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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191화 (191/213)

< 누가 관군인가 (1) >

"황제는 이미 목을 매었고, 다만 태자 전하만을 구할 수 있었소. 천하에 한시라도 주인이 없을 수는 없는 법. 나는 태자로 하여금 제위를 잇게 하려는데 불만 있는 자가 있소?"

"······."

숭정제가 살아있을 때부터 복지부동하던 이들이 이자원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 어찌 반박할 수가 있겠는가.

태자는 얼굴에 상처가 났다는 이유로 짙은 화장을 하고 즉위하였는데, 이를 미심쩍게 여기는 이는 있었으나 차마 캐묻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는 황제는 모든 군국사무를 조선군에 일임한채로 궁중에 머무를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더욱 나설 건덕지가 없었다.

"통령 대감, 이제 숭정 황제도 죽었고 새 천자가 즉위했으니 의흥(義興) 연호를 쓰라 전해야겠사오이까?"

이완이 새 연호를 써야겠느냐 묻자 이자원은 고개를 저었다.

연호를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황제를 옹립할 때의 요식행위일 뿐.

어차피 오래 가지도 않을 가짜 황제의 연호를 쓸 이유는 없었다.

"이미 주유검이 불궤를 꾸몄다는 이유로 숭정 연호를 폐하고 개국년을 쓰고 있는 중이다. 지금 와 명나라 연호 따위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

이자원의 말이 곧 조선의 국법이나 다름없으니 이런 명령은 조선에 그대로 전해져 공문서에는 여전히 개국년을 기입하기로 결정되었다.

일부 사대부들이 사사로이 쓰는 문집이나 편지 등에는 의흥 따위의 연호가 쓰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으리라.

"태사 대인."

이암이 와서 말했다.

이자원은 새로이 명나라의 태사 직위를 하사받았는데, 말 그대로 황제의 스승이라는 뜻이었으니 실권을 떼어놓고 보면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물론 이자원은 그런 것에는 별 감흥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황제의 신하이되 그 윗사람인 스승이기도 하다는 미묘한 지위를 노리고 가져온 것이지만 말이다.

태사가 명예직이라는 사실은 그가 쥐고 있는 군권 앞에선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말이다.

"전국에 칙사를 보내어 새 천자가 등극했음을 알렸는가?"

"직례를 비롯한 하북 대부분에서는 새 천자를 받들어 즉각 투항할 것을 알려왔사옵니다."

이암의 말에 이자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예상했던 바였다.

하북에는 더이상 동원할 수 있는 병력도 없었고, 심지어 의지하고 버틸 자연장벽마저 없었다.

게다가 조선군은 제한적으로 약탈은 벌였으되 학살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었으니 항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허면 남경은?"

공들여 태자의 신분을 위장,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는 쇼까지 벌였던 것은 이렇게 손쉽게 중원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원래 역사의 남명에선 수많은 주씨 종친 가운데 누구를 황제로 세울 것인가를 두고 정쟁과 내분이 벌어졌다. 그러다보면 차라리 확고한 정통성을 지닌 이쪽에 귀부할 계산을 품은 자도 많을 것이었다.

- 우리는 태자를 옹립했다. 북경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면 장헌충이나 정지룡 같은 국적으로 규정하여 토벌할 것이나, 순순히 태자를 새 천자로 인정하고 명령을 받들면 지위와 재산을 보전해줄 것이다!

이 전략의 목적은 생산력이 풍부한 강남을 피흘리지 않고 장악하기 위함이었으니, 이자원의 물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암은 고개를 치켜들지 못하고 쩔쩔맸다.

"우리의 권고를 거절했는가?"

"면목 없사옵니다."

이암이 엎드려 말했다.

이자원은 칼을 찼다.

"기어이 권주를 거절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니, 그리 해주어야겠지."

===

남경(南京)은 영락 시절 대명제국 도읍의 지위를 빼앗긴 이래 정치적인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태조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일으킨 곳이요, 그 무덤인 효릉(孝陵) 역시 남경에 있었기에 배도(陪都)로는 남았지만 그 뿐.

남경의 조정과 육부상서는 단지 형식에 불과했으니, 정쟁에서 밀려난 자들이나 가는 권력 없는 명예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금의위도지휘사 낙양성이 제 본위대로 사람을 꽂아넣기는 편했다.

남경 병부상서 사가법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정지룡과의 싸움에서 두각을 드러내 조선과의 국경으로 끌려갈 뻔했으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남경에 주저앉힌 것이다.

처음엔 이곳에서 그저 꿔다놓은 보릿자루나 하다 은퇴할 생각에 우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 조선군, 산해관 돌파!

- 북경 함락! 황제는 사망, 조선이 태자를 옹립!

"강남의 모든 수령과 유사들이 우리 남경의 입만 바라보고 있소이다. 조선이 옹립한 태자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말이외다."

이런 일이 있을줄 알았던 것처럼 누구보다 남경에 빠르게 내려와 수보(首輔)로 추대된 낙양성이 말했다.

남경 조정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심어놓은 자들이었으니 낙양성이 튀어나와 그 자리에 앉는 것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당연히 송나라의 전례를 따라야지요. 송 고종은 일개 황자에 불과했으나 휘종과 흠종이 적의 손에 붙잡히자 임안에서 나라를 일으켰소이다. 비록 태자께서 즉위하셨으나 당연히 조선의 괴뢰, 꼭두각시에 불과한 터. 금나라가 유예(劉豫)를 내세운 것과 다름이 없소.

현명한 종친을 옹립하여 맞서야 하오."

사가법의 과격한 말에 남경 조정 신하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숭정제가 책봉한 적법한 태자이거늘, 언사가 너무 공격적인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낙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새로 세울 황제로는 누가 좋겠소?"

그간 황제들이 왕성히 씨를 뿌린 까닭에 명나라에 존재하는 주씨 종친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겸병한 토지와 재물이 명나라가 쇠하는 한 원인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것이다.'

낙양성은 신하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황제가 의심이 많다면, 과감히 버리면 된다.

미리 그리 결정한 덕에 천하의 절반을 수습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이제 적당히 말 잘듣는 종친 하나를 내세워서 그가 이 남명(南明)의 실세로 군림할 일만 남았다.

'지옥에서 두고 보시오, 황제.'

낙양성이 자신에게 고초를 겪게 한 숭정제에게 이를 가는 동안, 사가법이 건의했다.

"회안(淮安)에 복왕과 노왕이 당도했다 하니 두 사람 중 하나가 좋지 않겠소이까."

조선군이 쳐들어온 혼란 속에서 간신히 도망나온 종친들을 언급한 것이다.

복왕 주유숭은 만력제의 손자로서 숭정제의 사촌이었고, 노왕 주상방은 만력제의 아버지인 융경제의 손자였다.

어느쪽이든 낙양성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았다.

'복왕은 좀 더 피가 가깝기는 하지만 성격이 포악해 도저히 옹립할 수 없고, 노왕은 사람이 점잖지만 나이가 많아 다루기가 어렵다.'

원래 역사에서 환관 파벌인 엄당은 복왕을, 반환관 파벌인 동림당은 노왕을 지지함으로써 명나라의 고질적인 파벌 싸움이 이곳 남경에서도 재현된다.

그러나 이 남경은 낙양성의 수족들이 이미 장악한지 오래.

이것이 미묘한 역사의 변화를 일으켰다.

"영명왕(永明王)은 어떻소?"

낙양성이 물었다.

영명왕 주유랑은 만력제의 손자로, 같은 숭정제의 사촌뻘 중에서도 어리지만 제법 결기있다는 평가를 받는 젊은이였다.

"복왕은 붕어하신 황제의 사촌이긴 하나 사람됨이 좋지 못하고, 노왕은 피가 먼데다 숭정 황제의 아재비뻘이니 역상속이 되지 않소? 영명왕은 황실과도 가깝고 인망 있으니 그를 천자로 받듭시다."

영명왕은 아버지 계왕 주상영과 함께 광서(廣西)로 피난했다가 장헌충이 사천을 장악한 후 그리로 세력을 뻗치자 다시 남창으로 도망가 있었다.

그를 받들자는 낙양성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실상 새파란 종친 하나를 내세워 나라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음······."

낙양성의 말에 모여있던 신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명분 자체는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깐깐한 사가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남경 조정은 병력을 보내 영명왕 주유랑을 모셔오게 하고, 본격적으로 항전을 위해 방어 태세를 갖출 논의를 시작했다.

"적이 북경을 함락했으니 화북을 오래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오. 다만 하남에서 황하를 끼고 시간을 끄는 사이 강북에 사진을 세워 회수만큼은 지키는 것이······."

그때였다.

낙양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한 파발이 도달했다.

"수보, 수보 대인!"

급한 장계가 들어왔다.

"하남, 하남이 통째로 적에게 넘어갔습니다!"

"뭣이?"

낙양성이 황당하게 물었다.

===

"태자 전하께서 이미 즉위하셨는데 어찌 남경 조정에 가담할 수가 있겠소? 모쪼록 이 사람의 충정을 태사 대인께 전해주시오."

하남 총병 허정국(許定國)은 조선군의 강력함을 알았다.

남경에서 내세운다는 일개 종친보다 태자의 정통성이 더 강했던데다, 싸워봤자 시간만 끌뿐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 그로서는 항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선군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유유히 황하를 건넜다.

그로부터 회수에 이를 때까지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남경 조정이 의외로 빠르게 정상화 되어가고 있군."

'수를 쓴 것인가?'

이자원이 북경을 점령하고 교통정리를 하는 동안 남경에서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듯 했다.

비록 나라가 무너진 여파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지만, 원래 역사와 같은 혼란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적이 회수와 장강의 천험을 믿고 버틴다면 시간이 질질 끌리겠지."

몽골에 맞서 남송이 40년을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지형의 덕이 컸다.

원래 역사의 청나라는 지리멸렬한 남명의 혼란을 틈타 이를 손쉽게 돌파했지만, 이대론 그보다는 까다로운 싸움이 될듯했다.

"정지룡에게 접촉해보라."

이자원이 말했다.

"정지룡, 말씀이십니까?"

이암이 되물었다.

그의 눈에 정지룡은 어디까지나 천붕지열을 틈타 제 잇속이나 챙기는 수적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와 접촉해보라니.

"정지룡이 뒤를 쳐준다면 일은 수월해질 것이다."

"하오나 그는 명조에 반기는 들었으되 교역과 수적질에만 치중하던 자입니다. 재물이나 챙기면 족한 모리배에 불과한데 굳이 나서서 싸움에 끼겠습니까?"

"재물이나 챙기면 족한 모리배라."

현재로서는 맞는 말이었다.

정지룡은 사가법의 참소로 반란을 일으킨 뒤에도 화전 양면의 전략을 능수능란히 사용하였다.

정지룡은 그렇게 단순한 수적 두목으로 행세했기에 명의 토벌 역량은 대부분 장헌충에게 집중되어있었다.

오로지 할거와 수적질에나 관심있는 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자원의 판단은 달랐다.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 그 역시 나름대로의 꿍꿍이를 품고 있는 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래 역사에서 뜬금없이 남명 정권에 투신해 융무제를 옹립하거나, 역으로 청에다 남명을 들어다 바치려 했을까.

"정지룡에게 전하라."

이자원이 말했다.

"번왕 자리에 관심이 있지 않느냐고."

이자원은 중원을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명나라는 잘게 찢어져야 했다.

그것도 조선이 컨트롤할 수 있을만큼.

정지룡이 자신을 도와 강남을 토벌해준다면, 그 중 찢어진 한갈래 영토를 내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번왕?"

정지룡은 눈이 튀어나올듯 놀라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간 경사에서는 간신이 온통 조정을 틀어쥔 탓에 장군의 충정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이제 태사 대인께서 조선군을 몰고 와 간신을 깨끗이 쓸어내고 태자 전하를 세우셨습니다. 장군께서 황명을 받들어 남경의 역적들을 치신다면 어찌 군왕의 자리가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이암은 예물을 가득 풀어놓으며 말했다.

정지룡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나 저 보물들보다 중한 것은 바로 황제가 내려줄 인신과 고명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 황제가 가짜라거나, 그리고 이자원이 그를 꼭두각시삼아 내려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어도 반응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개 수적으로 시작한 그에게 왕작(王爵), 두 글자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정모, 대명의 충신으로서 어찌 태사 어른의 명을 거절하겠소. 기필코 남경의 역적들을 토벌하리다."

정지룡은 그렇게 선언한 뒤 시립해있던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성공(成功)아."

"예, 아버님."

"출진 준비를 하거라."

< 누가 관군인가 (1)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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