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74화 (74/188)

74화

우리는 장마당에서 ‘범죄 액션물 영화’ 한편을 찍고, 양각도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옷만 갈아입고 태경이가 입원해 있다는 평양 종합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 태경이가 호텔 침대에 멀쩡하게 누워, 재미없는 TV 채널을 돌리고 또 돌리고 있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분명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머리와 목에 상처가 있어서 종합병원으로 보냈다고.

나와 경복이는 놀란 얼굴로 태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괜찮냐?”

태경이는 가볍게 말했다.

“어. 죽지는 않을 거 같아.”

역시 윤태경. 괴산 고등학교에서 전교 꼴등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최고의 ‘돌’머리. 이런 곳에서 그 재능이 빛을 발하는구나. 아- 눈부셔.

“의사가 뭐래?”

“운이 좋았다고 하네. 조금만 위쪽으로 맞았으면 큰일 날 뻔했대.”

“멀쩡해서 정말 다행이다. 크게 다쳤으면, 내가 너희 어머니께 뭐라 말씀드리냐?”

태경이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북한에도 퍽치기가 있는지 누가 알았겠냐? 그것도 대낮에.”

“그래. 퍽치기는 야밤에만 하는 거지. 사람 많은 시장에서, 그것도 대낮에 하는 것은, 정말 개새끼들이다.”

“그 씨발놈들 관리인 아저씨에게 끌려갔다며? 어떻게 됐어?”

“관리인 아저씨 말로는 1급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했어. 확신에 찬 얼굴로 ‘죽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라고 했다. 살짝 소름 돋더라.”

“그놈들은 이번 참에 완전히 정리돼야 해. 인간쓰레기야.”

“이 동네는 좀 무섭다. 퍽치기도 그렇고, 그놈들을 때리던 군인도 그렇고, 재판도 없이 수용소에 처넣는 법체계도 그렇고, 여기는 중간이 없어. 무조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야.”

“김정은이 국가적으로 벼랑 끝 전술 같은 것을 쓰니, 백성들이 다 배우는 거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태경이는 갑자기 앓는 소리를 하며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어지럽다.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많이 힘들어?”

“나 아프니까. 나가서 맛있는 것 좀 사 와라. 갑자기 양념치킨이 땡긴다.”

“북한에도 배민으로 치킨 배달 되냐?”

태경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되겠냐?”

“우리나 북한이나 단군의 자손 ‘배달의 민족’ 아니냐?”

“말도 안 되는 개소리 할 시간 있으면, 직접 사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양념치킨을 먹으면, 한방에 나을 것 같다.”

방문을 살짝 열어 봤는데, 대기하고 있는 봉사원이 없었다.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여기는 통금 있어서 안 돼. 함부로 돌아다니면 총 맞아. 내일 낮에 먹자.”

“아직 저녁 7시밖에 안 됐다. 좀 다녀와.”

태경이가 자신의 머리를 잡으며 과장되게 인상을 썼다.

“아이고~ 갑자기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아.”

경복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태경이의 얼굴을 보더니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큰일이다.”

정색한 경복이의 얼굴을 보고 나까지 심각해졌다.

“왜? 어디가 이상해?”

“태경이 얼굴이 이상해.”

“뭐가? 어디가 이상한데?'

경복이는 조금도 인상을 펴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얼굴이 더 못생겨 졌어. 전에는 그냥 못생겼는데. 지금은 ‘존나’ 못생겨 졌어.”

아. 씨발 놀랐잖아. 하지만 나도 살짝 웃으면서, 한마디 보태고 싶었다.

“듣고 보니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가? 이마가 더 튀어나오고 한쪽 눈이 찌그러진 것 같아. 정말 많이 아파 보이는 얼굴이다.”

경복이가 태경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짝 비웃었다.

“얼굴이 많이 아프지? 그건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못생겨서 아픈 거야. 치료가 안 되니까 그냥 다 포기하고, 다 이게 내 ‘팔자’려니 하고 살아.”

태경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

“웃기지 마. 이경복! 네 면상은 정말, 오늘내일하는 얼굴이다. 오늘 죽어도 호상이야!!!”

경복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국에는 이런 얼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가 없으니까. 아픈 얼굴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보살 같은 북한 아가씨 한 명 보쌈해서 내려가자.”

“내가 기회가 있으면, 우리 위대하신 수령님께 잘 이야기해 볼게.”

“그래. 우리가 금을 많이 상납하고, 한 명 데리고 내려가자.”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얼굴로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안락사당할 수도 있어. 아무리 대한민국 인권의식이 높아져도 저거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얼굴이지. 여자들의 젠더 감수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얼굴이다.”

태경이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웃기지 마. 중학교 때 모란이가 우리 얼굴 순위 매겨줬잖아. 나 일등. 경복이 2등. 그리고 너가 꼴등이야. 이 꼴뚜기 외계인아.”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외교부 단장님이 화난 얼굴로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나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들어와서 회담을 망가트려?”

내가 귀가 잘못되었나? 회담을 망가트려? 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를 못 내고 있지 않았나?

아. 내가 공을 세우니, 이 새끼가 나에게 꼰대 짓을 하고 있구나.

나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짜증을 냈다.

“아. 그래요? 내가 회담을 다 망쳤네. 다 망쳤어. 우리는 그냥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머리에 빵꾸나면서까지!!! 몸으로 때우고 있었는데.”

나는 태경이 목과 뒷머리에 상처를 보여줬다.

“자 봐요! 머리에 빵꾸 난 거.”

“그러니까 왜 쓸데없이 돌아다녀!”

나는 진짜 화가 났다.

“관리인 아저씨!!!”

그랬더니 관리인 아저씨가 아니라, 아까 보았던 군관 중 하나가 들어왔다.

“조장님께서는 당으로 보고하러 가셨습니다.”

“그 관리인 아저씨에게 말해서. 그 서울에 북한 쪽 대표단 보내는 것 취소하고, 남한에서 보내는 식량도 없었던 이야기로 하자고 하세요.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군관도 대충 눈치가 있어서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러자 단장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왜 그것을 맘대로 결정해!”

“내가 다 망쳤으니까. 원상태로 돌리는 것 아닙니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능력 있는 단장님이 다시 협상해 보세요.”

“이렇게 지휘체계를 무시할 거야?”

아. 자신을 빼놓고 일이 진행돼서 자존심 상했다는 말인가? 국가 대사 보다 자기 자존심이 더 중요해? 이런 멍청한 새끼가 어떻게 단장이 되었지?

나는 차갑게 단장을 바라보았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이번 방북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그거 알았어요?”

단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 내가 대통령 라인이라는 것을 몰랐구나. 우리를 대표단에 딸린 서커스단 정도로 보았나?

나는 낮게 웃었다.

“내 직속 상관이 대통령이라고. 당신이 아니라. 그런데 왜 당신에게 보고해야 해? 당신은 우리에게 한마디도 안 해줬으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돌아가서 대통령님을 만나면 우리 단장님이 얼마나 열심히~ 이번 회담에 임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줄 생각이니까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단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을 때, 나는 이 답답한 면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는 쇼핑해야 해! 나가서 얼굴이 아픈(?) 태경이 양념치킨이나 사주자.

“군관 아저씨. 짜증 나니까 대성 백화점 갑시다. 내가 옷 한 벌 사줄게.”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나에게 돈을 받아서 그런지, 사단장을 보는 눈빛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다가 말고, 저번에 왕창 사 놓은 샤넬 립스틱을 집어서 단장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사모님 가져다드리세요.”

우리는 대성 백화점으로 갔다. 2번째 갔더니, 이제 동네 마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양념치킨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맛이 비슷하다. 간단하게 1인1닭하고.

백화점 5층의 당구장에서 쿠션을 돌렸다. 아. 큐대랑 쿠션이, 괴산 시내 600다이만도 못 해.

나는 200달러를 잃었다. 으. 화가 난다. 홈구장에서 보자. 이경복.

이때 보이는 노래방. 태경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 볼까?

지드래곤 노래 ‘쿠데타’가 있으면 웃기겠다. 우리 북조선 동포는 뭔 노래 부르고 사나 보자.

노래책을 폈으나 아는 노래가 단 한 곡도 없었다.

이때 눈에 들어온 한 곡.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방선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

수령님이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이 쓰신다.

파하하하. 무섭게 생긴 군관 아저씨만 아니었으면 크게 웃을 뻔했다.

땅속에 금을 보는 것도 믿는데, 축지법 정도는 믿을 수 있지. 크크크.

내일 개성 가야 하니, 들어가서 일찍 자자.

자 우리도 축지법으로 호텔까지 고고싱~ 아저씨 택시비 따불! 아니 2배 줄 테니 전속력으로 갑시다.

그러자 택시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것이 골든보이 축지법.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차를 타고 개성으로 떠났다. 개성은 평양에서 2시간 거리.

평양-개성 고속도로. 흠······ 고속도로인데, 도로 사정이 아주 열악했다. 도로 관리가 제대로 안 돼서, 표면에 상처가 많은 4차선 국도였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곳이 보였다. 그런데 말이 안 나왔다.

낡아도 너무 낡았다.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서 거의 버려진 건물처럼 보였다.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위생상태라면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급 똥만 아니었으면 절대 멈추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아!!! 수세식이 아니야!!!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

나는 빛과 같은 속력으로 ‘큰일’을 보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탈출이다!! 탈출!!! 당장 탈출!! 내 머릿속에서 방금 있었던 일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시동을 걸었는데 차에 문제가 좀 있어서, 3시간이나 걸려 개성에 도착했다.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길을 운전하고 왔더니 멀미가 폭발할 것 같았다.

개성으로 들어와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점심상을 받았지만, 속이 편하지 않아서 밥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경복이만 큰 대접에 쓱쓱 비벼서 잘 먹었다. 멀미를 담당하는, 뇌가 고장 났나?

호텔 커피숍에서 챙겨온 텀블러 커피를 마시며 속을 달랬다.

내가 밥을 못 먹었다고 하자 군관 아저씨가 개성 만두를 사 왔는데, 오. 아주 부드러웠다. 두부가 많이 들어간 삼삼한 맛은, 계속 먹게 하는 감칠맛이 있었다.

배가 부르니, 좀 살 것 같았다.

자. 금을 찾는 일을 시작해 보자.

아직 개성 어디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모르니, 지난번처럼 맨땅에 헤딩 시작.

그래도 고려의 수도 개성. 뭐가 나와도,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관광지부터 돌아다니기로 했다.

이번에도 해설사 같은 놈이, 자꾸 장군님 이야기를 해서 강제 퇴장.

관리인 아저씨에게 레이저 빔을 쏘니, 다음부터 이런 놈들이 못 붙게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개성 민속촌’. 나름 깔끔하니 구경할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금빛은 보이지 않았다.

첫판부터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망은 노노.

다음은 개성 ‘류경 백화점’.

평양 대성 백화점의 절반 크기. 지금 쇼핑할 때가 아니다.

하지만 태경이가 해맑게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는 태경이를 끌고 차에 다시 탔다.

다음은 ‘선죽교’.

여기가 킬방원이 피파 정몽준 선생을···. 아니.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닝 스타로 원샷 원킬 한 곳.

역시 사람은 대세에 따라야 한다. 힘이 없는데 독고다이는 죽음을 부를 뿐이었다.

이 나라의 역사가 ‘조선’이라는 큰 물줄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맨손으로 막으려고 하다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큰물에 휩쓸려 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충’을 중시하는 성리학자로서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 아닐까.

오늘의 교훈.

뒤지기 싫으면 줄을 잘 서자. 끝~~~.

Next. ‘고려 박물관’. 한국 박물관이랑 수준 차이가 40년도 넘어 보였다. 나는 고려 박물관 자체가 너무 낡아서 건물이 유적인 줄. 유물도 거의 볼 것이 없었다.

혹시나 생각에 주변을 살폈으나, 역시나 금빛은 보이지 않았다. 대충 살펴보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

다음은 바로 ‘태조 왕건 대왕릉.’ 뭔가 ‘왕거니’가 나올 것 같았다.

대하사극 왕건을 생각하며 태조 왕건 대왕릉에 갔다. 하지만 그냥 큰 봉분만 있을 뿐 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왕릉 안에 금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내가 병신이었다.

기대했던 곳이라 실망이 컸다.

이때 경복이가 기침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분명 마구니가 틀림없다. 금부장 당장 저놈을 철퇴로 내려쳐라!

아. 이것은 궁예지? 혹시 궁예 무덤이 있는지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다음 간 곳은 ‘공민왕릉’.

이곳도 살짝 기대했지만, 아···. 여기에서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개성에는 ‘개성’있는 보물이 없나?

라임 어때? 꺼지라고? 미안해.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망하는 것인가?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왔으니, 뭔가 나와야 하는데···.

이번에도 ‘개성’ 장마당에 가서 ‘액션’을 한번 찍고 와야 하나?

멀리 ‘개성공단’이 보였다. 저기에 뭐가 있을까? 아. 접근 불가요? 네. 알겠습니다. 개성공단에 뭐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로 포기.

마지막으로 간 곳으로 바로 ‘만월대’. 고려의 황궁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실망. 실망. 대~실망.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건물은 하나도 없고 그냥 황궁터밖에 없었다.

아이유가 나왔던 달의 여인-보보신경에서 보았던 화려한 고려 황궁은 아니더라도, 최소 창덕궁 정도를 생각했던 나는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복원 좀 하지.

북한에서는 조선보다 ‘고려’를 중요시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 표정을 보고 관리인 아저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저씨 혹시 위에다가 빵빵 터질 거라고 보고해 놨어요?

어쩌면 좋아. 그래도 없는 것을 어떻게. 보물을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생각해 보니 내가 ‘설레발’ 친 멘트 몇 개가 기억났다.

황궁을 천천히 돌아보았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호텔로 돌아가 쉴까?

실망한 표정으로 입구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길바닥에 금빛이 보였다.

“아!”

딱 봐도 금반지다. 캘까? 말까? 금반지 하나면 모양 빠지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뭐라도 들고 가야지.

나는 군관이 들고 들어온 공구통에서 호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팠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기대하고 목이 빠져라 구경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누가 흘린 것으로 보이는 금반지 하나가 뚝딱 나왔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금반지를 관리인 아저씨에게 주었다.

“이것으로 저녁때 소주나 마십시다. 여기도 대동강 맥주에 평양 소주 있죠?”

“물론 있습니다.”

“오늘 개성에서 자고 싶네요.”

“여기서 머물 생각이시다면 바로 숙소를 확보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아. 답답하다. 이렇게 없나?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황궁터를 유심히 살폈다.

!!!!

궁궐터에 정문 쪽에서 아주 작은 빛이 스치듯 보였다.

황궁 정문 계단으로 보이는 40개의 돌이 보였고, 그중 가장 위에서 3번째 계단, 아래 아주 작은 금빛이 보였다.

금빛은 금귀걸이보다 더 희미했는데, 그것을 찾은 내가 용할 정도로 작은 빛이었다.

나는 황궁 계단 위로 올라가 희미한 빛을 바라보았다.

이야기할까? 말까? 관광객이 흘리고 간 귀걸이가 찡겨 있으면 어쩌지?

금반지를 찾았을 때, 우리 관리인 아저씨가 실명한 표정이었는데···.

내가 태경이를 조용히 불러서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태경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금 반 돈이 장난이냐? 금 반 돈이면 여기 있는 사람이 한달 월급일 수 있어!”

경복이도 한마디 했다.

“계단을 조심히 뽑았다가 다시 끼면 되잖아. 네 가오가 문제냐?”

생각해 보니, 빠질 가오가 없었다. 내가 ‘골든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은 유투뷰가 안 되는 동네다.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관리자 아저씨에게 말했다.

“이 3번째 계단 밑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 계단 밑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만월대가 아무것도 없는 황궁터이지만 그래도 문화재다. 관리인은 계단을 뽑아도 되는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무조건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지 않은가?

그리고 황금빛이 보인다고 했다. 확인해보는 것이 맞을 거라 판단했다.

이럴 때 사람을 쓰기 위해, 평양종합대학 고고학 교수와 대학생까지 데리고 왔다.

관리인은 모두를 동원하여 계단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100% 수동. 삽질과 호미질의 연속이었다.

모두 고생하니, 지금이라도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축구 감독처럼 팔짱을 끼고 공사 현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귀걸이가 나오면 뭐라고 변명하지? 이대로 돌이 되었다고 전해 줘라.

3번째 계단이 치워지고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왜? 왜? 왜? 뭐 있어?

그러자 태경이가 크게 놀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뭐가 나왔어!! 어서 와봐!!”

나는 크게 놀랐으나, 건방진 얼굴.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 권태로운 눈연기를 했다. 마음은 달려가고 있지만, 몸은 귀찮다는 듯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너는 골든보이야. 절대 놀라지 말자. 다 알고 있었던 것이야.

천천히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기름을 먹인 가죽으로 돌돌 감은 돌상자가 나왔다. 가죽을 고정한 핀이 바로 작은 금이었다.

나는 석함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안에는 빛나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럼 금이 없다는 말이다. 다들 기대하고 있는 눈빛인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지?

하지만 이미 환자의 배를 열었다.

수술 시작.

나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가죽을 고정했던 작은 금핀을 빼서, 흥분상태로 반쯤 미쳐 있는, 김일성 대학 사학과 교수에게 넘겼다.

하지만 김일성대 교수가 흥분하여 먼저 돌 뚜껑을 열려고 하였다. 나는 그의 팔목을 잡았다.

패 건들지 마러.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갑자기 주인공처럼 앞으로 나서지 말란 말이야.

교수가 머쓱하여 물러나자, 나는 돌로 만들어진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석함 안에는 각종 두루마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낫지.

나는 가장 위에 있는 두루마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폈다.

편지인가?

그림인가?

고려 황실의 보물지도?

한 여인의 그림이었다.

그림을 본 김일성 대학교 고고학 교수는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이것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