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 그가 있던 곳 (2) >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드러나는 모습만은 모든 불행한 가정이 비슷하리라.
최소한 이자원이 태어난 가정은 그런 집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매일 싸우는 부모, 넉넉하지 못한 집안, 서로를 향해 쏟아내던 증오가 자식들에게 닥치기 전에 집을 슬쩍 빠져나와 동네를 하염없이 돌던 어린 시절.
육사에 들어간건 단지 갈 곳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잘한 선택이었다.
평생 불안에 시달리던 생활이 안정되고,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조직 안에서 인정받고,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이제서야.
관사로 돌아오자 가족들은 짐을 다 싸놓고 있었다.
이자원의 부대는 전방이다.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족들을 계속 여기에 두고 있을 수는 없으니 처가가 있는 부산으로 옮기기로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아빠는 안따라가?"
어린 아들이 올망졸망한 눈동자를 빛내면서 물었다.
이자원은 쓰게 웃으면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는 남아서 해야할 일이 있다.
몸에 이리저리 가방과 짐을 걸쳐맨 아내가 아들을 안아들었다.
아직 몸집이 작아 가뿐히 들리는 아들이다.
"앞에 아빠 오셨대."
"벌써 장인어른이?"
장인어른은 전직 군인답게 강건한 모습이었지만 기억 속의 모습보다는 늙었다. 최근 마음고생이 심했다.
장인과 사위는 짧은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내가 여기저기 전화 돌려봤는데 다들 전면전 가능성은 없다고 보더군. 잠시만 내가 데리고 있음세."
장인 인맥이면 믿을만할 것이다. 동기들이 전부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직에 깔려 있을테니.
아내는 그 말을 듣더니 이자원의 볼을 슬쩍 꼬집었다.
"들었지? 부산은 안전할거야, 아마······."
이자원도 슬며시 웃으며 아내를 안았다.
현대전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지만 부산은 후방 중의 후방이 아닌가.
전방에서 국지전이 벌어져도 그곳만은 괜찮으리라.
아내를 끌어안고 있자니 딸이 으엑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날이 다가오니 부쩍 불퉁해진 딸이다.
녀석의 눈치에 이자원은 아내를 떨어뜨려놓았다.
"아빠, 빨리 다시 만나!"
아들이 혀짧은 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다시 봐요."
딸은 고개를 돌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볼이 빨갰다. 괜히 눈 주위가 붉은 것이, 감정이 올라온 것 같았다.
자가용이 저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자원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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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공화국은 이제까지 오해로 인해 일어난 비극을 딛고 조선민족이 하나 되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화면 안의 한복 입은 아나운서가 질질 짜면서 '유감 표시'를 늘어놓는 모습에 간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쪽 뉴스에 인용된 조선중앙텔레비죤의 뉴스, 실질적으로 북한 정부의 발표였다.
"백기를 든건가."
이자원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감당 안될 듯하니 발을 뺀 것 같았다. 제 코가 석자인 미국도 연천 포격에 대해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내놓았으니.
그래도 허풍에 불과하다며 오판해 헛짓거리를 도모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자원은 사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사단에서는 경계 태세 유지하랍니다."
"알겠어."
그래도 경계는 충실히 유지해야 한다.
당분간 외출 및 휴가 금지는 계속될 듯 했다. 장병들의 원성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이자원은 곧장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진거 같긴 한데, 아직 모르니까 거기 있어. 처가 간 김에 푹 쉬다가 오고."
- 엄마 잔소리가 심해. 이래서 살림 어떻게 했느냐고.
"장모님 기준에 합격하려면 30년은 더해야할걸."
농담기 섞인 목소리를 들은 이자원의 목소리에도 웃음이 흘렀다.
정부에선 연천 사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근시일 내에 조속한 회담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뉴스가 뒤덮었다.
며칠 동안 최악으로 치달을 것만 같던 분위기는 점차 풀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자원은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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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어떻게 된거야!"
"데프콘1 발령됐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북한이 남침했습니다!"
"강원도 전역에서 대대적인 적의 공세가······."
급히 깨어 대대장실로 와보니 벌써 개판이었다.
모두가 꼬리에 불이라도 붙은듯 뛰어다녔다.
"서부전선도 휴전선 너머에서 적군의 움직임이 관측됐습니다."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나선건, 전부 기만이었나.
미군이 철수했다지만 국내 정찰 자산으로 그걸 못잡아내고 있었다고?
이자원은 냉정하게 수습을 위해 애썼다.
대대원들은 전원 기상시켜 상황에 대응시키고 연대에 연락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연대 작전과장은 거의 쉰 목소리로 연락을 받았다.
"지금 상급부대들도 전부 제정신이 아닌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명령이 내려오질 않고 있습니다."
"뭐? 도대체 왜?"
북한의 남침보다 큰 사태는 없다. 당연히 용산이고 국방부고 전부 깨서 여기에 대응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자원의 물음에 작전과장이 대답했다.
"저, 그게 추측이지만······."
"빨리 이야기해봐!"
"북한이 핵을 쓴 것 같습니다."
이자원의 눈동자가 커졌다.
북한이 핵을?
재래식 전력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된다곤 하지만, 개전과 동시에 사용했단 말인가?
이자원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명령 체계가 회복되었을 때 쯤 제대로 된 소식이 들려왔다.
- 북한이 서울과 부산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 서울은 요격, 부산은 불명.
이자원은 두꺼운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제기랄······."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전 대대원은 완전군장한채로 멀리서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자원이 소파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있을 때 대대장실 전화기가 울렸다.
이자원이 고개를 휙 쳐드는 것과 동시에 주임원사가 수화기를 들었다.
"대대장님."
주임원사가 말했다.
"부산 계엄사 최철환 중령이시랍니다."
부산에서 근무중인 동기에게 밤새 보낸 문자가 열통이 넘었다.
문제없이 하루 사이에 계엄사령부가 만들어진걸 보면 부산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샘솟았다.
"어, 나야."
"······자네 처가가 해운대랬지?"
"그래."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침묵했다.
그러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중령."
"······."
"미안해."
이자원은 수화기를 천천히 떨어뜨렸다.
- 밀항해라.
과연 자신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 그걸 타고 일본으로 건너와.
가족들은 그의 선택을 알았다면 이해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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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난장판이었다. 그리로 갈 수는 없었다. 간다고 해도 남은 것은 없었다.
상부는 보고를 들었지만 대대장을 교체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대한민국 제2도시가 날아갔으니 이 나라 사람들 중 가족 친지 하나 안잃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그런 이유로 사람을 빼주면 한도 끝도 없을 터.
이자원은 그저 관성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CP병 김신우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부산이 통째로 날아간겁니까?"
"고향이 부산인가?"
"저 입대한 동안엔 친척이 모셔주시기로 했습니다. 그, 그런데 거기가."
폭심지가 아니더라도 여파는 온 부산 지역에 퍼졌다.
환자만 수백만 명이 발생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인데 병원은 가, 가셨을지."
덜덜 떨면서 손톱을 물어뜯는 김신우를 이자원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
이자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라고 어떻게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소식이 전해진 다음부터 각별히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주임원사가 김신우를 잡아끌었다.
"자자, 나랑 이야기해보자."
세상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하루아침에 부산이 날아갔고, 전방에서는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장병들의 사기도 크게 흔들렸다.
전선은 파주까지 밀렸다.
"우리 사단은 익일 04시 정각을 기하여 후퇴한다."
파주에서 벌어지는 교전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중국군이 개입했다는 정보가 속속들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적은 국군보다 모든 점에서 우월했다. 고양에 병력을 집결시켜 새로이 전선을 형성해야 했다. 이자원의 사단은 거기에 합류하기로 되어있었다.
서류는 모조리 파기되었다. 완전군장한 장병들이 지긋지긋한, 그리고 정든 부대를 떠나 두돈반에 하나둘씩 탑승하기 시작했다.
이자원과 장교들은 기계적으로 병사들을 다그쳤다.
서류들은 전부 파기하고 무장한 장병들이 차량에 하나둘씩 탑승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차량이라도 충분해 다행이었다. 도보로 이동하다 꼼짝없이 적군 한가운데 고립되는 상황은 펼쳐지지 않았다.
"인원 확인 다했나?"
각 중대의 인원 보고가 이어지고 트럭들이 출발했다.
이자원도 1호차에 탑승했다.
"운전병이 바뀌었군."
"신우가 지금 멘탈이 좋지가 않은 것 같아서 제가 바꿨습니다."
이자원은 운영과장이 멋대로 벌인 일에 책망하지 않았다.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차량들은 산길을 통해 이동했다.
- 퍽
"뭐야?"
앞에 가던 차량이 급정거했다.
뒤로 줄줄이 트럭들이 제동을 걸었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자 병사들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자원이 머리를 내밀고 묻자 앞서가던 차량의 병사가 황급히 말했다.
"대대장님! 트럭에서 세 놈이 뛰어내렸습니다!"
"뭐?"
주임원사가 황당하게 되물었다.
산길을 지나고 있으니 트럭에서 몸을 일으켜 그대로 굴러내린 것이다.
"이, 이런 미친놈들이!"
"멈춰서있을 시간 없다. 1호차만 남고 계속 이동해."
무장까지 했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병력을 대대적으로 풀어 수색할 시간은 없었다. 이자원은 직접 병사들 몇만 데리고 나갔다.
감속한 곳으로 되돌아가 아래를 살펴보자니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저기 보입니다!"
병사들이 든 후레쉬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한곳에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허겁지겁 군장도 내팽겨친채로 달아나는 병사들이 보였다.
"야 이 새끼들아! 빨리 안돌아와?"
"지금 전시야 이 새끼들아!"
후퇴하는 와중이다.
적군이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를 상황에 이동 상황을 들켜서는 안된다. 이러한 대치를 더 끌어봤자 좋을게 없었다.
"전부 실탄 조준해."
이자원을 힐긋 바라본 1중대장이 황급히 소리쳤다.
"야, 빨리 돌아와! 전시 탈영은 총살감이다!"
그렇지는 않다. 적전인 경우는 최대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단순 전시 탈영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이 규정되어 있다. 다만 저들은 무장탈영병. 사살할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탈주 중인 병사 셋은 놀라 힐끔 돌아볼 뿐,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때 후레쉬 불빛이 앞장서서 도망가던 탈주병의 얼굴을 비췄다.
이자원은 흠칫 놀랐다.
"김신우."
이자원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와 웃고 농담하던 CP병이, 도망치고 있었다.
"대, 대대장님. 어떡해야합니까."
이자원은 입을 다물었다.
조준 중인 병사들도 잔뜩 긴장한 상황이었다. 그들이라고 언제 사람을 향해 총을 쏴보았겠는가.
이자원의 눈이 흔들렸다.
탈주 중인 병사들도 제각각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죽기 싫어서, 누군가는 싸우는 것이 무서워서.
인간의, 삶을 갈구하는 생물로서의 본능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었으리라.
그러나 다음 순간 이자원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들의 감정 따위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이자원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쏴."
- 타타타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
두 사람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가장 먼저 달려나가고 있던 김신우는 아직 살아있었지만, 가슴에 총알을 맞은 상태라 살아나긴 힘들것 같아보였다.
그는 쿨럭 피를 게워냈다.
"하, 할머니."
그에겐 무슨 의미였을까.
자신을 키워준 유일한 가족이었겠지. 노쇠하고 밥도 차릴 수 없는 할머니였으니, 평생을 보살펴야 한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리로 다가간 이자원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너만 가족이 있는게 아니야."
사정이 아무리 딱하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이유가 있더라도 상관없다.
그의 가족은 자신이 나라에 바친 의리 때문에 죽었다.
이자원은 허리춤에서 K-5를 꺼내들어 김신우를 겨누었다.
- 탕.
곧이어 권총에서 불이 뿜어졌다.
김신우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그의 육신은 곧 떨림을 멈췄다.
고통 또한 멈췄으리라.
이자원은 권총을 다시 갈무리하고 돌아서서 말했다.
"연대에 보고해. 탈영병 셋, 사살했다."
< 외전 - 그가 있던 곳 (2)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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