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황금을 보는 넓고 깊은 눈’
미션 성공으로 받은 보상이었다.
이 능력은 상당히 엄청났는데, 낮인데도 땅속에 있는 작은 금빛이 눈에 잘 들어왔다.
황금을 보는 능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만월대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황궁터 여러 곳에 아주 작은 금빛과 푸른빛이 보였다.
나는 한 지점에 멈춰 섰다. 그리고 바로 발밑에 반짝이는 작은 황금빛을 보고 있었다.
작은 귀걸이 정도?
하지만 겨우 저런 빛 때문에 땅을 뒤집어 놓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땅을 판다고 해도, 내 것도 아닌데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때 북한 교수가 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땅 아래를 유심히 보는 것을 보고, 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내가 떠나면, 학생들을 데리고 파볼 것 같은 분위기.
이 새끼에게는 콩 한 쪽도 주기 싫은데···.
어쨌든.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콩은 안 되지만. 빅엿은 하나 줘야지.
그래서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황궁의 성벽 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뭐하나 큰 것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아쉽네.”
성벽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정도만 이야기했다. 그리고 교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헛기침만 했다.
땅을 파면 헛수고이고, 땅을 파지 않으면 궁금할 거다. 평생~~~ 하하하하.
콜록콜록.
갑자기 목구멍에 가래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컥컥컥···
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는데··· 손을 펴니 시뻘건 피가 보였다. 내가 드디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인가? 백혈병? 폐렴?
경복이가 급하게 다가와 초롱초롱할 눈빛으로 물었다.
“손에 그것은 뭐야?”
내 손에 있는 것은 피가 아니었다.
“어? 피가 아니네.”
이것은 손톱만 한 빨간 금속 3개였다. 순간 미션에 성공하고 받는다는 강화 황금 씨앗이 떠올랐다.
태경이도 빨간색 금속을 확인하며 말했다.
“설마 이것이 네가 말한 강화 황금 씨앗인가?”
“몸속에서 나왔지?”
목에 가래가 낀 느낌. 황금 씨앗이 터질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황금 씨앗처럼, 기침하다가 나왔어.”
경복이도 빨간 씨앗을 살피며 말했다.
“그거 강화 씨앗 맞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이렇게 지랄 맞게 나오는 물건은 황금 씨앗밖에 본 적이 없다.”
나는 경복이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곱게 주면 덧나나? 꼭 이렇게 줘야 해?
황금 씨앗을 함께 놓으면, 씨앗이 서로 합해지는 것을 전에 보았다.
그래서 빨간색 황금 씨앗을 가죽 주머니에 따로 넣어 보관했다.
경복이가 황금 씨앗을 잘 챙겨 넣고 말했다.
“야 미션 올려봐. 혹시 이거 어떻게 쓰는지 나왔을 수 있어.”
이 빨간색 강화 황금 씨앗의 사용방법을 알까, 미션창을 불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황금 씨앗을 어떻게 쓰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호주 땅에 심어보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지.
좀 더 강력하게 금 입자를 빨아들이는 황금씨앗이 아닐까 예상해 보았다. 아니면 황금 외의 어떤 물질을 빨아들이는 씨앗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붉은색이니까 루비? 나중에 버려진 루비 광산이 있으면 한번 심어보자.
우리 중에 가장 흥분하고 있는 사람을 보자면 바로 관리인 아저씨였다.
“김 대표님. 오늘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는 고려 황제 위패와 보인, 그리고 공민왕의 그림 3점을 챙겨서 ‘평양’으로 쏘았다.
관리자 아저씨는 상당히 기뻐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당에서 크게 흥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김 선생님도 ‘김일성 훈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관리자 아저씨의 표정과 대조적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김일성 훈장을 서훈받고, 서울에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국 사람이 저를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빨갱이로 박제’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관리인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입을 닫고 낮은 신음만 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국적을 잊으시며 안됩니다. 입장 바꿔서 제가 대한민국 공식 상장을 아저씨에게 드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가요?”
잠깐 생각하던 관리인 아저씨는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느낌인지 알았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생각했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번 공이 크고, 당국이 치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사실은 기쁘게 받겠습니다.”
관리인 아저씨는 나에게 머리를 숙이더니, 이곳저곳에 전화하고 개성에서 가장 좋은 곳에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때 백 가지 반찬이 나온다는 그 상인가? 가지 수만 많지 그렇게 땡기지 안는데···
우리가 간 곳은, 개성 백화점 가장 상층의 식당.
그곳에서 가장 넓은 방에 자리 잡고 앉았다.
관리인 아저씨가 자신 있게 말했다.
“북조선 최고 보물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곧 안으로 들어온 것은, 자연산 송이버섯과 소고기였다.
자연산 송이는 한국에서도 10만원~50만원 정도 나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자연산 송이버섯은 흙이 묻어 있을 정도로 싱싱했다.
아주머니가 들어와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팁은 언제 주는 거다?
‘서비스받기 전에.’ 반드시 기억하자.
우리 테이블에 들어온 아주머니에 10달러씩을 나눠주었다. 그러자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다. 자연산 송이를 물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서 손으로 직접 찢어서 생으로 먹어보라고 했다.
쇠고기 육회만큼 차지면서 송이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과 향이 강하게 올라왔다. 소고기랑 같이 먹으니, 고기 맛이 몇 배로 배가 되었다.
귀한 송이버섯을 20개나 먹어 치웠지만, 아직 부족했다.
북한 소도 한우라고 부르나? 북우? 인민우? 알게 뭐냐? 그런 것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한 점이라도 더 먹자.
향이 기가 막힌 송이버섯 주에 적당히 술기운이 올라서, 백화점 매장의 양주 몇 병을 가져오라고 1000달러를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줬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사라졌다.
얼마 후 문이 열리자, 나는 무슨 양주를 가지고 왔는지 궁금했다. 설마 보드카를 가지고 오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검은색 양복을 입은 10명의 사내였다. 다들 짧은 머리에 거친 피부, 단련된 주먹. 군인 느낌이 강하게 났다.
이 무서운 아저씨들은 누구야? 혹시 북한 교수 친구들인가? 그 정도로 빵빵한 집안이었나?
경복이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전에 북한 잠수정 잡은 거 뽀록 난 거 아니야?”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며 경복이의 입을 막았다.
“우리는 바닷가도 간 적이 없는 거야··· 알았어?”
경복이는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끄덕였다.
관리인 아저씨랑 이야기하던 양복 입은 군관들이 나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김 대표님. 평양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나는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평양이요? 왜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희는 모셔 오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가시지요.”
아저씨 우리가 쉽게 쫄 것 같아? 우리 괴산 3인방이야!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이미 몸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비벼볼 때와 머리 숙일 때를 잘 안다. 이놈들은 이빨도 안 들어갈 상대였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북한에서 보기 힘든 벤츠 4대가 서 있었다.
나는 군관이 열어주는 차의 뒷좌석에 탔고 바로 출발했다.
태경이와 경복이는 다른 차에 태워지는 것을 보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보는 관리인 아저씨의 눈빛이 걸렸지만, 나는 억지로 허리를 폈다.
I’m 대한민국 외교관. 쫄 것 없다 이거야!!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출발했다.
벤츠는 엉망진창인 개성 평양 고속도로를 달렸는데도 평온하고 조용했다.
역시 독일 기술의 결정체 벤츠. 편안한 승차감.
바로 잠이 쏟아졌다. 온종일 강행군을 하고 술을 했더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안돼! 정신차려! 잠수함 사건 때문에 수용소로 끌려가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차 안은 수면 가스를 틀어 놓은 듯, 따듯한 히터 바람과 함께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딥 슬립~ 아 좋다.
눈을 번쩍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바로 ‘평양’이었다. 자동차와 분수대가 있는 곳.
평양이 왜 이렇게 반갑지? 수세식 화장실과 호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아름다운 곳.
하지만 차는 멈춰 서지 않고 평양 시내를 뚫고 가더니,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이때 나의 눈에 엄~~~청난 빛이 들어왔다.
!!!!!
‘거대한 황금빛’
잠이 단번에 깼다.
지금까지 본 빛들과 차원이 다른 빛이었다. 꽤 거리가 멀었는데도, 여기서 엄청난 황금빛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하늘로 레이저 쇼를 하는 수준의 빛이었다.
아무래도 ‘황금을 보는 넓고 깊은 눈’을 얻어서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운전사에게 빛이 나오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큰 저택의 주인은 누굽니까?”
나의 질문에 조수석에 앉은 높은 사람이 말했다.
“저기는 인민의 배신자인 장성택의 집입니다.”
“아···.”
“처음이니까 대답해 드리지만.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장성택? 아. 김정은의 고모부.
중국을 등에 업고 까불다가, 고사포를 맞고 죽었다고 들었다. 권력 다툼에서 진, 패배자의 끝은 항상 비참했다.
나는 다시 엄청난 빛을 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뛸 정도로, 욕심나는 빛이었지만, 내가 ‘장성택의 금괴’를 먹을 방법이 있을까?
목숨을 걸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호주에서 금을 찾으면 되지 쓸데없이 목숨 걸지 말자.
세상에 금은 많다.
먹을 수 없으면, 쓸데없이 욕심내지 말자. 이미 미션을 통과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나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김정은 통치 자금을 늘려 줄 이유가 없었다. 내 머리 위로 핵폭탄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는 일이었다.
이래서 무조건 이득을 보면 누군가에게 나눠줘야 한다.
만약에 북한 당국이 무엇을 발견할 때마다 최소 10%의 커미션만 주었어도, ‘장성택 금괴’의 존재를 이야기할지 말지 망설였을 것이다.
아! 김일성 훈장 이야기를 했지?
빨갱이라 낙인찍어서 북한에 계속 살게 하려는 속셈인가?
‘장성택 금괴’는 혹시 나중에 쓸 수 있는 ‘카드’로 가지고 있기로 했다.
김정은에게 팔지는 못해도, 남한 대통령에게는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래가 복잡할 것 같았으나, 그 고민도 나중에 하자.
이때 갑자기 경찰차 2대가 붙었다. 그러자 차가 천천히 속력을 줄였고 무전이 들어온 것을 들었다.
“어디? 5호 대동강 별장? 알았다.”
차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평양의 북동쪽으로 한참을 달리기 시작했다. 4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곳은 대동강 북쪽의 한 산기슭에 있는 초현대식 별장이었다.
산기슭에 가려서 멀리서는 보이지 않다가, 가까이 가야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곳이었다.
가까이에서 별장을 눈에 담으면, 감탄사부터 터져 나왔다.
와~ 죽이는데? 서울에도 이렇게 깔끔하고 멋있는 현대식 건물이 있을까?
개성에서 보았던,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던 건물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곳곳에 양복을 입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높은 사람이 사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단 한 사람.
‘김정은.’
파리의 연인에서 나오는 그 김정은이 아니다.
북한의 모든 힘을 쥐고 있는 절대자. 손가락 한 번으로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사람.
내가 차에서 내리자 경복이와 태경이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를 보며 빠르게 다가왔다.
“여기 어디냐?”
“살아 있었냐?”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냐고?”
“나도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 표정 안 보여?”
태경이가 주변을 살피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 사이즈가 나오는 사람이라면···. 설마 그 사람인가?
나도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그 사람에 한 표.”
경복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리 칭찬해주려고 부른 것이겠지? 국보급 보물 찾았으니까.”
큰 공을 세웠으니,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어깨 펴. 쫄 것 없어.”
말은 강하게 뱉었지만, 주변 분위기에 눌려서, 우리는 모두 엉거주춤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때 60대쯤으로 보이는 인자한 할머니가 이쪽으로 다가와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오세요. 남한 선생님들. 이곳까지 오시느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자리가 준비되었으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우리는 무서운 운전사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의 정원은 매우 아늑했다.
대나무 숲 사이에서 시냇물이 흘러내려 정원을 가로질렀고 곳곳에 놓인 기암괴석을 휘감으며 내려갔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젊은 여인 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3명은 각자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각각 여인 2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어머 뭐 하는 짓이에요?
나는 살짝 반항하는 척했으나 젊은 여인들은 눈빛으로 나를 제압하고 옷을 계속 벗겼다. 끝내 팬티까지 거침없이 벗겼다.
이러지 마세요~
내 순결을 원한다면 주는 수밖에. 그래도 2:1은 좀 부담스러운데···
알몸이 되었을 때 여자들이 모든 옷을 가지고 사라졌다.
뭐야? 그냥 가는 거야?
나중에 안 사실인데, 보안을 위해서, 혹은 옷에 병균이 있을까, 외부에서 입고 오는 모든 옷을 따로 보관한다고 하였다.
벽에 보니까 양복 한 벌이 걸려 있었다. 물론 속옷과 양말까지 함께 있었다.
나는 옷을 완벽하게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다가오셨고, 나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우리는 고급스러운 10인용 테이블이 있는 방안으로 안내되었다.
“오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객고를 푸시라고 술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즐겁게 지내세요.”
우리는 테이블 앞에 서 있는 3명의 미녀를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탤런트 뺨칠 정도의 미녀들이 우리를 보더니 각자 우리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혔다.
어? 아까 내 팬티를 벗겨간 여인이었다.
앉기 무섭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양주를 따랐다.
이름이 숙향?
내가 보았던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정도의 미인이었다. 비행기에서 보았던 한가인도 아래로 볼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지만,
나의 눈이 주변을 살피다가 CCTV를 보았고 그 카메라가 살짝 움직인 것을 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잔을 바로 비웠다. 그리고 경복이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 우리 감시당한다.”
“···진짜?”
“홀딱 벗은 것으로 협박당하고 싶지 않으면 정신 차리고 있어.”
하지만 태경이는 옆에 앉은 파트너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어느새 손까지 잡으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여자도 태경이가 웃기는지 같이 웃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아직 ‘세이프’인가?
나는 정색하며 옆에 앉은 여인에게 말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대동강 5호 별장입니다.”
“이곳의 주인이···. 설마···.”
차가운 표정의 숙향은 숨기는 것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거처이십니다.”
이미 예상했음에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적진 한복판이었다. 그래서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당신은 기쁨···조?”
“북한에 기쁨조는 없습니다. 특별 예술단에서 자발적으로 장군님을 가까이서 모시기 위해 지원한 군인입니다.”
기쁨조는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김정은의 여자들 아닌가?
높은 사람하고 여자로 엮이는 것만큼 최악이 없었다.
나는 활짝 웃고 있는 태경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 손 안 놔? 죽고 싶냐?”
하지만 태경이는 활짝 웃었다.
“나 우리 선미 좋다. 이대로 전향해도 좋아.”
나는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
“미친새끼. 정신차려라.”
“우리 선미. 진짜 예쁘지 않냐?”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경고했다.
“장군님 여자 잘못 건드렸다가 고사포 맞고 뒤진다고···”
“장군님 여자? 고사포?”
내가 귀에다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하자. 태경이는 대경실색하며 선미의 손을 놓았다.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카메라에 다 찍혔다. 너는 아오지행. 당첨이다.”
“아니야. 선미 손에 모기가 올라가 있어서 잡은 것뿐이야.”
우리 셋은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기 위해서 살짝 입만 적시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술에 미인이 옆에 있어도, 조금도 흥이 나지 않았다. 죽기 전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술자리를 파할 수 없는 것이, 이 자리를 마련한 사람이 ‘김정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윗사람이 주는 은혜를 거부하는 것은 건방짐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한숨과 함께 내 파트너 숙향을 보았는데. 정말 미인이라, 긴장하고 있음에도 마음이 짜르르 울렸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나왔다.
“아쉽다···.”
숙향은 새초롬하게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이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리고 관리인 아저씨가 보였다. 다른 때와 다르게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깨에 별을 달고 있었다.
높은 계급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역시 장군이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정체를 알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관리인 아저씨는 차렸을 하더니 말했다.
“보위부 소장 이성출입니다.”
“아···. 그분의 명령으로 저희를 관리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점점 왜 수령님께서 골든보이님을 지켜보라고 하셨는지 이해했습니다.”
“그렇군요.”
관리인 이성출 소장은 강하게 말했다.
“장군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지요.”
외곽 별장과 안채 별장.
우리가 있던 곳은 외곽 별장이었고, 더 은밀한 안채 별장이 있었다.
대동강 5호 안채 별장.
김정은이 혼자 있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었다. 보위부에서 ‘별장’ 혹은 ‘특각’하면 이곳을 떠올렸다.
우리는 한국인 최초로 바로 그 5호 안채 별장에 있었다.
5호 별장은, 5성급 호텔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직접 설계하고 프랑스 사람이 건축했다고 했다.
아방가르드 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한 느낌이랄까?
아방가르드는 뭐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뭐냐고? 뭐랄까? 바로크 하면서 로코코 한 느낌이다.
설명해 줄 수 있는데. 시간이 없네.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는 관리자 아저씨를 따라 안채 별장의 긴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 끝에는 양쪽으로 열리는 큰 문이 있었고 그 앞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2명의 사내가 검은색 도베르만처럼 서 있었다. 그 둘은 내가 조금만 이상한 짓을 해도 이빨로 물것 같은 얼굴이었다.
김정은의 별장에서 경호원이 지키는 방이라··· 그렇다면 정말 저 방안에 ‘정은이 형’이 있는 거야?
인터넷 ‘짤’에서 자주 보던 그 형이?
두툼한 목살과 턱살. ‘짤’로는 매우 친숙했는데··· 북한이라서 그런지 ‘김정은’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무거웠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여기에 그분이 계십니까?”
나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 관리자 아저씨를 바라보았는데, 아저씨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질문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재. 숨은 좀 쉬어요?
사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물을 찾아 주었으면 주었지.
내가 정은이 형에게 받은 것은 없다. 원하는 것도 없다.
게다가 한국의 외교관으로 왔으니 죽을 위험도 없었다. 나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넥타이를 조금 고쳤다.
그리고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이때 관리자 아저씨. 그러니까 보위부 소장 이성출이 나를 바라보았다.
“김 대표님 준비되셨습니까?”
“그럼요. 골든보이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습니다.”
관리자 아저씨가 노크하자, 안쪽에서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안에는 ‘짤’로 보았던 김정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