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나는 리처드에서 사정하여 받아낸 헬기 키를 흔들었다.
“리처드 회장한테 계약금으로 헬기 받아왔다. 오늘부터 현장에서 타고 온 헬기는 이제부터 우리 거야”
경복이가 놀라며 말했다.
“뭐? 헬기를 계약금으로 받았다고? 자식! 스케일이 장난 아닌데?”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금 매장량이면 헬기 정도는 받아야지.”
태경이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벌어준 돈이 얼마냐?”
“그리고 우리가 헬기 타고 돌아다녀야 금을 더 많이 발견하고 레이븐 힐도 돈 번다.”
“말 되네. 다음에는 더 큰 거로 하나 찾아주고 전용기도 뜯어내자.”
나는 웃는 얼굴로 경복이는 손을 잡았다.
“전용기도? 이 새끼. 멋진데? 역시 야망이 살아 있어.”
나는 가슴에 있는 황금 나침반을 확인했다.
“일단은 황금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을 가자. 혹시 피곤해서 못 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경복이가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야망이 불타오른다! 당장 가자!”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다시 한번 나침반을 보았다.
“일단 방향은 북북서. 숫자가 987이야. 미터는 아니겠고. km나 mile이라면 진짜 멀다. 맥스먼 기장 데리고 올게. 나, 너, 태경이, 맥스먼까지 4명만 간다.”
경복이도 생각하더니 자신이 할 일을 말했다.
“좋아. 나는 식량, 식수, 캠핑 장비 등등 챙겨 올게.”
식량이나 캠핑장비 같은 것들은 이미 헬기에 대충 다 실려 있어서 준비가 금방 끝났다. 하지만 헬기 연료인 항공유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태경이가 리처드의 VIP 헬기에서 연료를 빼자고 한 아이디어.
“미친 새끼!”
“왜? 안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새끼야.”
그래서 나는 2번 헬기와 리처드 회장이 타고 다니는 VIP 헬기의 연료를 몰래 빼서 우리 헬기에 가득 채우고 예비 연료통까지 채웠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에밀리에게 항공 연료를 뽑았다는 문자를 하나 남겨 두었다.
에밀리가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오다가 아버지에게 걸렸다.
뭐 어쩔 수 없지.
우리 헬기는 북북서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다.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줄어드는 숫자를 보아서는 아무래도 mile 단위로 보였다.
방향은 맞았고 나침반의 숫자는 천천히 줄어들었다. 어쨌든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새벽까지 계속해서 날았다.
“아무래도 눈을 잠깐 붙여야겠어.”
맥스먼은 너무도 피곤하여 1시간 동안 오토 파일럿으로 두고 눈을 감았다.
보조석에 있던 경복이는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조종대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70억짜리 자가용답게 아무 문제 없이 하늘을 잘 날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일직선으로 비행하는 것은 오토 파일럿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밤새 날아간 헬기는 퀸즈랜드 주경계를 넘어서 계속 북북서 방향으로 날았다.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뜨고 겨우 일어났다.
아직도 헬기는 일정한 속력으로 날고 있었다.
내가 창문 밖으로 바라보고 있는 태경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직도 멀었냐? 숫자 몇이야?”
“214”
“얼마나 가야 하는 거야?”
“맥스먼이 한 1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대.”
“밤새 날았는데 연료는 충분하나?”
“예비 항공유를 왕창 챙겨 왔잖아. 맥스먼도 별 이야기 없어.”
“사막 한복판이라 좀 불안하다.”
태경이가 품속에서 벽돌 전화기 하나를 꺼냈다.
“위성 전화다. 서울에다가 전화할 수도 있어. 배터리도 빵빵하고. 걱정할 필요 없다.”
“조난 영화 보면 꼭 전화기가 고장 나던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경이가 가방에서 위성 전화기 한 대를 더 꺼냈다.
“그래서 하나 더 가지고 왔지.”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장르가 조난 영화 쪽은 아니지.”
태경이가 낮게 웃으며 짐 쪽을 바라보았다.
“절대 조난 당할 수 없어. 가방 짐에 군용 전화기가 한 대 더 있거든.”
“추락하는 꿈 꿨어? 왜 이렇게 철저해?”
“어제 한 커플이 호주 사막에서 조난하는 영화를 봤거든. 제목이 ‘아웃백’이다.”
“왜 재수 없게 그런 영화를 봐? 그래도··· 둘 다 사냐?”
“남자 주인공이 죽는 것 보고 짜증 나서 그냥 잤다.”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괜히 찝찝하면서 불안해졌다.
“젠장···. 그럼 혹시 모르니까 전화기 테스트해볼까?”
우리는 통화료가 어마무시하게 비싼 위성 전화로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역시 과학은 대단했다. 사막 한가운데서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아주 깨끗하게 잘 들렸다.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동안 목적지에 금방 가까이 왔다.
헤드폰으로 맥스먼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려왔다.
“도착하기 5분 전!”
경복이가 보조석에서 황금 나침반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지금 숫자가 5야!”
나는 나침반을 힘있게 움켜쥐었다.
“아 씨발. 긴장된다.”
5, 4, 3, 2, 1
나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여기예요. 여기가 목적지입니다.”
맥스먼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랜딩.”
헬기는 뜨거운 열을 뿜어내며 황무지에 착륙했다.
맥스먼은 피곤한 얼굴로 헬기에서 내렸다.
“애리조나 대산불 이후로 가장 오랫동안 비행했다.”
“수고했어요. 맥스먼.”
“연봉이 올랐으니 밥값은 해야지. 보스. 그런데 여기 맞아? 아무것도 없는데?”
경복이도 심각한 얼굴로 와서 말했다.
“보물이 보여? 네 눈에는 금이 보일 것 아니야?”
나는 당황하고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금빛이 나는 것은 전혀 없었다.
헬기에서 내려 봤을 때 엄청난 황금 바다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금 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깨끗해. 아무것도 없어.”
“금이 없어? 정말로?”
경복이는 황금 나침반을 꺼내서 확인했더니 금색이었던 나침반은 다시 쇳덩어리로 바뀌어 있었다.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릴렉스~ 릴렉스~
나는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주변을 살폈다.
“뭐가 이렇게 급해. 우리 이제 막 내렸다. 일단 주변을 찾아보자.”
맥스먼 기장이 불을 피우고 좀 쉬고 있는 동안
우리는 보물의 흔적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2시간 동안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손바닥만 한 전갈 한 마리를 봤을 뿐이었다.
너무 지쳐서 맥스먼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어느새 모닥불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 커피~”
커피는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지만 호주의 야생 오지에서 먹는 뜨거운 커피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태경이가 비스킷을 우적거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보았다.
“이제 어쩌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 전개다.”
경복이도 살짝 멘붕이었다.
“나는 금이 너무 많아서 헬기에 다 못 싣고 가면 어쩌지? 그런 고민을 했다.”
나는 억지로 힘을 내며 말했다.
“밤이 되면 땅속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일단 저녁때까지 쉬다가 다시 찾아보자.”
경복이가 살짝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그때 뱀에 물린 후로 야생 버라이어티는 찍고 싶지 않은데.”
“맥스먼 아저씨한테 담배 한 갑 빌려서 주변에 다 뿌려. 그럼 벌레도 안 온다.”
“진짜?”
“맥스먼 기장님이 피우는 담배는 말보르 레드야. 그것은 사람도 죽여.”
경복이는 바로 맥스먼에게 다가서 담배를 빌려 달라고 했는데 반 갑밖에 없다고 해서 옥신각신 흥정을 했다.
나는 그것을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바닥에 커피를 흘렸다.
“아! 이런. 아까운 커피를···.”
아까운 마음에 커피가 떨어진 곳을 발로 쓸었다.
그러자 뭔가 발에서 이상한 느낌이 나며 검은색 무언가 보였다.
“어? 이게 뭐야?”
나는 커피를 바닥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곳을 다급하게 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곧 인공 패널 같은 검정 플라스틱이 보였다. 다만 세월이 오래되어 색이 바래 있었다.
나는 악을 쓰며 경복이와 태경이를 불렀다.
“야! 여기 뭐 있어!”
모두 다급하게 뛰어와 내가 발견한 검은색 플라스틱을 확인했다.
“그게 뭐야?”
“땅속에서 이게 나왔다. 이것이 보물인가?”
태경이도 자세히 살피면서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플라스틱 같은데?”
“이 아래 보물이 있는 거 아냐?”
경복이는 어느새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일단 파 보자.”
모두 앉아서 근처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 여기도 있다.”
그러다가 태경이도 검은 플라스틱을 찾았는데 그것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솔라 패널 solar panel’ 태양광 충전 패널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태양광 충전 패널이 왜 있지?
우리는 각자 장갑에 삽까지 들고 주변을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했다.
주변을 3M쯤 팠을 때 금속으로 만든 네모난 기둥을 발견했다.
“여기 뭐가 있어.”
맥스먼이 네모난 기둥을 살피다가 뚜껑 손잡이를 당겼다.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나도 함께 한참을 살폈으나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것은 뭘 까요?”
맥스먼은 한참 생각하다가 옛날에 봤던 뭔가를 기억해 내고 말했다.
“쉘터 입구 같은데? 미국 영화 보면 토네이도가 올 때 땅속으로 피하는 지하실 말이야.”
“호주에도 토네이도가 있나요?”
“호주에 돌풍은 불어도, 미국에서 보는 그 엄청난 토네이도는 없지···.”
“그런데 왜 사막 한복판에 쉘터가 있죠?”
태경이가 재미로 읽었던 한 뉴스를 기억했다.
“종말론을 믿는 미국 부자 놈 중에 뉴질랜드에 생존 벙커를 만든다는 뉴스를 들어봤다.”
맥스먼도 머리를 끄덕였다.
“호주에도 생존 벙커를 만드는 놈들이 있었지. 옛날 일이지만.”
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입구를 살폈다.
“이것이 그 생존 벙커라는 말인가요?”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보여.”
맥스먼은 자세히 살피다가 입구에 쓰여 있는 글자를 확인했다.
“인가자 외에 들어가지 마세요.”
나는 입구 앞에 섰다.
“황금 나침반이 확인해준 곳인데 들어가지 말라니 그게 말이 돼?”
“일단 들어가 보자. 들어가 보면 알겠지.”
태경이가 헬기에서 망치와 정 그리고 원형 전기톱을 꺼냈다.
먼저 망치와 정으로 전기톱이 지나갈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전기톱을 밀어 넣고 회전시켰다. 그러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엄청난 불꽃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렇게 20분쯤 톱날을 돌렸을 때 사각형 기둥은 마치 통조림 뚜껑 열리듯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열렸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검은 구멍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서치 랜턴으로 아래를 확인했는데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사다리가 보였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주먹을 내밀었다.
“안 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둘은 보를 냈고 나는 주먹을 내서 한 번에 딱 걸렸다.
“남자는 주먹이지. 이 비겁한 새끼들아!”
“닥치고 선봉에 서라.”
“설마··· 막 독침 나오거나 그러지 않겠지?”
“여기가 인디아나 존스냐? 독침이 나오게?”
혹시나 몰라서 허리에 안전줄 하나를 걸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 내려왔다.”
“살아 있냐?”
나는 힘주어 말했다.
“아직 숨은 쉬고 있다. 새끼들아.”
“뭐가 있어?”
내 눈앞에는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문이 있다!”
“그럼. 어서 들어가 봐.”
“나 혼자?”
태경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안 죽어! 어서 들어가 봐.”
나는 작게 욕을 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10평 정도의 방이 나왔는데, 그 안에는 수백 종의 말라 죽은 식물들이 보였다.
사다리 위에서 경복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거기 뭐가 있어?”
“말라 죽은 식물이 있는데? 여기 주인이 화분 키웠나 봐.”
“야!! 무슨 땅속에 화분이야?”
나는 답답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
“답답하면 직접 내려와서 확인하던가!”
경복이의 강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우리도 내려간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맥스먼만 밖에 대기하고 나머지 2명은 밑으로 내려왔다.
태경이도 말라 죽은 화분들을 보며 말했다.
“땅속에 웬 화분이 이렇게 많아?”
“위에 창이 하나 있는데 햇볕에 들어오는 곳 아니었을까? 지금은 흙으로 막혀 있지만.”
“그러니까 왜 땅속에서 식물을 기르냐고?”
“벙커에서 살아남으려고 농사를 짓는 것 아닐까?”
나는 완전하게 말라비틀어진 토마토 나무를 만지며 혀를 찼다.
“이곳 주인도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네.”
“어? 연결된 문이 또 있다?”
다른 곳과 연결된 문이 보였다.
이번에는 경복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다음 칸 방도 10평 정도의 크기였다.
이곳은 먹는 물을 저장하고 빗물을 정화하는 곳으로 보였다.
원리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계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개의 수도꼭지가 있었다. 먹는 물과 생활용수로 나누어 쓸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막에서 물을 어떻게 얻는 것이지? 지하수라도 끌어 올리나?
그러나 방안을 가득 채우는 물통 2개 안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어 보였다.
다음 방과 연결된 곳이 보였다.
“다른 방이 또 있다. 가 보자.”
다음 금속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00권이 넘는 책이 보였다. 딱 봐도 도서관이었다.
중앙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책상 위에는 엄청난 먼지가 쌓인 소설 하나 놓여 있었다.
‘뉴욕 지하실에서 3년’이라는 소설로 핵공격을 받은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 분투하는 내용처럼 보였다.
쯔쯔쯔. 중2도 아니고.
다음 칸으로 넘어가자 거실이 보였다.
옛날 소니 브라운관 TV가 있고 수백 개의 영화 테이프가 보였다. 그 옆에는 카세트와 음악 테이프 수백 개가 정리되어 있었다.
TV 앞에 고급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소파가 눈에 보여서 잠깐 앉았는데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경복이가 바로 인상을 썼다.
“아우. 먼지.”
“아. 쏘리.”
다음 방은 전기를 생산하는 방 같았다. 예비 태양전지 패널 수십 개와 수백 개의 배터리 그리고 초대형 배터리도 보였다.
하지만 가동을 멈춘 지 수십 년은 된 것처럼 보였다.
“다음 방으로 넘어가자.”
옆 3칸은 모두 엄청난 양의 식량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첫 번째 칸에는 밀과 옥수수가 포대로 쌓여 있었다.
두 번째 칸에는 펜 케이크 같은 가루 형태의 식량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세 번째 칸에는 캔으로 만들어진 각종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3곳 다 식량이 거의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오래 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식량 칸이 끝난 후에는 음료 칸이 나왔다. 각종 커피와 차 그리고 술 등이 보였다.
특히 시바스 리갈과 잭다니엘 위스키를 좋아했는지 한쪽 면에 가득 차 있었다. 무려 200병 넘게 있었다.
그것을 본 경복이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보물을 발견한 것인가?”
“와. 시바스 리갈 21년산! 이제 한 50년은 되었겠는데?”
“싹 챙겨가자.”
“당연하지 한 병도 남김없이 챙겨가야지.”
“방이 또 있다.”
우리는 문을 열고 다음 칸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침실인 듯 침대가 6개나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이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해골이 되어 누워 있었다.
“주인이 여기 있네···.”
그 옆에는 큰 칠판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미사일 위치가 빽빽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인류멸망에 관련된 각종 서적이 쌓여 있었다.
“핵전쟁이 일어날까 무서워했을까?”
책 중에는 ‘거대 혜성의 충돌로 인류멸망’ ‘인류 종말 바이러스’ ‘좀비의 세상을 완벽하게 대비하라’ ‘화산폭발로 태양이 사라진다.’ 등등의 철없을 때 읽었을 법한 책이 하나 가득 쌓여 있었다.
“이런 책을 읽으니까···. 이런대서 혼자 죽지.”
침실 다음에는 공기 정화 장치가 있었고 다음 칸에는 수백 종류의 약품이 갖춰져 있었다.
침실 주변을 살피다가 일기장으로 보이는 공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감기로 시작해서 폐렴으로 발전하는 것이 눈에 그려졌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지 나을 수 있는 것을 땅속의 탁한 공기를 마시며 죽어갔다.
일기 마지막에도 소련의 핵 공격으로 공기가 오염되어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멍청한 놈.”
태경이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과대망상증 같은 것에 걸리면 답도 없다. 국정원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미친놈이 우리 과 선배였으니까. 그래서 집 밖으로 한 걸음도 안 나오다가 자살해 죽었지.”
나는 혀를 차며 공책 뒷면을 살피다가 한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놈 이름이 스프링 페니야.”
“스프링 페니? 특이한 이름이네.”
나는 눈을 부릅뜨며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미션에서 나오는 이름 썸머 페니라고! 그렇다면 성이 같잖아. 그렇다면 둘 사이가 최소 친척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아버지 아니면 자식 혹은 형제자매. 그 셋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경복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네.”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까 좀 더 확인해보자.”
“좋아. 구석구석 뒤져볼까?”
경복이가 서치 라이트로 샅샅이 방안을 살피다가 거실 벙커에서 벽장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금고가 있었다.
“금고다! 잠기지도 않았어.”
엄청나게 두꺼운 금고가 있었는데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금고 가장 위 칸에는
그 아래 칸에는 옛날 달러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달라 위에는 상장같이 생긴 증서 놓여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같이 함께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미국 재무부 무기명 채권인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흥분한 얼굴로 돈을 세기 시작했다.
구권 달러만 30만 달러였고, 무기명 채권은 10만 달러 20장, 200만 달러였다.
“이게 나침반이 가리킨 보물인가 보다.”
경복이는 엄청난 거액을 보았지만, 살짝 실망한 표정이었다.
“2백만 달러. 22억쯤 되나? 황금 씨앗과 비교하면··· 좀 약한데?”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미친 새끼. 22억 원이 애들 이름이냐? 이 정도면 보물이지.”
이때 금고의 마지막 칸에 검은 천으로 잘 감아 놓은 2개의 뭔가를 발견했다. 좀 전에는 돈에 시선을 빼앗겨서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맨 아래 칸에 뭔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꺼내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벗겨냈다.
그랬더니 그림 2점이 나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의 그림이었다.
이때 밖에서 기다리던 맥스먼이 지겨워서 안으로 들어왔다.
“뭐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
그는 서치 라이트를 비추며 들어오다가 내가 들고 있는 그림을 보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 이 그림은?”
“아는 그림이에요?”
맥스먼은 그림을 살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딱 보면 모르겠어?”
딱 보면 모르지. 우리가 그림에 대해서 뭘 안다고.
“금고에 있었으니, 비싼 그림 같아요. 하지만 그 이상은 모르겠네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아마도···. 반 고흐야.”
반 고흐?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나는 아는 척을 좀 했다.
“아···. 말년에 귀 자른 사람?”
“오 잘 아는군. 그 사람이야.”
“그것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와 경복이는 어색한 미소로 웃었다. 동양화는 화투, 서양화는 포커 패밖에 본적이 없었다.
“하하하. 우리가 예술하고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
“고흐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분명 어디선가 봤던 그림이다고 할 거다.”
“‘고흐’라는 이름은 들어봤네요.”
“눈앞에 있는 것은 고흐가 초기에 유화로 그린 풍경화로 보여.”
맥스먼은 그림을 한참 동안 살피다가 자신 있게 말했다.
“하나는 ‘바다로 나서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벤테노 장례식’이야.”
“기장님이 이 그림의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맥스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오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 그중 가장 사랑한 것이 고흐였다. 미술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기 전까지 말이야.”
“미술에 ···안 좋은 기억이었던 모양입니다.”
“벌써 다 잊었어. 신경 쓸 것 없네.”
나는 활짝 웃으면서 고흐가 그렸다는 유화를 보았다.
“어쨌든 이것이 고흐의 그림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가격이 엄청나겠지요?”
“뭐··· 진품이라면···.”
“그렇다면 누구에게 진품인지 확인받을까요?”
잠깐 생각하던 맥스먼은 한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저번에 채굴한 에베레스트를 팔아줬던 경매사 기억해?”
“네 기억 납니다. 데이먼&테론의 길버트였죠?”
“그 친구에게 확인하는 것이 좋겠어. 미술품도 전문가야.”
태경이가 바닥에 떨어진 달러를 챙기기 위해서 구석에 있는 가방을 꺼냈을 때 책장에 있던 책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스프링 페니의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이었다.
그와 그의 가족사진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금방 미션에 나온 ‘썸머 페니’가 누군지 알았다.
한 꼬마의 얼굴에 ‘썸머’라고 써 놨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아이를 찍었다.
“일단 이 꼬마의 행방부터 확인하자. 미션도 미션인데, 우리가 유산 집행 정돈은 해 줘야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