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우리는 대성 백화점에서 택시를 타고 양각도 호텔로 돌아왔다.
트렁크 안에서 엄청난 짐이 쏟아졌는데, 북한 호텔리어들은 마치 명절에 부모님이 도착한 것처럼 뛰어나왔다.
내 심부름을 해주면, 반드시 달러로 팁을 준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나이 든 봉사원까지 뛰어나와 짐을 받았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그놈의 돈이 뭔지···.
평소에 짐을 받던 젊은 봉사원은 구석에서 인상을 쓰며 지켜만 보고 있었다.
경력 있는 4명의 봉사원이 나의 짐을 방 안까지 옮겨 주었고 나에게 각자 50달러의 팁을 받았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 인사하듯 활짝 웃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역시 달러는 수령님보다 위대하다.
달러 만세~ 미 제국주의 만세~
봉사원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나는 관리인에게 강한 시선을 주며 말했다.
“내일 평양을 돌아볼 것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더 이상 놀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관리인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누구의 허락 없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저 나이 든 관리인은 높은 사람이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인사하는 사람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런 높은 사람이 왜 나를 관리하고 있지? 흠···.
어찌 되었든 저 나이 든 관리인을 통해서, 북한 안에서의 기동력을 확보하고, 금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강행군은 내일부터 그러니 오늘은 일단 재미있게 놀기로 마음먹었다.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우리는 신나게 대동강 맥주를 따서 단숨에 마셨다.
카~~ 이 쌉싸름하면서 알싸한 맛. 한국 맥주보다 한 수 위!!!
독일 맥주보다 좀 더 진하고 홉의 맛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래 맥주는 이렇게 만들어야지.
평양 소주. 무려 25도였다. 옛날 빨간색 두꺼비를 마시는 느낌이었으나 더 독하다.
평양 소주를 대동강 맥주에 말아 소맥으로 만들어 먹자, 더욱 맛이 있었다.
하지만 안주로 먹는 과자는 레벨이 떨어졌고. 라면도 자극적인 MSG가 빠진 맛이었다. 심심한 칼국수 맛?
잘못 사서 그럴까? 단고기 사발면은 그냥 패스.
반건조 갑오징어는 우리나라 돈으로 해도 상당히 비싼 안주였다.
그래 이 맛이야. 부드러우면서 짭조름한 맛. 북한에서도 가장 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안주라고 나중에 들었다.
역시 비싼 것이 맛있었다. 이러니 북한이나 남한이나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반건조 갑오징어는 맥주 안주로 어울렸으나 소주 안주로 어울리지 않았다.
바로 ‘국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면 국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팁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한 호텔리어가 번개같이 달려왔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나는 100달러 10장. 1,000달러를 호텔리어 아저씨에게 넘기고 말했다.
“해물탕이 땡깁니다. 됩니까?”
아저씨는 1,000달러를 받고, 반쯤 얼어 있다가 매섭게 머리를 끄덕였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선생님.”
“방안으로 배달해 주겠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어디로든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돈을 쓰는 것은 나의 인상을 강렬히 심어주려 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내 얼굴을 좀 더 유심히 보라고. 게다가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니 쉽게 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있으니, 크게 걱정 없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의 인심을 조금이라도 얻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30분 만에 벨이 울리고 식탁이 두 개나 들어왔다.
민어회가 올라왔고, 꽃게찜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와~ 민어 아가미가 움직여~
그리고 각종 조개가 가득 들어간 해물탕이 보였다. 탕 위에는 갑오징어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가 있었다.
이때 열린 문으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우리나라 외교관이 보였다.
낯익은 얼굴이었는데 대학교 때 외무고시를 패스했다는 천재 형님이었다. 3개 국어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인간이 가능한가?
나는 뛰어나가 천재 형님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모시고 들어왔다.
“형님. 맛있는 안주가 막 들어왔어요. 와서 드세요.”
지난번 만찬장 식당에서 나와 함께 단장 몰래 소맥을 말아먹은 사이였다. 그곳에서 형님 동생 하기로 했다. 하지만 뒤로 만날 틈이 없었다.
“형님. 평양 대동강 회오리주 먹어보셨습니까?”
나는 대동강 맥주에 평양 소주를 따라서 회오리를 한 후 형님께 딱 내밀었다.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목이 칼칼했던 천재 형님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카. 이게 말로만 듣던 대동강 맥주고만.”
“안주도 드세요.”
나는 반건조 갑오징어를 입에 넣어주며 수저를 들려주고, 빈 잔에 맥주와 소주를 따라서 폭탄주를 만들었다.
젊은 외교관은 방안에 산처럼 쌓여 있는 물건을 보고 말했다.
“이것들은 다 어디서 산 거야?”
“평양 대성 백화점을 다녀왔습니다.”
천재 형님의 눈이 커졌다.
“뭐? 거기를 다녀왔어?”
“형님이 일할 때, 저희는 온종일 놀고먹었잖아요. 시간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북한 군관이 입구에서 잡을 텐데···.”
나는 경복이와 태경이의 얼굴을 가리켰다.
“딱 봐도, 조선족 및 인민군 스타일이라. 같은 편인 줄 알더라고요.”
천재 형님이 그쪽에 시선을 주더니 웃었다.
“크크크. 인민군 스타일···.”
경복이와 태경이가 발끈했고. 비방과 폭로가 이어졌다. 그리고 큰 웃음이 터졌다.
나는 천재 형님과 술을 나누어 마시고 해물탕을 먹으면서, 조금씩 그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다. 태경이와 경복이까지 입을 털자, 형님의 입에서 계속 웃음소리가 터져 나았다.
좋아. 잘하고 있어.
웃음이 마무리되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요즘 북한하고 협상은 잘 진행됩니까? 매일 다들 똥 씹은 표정이더라고요.”
천재 형님은 손을 흔들었다.
“아··· 힘들어. 아무래도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20명이나 왔으면 뭐라도 들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인건비는 뽑아야죠.”
“북한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돈이야. 하지만 우리는 돈을 쓸 수 없지.”
“예산이 없나요?”
“설마. 대한민국이 예산이 없을까? 돈을 썼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뒷감당이 힘들어. 재수 없으면 북한에다가 돈을 주고 행사를 구걸한 역적이 되는 거야.”
이미 그렇게 역적이 된 정치인이 많았다. 선거가 있으니 북한에 대포를 쏘아 달라고 한 놈들 같이 말이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돈이 아니면 북한을 움직이기 힘들 텐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난 부정적이다.
천재 형님도 머리를 흔들었다.
“빈손으로 일을 진행하려고 하니 진도가 나가나? 매일 서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는 거야.”
“아이고~ 우리 형님이 힘드시겠네요.”
“아무래도 곧 판이 깨질 것 같아. 그럼 집에 가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 그럼 안 되는데···. 미션을하고 가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길어 봤자 2박 3일이면 끝날 거야.”
시간이 없었다.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일부터 진짜 파이팅이다!!
25도짜리 소주가 들어가자 뱃속이 따뜻해지며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자주 웃음이 터졌고, 건배 소리도 커졌다.
나는 한 시간 동안 단장을 씹는 소리를 들어주고 술자리를 끝낼 수 있었다. 형님을 먼저 보낼 때, 형수님께 선물하라고 샤넬 립스틱까지 들려서 보냈다.
새벽 1시가 되었다.
내일부터 강행군이니까 아쉬워도 일단 자자. 주섬주섬 치우기 시작했다.
청소 팁으로 10달러는 놓고 가야겠네. 방 안이 너무 지저분하다.
이때 단장이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몇 시인데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나는 죄송하다며 금방 잘 거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태경이가 취해 있었다.
“야. 내 돈 내고, 내가 술 마시겠다는데, 네가 뭔데 와서 태클이야? 네가 여기 와서 노가리라도 한번 사줬어?”
뭐야? 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는?
“이 자식이!”
경복이도 그냥 화를 냈다.
“네가 우리 담임이냐? 우리가 수학여행 왔어? 어른이 내 돈 주고 술 먹겠다는데 왜 와서 행패야?”
그러자 단장이 강하게 말했다.
“놀러 왔어? 너희들의 신분이 뭔지 몰라?”
“몰라~ 우리 신분이 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 아니야!!”
“좆까!!! 우리를 회의에 한 번 데리고 가기를 했어. 아니면 어떻게 돌아간다고 설명을 한번 해줬어? 우리를 왕따했잖아. 우리는 독고다이야. 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꺼져. 내일부터 우리도 일해야 해!”
단장은 뻥찐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가 문을 닫았다.
술 취한 미친놈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괜히 강한 척하려다가 가오만 빠졌다.
단장님. 쏘리~ 애들이 핸드폰 금단 증상이라 좀 이상해. 카톡도 안되고. 이해해줘.
경복이가 더욱 흥분했다.
“지가 내 상사야? 왜 와서 땍땍거려? 옛날 우리 덜떨어진 중대장보다 능력이 없어 보이는구먼.”
태경이도 화를 내며 말했다.
“내 꿈이 외교관이었던 것 알지? 내가 저런 꼰대 만날까 봐 외무고시를 안 봤다니까?”
개소리했지만, 화나 있을 때는 그냥 맞춰주자.
“윤태경 외교 수석이 참아. 나중에 큰일 할 사람이 마음을 넓게 써야지.”
“외교 수석? 그럴까? 하하하.”
우리는 서로의 잔에 마지막 술을 따랐다. 그리고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뭔데?”
“사실. 북한에서 금을 찾으라는 미션을 받았다.”
그러자 경복이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야? 북한에서?”
“그래.”
태경이가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쩐지 관리인 아저씨한테 자꾸 금 찾아야 한다고 말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다음에는 미리 이야기해줄게.”
“실패하면 뭐 있어?”
“다행히 페널티 같은 것은 없어.”
“보상은?”
“황금 씨앗.”
태경이가 눈을 부릅떴다.
“야! 그러면 목숨 걸어야지!”
“내일부터 우리끼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여기 있는 외교관들에게 뭘 기대하면 안 되겠어. 뭔가 의지가 없다.”
경복이가 이를 드러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끼리 평양을 싹 뒤져보자고.”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호텔 로비에서 관리인을 기다렸다.
관리인은 아침 7시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내가 바로 다가가 말했다.
“준비되셨습니까?”
나이 든 관리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호텔 정문에는 벤츠 한대가 서 있었다. 우리는 거침없이 차에 올라탔고 내가 운전석에 앉은 관리인에게 말했다.
“금을 찾을 때까지 온종일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저를 이렇게 도와주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다 설명해 드릴 수는 없으나. 김 선생님을 우리가 따로 관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누가? 왜? 그런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다 필요 없고, 금부터 찾아야겠습니다.”
금을 찾는다는 말은 상대가 받아 드리기 어려운 말이었으나 관리인은 거침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 사람 혹시 내 구독자인가?
“두유 노 강남··· 아니. 두유 노 골든보이?”
“······”
모르는 눈치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우리는 일단 유명한 관광지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김일성 광장.
인민대학습당.
혁명박물관.
주체사상탑.
창당기념탑.
평양지하철역.
개선문.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이지만. 황금빛도 없었다.
아 씨발- 시간 아까워.
잠깐 내릴 때마다. 관광지를 설명하려는 관리인의 부하 놈이 있었다.
금도 안 보여서 짜증 나는데··· 내가 위대하신 수령 동지의 업적을 궁금해하겠냐? 이 병신아.
나는 폭발할 것 같이 인상 쓰며 말했다.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어요. 형님. 조용히 갑시다.”
나는 200달러를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그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제 좀 집중할 수 있을 거 같네. 관광지에 아무것도 없다면, 평양 위쪽부터 쭉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해당하는 것이다. 도로에는 구한말에 봤을 법한, 전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설명충 하자면. 전차가 '탱크' 아니다. 한 칸짜리 전철 같은 것이 있다. 북한이라고 길거리에 탱크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안 돼. 탱크 움직일 기름도 없는 동네야.
모란봉 구역.
보통강 구역.
평천 구역.
중 구역.
만경대 구역.
락랑 구역.
대동강 구역.
동대원 구역.
선교 구역.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돌았으나 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서 뱃속에서 배고프다고 강렬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도 먹지 않아서 더욱 배가 고팠다.
그래서 만경대 구역의 장마당으로 들어갔다. 북한 국밥이나 한 그릇 든든하게 먹자고 이야기했더니 관리인 아저씨가 앞장을 섰다.
시장으로 들어가 개장국이라 이름 붙은 국밥 5그릇을 시켰다.
“저기요? 관리인 선생님? 개장국에 설마 정말 멍멍개가 들어가지 않았겠지요?”
관리인 아저씨가 눈치를 채고 단고기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단고기? 아 개고기··· 오케이
배고픈 상태로 먹었더니 개장국은 너무도 맛있었다.
특히 김치가 일품이었다. 북한 김치가 입맛에 맞다니.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었다.
북한 김치를 한국 김치와 비교하면 좀 덜 짜고 덜 양념이 들어갔다. 추운 곳이라 그런가?
태경이가 밥을 다 먹고 주변을 살폈는데 시장에서는 옥수수를 구워 팔고 있었다. 그것을 사기 위해서 일어났을 때
한 허름한 옷을 입은 젊은 놈이 태경이의 어깨를 내려치고 메는 가방을 빼앗아 도망쳤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나와 경복이는 본능적으로 그 개새끼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태경이를 건드리는 것은 우리를 건드리는 것이다.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감히 괴산 3형제를 건드려? 방금 것을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키는 퍽치기였다.
태경이가 어깨를 맞았지만. 젊은 놈은 어깨가 아닌 뒤통수를 내려치려다가 태경이가 움직여 잘못 때린 것이었다.
미친 새끼!!! 잘못 쳤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너무도 화가 났다. 최소 죽방 몇 대는 갈겨줘야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분노해서 버프를 받은 덕인지, 금방 놈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함정이었다. 그 새끼가 멈추자 10여 명의 사내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너는 뭐네? 뒤지고 싶간?”
우리는 일단 보이는 게 없다. 딱 봐도 못 먹어서 '존만한 새끼들'이었다.
“내 친구 뒤통수를 까?”
“이 종간나 새끼래? 남조선 말을 쓰는 구만?”
“그래 이 개새끼야. 내가 남조선 사람이다.”
“그럼 군관 선생에게 신고를 해야겠군 기래.”
“신고하기 전에 몇 대 처맞자.”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고생한 얼굴의 존만한 새끼가 칼을 꺼내 들었다.
“뱃때지 따이고 싶나?”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쌀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비실거리는 새끼가 입은 튼튼하네.”
“얼굴에 그림 그려줄까? 아니면 입을 길게 찢어 줄까?”
“평양이나 서울이나. 도시 놈들은 말만 많아요. 야! 시끄럽고 바로 들어와.”
칼을 든 젊은 놈이 바로 경복이에게 달려들었다.
오. 굿 초이스. 사실 나는 칼을 보고 살짝 졸았다.
하지만 경복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돌려 칼을 피하고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엎어 매치기를 했다.
퍽!!! 젊은 놈이 대짜로 뻗었다.
경복이는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으므로 상대는 어딘가 부러졌을 것이 확실했다. 바닥에 쓰러진 젊은 놈이 몸을 떨다가 기절했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경복이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들었다.
“야! 이것으로 돼지나 잡을 수 있겠냐?”
단검을 살살 만지다가, 갑자기 놈들을 향해서 확 던졌다.
퍽! 놈들 뒤에 서 있던 나무에 박혔다.
“어? 빗맞았네?”
10명의 북한 불량배들은 깜짝 놀라며 박혀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놈들은 뒤가 없는 놈들이었다.
우리 돈을 빼앗지 못하면 굶는다.
싸워야 할 이유가 너무도 절실했다.
게다가 아직 자신들은 10명도 넘으니 기세가 죽지 않았다.
“죽여 버리라!!!”
10명이 칼을 뽑아 들고 모두 우르르 이쪽으로 달려왔다.
내가 앞으로 뛰어나가려 할 때, 경복이가 나를 데리고 허름한 아파트 입구로 끌고 갔다.
마을 주민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도망치기만 할 뿐이었다. 장마당 일파는 그들에게도 공포의 대상.
우리 둘은 계단에 올라섰다. 둘 정도면 앞뒤로 공격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나는 복도 계단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 화분의 받침대로 쓰이는 벽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아! 씨발놈들이. 가오 빠지게 짱돌을 들게 하고 있어.”
이때 한 놈이 뛰어 올라와 경복이를 칼로 찌르려고 했는데 내가 벽돌로 그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벽돌이 깨지며, 놈이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완전히 흥분하여 외쳤다.
“다 덤벼! 개새끼들아! 고난의 행군 때 너무 굶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