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삼킬 수 없는 것에 욕심내지 마라.’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명언이다.
옛날에 ‘썸’타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덜컥’ 당선되었다.
기쁜 것은 잠시.
나도 불편하고, 부모님도 눈치를 보고, 선생님은 아주~~ 짜증이 나는 상황에 펼쳐졌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대를 조금도 맞출 수 없었던 것이었다.
현실은 ‘리얼’이다.
쓸데없는 욕심이 ‘화’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서우 건설 회장 자리는 ‘나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냥 팔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옥장판’을 파는 것이나 ‘서우 건설’을 파는 것이나 같다.
상대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면 되었다.
욕심에 살짝 불만 댕겨주자.
항상 느끼지만, 고모의 집에서는 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돈 냄새가 아니고 음식 냄새인가?
아 갈비찜 냄새.
거래도 중요하지만 일단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고모 댁에서 먹는 간장 게장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젓가락과 숟가락은 던져버리고 어느 순간 원시인처럼 손을 써서 쪽쪽 게살을 빨아 먹고 있었다.
잠깐 정신을 차리면 밥 한 공기가 사라졌었다. 그리고 겨우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밥 한 공기와 간장 게장 한 마리 더 주세요. 이것은 비밀인데, 엄마가 해준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고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보성댁 솜씨가 좋아. 손맛이 딱 떨어져서 벌써 10년째 우리 집에 있지. 뒤처리도 깔끔하고.”
나와 경복이는 앉아서 밥을 4공기째 먹고 있었다.
고모집이 어느덧 편했다.
처음 왔을 때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옛날에는 어색한 기분에 살짝 눈치를 보며 밥을 먹었는데 이제는 거침없이 손으로 밑반찬을 집어 먹을 정도였다.
고모님과 친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 사이즈가 커졌다고 해야 하나.
최소한 눈치 보면서 밥을 먹는 시간은 지나갔다.
“보성 아주머니 밥 잘 먹었습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품속에 가지고 있었던 금원석 2개를 보성 아주머니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런 거 안주 셔도 되는데···.”
“오다 주었으니까 그냥 받으세요.”
그동안 먹은 밥값에 비하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보성댁 아주머니는 끝까지 안 받으려고 했지만 내가 억지로 손에 쥐여 주었다.
고모님에게도 마치 수석같이 생긴 금원석 하나를 주었다.
검은색 수석에 수백 개의 금조각이 박혀 있었는데 나름 미술작품 같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검은 수석을 바라보는 고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항상 놀라운 선물을 가지고 오는구나.”
“집안 어른을 찾아뵙는데 기본이죠.”
고모님이 가진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금은 사람의 욕심을 건드리는 마력이 있었다.
나는 고모님이 직접 내려준 고급 드립 커피를 마셨다.
일단 지난번 IH 호텔에서 진행한 광명 동굴 계약식 뒷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서우 건설을 비싸게 팔기 위한 낚싯대를 고모님께 던졌다.
“IH 호텔에서 주주총회를 열까 합니다.”
“주주총회? 아··· 서우 건설?”
고모님 다 알고 계시면서, 꼭 모르는 척하시더라.
나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리까지 건방지게 꼬았다.
“서우 건설 주식의 64%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주총회는 축하파티 느낌으로 하고 싶습니다.”
고모님은 1부터 100까지 상세하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악동처럼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네 큰아버지 비자금을 진탕 깨 먹었다고 들었다.”
“깨 먹기는요···. 상진이 형이 작전주로 불장난하다가 작게 회상 입은 정도지요.”
고모는 낮게 웃었다.
“최소 3도 화상이야. 영원히 흉터가 남을 상처지.”
나는 두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저는 불장난을 말린 사람입니다. 욕심을 부리다가 불 속에 뛰어든 사람은 상진이 형이고요.”
“네 큰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할까?”
“상준이 형 대신, 큰아버지가 훅 들어 올까요? 이것은 반칙인데···.”
“이쪽은 룰도 없고 체급도 없지. 붙어서 깨지는 놈이 병신 되는 거야.”
“상대가 싸움을 걸었을 때 피한 적은 없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눈깔 하나라도 뽑고 죽을 겁니다.”
고모는 기세를 올리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서우 건설의 홍표는 어때?”
“홍 회장이요? 거기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더군요.”
고모는 차를 마시며 홍표 회장을 생각했다. 끈질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늙은이였다.
“홍표 회장에게 연락 왔어?”
“네 연락이 왔습니다. 큰아버지의 공격을 막는 방패로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회사를 맡길 마음이 들지 않더군요.”
고모는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홍표에게 칼자루를 넘기면 큰아버지와 다시 붙어먹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경영할 생각이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면 그래야죠.”
“홍표 늙은이가 그래도 일은 잘하는 편인데 아쉽군.”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충성심에 의심이 가면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것은 기본이지.”
홍표는 나를 윗사람으로 인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다 되어도 홍표는 아니다.
“한 집안에 대감마님이 두 명일 수는 없습니다. 홍 회장을 내쫓아야지요.”
고모의 눈빛이 조금은 날카로워졌다.
“네 뜻을 홍표도 아나? 자기 몫이 없다는 것을 알면 축하파티를 뒤엎을 수 있다.”
“그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그 늙은이가 지저분하게 놀면 회사를 삼키기가 쉽지 않을 거야. 먹기도 전에 쓰레기가 될 수 있어.”
나는 드디어 낚싯줄에 미끼를 달아 살짝 던졌다.
“나 대신 싸울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쓸만한 사람이 없어요.”
역시. 고모는 순간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욕심이 터져 나왔다. 욕심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입에서 손이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쓸만한 싸움꾼을 소개해 줄까?”
자꾸 속이 뻔히 보이는 대사를 했다.
고모님 연기력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싸움은 잘하겠지만 고모를 위해서 움직일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까다롭게 굴기는···.”
나는 고모 눈에서 욕심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미끼를 써도 물고기가 배부르면 쓸모없는데 지금은 돌을 달아도 삼킬 눈빛이었다.
“서우 건설을 영월 광산처럼 팔아버릴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시가 많으면 삼키기 귀찮거든요. 가시를 뽑을 시간도 없고요.”
고모는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커피잔을 소리 내며 내려놓았다.
“지금 서우 건설을 매각한다는 말이야?”
나는 미끼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고모님이 가시를 뽑고 삼켜 보실래요?”
고모는 욕심은 났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군고구마를 까서 나에게 넘겼다. 보성댁이 가져온 파김치와 식혜도 내놓았다.
나는 파김치가 올라간 고구마를 먹으며 고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모는 예상외로 미끼를 물지 않았다.
“관심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고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탐나. 아주 탐나. 건설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서우 건설을 삼킬 만큼의 자금이 없다.”
“아쉽네요.”
“내가 건설을 받을 다른 방법이 없을까?”
나는 유치하지만, 마음에 불을 붙이는 멘트를 날렸다.
“고모는 홍 회장하고 싸우면 이겨요?”
나의 질문에 고모가 마구 웃다가 갑자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체급 차이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
“가시가 많다고 하셨지 않나요?”
“내 주변에 회 뜨는 놈들이 많아서 서우 건설 정도는 금방 ‘세꼬시’로 만들 수 있지.”
IH 그룹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고모라면 아무리 홍 회장이 방해해도 서우 건설 정도는 단숨에 삼킬 수 있었다.
인화 그룹과 서우 건설의 싸움은 천하장사와 3살 꼬마가 씨름 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고모님의 손에 생선을 드려야겠네요.”
“생선은 가격은 어떻게 지불해야 하나?”
나는 고모가 받아드릴 수 있을 정도의 적정한 블럭딜을 제안했다.
“강남 백화점 주식 4%와 IH 석유화학 3%를 서우 건설 주식 51%와 교환하지요. 이 가격은 패밀리 디스카운트는 물론, 방금 먹은 간장 게장 에누리도 들어갔습니다.”
현재가로 계산해봐도 나쁜 가격은 아니었다.
그리고 서우 건설 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훨씬 컸다.
“괜찮은 제안이구나.”
“백화점과 석유화학 이사 자리도 주세요.”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말이냐?”
나는 낮고 길게 웃었다.
“내가 뭘 안다고 경영에 참여하겠어요.”
“영월 광산을 호주에 팔고, 작전주로 먹은 서우 건설을 나에게 넘기려고 하는 것을 보면, 호랑이 새끼를 기르는 느낌이다.”
나는 식혜를 시원하게 쭉 마시고 말했다.
“경영에 참여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냥 간지나는 명함을 챙기고 싶은 것뿐이에요. IH 백화점 이사라면 이상적인 남자친구의 직업 아닐까요?”
고모는 인상 쓰며 심각하게 있었다. 본능적으로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고모님.
“조건이··· 좋아. 그래서 너무도 의심스러워. 뭔가 미끼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먹음직스러워서 삼키지 않을 수 없어.”
나는 소리 내서 웃음을 터트렸다.
“고모 주변에 서울대 나오고 하버드 나온 놈들에게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확인시키세요. 다 확인한 후에 삼켜도 늦지 않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은 촉박하다.”
“그 정도 시간에 답을 내놓지 못하면 하버드 놈들에게 월급이 아깝다고 집에 가라고 하세요.”
“하버드 애들이 좋아하는 야식을 준비해야겠구나.”
“연락이 없으면 회사는 홍 회장에게 던져주고 배당이나 왕창 땡기렵니다.”
“시간 안에 연락해주지.”
남은 식혜를 마저 먹고 나서 뭔가 떠올라 말했다.
“백화점에 직원 하나 받아주세요.”
고모의 눈빛이 잠깐 경복이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옆에 앉아 있는 네 친구 말하는 것이냐? 감사로 보내려는 것이면 좀 곤란한데.”
“아니요. 괴산에서 매일 놀고 있는 내 동생이요.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 줄 배워야 해요.”
고모는 나의 여동생 이름을 기억해 냈다.
“동생이라면 가율이를 말하는 거냐?”
“네. 서울 오겠다고 몸이 달아 있어요.”
“좋아. 내가 안전하게 잘 데리고 있지.”
“고모님과 우리 가문의 평화를 상징하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많이 신경 써야겠구나.”
나는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잘하면 IH 호텔에서 하는 주주총회 파티의 주인공은 고모님이 될 것 같군요.”
고모는 낮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화이트 계열 옷을 입을 거야. 그 드레스 코드에 맞춘 양복을 보내줄 테니까 그것을 입고 와.”
“설마··· 하얀색 양복에 백구두인가요?”
고모는 강하게 말했다.
“그냥 입고 와! 백마 탄 왕자님으로 만들어주지.”
“예 썰!!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일주일 후 IH 호텔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다시 신임을 얻을 것이라 확신했던 홍 회장은 제일 대주주로 고모의 이름이 나오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곧 홍 회장의 경영진이 모두 해임되고 새로운 경영진을 선출하기로 했다.
그러자 홍 회장의 부하들이 무효라며 주주총회를 엎어버리려고 했지만
고모님은 대규모 질럿 러시를 준비했다.
백화점에 쏟아져 나오는 덩치 좋은 사람은 홍 회장의 부하들을 금방 밖으로 끌어냈다.
홍 회장도 곧 무서운 눈으로 나와 고모를 노려보았지만···.
노려보면 어쩔 거야?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서우 건설의 새로운 이사로 선출되었다.
아직 주식이 13% 남아 있어서 자격이 충분했다.
이사로서 경영에 참여할 마음은 없었지만 몇 가지는 확인을 받았다.
서우 건설을 넘기면서 코스모스 형제원 신축 공사는 반드시 진행하기로 계약서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국가 유공자 실버타운도 진행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 다르게 최고급 시설을 갖춘 실버타운을 기획하여 서울 부자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매 끼니를 호텔 뷔페식으로 먹을 수 있었으며 청소, 세탁도 다 해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나 상세한 건강검진까지 받을 수 있었다.
산책로, 수영장, 영화관, 헬스장, 도서관, 국궁장, 승마장, 목장도 있었다.
젊은 나도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모는 부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서 파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와. 하루 이틀 배워서 될 것이 아니었다.
고모님 존경합니다.
고모님이 여동생 가율이가 원한 명품점 코디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백화점에 일자리를 마련했다고 전화했더니 그대로 서울로 야반도주했다.
야! 이렇게 급발진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역시나 내가 살던 오피스텔로 쳐들어왔다.
“너 뭐야? 어쩌자는 거야? 싸울까?”
“서울 특별 시민이 되기 위해서 어려운 결단을 했으니까 오라비가 도와줘.”
“아무말도 없이 도망치면 어떻게 해! 수행과에서 난리 났잖아.”
가율이는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몰라! 나는 지금부터 무조건 서울에서 살 거야.”
생각해 보니 어차피 가족 모두를 서울로 데리고 오려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첫 번째 스타트를 끊어야 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네가 선구자였구나.
잘했다. 오랜만에 칭찬해~
그래도 같이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동생을 비어 있는 직원 오피스텔에 넣었다.
부모님의 전화가 빗발쳤다.
엄마가 아무리 설득해도 동생은 시골로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 아주 바람직한 자세야. 버텨.
역시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딸이 내려오지 않으니 엄마가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 서울 올라와서 가율이가 일하는 것이나 구경해요. 자기 밥벌이하는 것이 제법 신기합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여동생이 일하고 있는 IH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서 줄을 섰다.
멀리서 열심히 일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뿌듯해했다.
이때 명품관 팀장이 나를 보더니 놀라서 다가왔다.
백화점 대주주이자 신임이사 김성열.
부회장님의 조카인 로열패밀리였다.
명품관 팀장은 다급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김성열 이사님 아닙니까?”
응?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아··· 맞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셨지요?”
팀장은 부장급 이상의 모든 간부의 얼굴을 외우고 있었다.
‘김성열 이사’는 어젯밤에 외운 중요한 새로운 간부진.
“당연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어머니께 선물하시려고 오신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와 엄마가 줄을 무시하고 명품관 안으로 들어오자 여동생이 놀라며 다가왔다.
“엄마?”
엄마는 가율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
“일한다고 해서 한번 구경하러 왔어.”
팀장도 놀라며 여동생과 나를 바라보았다.
“김 코디가 이사님 여동생입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렇습니다. 뭐 신경 쓰지 마세요. 다른 직원과 똑같이 대해 주시면 됩니다.”
“아···. 그러시군요.”
오늘 아침 여동생에게 뭐라고 한마디 한, 팀장의 뒤통수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백화점 주식을 가지고 있는 로열패밀리 이사의 여동생에게 뭐라 했으니 지뢰를 발로 밟은 얼굴이 되었다.
“김 코디는 제가 잘 살필 테니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영민해서 매우 빠르게 일을 배우고 있는 인재입니다.”
“아.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리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사님. 제가 따로 관리하겠습니다.”
여동생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오빠가 여기 이사님야?”
“그래.”
가율이는 진짜 놀란 표정이 되었다.
“진짜?”
“오빠가 이사나 되니까? 네 면상으로 명품관에 들어올 수 있는 거야.”
여동생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그래도 팀장이 옆에 서 있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이사님. 죽고 싶으세요? 가정의 평화가 자꾸 선을 넘네요.”
“어허. 감히 사원이 이사님께 협박이냐?”
동생이 눈을 부릅뜨고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이사님. 우리 집에서 봐요.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엄마 뒤에 숨었다.
“엄마. 쟤 눈빛 봤어? 눈에서 독침이 튀어나오려고 해.”
“네가 동생에게 잘해줘. 네가 오빠잖아.”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더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사모님 빽하나 보고 들어갑시다.”
“여기서?”
“제일 비싼 것으로 사. 가율이 이름 앞으로 물건 하나 팔아줘야지.”
엄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비싸. 미쳤어?”
“엄마. 내가 백화점 이사라는 이야기 못 들었어?”
그러자 동생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엄마 거 골라 줄게.”
나는 이사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동생에게 허리를 펴고 말했다.
“우리 동생 군의 가방도 하나 사줄까?”
가율이는 눈웃음까지 쳤다.
“진짜? 진짜로?”
“싫으면 말고.”
가율이는 징그럽게 나를 꼭 안았다가 떨어졌다.
“역시 오라비님~ 이사님 되더니 더 멋있어졌어.”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골라.”
우리 동생이 미친 척하고 외르메스 천만원 짜리 핸드백 2개를 골랐다.
와. 완전 간 큰 년.
빽이 천만원.
엄마에게 쓰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저놈에게 엄마랑 같은 것을 사주는 것은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팀장에게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우리 사모님 것은 좀 더 비싼 것으로 가지고 오세요.”
엄마가 동생이랑 같은 레벨이면 안 되지.
“예 이사님.”
나는 엄마에게 더 비싼 핸드백을 넘기고 백화점을 나왔다.
그러자 엄마가 너무 비싼 것으로 샀다고 울상이었지만 나는 못들을 척했다.
사모님. 이 정도는 이제 사드릴 수 있다고요.
드디어 ‘가족과 함께 서울 살기 프로젝트’를 슬슬 시작했다.
“아! 사모님. 가율이 숙소 본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어떻게 사는지 보고 내려가자.”
그래서 나는 엄마를 모시고 전에 사 놓은 청계산 아파트로 갔다.
안은 리모델링이 완전하게 끝났고, 모든 가전제품도 다 들어갔으며. 입주청소까지 끝난 상태였다.
어머니는 아파트에 들어가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TV 연속극에서 나오는 완벽한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큰집이 네 동생이 사는 곳이라고?”
나도 많이 어색했지만, 여유 있는 척했다.
“여기는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우리 집이에요.”
엄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게 우리 집이라고?”
나는 부동산 등기등본을 어머니께 드렸다.
“아버지 이름으로 샀어요. 그러니 우리 집에요.”
이때 서 상무가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께 인사드렸다.
“사장님을 모시고 있는 인화 자원개발 서 상무입니다. 이곳에 회장님을 모시기 위해서 저희가 특별하게 신경 썼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멋있는 집은 처음 봤어요.”
“사모님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여기서 3일만 있다가요. 여기에 부족한 살림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가율이가 여기서 살려면 엄마가 챙겨줘야 할 것이 수백 개야. 당장 이불도 없어.”
“이것이 우리 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버지만 모시고 오면 한집에서 다 함께 살 수 있어요.”
엄마는 몸과 영혼은 이미 서울로 넘어왔다. 아버지만 오면 되었다.
“네 아버지가 여기 오실까?”
“아들, 딸도 여기 와 있고 엄마도 여기 있는데 아버지만 시골에 있으면 안 되죠.”
엄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의 마음속 상처를 알기 때문이었다.
“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제가 호주 가면 회사는 누가 지켜요. 그리고 인화 자원개발 주식은 다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요. 본인 회사는 본인이 지켜야지요. 언제까지 남에게 맡깁니까?”
“아버지가 회사 일을 하실지 모르겠다.”
“서 상무랑 이야기하고 사인만 하시면 돼요.”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하여 아버지 어머니 건강검진을 예약했다고 하고 수행과에 이야기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수행과는 아버지를 반쯤 납치 하듯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다.
아버지도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아파트를 보고 살짝 놀랐다.
나는 등기부 등본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는 아파트예요.”
“이것을 내 이름으로 샀다고?”
“인화 자원개발은 아버지 것입니다. 회사 안에는 아버지 방도 있으니까 꼭 가요.”
아버지는 완고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싫다.”
“아버지 때문에 수행과 사람들이 괴산에서 소똥 치우는 것이 미안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두고 가.”
“나 곧 호주 들어가 봐야 해요. 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회사가 흔들리지 않아요.”
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내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래.”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에헴~ 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돼요.”
이때 엄마와 여동생이 마트 신선식품관을 다 털어 온 것 같이 장을 봐왔다.
그리고 여동생은 아버지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빠! 샤인 머스킷 먹어 봤어? 완전 천국의 맛이야! 서울에 진짜 신기한 것이 많아.”
여동생의 호들갑에 아버지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버지는 딸을 이길 수 없었다.
“아빠도 오빠한테 카드 받아서 백화점 와서 명품 사. 내 매출 오르게.”
“야! 남의 카드로 왜 네가 인심 쓰냐?”
여동생이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내밀었다.
“김 사장!! 당장 우리 회장님께 카드를 상납하지 못할까!!”
우리 집은 오랜만에 모두 모였고 시끄러웠으며 웃음꽃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