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나라 (3) >
이자원은 비변사 건물을 통째로 내어 통령부(統領府)로 개축하는 한편, 신하들을 이곳에 모아들여 직접 정무를 보았다.
이러니 중외에서는 "호령은 창경궁이 아니라 통령부에서 나온다"며 수군대었다.
임금은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자루요, 궁궐 한 구석에 박혀서 경전이나 익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도 임금이라면 응당 받아야할 경연(經筵)의 내용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전하께서는 이미 옛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의 성취가 몹시 뛰어나시므로 이에 대해 강론하는 것은 별반 소득이 없을 듯 싶사옵니다. 지금처럼 천하의 정세가 격변할 때에는 마땅히 진강(進講)하고 의론하는 대상을 달리해야할 것이옵니다."
아직 열살도 안된 아이가 무슨 경서, 사서의 배움이 통달하여 유학의 경연을 그만두겠는가.
그러나 궁중은 이자원이 세워놓은 열겹 장막에 드리워 소식 적고, 신하들은 칼자루 쥔 통령부의 의중에 신경쓸 뿐 감히 나서서 여기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이자원이 새로 보낸 경연관들은 그간 남만학당에서 공부한 이들과 그 교수관을 맡고 있던 예수회 신부들로서 그의 명령에 의해 특별한 것을 강론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임금 말고도 한 사람이 더 동석해있었다.
"통령 대감의 도령께서는 원자 시절의 배동(陪童)으로 사이가 친동기간 같다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응당 함께 공부하시는 것이 나을 것이옵니다."
이백은 힐끗 사촌동생을 돌아보았다.
그 역시 숙부의 반란과 연달아 이어진 혼란으로 마음에 상처받고 있었지만 안세의 표정은 차원이 달랐다.
표정에 미동이 없는 것이 살아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가 아닌가.
그러나 이백은 경연관의 은근한 채근에 다시 앞에 놓은 서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단어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로마(路馬)?"
"로마는 남만의 옛 대국이옵니다. 그 땅의 마씨라는 학자가 그 역사를 서술하며 논평한 것인데 통령 대감께서 직접 이것을 가르치라 하셨사옵니다. 약간 생소하고 어렵기는 하겠사오나, 신들은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이자원을 가리키는 말이 들리자 안세가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언급에 눈에 약간 빛이 돌아온 것이다.
"책을 펴시옵소서. 이 나라의 기원에 대해서부터 강론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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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共和)?"
로마사 논고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부터였다.
임금에게 강론하는 서책이었지만 남만학당에서도 교양으로 가르치고 있었으니 소문이 아니퍼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파장은 컸다.
"공화라 함은 주나라 려왕(?王)이 쫓겨났을 적에 정공(定公)과 목공(穆公)이 신하의 몸으로 나라를 다스린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말은 그러하지만 실상은 다르네. 공화 연간은 단지 폭정 일으킨 려왕을 대신해 신하가 임시로 대임을 맡은 것 뿐이나, 이 요서(妖書)에서는 처음부터 군주의 통치란 어디까지나 난세에나 통용되는 처방일 뿐이고, 대개로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에는 내란과 외침이 끊이지 않는다 주장하고 있네."
"천명(天命)을 받아 세세로 다스리는 것이 고래로부터의 법이거늘, 상하의 분별 없이 어떻게 천하의 질서를 잡는단 말인가?"
이런 것을 가르치는 남만학당을 폐하라는 투서가 통령부로 쏟아져들어왔으나, 이자원은 가볍게 무시했다.
"예로부터 요서를 익힌 자들이 역도가 되어 날뛴 적이 많았사오이다. 마땅히 금지하여야 하지 않겠사오이까."
하지만 이것을 퍼뜨린 이가 이자원이니 이런 주장이 먹혀들어갈리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만에서 그네들의 역사를 논한 서적일 뿐이오. 가례(家禮)가 다르듯 나라마다 제도도 다른 법이니, 이것을 금하는 것은 옛날 명 태조가 맹자(孟子)를 탄압하여 구절을 삭제하고 절문(節文)을 만든 행태와 다르지 않소."
이자원은 냉정하게 답했다.
거기에 그는 덧붙였다.
"조선 역시 개국 때에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이념에 따라 세워진 나라요. 어찌보면 맥이 닿는 부분이 있지 않겠소."
정도전은 역적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었지만, 그가 내세운 이념은 남았다.
재상은 인군의 다음으로, 천위를 함께하고 천공을 대신한다.
세습적인 왕의 자질을 의심하고, 재상이 위로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려 전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물론 재상을 뽑을 권한은 왕에게 있는데다, 유교에서 임금은 천외(天外)의 존재이니 이것을 선출된 집정관과 비교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러나 이자원은 이 억지를 밀어붙일 힘이 있었다.
"정도전은 시기가 많고 도량이 좁았으며, 서자를 내세워 왕권을 넘본 자입니다. 어찌 그런 자의 말을 빌려 남만인의 잡설을 옹호하려 하시오이까."
정도전이란 인물 자체가 조선에서 역적으로 규정된 점을 내세워 이자원을 달래는 신하들이었다.
그러자 이자원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정도전은 우리 태조의 장자방과 같은 사람으로, 비록 말년에 그릇된 무리와 영합하여 신세를 망쳤지만 공훈까지 부정할 수 있겠소. 오래전부터 복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 특별히 훈봉을 회복시키고 시호를 내리도록 하시오."
정도전은 역적이라 그의 말에 가치가 없다고 하자 아예 정도전을 복권시키라니.
이자원의 의지는 굳건했다.
정도전이 내세웠던 것이 실제로 재상총재제이든, 입헌군주제이든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
이호의 난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구도 그에게 저항하지 못할 바로 이 시점에서 밀어붙여야 하는 사안이었다.
"반대하는 자는 계시오?"
이자원이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도전을 복권시키거나, 남만의 요서가 퍼지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보다는 이자원의 칼날이 두려웠다.
관리들이 물러간 뒤 이자원은 말없이 홀로 통령부에 남았다.
"······."
중인과 서얼을 등용하여 중간계층에게 정치참여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의 권리를 신장시킨다.
이 나라에 사상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날 수 있도록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이 자신이 있던 조국이 되기 위해선, 그의 목숨이 다하더라도 모자랄 것이다.
이자원의 시선이 통령부 한켠에 잠들어있는 아들의 얼굴로 향했다.
요즘은 매일 같이 창경궁에서 경연을 들은 뒤 퇴궐하고 나서는 자신의 곁에 머무르는 안세였다.
어머니의 빈자리 때문이리라.
아들의 머리에는 송글송글한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이자원은 말없이 그의 이마를 쓸었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비록 어떤 행위가 비난받을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적절한 행위에 속한다.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자는 복원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자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자이다.
홀로 되뇌이던 그는 무릎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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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조선은 통령 이자원의 치세 아래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혼란 역시 잦아들었다.
내부적 불만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이자원이 그것을 강력히 찍어누르는 동안 성장한 새로운 계층이 조정에 진출했다.
아직은 미약했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를 내려 이자원의 강력한 지지기반이 되어줄 것이었다.
반면 조선과 달리 명나라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벽란도에서 내린 오삼계는 도성으로 달려갔다.
명나라의 명장이자, 그 마지막 불꽃을 꺼트린 장본인.
그는 원래 역사에서처럼 다른 나라의 칼로서 충실히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대승을 거두었다고."
이자원은 오삼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대의 실력을 따라갈 자가 없구나."
육전(陸戰)에 능할 뿐만 아니라 배를 이용한 수전과 상륙전에서도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러한 칭찬은 당연했다.
"적도들은 조선과 통령 대감께서 떨치신 위엄에 놀라 우리군 칼 앞에 한번 반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나이다. 어찌 소장의 공이라 하겠습니까."
오삼계의 말은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더이상 소방(小邦) 순이(順夷)의 나라가 아니다.
청을 멸함으로써 요동을 손에 넣었고, 명과 싸워 요서를 취했지 않은가.
"이미 명은 스스로의 혼란을 수습할 힘이 없습니다. 이정도 성과라면 굳이 산해관을 뚫지 않고 다른 곳을 통해 나아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어서 중원을 취해야지요."
이어 오삼계는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전군을 몽땅 잃어버린 명은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나약했다.
산해관보다는 해로를 통해 대규모로 상륙을 시키고, 순천의 해안가에서부터 북경으로 북상해 나아가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북경을 함락하고 싶었다.
천하를 얻으면 번왕(藩王)에 삼겠다는 이자원의 약속이 있었지 않은가!
이자원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오삼계는 야망에 불타는 자이지.'
주인이 강성할 때는 숙이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약해졌다 싶을 때는 망설임없이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삼계이기에 다루기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명으로는 삼로(三路)를 통해 나아갈 것이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암이 말했다.
이번 약탈은 그에 앞서 길을 탐색하는 작업에 불과했다.
명나라 백성들에게 조정에 대한 악감정을 품게 하고, 약탈의 성과를 취하는 것도 주요한 목적이었지만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가도와 벽란도에서 건조하는 배도 완성이 되어가고 있다. 몽골 역시 아포내(阿布奈, 몽골 대칸 아부나이)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니 조만간 대군(大軍)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겠지."
명나라가 세폐를 중단하자 조선은 대대적인 약탈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명을 괴롭힐 수는 있었지만, 결국은 명나라를 쳐서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그간 산발적인 공격을 통해 길을 충분히 익혀 놓았으니, 산해관과 바다, 그리고 몽골을 통해 세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인 것이다.
"장헌충이 섬서로 세력을 확대하는 중이고, 사방에서는 장헌충에 가담한 반란의 불길이 들끓고 있다 들었다."
장헌충의 양자 안서장군 장정국(張定國)이 옹량으로 나와 분탕을 치는 중이고, 그에 호응해 이자성의 잔당들이 들고 일어나 서안(西安)을 지키던 명군마저 위기였다.
명을 친다면 지금이다.
장헌충이 완전히 나라의 대세를 쥐기 전에, 출병하는 것이 옳았다.
"장헌충은 일개 도적 두령에 불과하지만, 그 의자(義子)들이 총명함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자성마저 목이 떨어진 지금은 그가 그야말로 천하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암의 말에 좌중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이암은 황급히 변명했다.
"조선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이자원이 말했다.
"나는 정명(征明)의 뜻을 이미 세웠소. 이미 옛날부터 논의하던 일이니 반대는 없을 것이오. 그렇지 아니하오?"
"그렇사오이다, 통령 대감!"
이자원을 향해 무관들이 일제히 외쳤다.
몇년 전 죽은 유림을 제외하고는 다들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이미 숭정 연호를 폐하고 문서에 개국년을 쓴지가 오래입니다. 청컨대 통령 대감께서는 우리 전하께 상주하시어 교체(郊?)의 예와 구헌(九獻)과 팔일(八佾)의 의절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또한 왕실의 4대조에 휘호(徽號)를 소급해 올리는 논의를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수년 전부터 돌던 칭제론(稱帝論)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이자원은 그 제안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칭제는 필요없소."
임금 이백을 황제로 만들어 보았자 이미 쭈그러든 그의 존재감만 살려줄 뿐이다.
후에야 어찌되었든 당장 칭제건원시킬 마음은 없었다.
통령의 뜻이 그러하니 칭제론을 주장하던 신하들은 합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힘없고 어린 임금이 황제가 되고 싶다 한들 통령의 말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칭제 논의를 한마디로 일축시킨 이자원은 곧장 전국에 명을 내렸다.
"도성의 오군영부터, 삼남과 서북의 속오군, 요동과 북변의 한인과 여진인, 요서의 번병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영을 받들라!"
"예, 대감!"
명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군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 새로운 나라 (3) > 끝
ⓒ 핏콩
작가의말
181화와 182화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원래 박철균은 끝까지 이자원의 충신으로 남을 계획이었으나, 작가의 그릇된 판단으로 중간에 전개를 틀면서 이자원 등에 칼꽂는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좋은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늦게나마 이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독자님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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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로물루스처럼 새로운 법과 질서를 만드는 창조자를 진정한 군주라고 주장했습니다. 설령 로물루스가 형제와 동조자를 처형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야심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행해진 일이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이런 군주의 존재는 혼란기의 일시적 처방에 불과하며, 왕의 자질은 선대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구성원의 다양한 능력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합리적으로 구성되는 공화정에서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최유선,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로마사 논고』에 나타난 공화주의적 시민성 연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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