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고려 황궁터 계단 밑에서 나온 두루마리.
그 두루마리를 천천히 펴서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한 여인의 그림.
보통은 천하절색의 미인 그림이어야 했지만.
내가 보고 있는 그림의 여인은 ‘뚱뚱’하고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돈 자랑하려고 집 안에 있는 모든 패물을 온몸이 두르고 있었다.
물론, 시대와 지역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것은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북한 교수를 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주 대단한 그림이라는 것을 눈치로 알겠지만, 왜 대단한 그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냥 ‘이거 비싼 거예요?’라고 까놓고 물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뭔가 대단한 것이 나왔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 있었지만. 뭔지 알아야 이야기하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나의 얼굴’과 ‘북한 교수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는 척을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바로 이곳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요. 엄청납니다.”
‘애매모호’ 하면서 적당한 대사.
운은 내가 띄웠다. 자 이제 설명은, 북한 교수 네가 해봐.
그러자 북한 사학과 교수는 홍수에 ‘둑’이 터진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이 그림에서 나오는 여인은 공민왕의 부인이었던 ‘노국대장공주’.
어찌 아느냐? 그림 아래 '애모하는 노국대장공주'라는 한자가 있다고 했다.
교수의 말로는 노국대장공주는 ‘몽골 공주’라고 했다.
재스민 공주, 엄지공주, 백설 공주, 인어공주, 숲속의 잠자는 공주···.
원래 공주는 다 예쁜 거 아닌가?
하지만 그림에 계시는 우리 몽골 공주님의 우람한 풍채(?)는 말 타고 달려가 단칼에 반란군 수괴의 목을 날릴 것 같은 모습이셨다.
아!! 깨달았다.
그래서 노국’대장’공주구나.
저 정도면 ‘노국’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대장 먹을 만하다.
그런데, 노국대장공주, 어디서 들었기에, 이렇게 익숙한 이름이지?
아!!! 기억났다.
그 조인성과 주진모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 그 불편한 영화.
제목이 뭐였지? 아마 노국대장공주가 송지효였지?
하지만 영화 내용은 기억 안 나고 '명장면 엑기스'(?)만 수십 번 본 그 영화. 야! 니들 모르는 척하지 마라. 너희들도 최소 3번 이상 봤잖아!!!
그 영화에서 주진모가 왕으로 나오는데, 그 왕이 바로 공민왕이었다.
다시 한번 그림을 보면서 생각했다. 와이프가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겼으니까. 남자끼리 키스하지···. 쯔쯔쯔.
나중에 나도 ‘권력이나 돈에 팔려’ 이런 여자랑 결혼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인상이 더욱 구겨졌고, 마치 더욱 작품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경이가 슬쩍 물었다.
“노국대장공주가 누구야?”
“송지효.”
“송지효? 그림은 프로레슬러처럼 생겼는데?”
“그래서 ‘대장’ 먹은 거야.”
나는 다시 그림을 보는 척하다가 북한 교수에게 아무 말이나 한마디 했다.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다니, 하늘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신나서 설명을 계속 쏟아냈다.
낙관도 있고 그림풍도 공민왕이 그린 그림과 똑같다고 했다.
공민왕이 그린 그림 중에 천산대렵도라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림풍이 북송 뭐라고 설명을 하였으나. 내 귀에는 ABCD.....
알았어. 알았어. 설명으로 날 샐 분위기다.
이제 그만.
상자 안에 2개의 두루마리가 더 있었다.
나는 교수의 설명을 무시하고 두루마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러자 또 다른 그림 하나가 나왔다.
그림 속에는 멋진 궁궐이 가득 차 있었다.
아래 쓰여 있는 한자도 대충 읽었다. 개경황X전X, 그렇다면 찍어 맞춰서 '개경황도전도'.
그렇다면 옛날 개경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겠군.
아는 것 나왔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해야지.
“고려의 황도 개경을 그린 그림이군요.”
누가 봐도 궁궐을 그려 놓았으니, 개경 황궁 그림이 확실하다.
아. 몇 마디 더 해야 하는데.
미술 시간에 배웠던 당연한 몇 마디를 더 했다.
“놀랍게도 ‘투시법’과 ‘원근법’이 녹아든 그림이군요. 파격적입니다.”
교수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조금은 머리를 흔들었다.
“원근법은 있지만, 투시법까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나도 몰라. 그냥 이야기해 봤어.
“하하하 저와 견해가 조금 다르군요. 견해 차이는 나중에 이야기하시지요.”
밑천이 금방 뽀록나니, 깊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제가 보기에 이 그림에서 투시법은···.”
교수가 나의 말에 대해서, 당장 반박할 분위기를 잡자, 나는 나머지 그림 하나를 조심스럽게 폈다.
미륵극락정토.
소림사 기술에는 미륵彌勒이라는 글자가 많이 들어가고,
마교의 여자들의 기술 중 극락極樂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미혹술을 많았다.
무협지를 1000권쯤 읽은 나에게, 이 정도 한자는 눈치로 읽을 수 있다.
이 ‘미륵극락정토’ 그림은 뭐랄까?
방금 보았던 2개의 그림보다 뭔가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현대인이 보아도 뭔가 공감 가는 감정이 있다고 할까?
극락에 호수도 있고, 폭포도 있고, 소나무도 있고, 정자도 있고, 달과 기러기가 있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극락.
중세 기독교 화가들이 천국을 많이 그린 것처럼. 공민왕도 죽어서 가는 곳을 스스로 그려보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나 같은 문외한이 봐도 이 그림이 가장 쓸만했다. 셋 중의 하나를 사라고 하면, 바로 이놈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왜 이 그림들이 계단 아래 들어 있었을까?
10만 홍건적이 개경을 공격해 왔을 때, 왕은 남쪽으로 피난을 결정했다.
피난 길에 가져가기는 무겁고,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환관에게 시켜 계단 밑 깊숙이 숨겼을 수도 있었다.
중공군이 몰려오고 있어 피난 가는데. 내가 일기장하고 전에 그린 그림을 가지고 간다고 하면, 엄마가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먹을 것이나 의약품을 하나라도 더 챙겼을 것이다.
아니면 왕이 환관에게 지고 가라고 시켰는데, 무거워서 몰래 짱 박았을 수도 있다.
우리 부대 중사는 K2 소총이 무겁다고, 아카데미 플라스틱 소총을 훈련에 가지고 가고, 진짜 총은 차 트렁크에 짱 박아 놓은 것과 같은 것이겠지. 그 새끼 내가 제대할 때까지 안 걸렸는데··· 아직도 그러고 살까?
이때 돌바닥에서 나온 것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주고받은 편지였다.
한자로 쓰여 있어서 몰랐지만. 애모한다는 내용으로 가득 쓰여 있었다고 했다.
불쌍한 공민왕.
와이프가 싸움도 잘해.
장인이 인간도살자 몽골 왕이야.
살아남으려고,
때마다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했구나.
왕도 마누라 눈치 보는 것은 똑같았다.
다른 편지도 왕창 쏟아졌다.
원나라 황제가 너의 충성을 믿는다는 편지.
공민왕이 얼마나 용비어천가를 써 보냈으면 황제가 이런 답장을 보냈을까? 인간 백정 몽골 왕이라면 두 번도 써서 보내야지. 장인어른의 심기를 거슬러서, 몽골군 기병대에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것은 원나라 황제가 홍건적을 막아주기 힘들다는 편지.
응? 몽골 황제가 왜 이렇게 약해졌지? 홍건적이면 도둑 때 아닌가? 칭기즈칸이 도둑 때도 못 이겨?
궁금했지만. 질문 따위는 안 한다. 나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머리만 끄덕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원나라 말기에는 칭기즈칸의 군대도 군기가 빠져서 당나라 군대가 됐다고 했다. 그러니까 때가 되면 야밤에 집합시켜서 ‘빠따’를 쳤어야지. 쯔쯔쯔.
돼지우리에서 오랫동안 주는 밥을 먹어 ‘야생성’이 빠진 멧돼지는, 언젠가 집돼지가 되는 법이다. 중국을 정복한 몽골군도 어쩔 수 없었겠지.
최영 장군이 공민왕에게 보급이 안 온다고 불만을 쏟아내는 편지도 나왔다.
군대는 항상 보급이 문제였다.
혹한기 훈련을 나갔을 때 밥차가 퍼져서, 우리 중대 애들이 한 끼를 굶었는데, 바로 폭동이 일어날 분위기였다.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행보관이 ‘부처’처럼 웃으면서 애들을 다독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편지는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자, 몽골왕이 협박하는 편지도 있었다. 사위가 장인어른 뒤통수를 친 거네.
몽골군이 도적도 못 이길 정도로 약해졌고. 와이프가 저렇게 생겼으면··· 당장 반란을 일으켜야지.
나 같으면 바로 선봉에 선다.
그림도···
편지도···
모두 엄청난 역사적 내용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빵꾸 난 학점을 때우기 위해서, 미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피카소였나 고갱이었나 모네였나?
그림을 그릴 때마다 편지를 엄청나게 썼던 작가가 있었다.
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왜 그림을 이렇게 그렸고,
무슨 의도로 이런 색을 썼으며.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마음이었는데,
끝날 때는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했다.
같은 각종 ‘편지’가 남아 있어서 그 작품이 ‘비싸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와 편지. 그리고 주변 상황을 알리는 편지들.
이 그림은, 돈 좀 되겠는데?
경매장에서 몇 번 ‘와따가따’ 하면 금방 몇백억까지 튈 작품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의 보물.
내가 걱정할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이것을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 팔면 어쩌지?
핵폭탄 만들면서, 돈 없다고 징징거리니, 이 그림을 엄한 곳으로 반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챙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일단 증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최소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도 알아야 했다.
이때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북한 교수의 머릿속에서는 각종 시나리오가 써졌고, 점점 욕심이 가득한 눈빛이 되었다.
김일성 대학교수가 갑자기 내 핸드폰을 빼앗았다.
“이리 주시오! 보물이 나온 정보 유출은 안 됩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러자 교수가 관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보물이 나왔다는 것을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됩니다. 당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순간 빡 돌았다. 그리고 교수를 노려보았다.
“야. 이 새끼야. 좋은 말 할 때 핸드폰 내놔.”
“이것은 공화국의 보물입니다. 공개할지 말지를 당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나는 죽빵을 날리고 교수 새끼를 밟으려고 하다가, 품격 있는 대한민국 외교관이라 겨우 참았다.
이를 악물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두 칸 높은 계단에 올라가 앉으며 교수를 내려다보았다.
이 새끼의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쭉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앞에 있는, 교수 새끼가. 이 보물들을 찾는 데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봐.”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썩은 미소와 함께 북한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까내고, 이 보물을 발견한 공을 다 먹으려는 것을 알겠는데.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냐? 쥐뿔 한 것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서 이것을 다 먹으려 한다고? 나를 개호구 병신으로 본 거냐?”
“당의 명령을 기다리자는 것이오.”
“지랄하네. 얼굴에 다 먹고 싶다고 쓰여 있어. 보니까 뒤통수를 한두 번 쳐본 솜씨가 아니야.”
북한 교수도 같이 으르렁거렸다.
“말조심하시오. 동무. 크게 다치는 수가 있소.”
내가 다친다고? 이 새끼는 내가 정확하게 누군지 모르는구나.
나는 낮게 웃었다.
“야! 내 말투가 여기 사람 같아? 어차피 여기 오래 안 있어. 아니 못 있어. 게다가 내 신분이 여기서 못 다치는 사람이야.”
대한민국 외교관을 구금한다고? 그럼 남북한이 한판 붙자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
교수는 이제야 머리가 조금 차가워지며 나의 뒷배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김일성 대학의 교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 자체가 혁명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가득 차 있었다. 완벽한 상류층이었다
앞에 보이는 놈이 어느 집안 놈이라도, 깔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나는 혀를 차며 관리인을 바라보았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왜 이렇게 노력도 없이 날로 먹으려는 임꺽정이가 이렇게 많습니까?”
임꺽정. 날강도 스타일.
관리인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북한 교수의 뒷배를 아는 모양이었다.
뭐 저놈 아버지가 총정치국장이라도 돼? 지가 리정혁이야?
나는 관리인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저 새끼를 교수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으면, 더 이상 협조는 없다고 즉시 보고하세요.”
“김 선생님···.”
“오늘 찾은 것만 최소 500억의 가치가 넘습니다. 아니 1000억도 될 수 있지요. 아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값어치입니다. 능력 없이 욕심만 많은 늙은이 보다, 바로 내가 몇백 배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 씨발 내 핸드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내 뒤에 경복이와 태경이도 인상 쓰며 붙었다.
우리가 바로 남한의 무적 외교관 삼인방(?)이다.
우리가 다가가자 교수는 놀라며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마...막아!”
학생들이 눈치를 보면서 앞을 막자. 나는 학생들이 불쌍해졌다. 그들도 막기 싫지만 억지로 막은 표정.
나는 긴 한숨과 함께 학생들을 보면서 말했다.
“남한 교수 중에도 학생들의 논문 빼앗고, 연구도 빼앗고, 정치력으로 승진하는 놈들이 많다. 저 새끼가 잘나가는 집안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좆같아도 어쩔 수 없겠지. 혹시 커피라도 타 달라고 하면, 안에다가 침을 뱉어라. 알았냐?”
나는 지갑을 꺼내서 100달러 지폐를 왕창 꺼냈다. 그리고 앞을 막고 있던 학생들의 주머니에 100달러씩 넣어 주었다.
“저 개새끼는 윗사람만 생각하지, 학생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놈이다. 고생했다고 너희에게 밥 한 끼 사줬을 것 같지 않네. 이번 일 끝나면 이것으로 개장국이라도 사 먹어라. 오늘 고생했는데 형이 해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나는 그대로 돌아섰다.
교수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학생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의 따듯한 말에 감동한 분위기였다.
진짜. 관상은 과학이다. 못생긴 욕심 많은 늙은이를 보고만 있어도 화난다.
나는 분노를 참기 위해서, 그놈이 보이지 않는, 약간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아!!! 혹시 보물 그림을 3점이나 발견했으니, 미션을 통과하지 않았을까?
미션창···. 역시나 미션 통과는 못 했네.
미션아!!! 한 500억 이상 벌었으면 성공한 것으로 퉁쳐줘야 하지 않냐?
이때 관리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차에 소주가 있습니다. 좀 드시겠습니까?”
아. 짜증이 날 때는 소주지.
나는 경복이와 태경이에게 말했다.
“야. 한잔하러 가자.”
경복이도 교수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북한에도 저런 병신 같은 교수가 있네. 창피하다 창피해.”
태경이도 한마디 했다.
“당의 명령을 받는 게 아니라. 저 그림을 몰래 당에서 잘나가는 사람에게 받치겠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 위에 사람 존나 빨았으니까 교수 자리에 앉았겠지. 저런 새끼들이 꼭 말년에 재수 없이 죽더라.”
교수가 더욱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지만, 주변에서 아무도 동조하지 않아 점점 약해졌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혼자 덤빌 용기는 없었다.
주차된 차의 트렁크에서 나온 것은 '미소'였다. 미지근한 소주.
25% 미지근한 소주는 아주 사람을 금방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태경이 조금 걱정되는 말투로 말했다.
“저 교수 새끼가 뭐 백두 혈통 그런 것이면 어쩌지? 팔이 안으로 굽는 거잖아.”
경복이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돈 되는 사람을 밀지. 저런 병신을 밀지 않아. 오늘 찍은 돈이 500억이라잖아. 이미 게임은 끝났어.”
목소리를 높여서, 이러네 저러네 하고 있는데.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안주도 없이 평양 미소를 마시니 알코올 기운이 더 강렬했다.
“와 한방에 취한다. 평양 소주 장난 아닌데?”
“미지근한 소주를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먹어본다.”
미지근한 평양 소주가 뱃속부터 강하게 치고 올라왔다. 안주가 없으니, 대신 먹는 것은 물.
소주 한잔에 물 한 모금을 마셨더니 금방 배가 불렀다. 그리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졌다.
먹었으면 싸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었다. 화장실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줌 싸러 저 아래 입구 앞까지 가야 하나? 귀찮다. 화장실 갔다가 다시 등산해야 했다.
나 등산 싫어하는 거 알지?
남자니까. 그냥 구석에 서서 나무에 물을 줘도 되는데···
하지만 나는 ‘골든보이’이고 ‘외교관’이잖아. 신비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최소의 매너는 지켜야지.
그럼 절충 안으로. 왼쪽 산 구석을 돌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까지 간 후, 시원하게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 귀찮네.
한 5분쯤 길도 없는 산기슭을 걸었을 때 드디어 남들의 시선에서 해방되었다.
드디어 거대한(?)···.
아··· 죄송합니다.
답답해했던 물건을 꺼내고, 최선을 다한 방광에 자유를 주었다.
콸콸콸···. 죄송합니다. 자꾸 과장이 들어가네.
사실. 졸졸졸졸···.
물은 끊기지 않고 계속 쏟아져,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야?
나의 성수(?)로 북한에서 새싹이 자라나겠지.
내가 만든 작은 물줄기를 따라 시선이 이동하다가 갑자기 뭔가를 보았다.
!!!!!!
강한 황금빛이 보였다.
저쪽에서 보이지 않았던 금빛을 이쪽에서 확인한 것이었다.
나는 술기운에 악을 쓰며 소리쳤다!!
“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