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5대의 소방차가 전속력을 다해서 달려왔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산불이 난 것을 동네 주민이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기 나는 곳조차 없을 정도로, 산불은 완벽하게 소화되어 있었다.
그래도 소방관들은 잔불을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산 위로 올라간다고 했다.
“산 위는 지뢰밭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국지성 호우(?)로 인해 지뢰가 쓸려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어, 소방관이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은 군인들에게 저지되었다.
인명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소방서장은 대원들과 1시간쯤 대기하다가 돌아갔다.
나는 소방관이 산불이 완벽하게 진화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구석으로 이동해 조용히 미션창을 불렀다.
<<수류석으로 산불 진화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진생 심향환을 드립니다.>>
<<주의: 진생 심향환은 1주일 뒤부터 복용할 수 있습니다.>>
역시 미션은 성공해 있었다.
그래. 내 보상!
나는 상의 안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전에 황금 나침반도 상의 안주머니에 나온 것이었다.
역시 있다!!! 안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 크기의 오동나무 상자가 나왔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랬더니 안에는 황금색 알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것이 진생 심향환. 생명을 연장해주는 비약.
경복이가 청심환처럼 생긴 알약을 보고 뭔가 상서로운 기운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뭐야?”
“이게 산불 끄는 미션에 성공하고 받은 보상이다.”
“이 알약이? 이것은 어디다 쓰는 건데?”
“생명을 늘려준다고 되어 있어.”
“생명을 연장해 준다고? 그게 가능해?”
태경이가 가까이에서 알약을 구경하며 말했다.
“골든보이를 안 믿는 저 새끼는 빼고 나랑 이야기하자. 내가 쇼부 봐 줄게. 10% 수수료만 받겠다.”
경복이가 표정을 바로 바꿨다.
“나는 5%!! 그런데 누구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거야?”
태경이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돈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비싸게 연장해 줘야지.”
“어떤 돈 많은 사람을 말하는 거야?”
태경이는 검색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췌장암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과폰 회장님 어때? 한 1조 원 정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경복이가 놀라며 말했다
“1조? 대단한데?”
“자기 목숨을 늘리는 일인데 1조가 아깝겠냐? 한달만 늘려줘도 살걸?”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알약을 보여주면서, 생명을 늘리는 심향환이니 1조 원을 달라고 하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까?”
“···미친놈이라고 하겠지.”
“빙고.”
태경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왜 나한테 줘.”
“나는 황금 나침반도 가지고 있고 황금 씨앗도 가지고 있어. 넣을 주머니가 없다.”
태경이가 조금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이 알약을 노리고 암살자가 몰려오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너 넵플렉스 계정 끊는다!”
“ok. ok 알았어.”
사실. 이 알약을 팔 마음은 없었다. 처음에는 이 약으로 아버지의 정신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수명을 늘리는 것이지 정신병을 고치는 것은 아니다.
수명 연장이라면, 인화 그룹의 회장님이자 우리 할아버지인 김산 회장님께 이 알약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을 아버지가 원하리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우우웅~
이때 군용 지프가 도착하였고, 1명의 대위와 4명의 사병이 내렸다.
얼굴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지만 ‘대위’라는 놈은 딱 봐도 싸가지가 없게 생겼다. 그는 뭔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대위는 나와 함께 산 내려온 중위를 보며 말했다.
“왜 민간인이 여기 있어?”
중위가 뭔가 작은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확인은 했어?”
“그게 아니라···.”
“웃기지 마. 폭발이 있었어! 조사해봐. 간첩인지 어떻게 알아?”
중위가 죄송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죄송한데. 짐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짐 검사요?”
중위는 길게 한숨을 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끼··· 아빠가 장군 진급을 앞둔 대령인데. 그것을 믿어서 그런지 개 또라이입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중위를 바라보았다.
그것참 반갑네. 동지를 만난 느낌이랄까?
“괜찮아요. 우리도 또라이에요.”
중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뭐라고요?”
“우리도 동네에서 미친 또라이로 소문이 자자 했어요. 원래 또라이끼리 잘 맞을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태경이가 옆에서 그 말을 듣더니 화난 얼굴이 되었다.
“저 군바리 새끼가 우리 짐 센탄 깐 데? 지가 뭔데?”
“대공 용의자로 확인하신단다.”
태경이는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나 보고 무장공비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거야?”
나는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말했다.
“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대위의 마음이 이해 가는데?”
태경이가 대위에게 들리게 큰 소리로 말했다.
“지랄. 저 대위 새끼도 존나 못생겼구먼.”
대위는 그 소리를 듣고 인상을 쓰며 명령했다.
“이 중위! 용의자가 협조를 안하나?”
“그것이···.”
“당장 제압하고! 짐을 확인해!”
우리가 제대한 지 3년이 넘었다. 겨우 대위 쪼가리에 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대위 앞으로 걸어가서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넌 뭔데 우리를 제압하라 말라야? 대위 달면 다 네 부하로 보여? 4년 전이면, 내가 병장 달고 있을 때. 넌 아직 쏘가리였어. 새끼야.”
총 들고 있는 부하들이 있으면, 보통 사람들은 장교를 어려워했는데 이렇게 강하게 나오자 대위는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부하들의 보는 눈이 있으니 대위도 약하게 나갈 수 없었다.
“둘 다 체포해! 대공 용의자다!”
병사들이 멈칫멈칫했으나 대위가 발광하자 어쩔 수 없이 다가와 케이블 타이 줄로 손을 묶었다.
“죄송합니다. 명령이라서.”
우리는 웃으면서 순순히 묶였다.
“와 민간인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는데, 구속까지 하네. ‘대위’라는 계급이 깡패네 깡패야.”
대위는 상대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달리고 있었다. 잘못되더라도 아버지가 어떻게 커버해 줄 거로 생각했다.
“어서 짐을 조사해봐!”
병사들이 마지못해 나와 태경이의 짐을 조사했으나 나올 것이 없었다.
나는 대위의 눈을 보며 대 놓고 비웃었다.
“와~아빠가 대령이면, 이렇게 싸가지 없어도 되나?”
태경이도 한마디 거들며 주변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후배들아. 제대할 때까지 참아. 제대하면 이 새끼 좆도 아니야. 뒤통수칠 사진이나 증거 같은 거 모아서 후려갈겨도 되고.”
대위는 나를 보며 중위에게 다시 물었다.
“이 새끼들 뭐 하는 사람이라고?”
“서울대 대학원 사학과 학생입니다. 교수님이랑 통화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까는 유투버라며?”
“네 골든보이라고 유명한 유투버도 맞습니다.”
대위도 나 들으라고 소리쳤다.
“뭐 개나 소나 유투버야? 별풍선이나 받아 처먹는 게 뭐가 대단하다고.”
이때 멀리서 자동차 표지판에 별이 달린 군용차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대위는 갑자기 별이 달린 차가 오자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뭐야? 뭐야? 사단장님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모르겠습니다.”
군용차에서 장군이 내리고 주변을 살폈다.
대위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 어? 어? 왜 골든보이님이 왜 묶여 있어?”
순간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장군이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병사의 시선이 대위를 향했다.
대위가 다급하게 달려와 변명하듯 말했다.
“이번 폭발이 보고되었고, 여기 있는 두 사람은 대공 용의자입니다.”
장군은 정말 화가 난 얼굴로 대위의 조인트를 깠다.
“이 개새끼야! 지금 150만 유투버와 싸워서 어쩌자는 말이야? 너 뒷감당할 수 있어?”
대위는 150만이라는 말에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은 똑바로 서서 대위를 노려보았다.
“요즘 부대에서 깝치고 다닌다고 해도, 네 아버지 보고 참았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영창 갈 준비해.”
“저는 죄가 없습니다. 장군님.”
“민간인을 케이블 타이로 묶어 놓고 죄가 없어?”
대위는 부대원들과 말을 맞춰 보고서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용의자가 반항해서 어쩔 수 없이 보호장비를 사용했습니다.”
장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 네 아버지가 별 다는 거지. 네가 장군이냐?”
“아···아닙니다.”
장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묶은 저 사람은 어떤 집안인지 아냐?”
“···.”
“저 사람의 할아버지가 인화그룹 회장이야. 그리고 저 사람은 인화 자원개발 대표이사고.”
“대···대학원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대학원생은 대표 이사하면 안 되나? 이 멍청한 새끼야···. 그리고 너 군대놀이할 때 골든보이님은 강화도에서 북한 잠수정 승조원을 사살하는 작전도 뛰었어.”
대위는 이제서야 한 대학생이 국방부 TV에서 인터뷰했던 것이 언뜻 기억났다.
“아. 그때 국방부 TV로 인터뷰했던···.”
“지금 간첩 잡은 사람을, 대공 용의자로 묶어 놓았는데···. 어떻게 뒷감당할래?”
“그것이···.”
“아. 속초 연쇄 살인범도 잡아서, 대통령께 직접 대한민국 의인상도 받았다.”
그러자 대위는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상대가 인화 그룹 대표이사, ‘150만 유투버’, ‘간첩을 사살한 전공의 민간인’. ‘연쇄 살인마를 잡은 대한민국 의인’이었다.
장군은 대위의 뇌가 굳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이 일을 수습해야 했다.
장군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고~ 골든보이님. 아니 김 대표님이라고 불러 드려야 할까요?”
상대는 별 하나 ‘준장’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별은 ‘하늘’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도 급이 달라졌기 때문에 짜증 나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군인이 민간인을 구속해도 됩니까? 이 끈부터 풀어 주세요.”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대위 새끼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장군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이 새끼 아버지랑 인연을 끊는다는 생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공명정대한 처결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윤 교수님께서 이곳에 계신 골든보이님을 도와 드리라고 해서 왔는데. 이런 불상사가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때 경복이가 핸드폰을 흔들면서 나타났다.
“골든보이~ 문화재 발굴 도중 체포되다. 이번 제목으로 어때? 동영상은 미장센 있게 잘 나왔다.”
나는 손이 풀리자마자 내 짐을 확인했다. 수류석이 없었다. 대위가 짐을 뒤질 때 사라진 것을 확실히 보았다.
나는 대위에게 걸어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대위. 수석 내놔. 안 내놓으면 죽여 버린다.”
“뭔 소리야? 내가 뭘 가지고 갔다고?”
몰라? 그러면 알게 해주지.
나는 수류석 1번에 생수를 부었다. 그러자 대위의 바지에서 생수가 쏟아지며 오줌 싼 것처럼 질질 물이 흘러나왔다.
“으악!!!”
대위는 순간 놀라서 바지 주머니에서 예쁜 돌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2번 돌이었다.
나는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요즘 육군 대위는 똥오줌도 못 가리나?”
경복이가 동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대위가 훔치는 것이 딱 찍혀 있네요.”
장군도 같이 ‘으르렁’거렸다.
“군인이 민간인 물건도 훔쳤어? 넌 진짜 각오해!!!”
대위는 얼굴의 색이 다양하게 바뀌다가, 겨우 변명을 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을 주웠을 뿐입니다. 수석인지 몰랐습니다.”
나는 장군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 헌병대를 불러 주세요. 절도죄로 고발하겠습니다. 이 돌은 그냥 돌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입니다. 억 단위를 호가하는 돌입니다.”
“억 단위요?”
“웃으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헌병대를 부르지 않는다면 제가 아는 장군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때 멀리서 버스 한 대가 급하게 달려왔다.
서울대 마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윤 교수님의 발굴 차량이었다. 버스가 멈추자 역시나 윤 교수님이 내렸다.
윤 교수님은 장군을 보더니 가볍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유 장군.”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윤 교수님.”
“지난번에 이 중장님 하고 술 마시다가 자네 이야기가 나왔어. 열심히 한다고 하더군.”
이선호 중장이라면 차기 육군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으로 물망에 오르는 실제 중 실세였다.
유 장군은 머리를 깊게 숙이며 마치 절을 할 것처럼 말했다.
“제 이름을 언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자리 한번 마련하지.”
“불···불러만 주시면 반드시 가겠습니다.”
이때 교수님이 나를 발견하더니 급하게 달려왔다. 그러다가 옷이 더러워진 것이 확인하고 물었다.
“김 대표. 복장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러자 유 장군이 놀라며 부하들에게 악을 썼다.
“저 개새끼 어서 묶어!! 내가 직접 헌병대로 끌고 갈 거니까!”
나는 그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산사태가 있었습니다. 위험했지요.”
“산사태??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다행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윤 교수는 나의 몸을 살폈다.
“정말 다행이군. 골든보이가 다치면 안 돼.”
“하늘이 도왔습니다.”
윤 교수는 잠깐 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 음각 대불상은 어디 있는지 물어도 되겠나?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네.”
나는 손가락을 들어 800m 떨어진 절벽을 가리켰다.
“저기입니다.”
그곳에 음각된 거대한 불상이 보였다.
윤 교수는 그것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 수가. 생각보다··· 더 거대하군. 엄청나.”
“가까이서 보면 더 큽니다.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윤 교수는 당장 절벽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발을 움직였다.
그것을 보고 윤 교수를 다급하게 말렸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지뢰가 유실되어서 도로를 새롭게 개척해야 합니다.”
“그래? 참으로 곤란하군.”
그 말을 들은 윤 교수는 유 장군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가 책임지고 이번 달 안에 이 중장님과 저녁 식사를 마련하지.”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그러니 당장 저 절벽까지 길을 내주게.”
유 장군은 눈을 부릅떴다.
“알겠습니다. 당장 진행하겠습니다.”
어차피 순찰로를 다시 뚫어야 했다.
그래서 하는 김에 유 장군은 윤 교수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받고 싶었다.
부대에 있는 지뢰 개척 차량을 불렀다. 도로에서 절벽 쪽으로 300m 지뢰 개척 폭발물을 쏜 후 연속으로 터트렸다.
쾅! 쾅! 쾅! 쾅! 쾅! 쾅!
오 대단한걸? 최소 그 라인에는 지뢰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공병 전차로 불리는 K600 장애물개척전차가 나타났다.
불도저보다 강력한 힘으로 쓰러진 나무를 옆으로 밀어내고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박혀 있던 나무마저 뽑아내며 길을 만들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중간에 발목지뢰가 터지는 사건이 있었지만, 공병 전차 앞에서 발목지뢰는 모기가 무는 정도였다.
공병 전차는 절벽 아래 거대한 공터를 만들었다. 텐트가 50개가 들어가는 베이스캠프를 만들고도 남을 공간이었다.
그리고 공병대가 모두 투입되어 혹시 지뢰가 더 있는지 확인했다. 유 장군은 윤 교수나 내가 지뢰에 다치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주변까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제야 윤 교수는 절벽의 불상을 올려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엄청나군.”
“부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중생이 된 느낌입니다.”
교수님은 고배율 망원경으로 음각 불상을 살피고 있었다.
흙이 붙어 있다가 떨어져서, 그런지 음각이 매우 선명했다.
철원 궁성터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궁예가 철원을 도성으로 삼았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궁예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호족들이 진행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왕가에서 진행한 것 치고 어떤 부분은 예술적으로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첫날의 탐사 토의가 끝나고 교수님이 다가왔다.
"자네가 학교에 안 나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얼굴을 비추지 않으리라 생각 못 했네.”
“워낙 회사 일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교수님은 낮게 웃었다.
“아니야. 농담이야. 이렇게 연구 거리를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네. 그래도 대학원 학생들과 어울리게. 그래야지 나중에 말이 안 나와.”
일단 근처 정육점을 통째로 털어서 선배님과 고생한 공병들에게 고기 파티를 선물했다. 그리고 발렌타인 양주를 20병 상자를 공수 해와서 다 풀어 버렸다.
위험한 곳이니 술을 안전한 곳에서 먹도록.
선배님들도 내가 재벌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고기를 먹었다.
그들은 내가 한국의 어떤 교수님보다 국보급 보물을 많이 발견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골든보이 채널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장면을 교육용 자료로 쓸 정도였다.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 이미 서울대 차기 사학과 교수로 확정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사학과 교수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지.
하지만 나는 일부러 더 머리를 숙이고 ‘선배님 선배님’ 하며 음료수를 나눠주고 고기를 구웠다. 부족한 교우 생활과 학교생활을, 오늘 하루에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움직였다.
술이 없으니 고기가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계속 들어가네?
밤늦게 유 장군이 왔는데, 내가 준 양주를 도로 가지고 왔다.
지뢰의 위험을 이야기했으나 주변에 병력을 투입하여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위험하니 음료수 같은 맥주 1-2 캔만 마셨다.
맥주는 배만 부르고 오줌 마렵다. 이곳에 화장실 따위는 없었다.
오줌을 싸기 위해서 공터의 외각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숨어 있는 병사들이 나와서 안전한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지갑에서 5만원 6장을 꺼내 병사들에게 용돈을 나눠주었다.
“고생해라. 시간 금방 간다.”
“시원하게 일 보십시오. 선배님.”
“오줌 싸다가 지뢰 터지는 거 아니지?”
“여기서 백 미터 안쪽까지 지뢰 탐지기로 확인했습니다.”
“역시 우리 후배들 덕에 든든하고만.”
나는 시원하게 오줌을 싸면서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뭐가 보인 것 같았다. 하지만 눈에 힘을 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흐릿한 줄기를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