 세워서 군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오는 것이지. 장성택처럼 말이야. 그놈들은 미국과 달라. 땅에 대한 욕심이 끝도 없어. 북한도 자신의 땅으로 집어삼키려고 할 거야. 그때가 한민족의 최대 위기가 될 것이다.”

중국군이 휴전선에 있다면 그 압력은 북한과 차원이 다를 것이었다.

김정은은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갑자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것은 김일성, 김정일,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든 원죄다. 권력을 위해서 모든 것을 숨기고 인민을 속였지···.”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린 김정은은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진실을 보여주기는 너무 늦었어. 이제.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

나도 술을 쭉 마셨다.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뱃심이 생겼다.

“지도자는 현실을 봐야 합니다.”

“하지만 나도 만들어진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다. 가끔씩 내가 진짜 위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지. 하하하.”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 없습니다. 언젠가 때가 옵니다.”

김정은은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때가 언제일 것 같나?”

나도 다시 한번 위스키를 단숨에 마셨다.

“진실과 간극이 커질수록 ‘그날’이 빠르게 다가옵니다.”

“무섭구먼··· 김 선생.”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나에게 어떤 기회가 있는가?”

“‘개혁 군주’가 되는 일입니다. 인민들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고난을 속에서 희망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요.”

“개혁 군주라···.”

“힘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바로 돈이 힘이지요. 금을 확보한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달콤하지만··· 위험하게 들려.”

나는 위스키를 다시 마시고 입을 열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힘’뿐이고,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위원장님입니다.”

이때 비서가 다가와서 말했다.

“곧 금고가 열릴 것이라 연락이 왔습니다.”

김정은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금고 안에 ‘힘’은 얼마나 될 것 같나?”

나는 낮게 웃었다.

“북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을 겁니다.”

김정은의 뜨거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자 그 ‘힘’을 확인해 볼까?”

김정은은 술을 많이 마셨으나 걸음걸이는 조금도 술을 마신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장성택의 지하 금고로 이동했다.

금고는 이미 열려 있었다.

와~ 북한 기술자들이 실력이 장난 아니네.

“폭발물 검사부터 하겠습니다.”

폭발물 제거 담당자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 안을 살피려고 했는데, 김정은은 그를 옆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김 선생. 들어갑시다.”

금이 안에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금고로 한발한발 다가갈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두근두근. 드디어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 와~~~

뱃심이 좋은 김정은도 입을 쩍 벌렸다.

일단 중앙에 골드바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금으로 피라미드를 쌓아 올려놓은 것이었다.

왼쪽 선반에는 달러가 하나 가득 올려져 있었다. 한쪽 벽이 달러로 가득 찰 정도였다.

오른쪽 선반에는 위안화가 가득 놓여 있었다. 마치 붉은색 벽돌로 벽을 쌓아 올릴 것처럼 보였다.

나와 김정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바로 나였다. 그리고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제가 드리는 ‘힘’이 마음에 드십니까?”

김정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흐흐. ‘무적의 힘’을 얻은 느낌이야.”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챙기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정은이 지시하자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 든 여자 비서도 순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금방 정신을 차리고 김정은 앞에 섰다.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곧 보위부 1호 병력 20명이 들어와서, 김정은 앞에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사인을 한 후, 검은 가방에 실어 밖으로 가져 나가기 시작했다.

금괴 하나에 5억, 400개는 2,000억.

오른쪽 벽에는 100달러 지폐로 2억 달러. 한국 돈으로 2,400억.

왼쪽 벽의 위안화는 모두 9억 위안. 총 1,200억.

총 5,600억의 엄청난 거액이었다.

북한의 1년 예산이 4조 원쯤 되고,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2조쯤 되는데. 6,200억은 그야말로, 한동안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이었다.

김정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김 선생이 나에게 정말 엄청난 선물을 줬어.”

나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 오만하고 차가웠다.

“골든보이는 주는 것 이상으로 일을 합니다.”

으흐흐. 공민왕 그림 달라는 소리입니다. 위원장님.

응?

이때 나는 인상을 쓰며 금고 정면의 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도 황금빛이 나오고 있었다.

금고 안에도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인가?

술기운에 힘이 들어간 나는 거침없이 보위부 1호 병력에 명령했다.

“여기에서 빛이 난다. 확인하라.”

살짝 놀란 1호 병력은 비서 아주머니의 눈빛 허락을 받고 내가 가리킨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버튼이 있습니다.”

“눌러봐라.”

숨겨진 버튼이 있었고 그것을 눌렀더니 벽장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작은 금고가 있었다.

김정은은 놀라며 금고 쪽으로 다가갔다.

“금고 안에 또 금고가 있군.”

다이얼로 여는 작은 금고가 하나가 눈에 보였다.

“확인하라.”

김정은의 명령 한마디에, 대기하고 있던 기술자가 바로 투입되었고 단 13분 만에 다이얼 금고 문을 열었다.

기술자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무엇인지 보면, 본인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자가 빠지자, 김정은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금고에 다가갔다. 스위스 계좌 같은 비자금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금고 안에는 붉은색 노트와 검은색 장부 하나가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도자 동지.”

보위부 장교가 안전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금고에 손을 넣었다. 만에 하나라도 있을 폭발물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장교가 뒤로 물러나자, 드디어 김정은이 금고로 다가가 먼저 붉은색 노트를 꺼내 들었다.

노트 겉장에 있는 제목은 바로 살생부 殺生簿.

드라마 한명회에서, 죽일 대신들의 이름을 적은 데스노트.

이것은 장성택이 만든 살생부였다.

그가 김정은을 죽이고, 자신이 친중 정권을 만들었을 때 사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김정은 첫 장을 넘겼다. 죽일 사람의 이름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대충 확인해 봐도 300명은 넘었다.

7번째 페이지부터는 감옥으로 보낼 사람이 적혀 있었고 15페이지부터는 중국으로 보낼 사람이 적혀 있었다.

김정은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처와 딸을 중국으로 팔아넘긴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성택 개새끼를, 더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너무 편안하게 보냈군.”

씩씩거리던 김정은은 거칠게 검은색 장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뇌물 장부였다. 자기 사람으로 포섭하기 위해서, 장성택이 돈을 준 사람들의 이름, 금액, 날짜, 장소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려 80페이지가 넘는 양이었다.

김정은이 이 장부를 비서관에게 넘기며 말했다.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들이라.”

“알겠습니다.”

김정은은 낮고 음산하게 웃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김 선생이 나에게 ‘왕관’을 선물했어.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 잡아들이라’ 할 때는 무조건 같은 편인 척해야 한다.

“왕좌는 적들의 피로 유지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나오는 대사다. 이 상황에 쓰기 적합했다.

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방심하면 왕좌에 나의 피가 흐르는 법이야.”

“살생부를 쥐었으니 ‘절대군주’가 될 것인가. ‘개혁군주’가 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보위부 장군이 다급하게 다가와 귓속말로 김정은에게 급하게 보고 했다.

“뭐라고? 개성으로 보낸 열차가??”

“그렇습니다.”

나는 개성으로 이동하던 1호 열차가 폭파되었음을 바로 눈치챘다.

아. 진짜 터졌구나. 예지몽은 진짜였다.

나는 김정은에게 기차가 터진다고 이미 경고했다. 갑자기 나의 어깨가 쫙 펴지면서 키까지 커지는 것 같았다.

형. 내가 생명의 은인인 것 알지?

김정은은 경악하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김 선생 말대로 정말 1호 열차가 폭발했네.”

나는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대테러 방지 서비스에 대한 ‘비용’도 지불해 주셨으면 합니다. 적정한 가격이었으면 좋겠군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정은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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