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리처드 회장의 저택을 방문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그녀는 집으로 찾아온 나를 크게 반겼다.
“어서 와요. 에디. 늦은 시간이 무슨 일이에요?”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어요. 에밀리.”
“좋은 소식이요?”
나는 밝은 웃음을 에밀리에게 보여주었다.
“회장님과 함께 듣는 것이 좋겠어요.”
에밀리는 살짝 흥분된 얼굴로 리처드 회장에게 안내했다.
리처드 회장은 은행권 사람을 만나서 대출 연장을 부탁했고 그룹 이사들을 만나 그들의 불만을 달래는데 에너지를 모두 쓴 날이었다.
한마디로 짜증 나는 날이었다.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그냥 쉬고 싶었다.
하지만 골든보이는 반드시 만나야 했다. 재계약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보인 자신감 있는 얼굴은 뭔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어서 오게. 에드워드.”
“안녕하세요. 리처드 회장님.”
“잘 지냈는가?”
“오늘도 피곤해 보이십니다.”
리처드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일이 몰리는 시기가 있는 법이지.”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좀 편하게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품속에서 편지 하나를 리처드 회장에게 넘겨주었다.
“뭔가?”
“약속한 선물입니다. 회장님.”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편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몇 장의 서류를 확인했는데, 눈이 커지더니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리고 손을 떨었다.
“이것이 사실인가?”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허치슨 철광산 재계약을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확인해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리처드 회장은 다시 한번 문서를 확인하더니 비서를 시켜 허치슨 철광산 재계약을 확인하게 했다.
5분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그는 그사이에 떨리는 손으로 위스키를 2잔이나 마셨다.
비서가 밝은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재계약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집무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한 것인가? 어떻게 재계약을 진행했어?”
나는 위스키를 나의 잔에 가득 따랐다. 그리고 얼떨떨한 표정의 리처드와 건배했다.
“노팅턴 대령이 직접 재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했습니다.”
리처드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노팅턴이?”
“위원회 사람들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재계약을 추진했지요.”
“그 늙은이가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나는 활짝 웃으면서 이를 보였다.
“제가 먹음직한 고깃덩이를 앞에서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회장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나는 노팅턴과 체결한 계약서를 리처드에게 넘겨주었다.
“노팅턴 대령에게 B-5에 있는 광산 지분 50%를 넘겨주었습니다.”
“B-5 광산이라니?”
나는 회장실 벽면에 있는 지도에서 B-5 지점에 작은 압정을 박아 넣었다.
“이곳에 쓸만한 물건들이 있었지요.”
리처드는 놀란 얼굴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곳에 금이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B-5에 금이 없다고 이미 보고 드렸습니다. 제가 에밀리를 속였겠습니까?”
나는 잠깐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렇다면 그곳에 뭐가 있다는 말인가?”
“구리가 있습니다. 상당한 매장량이지요.”
“구리?”
“상당히 깊은 곳에 많은 매장량이 있었습니다.”
“구리가 있는지 어떻게 알았나?”
나는 위스키 잔에 얼음을 더 넣고 흔들며 잔 안에서 알코올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섭섭하십니까?”
리처드는 단호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비즈니스맨 사이에 ‘섭섭’이라는 단어 따위는 없네.”
“리처드 회장님이랑 B-5 구리광산을 50%대 50%로 나눌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노팅턴 대령이 더욱 허치슨 철광산의 재계약을 막았을 겁니다.”
리처드도 부드럽게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나도 구리광산을 움켜쥐고 내 자리를 지키려 했겠지.”
“B-5 구리광산이 아무리 괜찮다고 한들. 허치슨 철광산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리처드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보였다.
“멈춰 있던 피가 온몸 구석구석을 돌기 시작한 느낌이야. 흥분되는군. 파티라도 해야겠어.”
“파티 좋지요.”
“사흘 뒤 저녁 어떤가? 재계약이 되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어.”
“꼭 참석하고 싶군요.”
나는 손뼉을 강하게 치며 활짝 웃었다.
“어찌 되었든 모두에게 행복한 계약이었습니다.”
리처드가 계약서를 확인하다가 특약 부분을 확인하고 말했다.
“폐금광 11개를 넘기면 구리광산 지분의 5%를 넘긴다는 것이 사실인가?”
“저는 레이븐힐이 가지고 있는 폐금광을 가지고 싶습니다.”
“폐금광과 구리광산 지분을 바꾼다는 말인가? 누가 봐도 자네가 손해인데?”
“거부하실 건가요?”
리처드 회장은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폐금광의 금은 캘 만큼 캤네. 내가 직접 출근하던 곳이니 틀림없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구리광산 지분 5%와 교환하고 싶습니다.”
리처드 회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의 선물이라 생각하겠네.”
“편하실 대로.”
폐금광 11곳을 돌아봐서 가장 괜찮은 3곳에만 일단 황금 씨앗을 심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폐광에서 금이 나오면 리처드 회장이 배가 아프지 않을까?
그러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금이 있을 만한 땅을 확보하고 계십니까? 다시 한번 탐사를 하시지요. C-4 같은 금광을 또 발굴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회장은 표정이 아주 밝았다.
“그래. 그래야지. 골든보이가 당연히 금을 찾아야지.”
에밀리가 눈물을 참고 있다가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그간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밤이었다.
사흘 뒤.
리처드 회장님의 저택에서 광산업자의 파티가 있었다. 리처드가 허치슨 광산을 재계약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는 자리였다.
챔피언이 링 위에서 포효를 지르고 있었다.
게임을 포기한 노팅턴 회장도 참석했다. 리처드와 노팅턴이 이제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자주 웃음을 터트리는 노팅턴 회장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노팅턴과 나의 합자회사가 만들어졌고, B-5 구리광산에서 시험 채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 년 8000억의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결과를 받아 본 상태였다.
리처드의 표정도 오랜만에 아주 밝았다.
리처드 회장의 왕좌가 공고해지자, 그를 은근히 압박했던 위원회 사람들 몇 명과 은행권 몇 명이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자신의 영향력을 보이려고 했던 이사들도 칼을 맞고 날아갔다.
피바람이 불고 살아남은 사람만이 이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다.
리처드가 연대에 서서 레이븐힐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연설하다가 갑자기 ‘골든보이’에게 공식적인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감사에 화답했다.
놀랍게도 감사와 함께 부상으로 회장님이 타던 요트를 선물 받았다.
오늘 파티에서 요트를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나는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드레스의 에밀리가 진심으로 축하했다.
“에디 축하해요. 나중에 꼭 함께 타요.”
“요트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요. 에밀리.”
“내가 운전해 줄게요. 자동차보다 쉬워요.”
아직 골드코스트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고 농담을 하였다.
그러자 노팅턴 회장이 골드코스트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빌려주기로 했다.
그날 나는 리처드 회장님과 노팅턴 회장이 주는 위스키를 모두 받아먹고 대취해서 숙소로 끌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점심,
시체처럼 일어나 머리를 쥐어짰다. 아 숙취. 경복이와 태경이도 시체처럼 자고 있었다.
그렇게 취했는데도 또 양주를 마셨는지 잭다니엘 빈 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장님. 해장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눈 뜨기 무섭게 고 과장님이 참돔을 푹 곤 지리탕을 가지고 왔다. 나는 좀비 2마리를 깨워서 함께 지리탕을 먹었다.
호주 참돔은 세숫대야 사이즈여서 살점을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역시 양놈 땅의 참돔은 어마어마했다.
참돔 지리탕 국물에 쭉 마시니, 아~ 말라 있던 몸이 성배의 물을 마시고 새로 태어나는 느낌.
뇌가 다시 활동하면서, 드문드문 어제의 기억이 돌아왔다.
내가 술에 취해서 ‘미션창’을 불렀고 ‘성공했다!’라며 마구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제 뭐라고 떠든 거야?
하지만 ‘미션창’ & ‘성공했다.’ 단어의 조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낮게 미션창을 불렀다.
그러자 미션창이 눈앞에 떴다.
<<황금인의 재산을 확보하라.>>
<<구리광산 확보 미션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아이템을 드립니다.>>
<<강원도 철원 소이산.>>
<<11월 3일, 새벽 5시 20분>>
미션창을 확인하지 않는 동안 구리광산을 확보하라는 미션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션이 성공했으니. 개이득이었다.
하지만 아이템은 뭐고? 이 장소와 시간은 뭐지?
미션에 관한 내용을 태경이와 경복이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두 명은 그날 그 장소에 가면, 마치 품속에서 갑자기 황금 나침반이 나왔던 것처럼. 뭔가를 줄 것이라 확신했다.
태경이가 강력하게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국을 못 간 태경이는 향수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하루만 샤워 안 해도 이제 몸에서 빠다 냄새가 난다고 불평을 쏟아 냈다.
생각해 보니 이제 호주 지부를 맡길 훌륭한 분께서 계셨다.
우리는 이준석 교수님께. 아니 이 상무님께 호주 지부를 맡기고 한국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사실 지금 지부를 비워 둘 때가 아니었다.
C-4 광산의 금 생산량 감사.
B-5 구리광산 채굴 계획 확정.
황금 씨앗을 심을 폐금광 탐사.
새로운 황금 탐사 계획 수립.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았으나 우리는 과감하게 한국으로 도망쳤다.
우리도 좀 살자. 한국 사람이 한국 공기를 마시고 그래야지.
이 교수님의 호주 통장에 50만 달러의 군자금을 넣고 호주 백성들을 잘 통치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물론 대답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야반도주 하는 것처럼 한국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한국에 도착했다. 나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청계산 우리집으로 향했다.
70평 대궐 같은 우리집은 정말 멋있었다. 마치 고급 콘도에 가족들이랑 놀러 온 느낌? 복층으로 올라갔더니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이 보였다.
여동생이 버튼 하나를 누르자 천장이 블라인드로 가려졌다가 다시 누르자 열렸다. 오 죽이는데? 비 오는 날 센치가 폭발하겠다.
그렇게 우리집 투어를 하고 돌아와 엄마가 해주는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을 받았다.
한우 소고기보다, 캔 참치 기름에 볶은 신 김치가 왜 이렇게 맛있던지. 정신없이 3그릇을 먹었다.
괴산에 있을 때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샤인 머스킷과 애플 망고까지 후식으로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너무 배가 불러서 씩씩거리다가 식곤증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버지와 함께 인화 자원개발로 출근했다, 아버지가 일찍 출근하여 나도 따라 아침 6시에 출근했다.
아버지. 윗사람이 부지런하면 아랫사람이 싫어한다고요.
아버지는 회장님 방에서 공부하고 회사 업무를 파악하고 있을 때, 나는 대표이사 방에서 밀크커피를 마시며 밀린 한국 영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역시 인터넷은 한국이 ‘쩔었다’. 끊김 없는 4K의 화질.
호주의 인터넷 환경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인터넷이 연결만 되어도 황송했을 정도였다.
밀린 예능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세미 정장의 완전 미인이 내 방으로 들어와 깜짝 놀랐다.
그녀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우리 대표 이사님 방에 계신가요?”
나도 황당했다.
“제가 대표이사인데요?”
“네?”
“제가 인화 자원개발 대표이사 김성열입니다.”
“아! 사장님이세요?”
새로 뽑은 비서는 그렇게 3초간 굳어 있다가 머리를 계속해서 숙이며 사과했다.
그런 해프닝이 지나가고, 얼마 후 서진식 상무가 들어왔다.
“호주에서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회사에 별일 없었죠?”
“회장님께서 회사를 잘 운영하셨습니다.”
나는 예쁜 비서가 사 온 스벅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똑같은 스벅인데. 호주보다 한국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이 더 구수하네요. 아침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소식 하나 더 알려 드리자면 광명 황금 동굴 개장을 이번 주 일요일 날 한다고 합니다. 이번 달 말부터 정산 자금이 들어올 것입니다.”
새로운 인화 자원개발의 첫 번째 매출이었다. 아주 축하할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나도 축하할 일을 하나 풀었다.
“이번에 제가 호주에서 큰 구리광산을 확보했습니다.”
서 상무는 놀라 물었다.
“금이 아니라···. 구리광산이요?”
나는 노팅턴 회장에게 받아 낸 B-5 구리광산 개발 계획표를 서 상무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확인한 서 상무의 눈이 커졌다.
“광산이 엄청나군요.”
“구리 맞습니다. 일 년에 대략 3만 톤에서 4만 톤 사이의 구리 광석이 확보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리를 우리 회사가 소화 해야 할 겁니다.”
한국에는 금속 제련하는 회사는 많았다. 싸게만 공급한다면야 얼마든지 처분할 수 있었다.
“맡겨 주시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엘도라도 호주 지사에, 이준석 상무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과 잘 이야기해서 진행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긴밀하게 협조하겠습니다.”
대표이사가 호주에서 엄청난 구리광산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사무실을 돌았다.
광명 황금 광산으로 매출이 생겨나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갔는데, 호주의 구리광산까지 터졌다고 하니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회사가 성장할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은, 직원들에게도 큰 기회인 것이었다.
나는 비싼 일식집에서 거창하게 회식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회장님인 아버지는 잠깐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내가 오늘의 주인공인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직원들이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의 자리로 찾아오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내가 잘 회사를 운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경복이와 태경이가 출근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출근했는데 만족한 얼굴이었다. 서울에 새롭게 생긴 집이 전과 비교도 안 되게 좋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화 자원개발에서 타이틀이 없었던 태경이는 수행 실장이라는 족보에도 없는 직책을 챙겼다.
엘도라도의 호주 지사장과 인화 자원개발 수행 실장 직책을 통해서 양쪽에서 월급을 받으니 신난 얼굴이었다.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내일 새벽 5시.
철원의 소이산에 있으면 뭔가를 준다는 미션을 받고 있었다.
줄 거 그냥 주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우리는 철원으로 떠날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내 차에 캠핌장비와 방한 장비를 왕창 때려 넣고 철원으로 향했다.
소이산이 어디인지 찾았더니 거의 휴전선에 가까운 곳이었다.
백마고지 전투가 있었던 곳이었으며 사진에서만 보았던 북한 노동당 당사 폐허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철원 소이산 입구에 도착했다. 소이산 생태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갔다.
철조망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는데 푯말이 붙어 있었다.
‘지뢰’
군대에 있을 때 지뢰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기에 푯말만 봐도 무서웠다.
혹시 아이템을 받으러 지뢰밭 한복판으로 오라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차를 근처에 주차하고, 소이산 전망대에 텐트를 치고 캠핑 준비를 했다.
원래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었으나 오후 4시가 되자 우리 밖에 남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니 각종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혹시라도 전방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불도 피우지 않고 라이트도 거의 켜지 않고 텐트 안에 조용히 있었다.
역시나 늦가을 철원은 완전 추웠다.
호주의 날씨와 이렇게 달라도 되나?
철원에서 복무한 한 장병님들께 다시 한번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경복이는 군 생활을 다시 느끼고 싶다며 발열팩이 있는 전투 식량을 가져왔다. 소고기 볶음밥에 볶음 김치와 양념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안에는 파운드 케이크와 초코볼도 들어 있었다.
느끼한 입맛을 따듯한 원두커피로 씻어 내렸다. 배가 부르니 잠이 살살 왔다.
내일 5시 20분.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황금알을 낳는 닭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쓸데없이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자 너무도 추웠다.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아 존나 춥다.”
태경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놈이 느끼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이 오빠의 따듯한 품을 느끼고 싶나?”
“꺼져 개새끼야.”
“부끄러워하기는. 오빠가 잘해줄게.”
“뭘 잘해 줘 씨발놈아.”
경복이도 눈을 떠서 말했다.
“저 오빠 믿지 마. 테크닉은 내가 더 좋아.”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 둘이 테크닉(?)으로 싸워 봐. 이기는 사람을 인정 해주지.”
경복이가 태경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놈 내가 한번 흔들면 질질 싸.”
태경이지 지지 않고 말했다.
“내가 홍콩 한번 보내 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태경이가 한마디 했다.
“자기야 어디가?”
나는 잠깐 시계를 보고 말했다.
“일할 시간이 다 됐다. 씨발년들아. 어서 일어나!”
띠! 띠! 띠! 띠!
새벽 5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가 울렸다.
따듯한 캔 커피를 침낭에 넣어 놓았는데 차갑게 변해 있었다. 우리는 캔 커피를 따서 종이컵에 나누어 마셨다.
“5시다. 나가 보자.”
“오케이.”
우리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뜨기 직전의 캄캄한 밤이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5시 19분.
20분이 되기 10초 전.
“10, 9, 8, 7, 8, 5, 4, 3, 2, 1 땡!”
경복이가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무슨 일 없어?”
“없는데?”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 주 로또 번호가 보인다 던가 뭐 없어?”
“없어!!”
“황금 나침반 갑자기 나왔던 것처럼, 몸에 있을 수 있어 뒤져 봐.”
나는 내 몸을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하여 텐트 안까지 뒤졌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때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 왔다.
콰가가가가가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엄청난 불덩이가 총알처럼 날아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쾅!!!
그리고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도대체 뭔데 이렇게 등장이 요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