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산 전투 (3) >
- 타타탕!
총성이 공기를 찢고 울려퍼졌다.
- 히히힝!
"엇!"
좌충우돌하던 명군 기병들이 조선군의 총격에 맞아 쓰러지고, 그 뒤에 돌격해오던 명군 보기(步騎)가 뒤엉켰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군은 꾸역꾸역 밀려왔다.
"오늘 내로 이곳을 뚫어내야 한다! 어서 움직여라 이 자라 새끼들??."
- 퍽
한창 호령하던 군교의 머리에 바람구멍이 났다.
조총의 탄환이 꿰뚫고 지나간 것이다.
눈이 벌게져 어떻게든 조선군의 저지를 떨치려 하는 명군이었으나, 불행히도 그것은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었다.
"돌격!"
아마쿠사 시로가 외치자 키리시탄들은 제각기 매달고 있는 십자가에 입을 맞춘 뒤 일본도를 들고 뛰쳐나갔다.
"왜놈들이 몰려온다!"
"도대체 요서에 왜놈들이 왜 있는게야!"
기합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키리시탄군을 보며 명군들은 겁에 질려 도망갔다.
- 푹
"으, 으윽??."
시로의 일본도가, 낙마해 허리가 부러진 채 신음하는 명군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이미 전투 능력을 상실한 자마저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들은 신앙을 탄압하고 아기마저 죽이는 적그리스도들.
도저히 살려둬서는 안되는 자들이었다.
실상 명군들은 예수나 마리아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이미 선동의 효과는 단단히 먹혀 들어간지 오래였다.
패주하는 명군을 추격하는 것은 키리시탄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필가산 북쪽, 송산의 서쪽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들은 전공을 올리기 위해 도망가는 적의 등에 거듭 총탄을 날렸다.
"명나라 놈들이 마음이 급한 모양이오."
이사룡이 허응선을 보고 말했다.
어찌어찌 격퇴는 해냈지만, 요 며칠간 명군의 공세는 장난이 아니었다.
허응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제 밥줄을 빼앗겼으니 어련하겠나. 십만 대군이 사지에 갇힌 셈인데."
홍승주는 필가산을 되찾고 행산과의 연결을 회복하고자 수만 병력을 이리로 돌렸다.
그러나 이를 예상하고 있던 이자원은 바로 증원군을 파견해 포위를 단단히 유지했다.
그 결과 명군의 공격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전을 끝낸 이사룡이 방아쇠를 당겼다.
용두(龍頭)의 화승이 화약접시에 접촉하며, 초연과 함께 총탄을 뿜어냈다.
이사룡은 초관이면서도 조총을 잘 다루는 명포수인지라, 즉각 날아간 총탄은 어느 명장(明將)의 가슴을 맞추었다.
"커헉!"
장수는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월척이로세!"
이사룡은 휘파람을 휘익 불며 탄성을 질렀다.
"보아하니 수비(守備)나 파총(把摠) 쯤은 되는 모양인데. 저정도 되는 고관이 괜한 곳에 싸우러왔다가 죽어버렸군."
그 모습을 지켜본 허응선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수비와 파총은 명나라의 관직이다. 장수급을 잡아냈으니 아마 전공도 후히 셈하여지리라.
"조선이 명과 척질 일이 하나 없거늘, 공연한 의심으로 남의 나라를 치려 들었으니 불쌍할 것 하나 없소."
이사룡이 퉁명스레 답했다.
허응선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고 외쳤다.
"자아, 이제 추격을 멈추고 전열을 재정비해라!"
이곳의 조선군이 받은 명령은 오직 지키는 것 뿐.
명군을 깊숙이 추격하다간 괜히 큰코다칠 우려가 있다.
한편 중간중간 뚫린 곳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수크사하가 이끄는 구 팔기들이 정리하고 있을 터였다.
물샐 틈없이, 신속히 포위망을 구성한 조선군이었으니 홍승주가 내릴 결단은 하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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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망은 뚫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단단합니다."
"남은 군량은 열흘분이 전부입니다.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나이다."
홍승주는 절망했다.
아직 군량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사기는 그에 반비례해 뚝 떨어진 상태였다.
'병사들의 사기라도 충천했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포위를 뚫어내겠으나.'
조선군의 숫자는 명군보다 명백히 적다.
조금만 더 병력을 밀어넣어 일점(一點)을 돌파한다면, 그것으로 조선군의 책략은 무너진다.
하지만 그놈의 임경업이 문제였다.
적진까지 찾아와 '사실은 조선군이 칙사를 죽인게 아니다'라며 떠들어댄 통에 처음엔 장수들이, 그 소문이 퍼지자 병사들까지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승주는 조선군의 간계라며 일축했지만 명군에도 임경업을 아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알음알음 퍼진 그 이야기에 명군은 완전히 기가 꺾여버렸다.
전황이 한순간에 불리해진데다 출진의 명분마저 박살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소."
홍승주가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조대수가 묻자 홍승주가 말했다.
"최후의 싸움을 준비해야할 것이오."
"허면 송산을 버리고 후방으로 가시겠습니까?"
홍승주는 고개를 저었다.
전군을 기울여도 포위망을 뚫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병력이 얼마나 상할지 모른다.
어차피 이 병력이 없으면 송산을 탈출해봤자 끝장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 금주를 취할 것이오."
홍승주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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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는 신속히 움직였다.
전날까지 서쪽으로 나아가 행산과의 연결을 시도하던 명군은 새벽부터 소릉하를 넘어 금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 퍼퍼펑!
- 투쾅!
사주경계하던 조선군이 이를 발견하자마자, 소릉하를 사이에 두고 양군간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조선군 측이 너무 압도적입니다!"
사격제원을 표준화하여 요약한, 최초의 근대적 사표는 18세기 프랑스 군인 그리보발(Jean-Baptiste Vaquette de Gribeauval)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표는 적어도 이자원의 발명품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그간의 조선군 별파진은 화약의 양에 따라, 그리고 온도와 습도에 따라 사거리와 위력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무수히 많은 훈련과 실전 속에서 충분히 쌓인 데이터는 조선군의 포격 능력을 월등히 향상시켰다.
중구난방으로 쏘아지는 명군의 포와는 달리, 일제히 방열되어 포격을 가하는 조선군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되지 않는구나??."
거기다 조선은 그간 가도를 통해 산동의 초석을 수입했지만, 네덜란드에 개항하고부터는 상당한 양의 인도 초석도 가져올 수 있었으니 화약의 사용량 역시 압도적이었다.
조대수는 이대로 포격전만 계속하다간 답이 없다 판단, 보병을 진군시켰다.
1642년의 초입을 지나 이젠 막 초여름에 이르고 있지만, 북방인 소릉하의 물은 아직 차가웠다.
명군들은 다리의 감각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사방을 까맣게 메우며 넘어오기 시작했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사오이다."
살수대 대장 고발피의 말에 신류가 환도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선배 초관들은 자신만 내버려두고 후방으로 돌아가 명군을 차단하는데 가담했다.
그곳에선 지난 며칠간 한창 싸움이 벌어졌다고 들어 배가 아팠거늘, 이제 자신도 군공을 올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방포하라!"
포수들이 일제히 조총을 방포했다.
총탄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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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전에서 우위를 점한 조선군은 가만히 버티고 서서 명군을 수도 없이 쓰러뜨렸다.
소릉하를 넘어오면서 총탄에 맞아 죽은 자가 셀 수도 없었다.
"물러서지 마라! 도망치는 자는 목을 베겠다!"
보통의 명군이라면 이미 이 상황에서 와해되어 도망쳤겠지만, 그들은 달랐다.
우선 명이 보유한 최후의 정예군이기도 했으며 조대수가 직접 전장에 나서 병사들을 독려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같은 명군이라도 가도 놈들은 도망치기 바쁘더니."
박철균이 혀를 쯧 찼다.
청천강에서 청군을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그놈의 심세괴가 날려버린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병!"
박철균이 뒤쪽에 도열한 기병들을 보고 외쳤다.
그때였다.
박철균이 미처 뭐라 하기도 전에 황익이 이어 말했다.
"적들은 마치 한낱 짚더미에 불과하다! 모조리 베어버려라!"
그러면서 제가 제일 먼저 말을 달리는 것이 아닌가.
따지고보면 저는 훈국별장이고 박철균 자신은 정초별장이니 뭐라 할만한 계제는 못되었지만, 수만 기병과 맞붙던 저번 싸움에는 몸을 사리더니 완전히 표변한 모습에 박철균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맥이 빠져 명령했다.
"돌격하라!"
소릉하를 막 건너오는 명군들은 대부분 물길을 헤쳐오느라 그 기세를 잃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느닷없이 달려오는 기병 한무리와 맞닥뜨리자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학살당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군."
박철균이 혀를 쯧 차며 말했다.
확실히 명군은 수없이 죽어나가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도 사실.
이대로만 전황이 이어진다면 능히 버틸 수는 있겠지만, 박철균은 어딘가 뒤통수가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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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수 대감."
올라온 보고에 이자원은 등채를 슬며시 쥐었다.
이미 명군이 공세를 감행할 것은 넉넉히 예상해두었던 터.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적군이 우회를 했다고?"
송산의 북쪽에는 소릉하의 지류인 여아하(女兒河)가 흐른다.
그런데 명의 일군이 그곳을 건너 빙 돌아 금주의 북쪽으로 향하는 징후가 포착된 것이다.
"금주를 직공하려는 심산인가?"
지금 조선의 전 병력은 금주성에서 나와 송산의 명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명군에 비해 부족한 것이 조선군의 숫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명군이 이렇게 금주성에 입성하면 오히려 거점을 잃고 야지(野地)에 덩그러니 놓이는 것은 조선군측.
"지금 소릉하 쪽 전선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으니, 소수만 남겨놓고 금주를 지키기 위해 물러나는게 좋을 듯 하오이다."
이완이 말했다.
그러나 이자원은 고개를 저었다.
10만 대군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은 기세.
여기에서 자칫 군을 잘못 물렸다간 적군의 파도에 휩쓸릴지 모른다.
청나라와는 다른 의미로 까다로운 상대였다.
"역으로 소수 병력만 돌려 적을 격퇴해야겠소."
이자원이 선언했다.
그러자 유림이 물었다.
"적들의 수효가 많아 한 갈래 군사라 하더라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오이다. 어찌하실 작정이신지???"
"내가 직접 이끌 것이오."
이자원이 말했다.
그 말에 군막에 모인 장수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간 이자원이 스스로 일군을 이끌고 싸운 적은 많았지만, 지금 5만 대군을 거느린 도원수가 아닌가.
"대감께서는 이곳에서 중심을 잡아주셔야 하오이다. 차마 참변이라도 당한다면 군중의 혼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오이다."
이완의 외침에도 이자원은 단호했다.
그는 천지검을 차며 말했다.
"나는 이제까지 패한 적이 없소."
이어서 이자원은 유림에게 명령했다.
"부원수께서 군대의 지휘를 맡아주시오."
"명을 받들겠사오이다."
유림이 읍했다.
늙은 생강이 매운 법. 그 역시 노장(老將)이었으나 어엿한 숙장이었다.
적어도 이곳을 지키는 것은 문제없이 맡겨두어도 되리라.
"훈국군을 이끌고 가실 것이오이까?"
"아니오."
훈련도감은 조선군 화력의 핵심이었다.
별동대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빼낼 수는 없었다.
이자원은 막사를 나서며 물었다.
"의군은 준비되었는가?"
"예, 장군."
녹영병을 재조직해서 만든 요동 의군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들에게 있어 명나라는 단지 요동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는 적일 뿐.
오히려 청에게서 해방시켜주고, 적성 지역 취급하지도 않은 조선군이야말로 그들의 편이었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투구를 눌러쓴 소년, 원문필이 있었다.
"출진한다. 신속히 이동하라!"
팔도 도원수 이자원의 군기가 움직였다.
< 송산 전투 (3)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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