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적의 피 (1) >
다음날 궁궐로부터 나온 교서에 도성은 발칵 뒤집혔다.
「내가 어린 나이로 큰 기업(基業)을 이어 지키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군국의 여러 사무를 모두 자전께 맡기었는데, 뜻밖에 척족 강석기가 간악한 꾀를 내어 혼탁한 자들과 서로 결탁하고 널리 친당(親黨)을 심어 내외(內外)에 나누어 웅거하며, 몰래 결사적인 군사를 기르는가 하면 변군(邊郡)의 병기를 실어들이어 불궤(不軌)한 짓을 도모한 지가 여러 날이 되었다.
내가 궁중 깊이 있어 알지 못하였는데, 다행히 열성조의 신령께서 굽어살피신 바 숙부 봉림대군(首陽大君) 호(淏)가 흉모(兇謀)를 익히 알아서 비밀히 나에게 고하여 간사한 도당을 모두 토벌하였다.
그러나 과인(寡人)이 어리고 부덕한 소치로 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였으니, 어찌 가까운 종실에 의지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봉림대군으로 하여금 정사를 보좌하고 군국의 중한 일을 모두 위임 총치(摠治)케 하여 내가 정사를 친히 할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아아! 종척(宗戚)·신서(臣庶)는 각각 마음을 다하여 나의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바로잡고 구제하여 우리 조종의 어렵고 큰 기업(基業)을 보전하라······.」
임금 이백이 스스로 외할아버지를 치고 이러한 교서를 내릴리가 없으니, 자연 봉림대군이 하룻밤 사이 몸을 일으켜 대위를 장악했음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봉림대군은 새벽부터 입궐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이상을 감지하고 도망친 이들이 더러 있었다.
"승지 송시열과 송준길이 몸을 숨겨 사라졌나이다!"
"송시열이."
송시열은 한때 대군사부로서 봉림대군을 가르친 몸이었으니 신변에 위협을 느껴 도망한 것은 아닐 터.
금번 거병을 역모로 규정하고, 여기에 가담치 아니하기 위해 달아난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을 풀어 잡아들이시오. 역도와 한패임이 틀림이 없소."
봉림대군은 딱딱하게 말했다.
이미 한번 칼을 뽑아든 몸.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자들은 가차없이 솎아내야 했다.
"소재는 파악이 되었으나 도성의 혼란을 보고 입궐치 아니한 자들이 있는데 어찌하오리까."
"그들은 절의 때문이 아니라 두려워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오. 대사령(大赦令)을 내려 대역(大逆)과 강상의 죄를 범한 자,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와 강도·절도한 자를 빼놓고는 모두 풀어줌으로써 관대한 은혜를 보일 것이니 이 말을 듣고도 입궐하지 않는 자는 강석기와 같은 패로 간주토록 하겠소."
지금 순순히 궁에 들어온 사람은 공조판서 구굉과 형조판서 구인후 등 예로부터 왕실과 인척이었으며 반정 때도 공을 세웠던 훈신들 뿐이었다.
제아무리 봉림대군이라 할지라도 이들을 칠 필요는 없고, 또 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도원수의 역모 이야기가 돌 때부터 느낌이 심상치는 않았사오이다만······."
하지만 구굉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 노구(老軀)를 일으켜 입궐한 것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보려는 이유였지, 봉림대군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해서는 아니었다.
"소손(小孫)은 살기 위해 이리 하였사오이다. 부디 공판께서 조정의 어른으로서 이 손자를 좀 도와주십시오."
구굉은 인조의 외삼촌이었으니 봉림대군은 그에게 종손자가 된다.
항렬로는 그러하되 무품(無品) 대군의 몸으로 일반적으로 꺼내는 호칭은 아니었으나, 봉림대군은 그렇게 자신을 한껏 낮추었다.
외척이 득세하여 이자원의 반역을 옳게 처리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궐기하였으나 그 역시 믿을 사람은 이들 척족 밖에 없었던 탓이다.
"대비 마마는 어찌 하시었사오이까?"
"통명전에 뫼셨습니다. 정사에만 간여치 못하게 하고, 대우는 종래와 같이 하는 중이오이다. 다만 수족 노릇하던 조 소용은 즉시 베도록 명하였지요."
주인의 명대로 하다가 괜한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구굉은 혀를 끌끌 찼다.
"나머지 두 정승은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영의정 최명길과 좌의정 신경진.
두 사람은 여느 신하들처럼 두문불출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신경진은 제 아들이 거사에 가담했는데도 그러했다.
"좌상은 이미 병이 깊어 체직을 청하였으니 후임을 정하면 될 것이고······ 영상은 가만히 놔두어야겠습니까?"
봉림대군은 최명길의 능력이나 사심없음은 인정했다.
그러나 기존 조정의 영수로서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 뻔하니 필요하다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미 조정에 피바람이 분 터에 인망 높은 영상마저 사사한다면 뭇 관리들의 신임을 잃을 것이오이다. 적당히 물러나게 하시지요."
"좋습니다."
봉림대군은 스스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에 오르고, 좌의정에 구굉을, 우의정에 죽은 장인의 동생 장신(張紳)을 삼았다.
"당숙께서는 병조판서로 옮기시어 조카를 든든히 도와주십시오. 신준을 병조참판으로 삼아 보좌케 하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사오이다."
구인후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구굉이 물었다.
"아직 북방에 있는 도원수는 어찌 하실 작정이시외까."
그것이 가장 문제였으니 봉림대군도 거사 전에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가 책봉을 받고도 여전히 겉으로는 충신인 체를 하겠다면 일은 쉬워질 것이외다. 이자원의 식솔들도 우리 손에 있는데다 먼 요동땅에서는 아직 소식을 모를 것이니 적당히 꼬여내면 될 일입니다."
대비가 신경진의 후임으로 이자원을 삼으려 하였으니, 그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좋으리라.
"허나 이미 대놓고 난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면."
세조대왕의 지혜를 빌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어영청에는 자신이 부리던 부하가 여럿 있었으니.
"우선은 역적들이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석기의 아들 중 도성을 빠져나간 자가 있으니 속히 군사를 풀어 추포하고, 여러 지방관에게도 조서를 내려 민심을 다잡아야겠지요."
모든 어명은 임금을 낀 봉림대군으로부터 나온다.
대군의 호령대로 처분이 결정되니, 도성 안팎의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그 옛날 수양대군의 재림이라며 수군대었다.
한편 강석기의 막내아들 강문정(姜文井)은 황급히 북쪽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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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서 온 칙사는 가도에 열흘 넘게 머무르며 소문을 퍼뜨렸다.
'이자원이 광해군의 아들이니 조만간 조선왕에 봉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온 요동에 전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자원은 상황을 알아채자마자 가도에 죽치고 앉아 소문을 퍼뜨리던 칙사를 잡아들였다.
강제로 압송되다시피하며 심양으로 끌려온 칙사는 부복한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장군께서는 어찌 천사(天使)를 이리 죄인 취급하십니까? 황상의 지극한 은혜가 막 베풀어지려 하는 찰나인데······."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칙사였으나, 이자원이 노려보자 바로 목을 움츠렸다.
이자원은 칙사의 말을 끊고 물었다.
"명에서 나를 왕으로 봉하려 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
"그, 그렇습니다. 장군께서 조선 옛 임금의 아들이란 말이 있으니 낱낱이 알아보고, 정녕 사실이거든 인신과 고명을 내려 책봉하겠다는 황명이 계셨습니다."
장수들의 눈이 이자원을 향했다.
이자원이 맞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선 이자원의 인정만 있으면 황제가 그를 조선왕으로 공인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 듯 했다.
"장군께서는, 왕자가 맞으시나이까?"
명은 인조를 책봉하긴 하였으나 내부적으론 인조반정을 여전히 찬탈이라 규정하였고, 이는 명이 멸망할 때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그런 판이었으니 명나라 역시 명분상으로도 이것이 옳은 일.
이암은 이자원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지만 이자원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우리 왕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양주에 우리 일가가 있으니, 이미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다."
명목상으론 칙사에게 하는 말이었으나 실상 제장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제아무리 백전백승의 명장(名將)으로서 그 권위가 드높다하나 그 역시 옳은 명분과 결합했을 때 움직이는 것이다.
단순히 광해군의 아들이라는 것 정도로 저들이 가담할 확률은 반 정도에 불과할 터.
이자원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들어보니 나를 책봉하겠다는 말은 황제가 조령을 내려 결정한 사안도 아닐진데, 어찌 가도에 머물며 헛된 소문을 퍼뜨렸는가? 이는 필시 모함에 뜻을 품고 지껄인 말일 터다. 저자를 끌고 가서 가둬라."
"자, 장군!"
이자원의 단호한 말에 제장들은 한숨을 돌린 표정이었다.
칙사를 구금하는 것 역시 본래라면 반대했을 자들이 넘쳐났을 것이나, 사안이 사안이거니와 이미 송산에서의 싸움으로 명은 이빨빠진 호랑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지 오래.
제장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간자를 가둠은 옳은 일이었사오이다. 다만 이를 도성에 고하고 헛말에 관한 소명을 해야하지 않겠사오이까. 조정에 보내 엄히 심문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장계를 보내었소."
이자원의 말에 박철균의 표정이 묘해졌다.
칙사가 끌려나간 뒤로 군의가 한참 동안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도원수 대감."
한 사람이 뛰어들어와 말했다.
김충선을 보좌하던 항왜 김계충이었다.
"중군 영감께오서 대감을 청하시오이다."
"중군 영감이?"
김충선은 근래에 기력이 많이 떨어져 군의에도 참석치 않고 있었다.
군의로 바쁜 도원수를 청하는 것도 원래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나, 그는 임진왜란 때부터 공을 세워온 숙장인데다 훈국의 정예화에도 기여한 이였다.
이자원이 몸소 김충선의 처소로 향한 것은 그것을 감안한 예의였다.
과연 누워있는 김충선의 얼굴에선 여실히 생기(生氣)가 빠져나가 있었다.
의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치챌 정도로.
그러나 그 눈빛은 예전처럼 또렷했다.
김충선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도원수 대감."
"말씀하시오, 중군 영감."
김충선은 잠시 이자원의 얼굴을 쳐다보다, 이내 옛날 경상병사 허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에게는 반드시 전해야할 말이 있었다.
"청나라부터, 대명, 그리고 저 와자들까지······. 대감은 숱한 전장을 뛰어다니며 전공을 세우셨지요."
"그렇소이다."
김충선은 그때마다 경탄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끊임없이 혈겁(血劫)을 불러일으키는 자가, 모든 적이 사라졌을 때 끝내 칼날을 향할 곳은 어디일지.
그렇기에 김충선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 다하기 전, 이 말을 전해야 했다.
"멈출 수 있을 때 멈추시오."
"······."
이자원이 침묵하자 김충선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감이 피를 보는데 무감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저주에 불과하오. 그러니 더 보아야할 피가 있다면, 그만두시오."
"나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오."
이자원은 그리 대답했으나 김충선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대감은 이미 잃을 것이 없다 여기겠으나, 종래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외다."
이자원은 그 말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는 애써 침착하게 반박할 말을 골랐으나,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김충선의 눈에서 광채가 사라졌다.
사야가(沙也可)라는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 건너와 조선에 투항, 수십년간 갖은 싸움에 나서 숱한 전공을 세웠던 이의 최후였다.
이자원은 몇번이나 못다한 말을 내뱉으려다, 그냥 일어섰다.
'이미 때는 늦었다.'
이자원은 그저 침소를 떠났다.
그와 동시에 도성에서 선전관이 임금의 조서를 지니고 당도했다.
< 역적의 피 (1)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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