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령(統領) >
전투가 끝나자 속속들이 피해가 보고되었다.
봉림대군이 동원한 병력은 대부분 수어청 소속이었던 탓에 그쪽에서만 천여 명 되는 사상자가 나왔으며 호위청은 대개 전멸했다.
불탄 가옥이 수십 채, 죽은 자들 역시 숱하게 많았다.
여러 종친들 가운데서도 죽은 자가 많았으니, 회은군 이덕인과 능봉군 이칭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사람의 이름값에 비길 수는 없었다.
"영의정 최명길이 현절사에서 자결하였사오이다."
"현절사라면 전 예판 김상헌이 배향된 곳이 아닌가."
청군이 성을 타고 넘어오자 절의를 지키고자 자결한 일을 기려 세운 사당이다.
굳이 그곳까지 가서 자결한 연유를 눈치채고 이자원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이자원은 말햇다.
"전국에 파발을 보내 난이 평정되었음을 알려라. 또한 북벌의 논공행상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숱한 충신의사들의 공을 추려 알맞게 포상하고 관직을 내려야겠다."
그러나 반란이 끝난 뒤에는 단지 공세운 자만 포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가담자를 처벌하는 것.
근래 최대 규모의 반란이라 할 수 있는 이 이호의 난에 연루된 자들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거기에 따라 온 나라의 정국이 흔들릴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권력을 틀어쥔 이자원의 몫이었다.
"삼족을 멸하라."
이자원이 말했다.
"예?"
모여앉은 제장들은 이자원의 말에 퍼뜩 놀라 물었다.
임금과 대비가 환도하였다 하나 조정은 정상적으로 돌아갈리가 없어, 실질적으로 이자원군에 의한 군정(軍政)이 실시되고 있는 판이다.
"이들은 우리 왕실의 근친이면서도 무엄하게 보위를 찬탈하고 충신을 참살하는 일에 앞장섰다. 무어라 변명하여도 대역(大逆)의 죄를 면키 어려우니, 역적은 삼족을 두루 연좌하여 처벌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규례이다.
역적들의 조족(祖族), 부족(父族), 기족(己族) 가운데 16살이 넘은 자는 참하고, 그 아래 아이들과 부녀(婦女)는 모두 천민 노비로 삼도록 하라."
"하오나······."
여러 장수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역적질에 연루된 종친들은 한둘이 아니다.
봉림대군의 정변 이전이든 이후든, 적극 가담하였든 마지못해 끼었든.
이들과 연좌된 자들까지 모두 처벌한다면 남아나는 종친이 없을 것이다.
이자원의 명령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유림이 떨리는 턱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대감께오서는 이때까지 적을 진압해오면서도 나름의 사정을 살펴 처결해오셨사오이다. 하물며 지금 벌할 대상은 다른 이가 아니라 이 나라 전주 이씨의 종실들이온데 가혹히 연좌하면 남아날 사람이 없을 것이외다······."
요양에서 도성(屠城) 엄포를 놓았으나, 그마저도 이솔태를 비롯한 한인 사족들을 끌어들이며 어물쩡 넘어간 이자원이다.
필요하지 않은 살육은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원의 반응은 싸늘했다.
"임금께 칼을 겨눈 자가 어찌 왕실의 일원이라 하겠소. 마땅히 선원록(璿源錄)에서 그 이름을 전부 지워야 할 터이니, 왕족이 아니라 역적 아무개로서 처분해야 할 것이오."
선원록은 왕계(王系)를 기록한 왕실의 족보이다.
그간 조선의 역사에서 왕족이 죄를 지어 삭적(削籍)당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으되 이리 광범위한 규모로 이름을 지우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소관은 도원수 대감의 뜻에 찬성이오이다."
그때 배석해있던 심기원이 말했다.
"반대로 우리가 졌더라면 이호의 일당은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겠사오이까. 왕족이라 하여 연좌될 것을 면한다면 어찌 나라가 바로 섰다 하겠소."
유림은 주름진 이마를 꿈틀거렸다.
그러나 노장(老將)의 말은 더이상 이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이자원은 거기에 대고 쐐기를 박았다.
"대비 마마의 윤허가 이미 떨어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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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대군은 이호의 동생이긴 하나 정변에 가담치도 않았고, 이호 역시 권병을 쥐고도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소. 나를 강도로 호종하는 임무는 맡았으나······."
"이호가 실패를 염려하여 처자를 돌보기 위해 일부러 빼놓았을 뿐이니 어찌 모의가 없었다 하겠나이까. 마땅히 처벌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가 인조대왕의 적자라 하여도 말이오?"
"세조대왕께서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사사하신 전례를 생각해보시옵소서."
대비는 이자원의 눈빛에 당황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눈은 이전보다 더욱 흉흉하였다.
"하지만 종친을 처벌하면서 그 조부와 손자, 형제와 조카까지 연루하여 죽이는 것은."
당연히 봉림대군과 결탁하여 자신을 유폐하고 난을 일으킨 그들이 곱게 보일리는 없었다.
그러나 대비는 왕실의 큰 어른으로서 이 점을 염려치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엮여들어간 종친들은 가까이는 인조의 자손들이요, 멀게는 그 계통이 성종, 중종까지도 거슬러올라간다.
그들을 전부 쓸어버리겠다는 말인가.
"대비 마마."
이자원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통(王統)이라는 것은 금상 전하로 하여금 이어지는 것이지, 감히 하잘것 없는 전주 이씨 몇 사람이 칭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진정으로 나라의 왕통을 생각하신다면 윤허하여 주십시오."
그가 왕통 운운하는 저의는 분명했다.
임금은 이자원이 쥐고 있으니, 순순히 윤허를 하라는 말.
"이들은 나라의 원수이며, 왕실의 원수이옵니다. 사사로이는 자전의 친정 역시 이들에 의해 박살이 났지요. 대비께서는 그저 알았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시면 되옵니다."
이자원의 말에 대비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알겠소."
대비의 조령까지 받아내자 이자원은 거칠 것이 없었다.
영풍군과 연루되어 능원대군의 여러 서자들이 주살당하고, 인평대군은 우선 강화에 위리안치되었으며, 다른 종친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겪어야만 했다.
대표적인 이가 경평군 이륵 같은 이였다.
본인야 반란에 적극 가담했으니 그렇다쳐도 그가 처형되자 형제들인 의창군과 영성군, 경창군과 인성군, 인흥군까지 줄줄이 엮여들어간 것이다.
"전하, 신은 억울하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명색이 선조의 왕자들이었으니 옛날 흥안군 이제가 이괄에게 붙었을 때도 당연히 처벌받지 않은 자들이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관망, 혹은 봉림대군에게 소극적 지지나 보내고 있던 터였으나 별안간 불벼락이 몰아친 것이다.
"누군가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니오?"
"누가 있어 이런 일에 나서겠소? 작금 조정에 있는 이들은 전부 이호에게 협력하거나 납작 엎드려 있던 자들 뿐인데. 괜히 엮여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시오."
조정 대신들 역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니, 어느 한 사람 나설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만한 결기를 가진 사람은 죽거나 도망쳤고, 이미 여러 차례 변란을 겪으며 솎아내기를 당한 조정에는 이에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산성에서 죽은 금림군 이개윤의 군호를 박탈하고, 그 처자는 노비로 삼도록 하라!"
"상원군 이상국, 진원군 이세완 등은 이호에게 붙어 칼을 휘두른 자들이다. 즉각 처벌토록 하라!"
실로 오랜만에 형조판서가 되어 조정에 복귀한 심기원은 한을 풀기라도 하듯 이자원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성종과 중종으로부터 이어지는 종친들까지 꼬리를 물고 잡혀 들어가기 시작하니, 의금부에는 곡소리가 잦아들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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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이르노라.
나는 나이어린 몸으로서 상사를 당하여 지극히 슬픈 마음으로 사위(嗣位)한 이래 자전의 다스림으로써 대임을 이어나가보았다.
그러나 이호 등이 난을 일으켜 임금을 능멸하고 대비를 핍박하매, 대비께서는 마음에 병을 얻어 정사를 돌보지 못하시고 나 또한 친정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도원수 이자원을 재상에 삼아 국사를 보좌케 하였으니, 이 또한 불행한 가운데 하나의 홍복(洪福)이라.
난은 이미 평정되었노라. 여러 백성은 걱정없이 민업(民業)에 종사할 것이며 조정에 충량한 마음을 잊지 말고······.」
일전에는 봉림대군이 간적 강석기를 해치우고 종사를 바로세웠다는 교서가 내려오더니, 이제는 도원수 이자원이 역적 이호를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교서가 내려왔다.
그런 판이었으니 지방에서는 임금의 교서가 교서가 아니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해 눈알만 굴리고 있던 그들은, 점차 이자원이 확고히 조정의 전권을 틀어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최충헌과 교정도감의 재림이라 하기도 하고,
이자원에게 우호적인 누군가는 옛날 신라의 흥무대왕 김유신에 비유키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마 입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다른 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성계.'
대비는 힘을 잃었고, 그를 보좌하던 삼정승마저 죽었다.
이제는 이자원이 재상까지 되었으니 위화도 회군 이후 문하시중으로서 전면에 나섰던 이성계와 겹쳐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잖아도 피바람을 흉흉하게 뿌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누구도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꺼낼 순 없었다.
"이호의 난은 진압되었고, 역도들도 벌을 받고 있사오나 이것이 조정에 남긴 상흔이 무척 크오. 내가 직접 주상 전하의 교서를 받들어 재상의 대임을 수행코자 하는데 누구 반대하는 분이 있으시오?"
이자원의 말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심지어 도성을 빠져나와 고향으로 도망쳤던 송시열과 송준길조차도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것은 그밖에 없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침묵이 흐르자 이자원은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새로이 조정의 제도를 일신하면서 재상의 명칭 역시 바꾸었소이다."
이자원이 맡은 직책은 영의정 따위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이를 통령(統領)이라 하겠소."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이 시대, 통령(統領)이란 말은 조운선 10척을 거느리는 관명(官名)이기도 하였으나, 그보다는 수장(首長)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주로 쓰였다.
말 그대로 통할하여(統) 거느리는 것(領).
조정을 다스리는 일인자의 칭호로 적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옛날 삼국에는 재상을 막리지나 좌평 등으로 일컬었고, 전조에서는 문하시중이라 하였소이다. 이처럼 나라를 일신할 때에는 그 관명부터 바꾼 터이니, 통령이라 일컫는다하여도 안될 것이 없소."
심기원이 말을 이었다.
"아울러 주상께서는 통령 대감께 대광보국숭록대부의 품계를 더하였고, 모든 신하의 앞줄에 세우셨소이다."
훈련도감 초관으로 시작하여 파총, 훈련대장, 병조판서.
그리고 도원수를 거쳐,
이자원은 조선의 그 어떤 권세가도 누린 적 없던 지고한 위치에 올랐다.
이자원이 입을 열었다.
"이 나라 조선의 국토는 종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으며, 그만큼 산적한 외적들도 많아졌소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안정시킬지, 어떻게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인지 쉴새없이 궁리(窮理)해야할 것이오."
청사진은 머릿속에 있었다.
무역을 통해 그 세력이 상당히 커진 중인을 끌어들이고, 서얼을 허통하고, 유럽에 사절과 유학생을 파견하고, 반항하는 자들은 모두 제거한다.
밖으로는 이빨을 드러낸 명을 조만간 수술하고, 그 너머로 손을 뻗는다.
이때까지 해온 것과 같이, 목적을 위해 끝없이 달려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령 대감 백세!"
이자원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창경궁 바깥을 에워싸고 있던 장졸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는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 통령(統領)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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