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사는 세상 (1) >
"제기랄, 제기랄!"
대한 육군 대장 황익(黃瀷)은 머리털을 쥐어 뜯었다.
막 게르에 들어서던 부위(副尉) 허서리 송고투(赫舍里 索額圖)는 갑작스런 발작에 놀라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아, 신경 쓰지 말고 들어오게."
황익의 곁에서 데운 술을 홀짝이던 신류가 태연히 말했다.
그가 보좌하는 대장이 이러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송고투가 머뭇거리며 황익의 앞에 한 장의 서신을 가져다놓았다.
머리를 쥐어뜯던 황익은 미친 사람처럼 그것을 펼치더니, 이내 긴 탄식을 뿜어냈다.
"빌어먹을 동토(凍土)!"
꼴을 보아하니 한성의 통령부로 보냈던 사직 요청이 반려된 것이 틀림없었다.
황익은 동토, 즉 시베리아로 출병한지 1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이임을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어이 사직까지 감행한 황익이었지만 이번에도 통령은 그의 간청을 거부한 것이다.
"대장 영감의 손에 우리 나선정벌군(羅禪征伐軍) 5천 명의 목숨이 달렸사오이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신류는 익숙한듯 황익을 달랬다.
그간 계속해서 공을 세워 그 역시 한군(韓軍)의 편제에서 정령(正領) 쯤 되는 높은 계급에 오르고, 황익을 보좌하는 나선정벌군의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아직 올라갈 자리가 많은 그로서는 전공을 세울 수 있는 지금의 기회가 기꺼웠지만, 황익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귀양 가는 것이 낫겠군! 이 얼음만 뒤덮힌 땅에서 나갈 수 있다면 말일세! 영고탑 사령이라도 기꺼이 맡을테다!"
황익은 통령 대감이 아직 훈련대장이던 시절, 영고탑을 치러갔을 때의 일을 기억했다.
그때도 끔찍했지만, 지금은 그 영고탑에라도 머물고 싶었다. 개시라도 열릴 뿐더러, 동만주의 중심지로 성장해나가고 있었으니까.
"영고탑지구의 사령은 참장(參將)이 맡는데 어찌 지체높은 대감께서 계급을 두 계단이나 깎아 부임하시겠사오이까. 이미 통령 대감의 말씀이 계셨으니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보시지요."
"도대체 얼마나 더······."
황익은 송고투가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 머리를 북북 잡아뜯었다.
헤진 상투가 그의 비참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재작년인 융희 3년(1651년), 나선 장수 하보로포(河保魯浦, 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가 동진해와 흑룡강 우안(右岸) 알바진(雅克薩)에 요새를 쌓고 다우르와 에벤키 등의 부족을 약탈하는 사건이 있었다.
본래 이들 부족은 대한에 신속해있었기에, 영고탑에 주둔해있던 사령 변급(邊?)은 즉각 군사를 모아 북상, 나선군을 대파하고 하보로포를 비롯한 100여 인을 사로잡았다.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이자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 나선은 흉포한 백달자의 무리로 점차 우리나라의 북쪽을 취하려는 뜻을 품고 있으니, 가만 놔두어서는 안된다.
아예 이쪽에서 군대를 보내 나선이 동토 일대에 지어놓은 요새를 빼앗고, 그들의 치하에 있는 부족들을 대한에 신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즉각 몽골과 만주에서 기병 수천 명이 소집되었다.
그리고 그 사령관으로 낙점된 이가 바로 황익이었다.
"내가 미쳤지······."
새로 만들어진 대한군의 편제는 원래 역사에서 대한제국군의 그것과 같았다.
마침 계급도 새로 부여해야겠다, 황익에게 원수(元帥)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대장을 달아준 뒤 나선을 정벌하라며 등떠밀어버린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몇년간 호의호식해서일까, 장수다운 호승심이 슬며시 일어난 황익은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저 북쪽 땅이 넓다한들 몇리나 되겠으며, 적들 쌓아놓은 성이래봐야 몇이나 되랴. 금방 무명만 떨치고 돌아오면 된다는 심리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틀렸다.
융희 4년(1652년)에 시작된 원정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사로잡힌 하바로프를 앞세워 국경 근처에서 설치는 오랑캐를 물리치고 근처 부족들에게서 조공을 받아온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 여긴 그였지만, 한양의 통령은 그렇게 놓아두지 않았다.
- 나선(羅禪)은 서쪽에서 와자(瓦刺)와 교역하며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 서쪽으로 이동하며 적의 거점을 모조리 토멸하여 대한의 강역으로 복속시켜라.
그 명령을 받아든 순간 황익은 진심으로 자결을 고민했다.
개량된 포가 덕에 기동성이 늘었다 하나,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포까지 딸려보낸 것은 이때문이었던가!
그 뒤부터는 계속해서 싸움의 연속이었다.
이 북쪽 동토에 사는 올량합(兀良哈) 부족들은-실상은 야쿠트족이다- 러시아가 보낸 총독아래 억압을 당하고 있었는데, 10년 전 쯤 반란을 일으켰다 토벌당한 뒤로는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황익은 신류를 보내어 그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대한에 신속할 것을 명했다.
야쿠티아 총독 표트르 골로빈이 벌인 대학살로 원한이 골수에 미쳐 있던 야쿠트인들은 기꺼이 대한의 신민이 될 것을 맹세했다.
그들은 심지어 대한군이 놓는 종두조차 어떤 맹세 의식을 치르듯 엄숙히 받아들였다.
- 얼굴에 피를 발라서라도 맹세하겠소!
- 그, 그래?
본국에서도 종두를 보급하는데 거부감이 상당했던 것을 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듣기론 마두(馬痘)를 일부러 사람 몸에 집어넣어 천연두에 대항할 힘을 얻는다 하는데, 황익조차 영 알쏭달쏭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현지의 협력자들을 얻게 되자 대한군의 정벌은 더욱 급물살을 탔다.
러시아의 진압군을 대파한데 이어, 시베리아 경영의 중심지인 야쿠츠크마저 함락한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 서진하여 막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던 이르쿠츠크를 함락하고 오이라트와의 연계를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그렇잖아도 몽골 원정과 이어진 내전에서 약체화되어있던 준가르는 교역이 끊기자 큰 타격을 입었다.
그야말로 나선의 수만리 영토를 정복한 그들이었지만, 이자원은 여전히 서쪽으로 나아갈 것을 명하고 있었다.
더욱 서쪽으로 가면 예니세이 강에 세워진 러시아의 식민 도시들.
이자원은 완전히 시베리아에서 러시아의 세력을 축출할 계획이었다.
"대장 영감, 이만 이동을 명하시지요."
신류의 채근에 황익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게르가 뽑히고, 수천 마리의 말이 서쪽을 향해 내달렸다.
1653년.
명나라와 청나라가 멸망하고 천하는 대한의 품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한양, 통령부.
임금 이백이 북경으로 옮긴 뒤 통령부는 공식적으로도 조선땅을 다스리는 통치기관이 되었다.
그 강역은 조선 본토에 더하여 서쪽으로는 요서와 연운 16주, 북쪽으로는 만주와 시베리아, 동쪽으로는 연해주에 달하는만큼 더욱 업무가 과중하였다.
'천도' 이전에는 창덕궁 맞은편 비변사 건물을 쓰고 있던 통령부였지만, 이자원의 명에 의해 통령부는 용산에 건물을 신축하여 들어섰다.
"용산은 사통팔달한 곳으로 사방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니, 천하의 중심인 통령부가 이곳에 지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그리 좋은 곳이면 임금께서 여기에 궁궐을 지으셔야 하는게 아닌가?"
"예끼, 임금께선 벌써 천명을 얻어 황제로 등극하셨지 않은가. 그분은 북경에 계시다네."
여염의 백성 누구도 이백이 이곳 한양에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조선왕이었던 그가 중원의 천자로 등극했으니, 마땅히 그리로 갔으리라 여길 뿐이었다.
섭섭한 마음에 불평을 늘어놓는 자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들도 큰 의구심을 품진 않았다.
물론 이것은 형식상일 뿐이요, 통령을 비롯한 행정의 중추는 그대로 한양에 남아있었다.
그저 마지막까지 조선(朝鮮)에 대한 충의를 지키고 있던 관리 몇만이 따라갔을 뿐.
그런 고루한 관리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이자원이 육성한 신진 관료들이 채웠다.
예를 들면 이번에 군무부의 정랑으로 임명된 유형원(柳馨遠) 같은 이.
"나선정벌군 대장 황익이 이번에도 크게 이겼다고 하옵니다."
그는 이자원의 앞에 부지런히 보고 서류를 올려놓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막북의 군량을 끌어다 썼다하니, 소요분만큼 보충해주어야 할 듯 싶습니다."
훗날의 박지원이 '군량을 조달할 재능이 있었다'고 평가한 사람답게 나선정벌군에 공급한 물자의 계산에는 빈틈이 없었다.
다른 서류를 살펴보던 이자원이 말했다.
"황익이 나선의 거점들을 떨어트리면서 와자들이 발버둥을 치는 모양이군. 추가로 파병할 여력이 있는가?"
"재무부와 이야기해보아야겠으나, 가을에 번국들에게서 세폐가 들어오기 전까진 어려울 듯 싶사옵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자원은 턱을 쓰다듬었다.
이내 그가 말했다.
"어차피 주나라는 올해도 세폐를 바칠 수 없을 터. 섬서 쪽에서 군사를 일으켜 와자들의 뒤통수를 간질여주면 세폐를 면해주겠다 전하라."
화북은 지력이 쇠한 것도 있거니와, 가뭄이 계속되며 대한에 응당 바쳐야할 세폐를 그간 한번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삼계가 바빠지겠군."
이번에도 돈 대신 몸으로 때우려면 세자인 그가 친정해야 하리라.
전쟁은 북쪽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근자에 홀란도의 움직임이 바빠졌사옵니다."
"그렇겠지."
이자원은 선선히 대답했다.
스페인이 저문 후, 유럽의 바다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양분했다.
그러나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는 법.
양자의 대결은 필연적이었다.
네덜란드의 동아시아 파트너인 조선이 중원을 차지하며 그 입지가 폭발적으로 커졌다고는 하나, 영국 역시 만만찮은 상대였다.
영란 전쟁이 발발한 것이 작년이니 앞으로 수년간은 영국과의 전쟁으로 바쁠 터.
전쟁은 대서양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지만, 아시아에서도 교전과 나포가 종종 일어났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뿌려놓은 씨앗을 거둘 수가 있을까.
"우리 백성들은 대만(大蠻)에 잘 정착하고 있는가?"
"홀란도 측에서 적극적으로 편의를 봐주는 덕에 순조롭사옵니다. 홀란도인들은 그 수가 적고, 남인(南人)들은 믿지 못하니 우리 조선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남인은 강남의 중국인들을 말한다.
원나라가 장강 이남의 한족을 구별하기 위해 불렀던 명칭이 다시금 부활한 것이다.
"더 많은 자들을 대만으로 보내라. 그곳에 가면 넓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
이자원이 말했다.
경신대기근은 자체적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한 재난이다.
비록 대한이 중원의 목줄을 잡고 있다 하여도 그것만으로는 떼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이자원은 최대한 조선 본토 바깥으로 백성들을 빼내는 중이었다.
만주와 연운 지방, 그리고 대만까지.
하지만 어느 정도 인구가 차면 네덜란드 역시 조선인에 대해서도 경계 태세를 취할 터.
서안을 톡톡 두들기던 이자원이 말했다.
"슬슬 대만을 취해야겠다."
원래 역사에서는 9년 뒤, 정성공에 의해 네덜란드는 대만에서 축출된다.
그러나 그 정성공은 월왕세자(越王世子)로서 충실히 후계자 교육에 임하는 중.
그를 대륙에서 밀어낼 청나라도 없으니 역사는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
그렇다고 대한이 직접 나서기에도 애매했다.
"홀란도를 치실 작정이시옵니까?"
박철균이 물었지만 이자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홀란도는 우리에게 많은 후의를 베푼 맹방이거늘 어찌하여 칼로써 그들을 치겠는가."
그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다만 스스로 내어놓게 할 뿐이다."
이자원이 말을 이었다.
"월왕과 민왕에게 전하라. 조선인만 건드리지 않으면, 대만을 약탈해도 아무 상관 않겠다고."
정지룡이나 시랑이나 원래가 수적질을 본업으로 삼던 자들이니, 약탈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일국의 임금이 된 지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대한이 VOC의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
이제 이자원이 그 보호를 거둔다면 월과 민은 경쟁이라도 하듯 대만을 침공할 것이다.
영국과의 전쟁으로 바쁜 네덜란드가, 그 두 왕국의 공격까지 막아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곳 통령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러 오리라.
이자원은 확신했다.
< 그들이 사는 세상 (1) > 끝
ⓒ 핏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