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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201화 (201/213)

< 신세계 (1) >

혈연 대신 자질을 기준으로 보위(寶位)를 잇는 것은 유학적 관점에서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요(堯)는 순(舜)에게 선위하고, 순은 다시 우(禹)에게 선위한 이야기가 그 역사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고사로 남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런 신화의 영역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혈통에 따른 계승을 부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편 얼자 출신의 이자원이 통령의 자리에 오른 일 또한, 이것이 곧 신분에 상관없이 정치적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진승(陳勝)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王侯將相寧有種乎)"고 외친 이래 패현(沛縣)의 정장 유방이 황제가 되었다던가, 일개 중놈 출신 주원장이 황제가 되었다는 식의 출세담은 종종 나왔고 이자원의 집권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되었던 것이다.

당장 전조에도 천민 출신으로 집권한 이의민(李義旼) 같은 자가 있었지만 자기 계층의 정치적 권리 신장 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자원 이후의 대한'을 떠올릴 때는 당연히 세습을 기반이 될 것이라 여겼다.

보통 무신정권 최씨 4대의 사례를 떠올리거나, 조금 더 국제정세에 밝은 자는 바다 건너에서 장군(將軍)이 대대로 막부(幕府)를 물려주고 있는 일을 떠올리리라.

그만큼 민주(民主)라는 단어는, 이 대한은 물론이거니와 전세계를 통틀어보아도 실로 모호한 이야기였다.

"교수 영감께서는 그것이 가능하리라 보시오이까?"

가만히 듣고 있던 장길산이 물었다.

그가 보기에는 말만 번드르르하지, 불가능한 소리처럼 보였다.

수천수만이 훨씬 넘는 백성들의 중지(衆智)를 제대로 모을 수나 있을지는 둘째치고, 무지렁이 같은 백성들이 어떻게 사리를 분별하여 제대로 된 군주를 뽑겠는가.

본인 자신이 그 무식한 농군들 틈에서 자라난 장길산으로서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황종희가 말한 것처럼 배운 사람, 즉 사인(士人)들의 뜻만 모은다면 더욱 문제였다.

대한은 더이상 사대부만의 나라가 아니다.

당장 전국 곳곳의 유향소 따위에서 통령을 뽑는다치면, 권력을 잡은 사족들이 할 일은 바로 복고(復古)였다.

그간 이자원이 행해온 모든 일을 무위로 되돌리고, 전통적인 중화 왕조의 길을 걷고자 하리라.

그러나 그간 이자원의 치세에서 크게 성장해온 중간 계층이 그것을 용납할리는 만무했다.

상민이나 천민 출신이지만 강무학교에 들어 출세한 군인들, 당상이 되면 뒷방으로 물러나던 이전과 달리 실직에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중인들, 통령부와 발맞추어 막대한 재부를 쌓아올리고 있는 상인들.

"귀 생도는 어찌 배운 사람이 사족 뿐이라 생각하시오?"

"그것은······."

사(士)에게는 사(士)의 일이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다른 이들만의 일이 있지 않겠는가.

선비의 일은 바로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니 황종희가 언급한 배운 이들은 당연히 도성과 지방에 널린 사족들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허면 상민 출신의 귀 생도가 강무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오?"

"치국(治國)을 위한 공부는 아닐 것이외다."

"강무학교에서 단순히 병서만 읽히고자 했다면 나 같은 사람을 교수로 둘 필요도 없을 터."

황종희가 말했다.

"세상은 바뀌고 있소. 남만의 구씨(具氏, Johannes Gutenberg)가 만들었다는 인쇄기는 책을 하루 수 권도 찍어내니, 누구나 뜻이 있으면 이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을 것이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지 않소?"

서양 인쇄술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책값은 비쌌으나, 학당 이름 걸어놓고 책 한권 갖춰놓기 힘들었던 사정에서는 벗어났다.

비단 경서 뿐만 아니라 담배나 고추 등의 '돈되는' 신작물 경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각종 농서(農書)도 간행되고 이를 가르치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면서부터 귀한 자는 없다(天下無生而貴者)는 공자의 가르침과 달리, 현실적으로 천지에 자연히 귀천이 분별된다고 믿는 이 시대 사람들이었지만 이런 배움의 열풍은 상하를 가리지 않았다.

황종희는 여기에서 한가지 가능성을 보았다.

"이미 강무학교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배우고 경쟁하니, 신분에 따라 그 실력이 나뉘지도 않거니와 사람의 자질 또한 그에 따라 정해지지 않소.

즉 천하를 커다란 학교(學校)로 만들고 모든 사람이 사인(士人)이 된다면 자연 흙파먹는 농군이라 할지라도 제 스스로 궁리하여 인군(仁君)을 뽑는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겠소?"

"너무나 먼 이야기입니다."

안세가 대답했다.

고종 때부터 대대적인 호적 조사가 이어진 대한이었지만, 행정력의 한계로 그 정확한 인구는 집계키 힘들었다.

그러나 통령부에서는 본토의 인구만 대강 천만 명 가량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아무리 살림이 넉넉해진다 하여도, 저 모든 자들이 진실로 이 나라의 임금을 뽑을 정도로 깨우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인가.

'그래서 나를.'

안세는 새삼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중간 다리로 쓰려하는 것이다.

그의 입가에 쓴 웃음이 맺혔다.

"조만간 중추원(中樞院)이란 기구가 생길 것이라 들었습니다."

황종희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미 여러 왕조에서 그 이름을 달고 행정을 담당해온 관청이 있었으나, 안세는 보통의 그것과는 다른 기관일 것이라 직감했다.

"각계각층에서 천거한 이들이 모여 국가의 시책에 자문하는 곳이 될 것이라 하더군요."

"원로원 같은 곳이군요."

안세가 말했다.

원로원의 역할과 기능은 그 시대마다 달랐지만, 지금처럼 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때에는 단순한 자문기구에 머물렀다.

그런 기관을 구태여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자원의 집권 정당성은 그가 세운 전무후무한 전공에서 나온다.

이 시대, 그 누구도 세우지 못한 군사적 위업 말이다.

그러나 이미 안정된 대한에서 안세가 그정도의 권위를 가질 수는 없을 터.

"다음 통령은 중추원의 선출을 통해 나오겠군요."

안세가 중얼거렸다.

명목상 통령은 천자 아래 모든 신하와 백성의 대표로서 나라를 통치하는 재상이니, 중추원의 의결으로 하여금 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아마 중추원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그 결과는 정해져있을테지만, 한번 자리잡은 권력 선출 과정은 그렇게 쉬이 변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제 손으로 통령을 뽑아본 인간들은, 그 사실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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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대표하는 상인을 꼽는다면 역시 송상이다.

그 근거지는 개성이니 곧 옛 고려의 왕읍(王邑)이었으며, 연원 역시 고려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렇지 않아도 활발히 사상(私商) 활동하던 이들은 인근의 벽란도가 개항하여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그 수혜를 정면으로 입었다.

물론 도성의 역관들이나 경상(京商)들도 한몫 끼기 위해 참여하거니와, 의주상인인 만상(灣商), 평양 상인인 유상(柳商) 등도 여기에 지소를 두고 활동하는 이유로 독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

송상은 평안도에 있는 너희가 왜 여기에 발을 담그느냐 항의해보았지만, 너희도 가도 무역에 참여하지 않느냐는 반박에 할말을 잃었다.

예전처럼 어떻게든 관에 연줄을 대어 힘을 써볼래도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한다는 통령부의 엄한 훈시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사람이란 간사하여 큰 은혜는 잊어버리고 작은 원한은 두고두고 원망하는 법이다. 송상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볼멘소리 한두마디 정도는 터져나올만했다.

그러나 송상 대방(大房) 전상우는 그정도로 어리석은 이는 아니었다.

"중본억말(重本抑末)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그가 중얼거렸다.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사람의 욕심을 버린다(存天理 去人慾)'는 정주학의 이념에 따라, 상인들은 사민(四民)의 맨아래로 취급받았다. 천상이니 폄상이니하는 멸시도 은근히 따라붙었다.

그러나 양명학이 과거에 도입되고 정세도 요동치며 사상적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직업이 치생을 위한 것이요, 사민은 모두 같은 도를 추구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인정에 목말라있던 상인들이 이를 반갑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 홀란도나 남만 나라들이 만리 밖에 배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상업이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요, 중원에서 쌀을 사다가 나라의 흉년을 구제하는 것도 우리 상인의 몫이 아닌가. 비도 안내리는 하늘이나 멍하니 쳐다보던 농군들, 젠체하는 양반네들이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이야?"

"나라에서 돈주고 땅을 사들여 농군들에게 나누어주는 판이니 이제 지주들이 소작료나 바라고 노는 시대도 끝났네. 그치들도 눈치보며 이쪽에 발을 담그려 한다지?"

머리가 굳은 인간들 몇몇은 아직까지 태평히 시나 읊으며 소요하고 있다지만, 약삭빠른 자들은 양반 체면에도 불구하고 장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서자나 아랫사람 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스스로 대방이니 도방이니 하며 사업에 나서는 것이다.

전상우의 중얼거림에 휘하 도방들이 맞장구를 쳤다.

"이젠 아예 우리 같은 상인들도 조당(朝堂)에 나아갈 수 있게 한다지 않사오이까?"

"세상이 변하긴 한 모양이오이다. 중추원 의원이 되면 그야말로 당상이나 다름없으니, 공명첩(空名帖) 사다가 가짜 양반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오이다."

중추원 설립에 관한 소식은 이들에게까지 퍼져있었다.

이문을 남기려면 누구보다 귀가 밝아야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중추원은 현재로서는 의회가 아니다.

실상 중추원 의원이라는 것도 추천을 받아 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이니, 사실상 원래 역사의 대한제국에서 있었던 관선 의원들의 자문기관이 이 시대에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은 각계각층의 대표를 뽑아 의견을 듣는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삼부회(Etats generaux)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개 상인의 몸으로 직접 정사를 논하는데 나아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잔뜩 흥분해있었다.

대갓집 양반은 이들 상놈과 대거리하는 것도 수치로 여기니, 설마 살다가 이런 날이 올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지체 높은 양반들 중에선 상것들이 모여있는 곳은 시장통이나 다름없어 출사치 않겠다는 자들도 많다지요?"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오. 그치들 아니더라도 중추원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니. 상놈과 말 섞는 것보다 족보에 관명(官名) 한줄 못남기고 죽는걸 수치로 여기는 시골 양반들이 얼마나 많을 것 같소?"

은근한 비웃음이 송상들 사이에 퍼졌다.

대한의 국력이 신장되며 그들의 실력 또한 커졌다.

국제교역의 일선에서 뛰는 상인들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예전의 그 상것들이 아니라는 자부와, 그들을 아직 멸시하는 '옛 사람들'에 대한 성토가 끝도 없이 이어지려 할 때 전상우가 입을 열었다.

"다들 너무 흥분한 것 같소."

전상우의 말에 도방들이 입을 뚝 다물었다.

그는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만간 우리 중 한두 사람이 중추원에 나갈 것이오. 하지만 그것은 그이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오. 사람들의 천거가 있었기에, 그가 일개 상민의 몸으로 조당에 나아간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외다."

그 말인즉슨 당연히 송상을 대표하여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적당히 암묵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던 사안이었지만 이리 말로 꺼내니 새삼 느낌이 달랐다.

중추원 의원의 임기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나 나라의 관리와 같이 기간이 정해져 있을 터.

재차 천거를 받고 싶다면 대표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임기 동안 뛰어야할 것이었다.

전상우가 추진코자 하는 사안은 이것이었다.

"각지의 수영에서 남만선이 건조되고 있으나, 오로지 전함으로 전용될 뿐 교역에는 쓰이지가 않고 있소. 우리네 배와는 달리 실로 수만리 바다를 움직여 교역을 하는고로 우리가 남만선을 건조할 수 있다면 그 이익은 막대할 것이외다."

퇴락한 당선(唐船)을 띄워 중국, 일본과 교역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많은 재부를 쌓기 위해선 더 먼 바다로 나아가야만 했다.

"유상이나 만상은 우리 경쟁자이지만 뜻만큼은 같으니, 그쪽에서 뽑아올린 의원들과 협력하여 남만선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관철시켜야 할 것이오."

< 신세계 (1)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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