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서우 건설에서 긴급 조사단을 보냈다.
그들은 이번 발굴에 대해 항의를 했으나,
문화재가 나오면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법률에 명시되어 있으니 어쩌겠나.
뭐 어쩌라고?
공무원들은 서우 건설의 말을 듣는 척도 안 했다.
그래서 코스모스 형제원은 평화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라면 미션 성공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자신 있게 미션창을 불렀다.
“미션창!!”
하지만 미션에 성공했다는 표시가 없었다.
응? 내 눈이 잘못되었나?
“어? 뭐야? 왜 성공 못 했지?”
미친놈처럼 혼잣말하는 나를 보며 경복이가 인상을 썼다.
“왜 그래?”
“미션이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이 정도까지 했는데, 미션 성공이 안 됐어···”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경복이를 바라보았다.
“형제원이 당장 박살 날 것을 3년쯤 막았으면 성공한 것 아닌가?”
경복이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우 건설 놈들이 마음먹고 덤비면, 막힌 공사를 최대한 빨리 풀 수 있으니까 그러는 것 아닐까?”
“그게 가능하다고?”
“물량전으로 한 20개 대학 발굴팀에 ‘오다’ 줘서 미친 듯이 발굴하면 3개월 안에 끝낼 수도 있다.”
서우 건설이 돈을 쏟아부으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수백억이 들어가는 공사인데 쉽게 물러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공사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미국의 발굴팀까지 초청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망감을 겨우 목구멍으로 넘기고 다시 냉정하게 미션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짜증이 밀려왔다.
밀린 방학 숙제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방학 일기를 하나도 안 쓴 느낌.
아 씨발~ 다 돈으로 해결해 버려?
나는 강한 눈빛으로 경복이를 바라보았다.
“폐금광에 씨앗 하나 심고, 금을 왕창 캐서 고아원이나 하나 지을까?”
경복이는 나의 말을 듣고 웃었다.
“황금 나침반이 씨앗만큼 좋은 것이라면 손해는 아니지.”
“그래!! 까짓거 형제원 하나 새로 짓자. 우리가 왜 이런 것으로 고민하냐?”
경복이는 허풍처럼 들리지만, 허풍이 아닌 나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너 요즘 멘트가 좀 웅장하다. 존나 멋 있으려고 해.”
“형제원 새로 만들기? 까짓거 호주 한번 다녀오면 끝이야.”
“그래 그거지! 이번에 완전히 끝내자.”
강하게 말했지만, 갑자기 여러 가지 걱정이 몰려왔다.
“그런데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배고파서 눈물 나면 어쩌지? 혹시 당장 아파서 눈물 나면 어떡해?”
경복이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심플하게 가자. 다들 핸드폰 있으니까 치킨, 피자, 햄버거 쿠폰 10개씩 날려 줘. 최소 배고프지는 않겠지. 그리고 날 잡아서 종합병원 건강검진 진행하자. 일단 아픈 사람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경복이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 겁나 똑똑해 졌는데?”
“이 형은 지능케야. 몰랐어?”
다음 날 모든 원생에게 각종 모바일 쿠폰 30장이 쏟아졌다.
원생들은 모두 로또를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사주고 싶은 친구들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원수 갚으라(?)는 멘트까지 넣어 주었다.
3일 후 광명 종합병원으로 가서 모든 원생의 건강검진이 시행되었다. 생각해 보면 아파서 눈물이 날 가능성이 가장 컸다.
하는 김에 인화 자원개발 모든 직원의 건강검진도 함께 진행되었다.
피를 빼는 것이 싫어서 나는 빠지려고 했는데 서 상무에게 걸려서 어쩔 수 없이 건강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사는 싫다고욧!
건강검진 항목을 가장 비싼 것으로 했더니 병원장이 와서 가볍게 인사하고 갈 정도였다.
결과는 3일 만에 나왔다.
다행히 직원들은 큰 병이 없었으나 원생 중에는 큰 병을 가진 몇 명이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12살 꼬마의 폐섬유증 초기 증상이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폐가 돌처럼 굳어 죽는 병이었다.
부모님 중 아버지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보아 유전병으로 보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의사에게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누가 봤으면 아버지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나는 응급차에 타고 가며, 12살짜리 꼬마를 보았다.
“이름이 뭐야?”
“김영중이요.”
“아프면 이야기를 해야지.”
“···원장 수녀님이 돈 없잖아요.”
“···.”
급식이가 뭘 안다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돈이 없으면 빨리 철이 드는 것이었다.
“골든보이 채널 구독자야?”
“구독자예요. 콘텐츠 다 봤어요.”
“원장 수녀님은 돈이 없다 치고. 그럼 나는 돈이 있을 것 같아. 없을 것 같아.”
“···많아요.”
“그럼 내가 수술시켜줄 테니까. 수술받자. 대신 약속하나 하자.”
“어떤 약속이요?”
“울지 않기로.”
“남자는 울지 않아요. 누나가 그래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 남자는 울지 않는 거야.”
광명 종합병원에 형제원 원생 3명을 같은 방에 입원시켰다.
폐섬유증, 심각한 알레르기성 피부염, 실명할 수 있는 망막 변이증 등의 질병이었다.
이대로 키우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병이었으나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잘만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이 누구 미션을 망치려고 병을 키워!
못된 놈들!! 다 치료해주지!!
수술 날짜도 잡고 미리 병원비도 내놓고 얼추 마무리되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짜장면집에서 보았던 여고생이 다가와 머리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음료수 하나를 내밀었다.
“우리 애들을 치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음료수를 받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물을 흘리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울지 마! 울면 안 돼!”
“네?”
“제발. 울지 말라고.”
“아 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눈물 흘리는 것은 완전 금지야.”
나는 당황하고 있는 여고생에게 소리쳤다는 것을 깨닫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야?”
“지은이요. 이지은.”
“나이는?”
“19살이요.”
“그럼 고3인가?”
“네.”
“대학은?”
지은이는 창피한 듯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조금 생각해 보니 지은이 형편에 대학교 간다는 것이 무리이기는 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을 텐데···
아 병신 같은 질문이었다. 내가 선을 넘었네.
괜히 물어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맞아?”
“독립 자금이 나와요. 그것으로 집을 구해서 살 수 있어요.”
독립 자금이라고 해 봤자 300만원이나 될까? 월세방 구하기도 힘든 돈일 것이다.
나는 품속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독립해야 할 때가 오면, 이곳으로 전화해서 일하겠다고 해.”
지은이는 명함을 보더니 놀란 눈빛이 되었다.
“인화 자원개발이요? 여기 대기업인데···.”
“대기업이니까 너 자리 하나 정도는 있을 거야.”
“진짜 전화해도 돼요?”
“때가 되면 나에게 전화하거나 톡 해. 내가 상무님께 말해서 해결해 둘 테니까. 그리고 아직 회사 오피스텔 많이 남았으니까. 숙소 문제도 해결될 거야.”
“오피스텔까지요?”
“어? 울려고 하는 거 아니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고생은 머리를 돌렸다.
“아··· 아니에요.”
“어쨌든 우는 것은 금지야.”
지은이를 통해서 형제원의 소소한 억울한 일, 슬픈 일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원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나에게 직통으로 연락해. 뭔가 눈물이 터질 정도로 힘든 일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하란 말이야. 나 골든보이야. 돈 많은 사람인 것 알지? 너 핸드폰 줘 봐. 개인번호 찍어 줄게.”
“···핸드폰이 없어요.”
“뭐? 핸드폰이 없다고?”
“핸드폰이 있었는데. 고장이 나서 못 고쳤어요.”
친구에게 받은 핸드폰을 2년쯤 썼는데, 말썽꾸러기들의 장난 때문에 고장 났다.
그래서 서비스 센터로 갔더니 핸드폰 수리비를 30만 원쯤 달라고 해서 그녀는 더 이상 말도 못 하고 나왔다.
나에게는 개인 핸드폰과 대표이사 핸드폰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 핸드폰만 쓰지 대표이사 핸드폰은 거의 쓰지도 않았다.
대표이사 핸드폰은 사과폰이었는데 영화나 음악 등을 넣으려면 앱을 통해야 하고 동영상 찍은 것도 사과 클라우드에 넘어가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나는 비밀이 많은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품속에서 최신형 사과폰을 꺼내서 지은이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거 쓰고 있어. 쓴 적이 별로 없어서 거의 공폰에 가까울 거야. 비번은 0000.”
“이것을 정말··· 제가 써도 되나요?”
“어. 너 가져.”
“가지라고요?”
사과폰은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대우받는 폰이었다. 그것도 최신형 사과폰이었다.
나는 그들의 ‘갬성’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앞에 있는 지은이가 좋아하면 되었다.
“내 전화번호가 있을 거야. 혹시 형제원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해. 애들이 울 것 같은 일이 터지면 연락해야 한다. 알았지? 꼭 전화해야 해.”
전화기를 받아든 여고생 지은이는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네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할게요.”
“누구의 눈에서도 눈물이 나면 안 돼.”
“네··· 사장님.”
나는 품속에서 5만원짜리 20장을 꺼내서 손에 쥐여 주었다.
“속상한 애들 있으면, 먹을 것이라도 사주고 잘 다독여 줘.”
“돈이 너무 많아요.”
“너만 먹으라고 주는 돈 아니야. 원생 100명한테 치킨 한번 쏘면 끝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번 더 확인했다.
“어떤 아이가 있으면 안 된다고?”
“눈물을 흘리고 우는 아이요.”
“좋아. 내가 너만 믿는다.”
나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도 가족들이 생각나서 전화했다.
동생이 받았는데 서울로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과업에는 조금의 진척도 없었다.
그래서 뭐라고 한마디 했더니, 100마디를 불같이 토해냈다.
아. 이걸 확 숙청해버려?
고사포를···. 고사포는 좀 오바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직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수행과 선과장과 직원 절반을 괴산 집으로 보냈다.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해서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해서 내가 일꾼을 보냈다고 했다.
선과장과 직원들은 막무가내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축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 오너가 소똥을 치우고 있으면, 당연히 신입사원들이 도와야지.
수행과 직원들도 아버지가 오너인 것을 알고 충심을 다했다.
그래. 내가 사장실에 앉아 있지만, 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흑막의 주인공은 그 양반이야.
출세하고 싶으면 똥이라도 한 번 더 치워라.
내가 괴산으로 내려간 모든 수행과 직원들에게 보너스 100만원을 보냈다.
그리고 소똥을 치우기 싫으면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오라’ 이야기했더니
선 과장과 직원들이 매일 아버지 술 상대를 하며 서울 예찬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공략은 쉽지 않았고 선과장의 위와 간은 술 때문에 점점 힘들어했다.
회사 생활에 쉬운 것이 어디 있을까?
원래 남의 돈 먹기가 어려운 법이다.
나는 사장실에서 보안과장 고덕무에게 보안 프로토콜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받으며 결재 문서에 사인하고 있었다.
이때 서 상무가 들어와 머리를 숙였다.
“사장님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는 결재가 끝났기에 사장실에 있는 부드러운 가죽 소파에 앉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사장실 가구는 마호가니로 채워 놓았다.
딱 봐도 비싸 보였는데 싼값에 중고로 구매했다고 했다.
그래서 사장실이 예전보다 고급스러우면서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편하게 앉으세요. 서 상무님.”
“무슨 일입니까?”
“서우 건설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서 상무는 30장으로 된 보고서를 나와 고 과장 앞으로 내밀었다.
“서우 건설이 아무래도 ‘작전주’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전주요?”
“옛날 96년에 ‘일본군 금괴가 있는 보물섬’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주식을 300배 부풀려서 팔아먹은 사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인천 부평, 울릉도 해저, 부산 남구 문현동에 금괴가 있다는 말로 투자 사기를 벌이려는 일이 많았지요.”
“옛날에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4페이지를 보면 일본 하카시마루라는 화물선이 금괴를 싣고 해남 앞바다를 가다가 침몰했고 그것을 인양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일본 하카시마루는 일본군 수송함이었는데 민간에게 불허되어 화물선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배였다.
“초대형 크레인이 해남 앞바다로 이동하고 있고 잠수부들도 주변을 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카시마루 수송함을 수중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그 침몰한 배에 금이 있다는 말인가요?”
서 상무는 너무도 확신하며 말했다.
“없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나도 서 상무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서 상무는 보고서를 덮으며 정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것이 금이 있느냐고 아니라. 그 배후 세력입니다. 서우 건설은 물론이고 각 증권회사 펀드매니저까지 붙었는데 그 구심점이 김도영 부회장님의 아들인 김상진 과장입니다.”
나는 갑자기 큰아버지와 사촌 형의 이름이 나와서 놀란 표정이 되었다.
부회장이 작전주라니 급이 맞지 않았다.
“작업을 큰아버지가 진행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부회장님 모르게··· 김상진 도련님이 독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련님은 무슨···. 그리고 큰아버지가 지켜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상진 과장님이 인화 증권과 신문, 방송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있습니다. 총을 쏠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우 건설 주식 가격은 어때요?”
“문화재 조사 때문에 재개발 지연 악재로 주가가 확 내려가야 하는데 살짝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작전 세력들이 가격을 방어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전주가 달린다는 것을 안다면, 큰돈을 만질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회를 잡아야겠습니다.”
서 상무도 관심을 가지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당연한 것을 물어. 무조건 물어뜯어야지. 안 먹는 놈이 병신이다.
“서우 건설 주식을 매집하세요.”
서 상무님의 표정이 살짝 좋지 않았다.
“저도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인화 자원개발이 작전주를 가지고 본사와 붙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게다가 보기에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돈을 번다고 해도 뒷말이 나올 수 있지요. 재수 없으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웃고 난 후 말했다.
“그래서 제 개인 돈으로 진행합니다. 한 80억만 넣겠습니다.”
“80억이요?”
“제 개인 돈이니 다 날려도 상관없습니다.”
이때 경복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간단하게 작전주에 관해서 설명해줬다.
그랬더니 그가 가볍게 말했다.
“작전주라면 욕심 안 내고 2~3배에서 털고 나오면 되겠네.”
이 새끼 핵심을 아네.
“망하면 어떡하지?”
너무도 편안하게 대답했다.
“호주에 6개월 있다가 오면 되지 뭐.”
경복이의 명쾌한 대답에 긴장감이 사라졌다.
“들었죠? 제 개인 돈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진행하세요. 서 상무님.”
다 날려도 호주 가서 금 한번 캐면 된다. 과감하게 질러~
서 상무는 걱정과 흥미가 공존하는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하품하고 있는 경복이를 보며 말했다.
“요즘 뭐 하고 다니냐?”
“회사일 배우고 영어 공부하고 저녁때 격투기 학원 가면 하루가 정신없어.”
“그래? 시간 없어도, 나랑 바다나 보고 오자.”
“바다?”
“골든보이가 해남 바닷속에 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와야지.”
눈을 크게 떴던 경복이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오. 바로 정답이 나오겠네.”
“그래. 정답 확인하고, 자연산 회나 먹고 오자.”
나와 경복이는 사흘이나 해남을 돌아다녔다.
보물선이 있다는 곳도 어선을 타고 지나가 보았다.
역시나 바닷속에 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너무 깊어서 금이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 2돈짜리 금반지를 사서 바닷속에 던져 넣었는데 강하지 않지만 약하게나마 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로 돌아와 서 상무를 불렀다.
“돌아오셨습니까? 사장님.”
“해남 한 바퀴 둘러보고 왔습니다.”
서 상무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금은 있었습니까?”
“바닷속에··· 금은 없었습니다.”
“아. 역시나 사기였군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서 상무에게 물었다.
“주식은 확보했습니까?”
“45만 주 정도 샀습니다. 15억 정도 들어갔습니다.”
너무 적다. 너무 적어.
“나오는 매물이 거의 없어서 더는 무리였습니다.”
작전이 들어갔을 때 2~3배 정도는 쉽게 먹을 수 있는데 주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식을 왕창 살 방법이 없을까요?”
“대주주에게 직접 사는 방법이 있겠지만, 모두 한통속이니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상진이 형. 프린스턴 대학도 나왔는데···.
왠지 소탈하게 만만해 보이고. 벗겨(?)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갑자기 친하게 지내고 싶네?
“그렇다면···. 저도 작전주 세력에 끼는 방법밖에 없겠군요.”
서 상무가 눈을 부릅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작전주에 직접 들어가신다는 말씀입니까?”
“주식이 가장 많은 세력은 어디입니까?”
“인화그룹 김상진 과장이 차명으로 가장 많은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함께 하는 애널들도 꽤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상진 과장과 만나야겠습니다.”
서 상무님의 얼굴은 크게 어두웠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나는 어깨에 힘을 주며 서 상무를 바라보았다.
“제가 이번에 해남에 갔다가 챙긴 아이템이 있어서 그것을 쓸 생각입니다.”
서 상무는 너무도 궁금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템이요? 무슨 아이템입니까?”
“그런 것이 있습니다. 상무님은 마음 편하게 있으세요.”
상무님은 조금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김상진 과장님을 너무 쉽게 보시면 안 됩니다.”
나의 표정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상무님. 상진이 형. 공부만 잘했지. 그냥 병신이야. 내가 어떻게 발라 먹는지 잘 보세요.
김상진.
부회장 김도영의 외아들.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인화그룹 전략기획실 과장으로 입사.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 인재.
회사에서 자신의 출신을 비밀로 한다고 했지만,
은근히 자신의 신분을 밝혀서 회사 내에서 황태자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만에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차분하게 회사 일을 배울 생각은 안하고
작전주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아서 평범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우리 김상진 형이 회사 끝나고 어디에서 노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서 상무는 본사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직 연락할 곳이 많았다.
“알아보겠습니다. 대표님.”
서 상무가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려 알아보더니 김상진 과장이 오늘 강남 ‘켄지 룸살롱’에서 애널들과 술을 마시기로 약속을 잡았다고 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는, 오바고.
호구를 판대기에 앉히려면, 작업자가 직접 가야 한다.
나도 ‘켄지’라는 룸살롱에 예약하고 거침없이 들어갔다.
웨이터가 나에게 물었다.
“혼자 오셨습니까?”
나는 세팅하는 웨이터에게 5만원 20장을 주면서 말했다.
“인화그룹의 김상진 과장하고 애널들이 이곳에 왔을 거야. 방 번호 알려줘.”
그랬더니 웨이터가 귀신같이 돈을 챙기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양주는 16년 된 것이 좋습니다.”
16년 된 양주를 본 적이 없다.
아! 16번 방이라는 말인가?
“16년이라··· 좋지.”
나는 007 가방을 들고 16번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랬더니 사진에서만 봤던 김상진 과장이 정말 있었다.
나는 그를 알아보고 활짝 웃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아이고 형님! 저 인화 자원개발 김성열입니다.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아가씨를 끼고 술을 마시고 있던 김상진은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유투뷰에서 봤던 골든보이이자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의 아들 김성열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같이 주식에 불을 붙이는 기관투자자 5명 중 3명도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어? 진짜 골든보이다.”
그럼 골든보이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내가 왜 왔냐?
뿅 가는 아이템 하나 가지고 왔어요.
관심있수?
나의 손에 오래된 금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