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대(事大) >
송시열은 두말하면 입아픈, 후대에 가장 유명한 모화주의자다.
그러나 그가 이 시대의 명나라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신이 삼가 생각하건대 만력 연간 이래로 황제가 잇따라 정무를 게을리하고 환관에게 권병을 맡긴 까닭에 기미년(己未年) 심하(深河)의 패전이 있었고, 중원이 쇠하여 끝내 요동을 잃었습니다."
송시열은 대비를 향해 말했다.
"또 명나라 학풍은 이단이 유행하고 예학은 주자의 뜻에 어긋나니 옳은 선비는 모두 명나라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나라부터 이어진 중화의 문물은 오랑캐의 침노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한말(漢末)의 퇴풍(頹風)처럼 안으로부터도 썩어가고 있으니 다시 일으키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명의 칙사가 죽은 건을 가지고 논의 중이거늘, 갑자기 명나라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이 이어지니 신하들은 모두 당황했다.
"실상을 따지자면 오로지 우리 조선만이 주나라의 예악과 문물을 간직하고 있을 뿐인데도, 그간 사대의 의리를 소중히 여겨 한치의 어긋남 없이 명을 상국으로 모셨사옵니다.
위로는 성상부터 아래로는 문무백관과 여염의 백성들까지 모두 그러하였으니, 어찌 칙사가 죽은 것이 우리나라의 탓이겠사옵니까? 변경이 어지러운데 칙사가 스스로 호위를 물리쳤기에 화란을 당한 것이옵니다.
헌데 천자는 지금 간신과 환관의 참소 따위에 휘둘려 요서를 통하여 군사를 내겠다 하니, 이것이 어찌 군신의 의리를 지켰다 할 수 있사옵니까."
예로부터 현명한 새는 가지를 가려앉는다 하였다.
누가 보아도 조선의 잘못이 아니라 숭정제의 의심암귀로 비롯된 일임이 분명하거늘, 어찌 이리 의견이 분분하단 말인가.
"인조대왕께서는 도원수가 황태극을 격살하였을 때 망설임없이 항전을 결의하셨고, 고종대왕께서는 다시 한치의 흔들림없이 북벌을 천명하셨사옵니다.
군신이 한마음되어 싸웠기에 강성한 오랑캐도 물리칠 수 있었거늘, 어찌하여 오늘날 자전께서는 쉬이 결단치 못하시고 말과 붓으로 간신의 참언을 이기려 하시나이까.
자전께선 고종의 유조를 받들고 어린 임금을 대신하여 국사를 청단하는 분이니, 마땅히 삼군에 영을 내려 싸움을 독려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 송시열이 명나라와 싸워야 한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나서자 신하들은 놀랐다.
김집의 제자로 관직에 나서기 전부터 예학에 밝기로 이름난 이였거늘 이런 과격한 주장을 할줄은 몰랐던 것이다.
곧 대비가 입을 열어 물었다.
"우리나라는 개국 이래로 명나라를 어버이처럼 섬겨왔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이를 폐할 수 있겠소?"
"신도 모화의 그윽한 뜻을 알고 있사온데 어찌 사대의 예법 자체를 저버리라 하겠사옵니까. 다만 썩은 물이 스스로 맑아질 수 없듯, 작금의 환란과 퇴풍도 바로잡아주는 이가 있어야 다시금 아름다운 옛 모습을 찾을 것이옵니다.
마침 우리 조선이야말로 중화의 유풍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으니, 난적들을 토벌하고 천자를 보필하여 장차 어지러운 천하를 수습하여야 하옵니다! 그것이 진정한 충의가 아니겠사옵니까?"
송시열의 말에 이어 다시 여러 사람이 나섰다.
"상하가 일치단결하여 싸워도 이기기가 쉽지 않거늘, 하물며 이미 황제가 군을 일으켰는데 조정에서 계속 탁상 위의 논변을 펼치는 것은 종사에 죄짓는 바입니다. 대비께서 결단하여 주소서!"
"결단하여 주소서!"
무신들이 일제히 치고 나가자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설마 칙사가 죽은 것 가지고 황제가 전쟁까지 일으킬줄은 몰랐던 문신들이니, 그들 역시 할말이 없었다.
'황제가 미친게 아닌가.'
평소라면 감히 불경하게 이런 생각을 품지도 못했을 그들이었으나, 조선 조정이 자신을 기만했다 여긴 숭정제가 문답무용으로 군사를 일으켰으니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원숭환을 처형해버린 숭정제였으니, 그 의심병이 드디어 조선을 향했다 생각한 것이다.
김육은 침통하게 눈을 감았다.
최명길과 신경진, 강석기의 삼정승마저 조정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대비에게 간했다.
"대비 마마, 조정의 뜻이 한데 모였으니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대비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것인가.
그녀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속히 도원수에게 연통하도록 하시오. 적이 진군해오면 반드시 싸워 물리치라고."
===
"결국 대국과 싸움을 하게 되었구려!"
봉림대군은 탄식했다.
"대감께서는 전쟁에 반대하시는 것이오이까?"
오랜만에 대군의 사저를 찾은 송시열이 묻자 봉림대군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조정의 결단이 내려졌는데 어찌 신하로서 반대하겠소. 천조가 상당히 그릇된 결정을 내리기는 하였소."
봉림대군 이호는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벌 때부터 명의 태도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마저 당당히 오랑캐를 꾸짖다 순절(殉節)하신 인조대왕을 의심하는 것도 그렇고, 칙사의 죽음을 조선 소행으로 의심하는 것도 그랬다.
허나 정말 그 명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
"진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오이까?"
"그럴리가 있겠소? 나는 어영청의 도제조를 맡았던 몸. 조선군의 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오."
어영청만 해도 명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거늘, 훈련도감이면 더할 것이다.
"하지만 대국은 대국. 그렇지 않아도 조선의 사정은 피폐하거늘 대국이 다시 내부를 정비하여 10만, 20만을 보내면 감당할 수가 있겠소?"
봉림대군이 염려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명과 싸워 전투에서 이길 수는 있어도 과연 중원을 정복할 수는 있겠는가.
조선은 천하의 변두리요,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 아닌가.
몇번은 이길 수 있어도 언젠가는 재앙이 닥치리라.
"소관은 수만리 바다를 건너 남만으로 가보았사오이다."
그러자 송시열이 조용히 말했다.
"명은 확실히 대국이지만, 천하의 중심은 아니었지요. 중원보다 몇배 넓은 바다를 건너 이곳 조선까지 배를 보낼 수 있는 나라가 즐비했사오이다."
"음."
봉림대군도 그정도는 알고 있었다.
단종의 복권 후 그는 완전히 군권을 내놓고 물러나 남만사에 드나드는 것으로 소일했다.
사대부가, 그것도 임금의 지친이 절에 다닌다는 것에 여러가지 비판이 있었지만, 오히려 남의 의심을 피하려면 이 편이 낫지 않은가.
여하튼 부인 장씨가 남만교에 치성을 드리는 동안 그는 예수회 신부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 흥미있게 들은 것이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였다.
둥근 땅에 중심이 어디 있겠는가.
"그 중 조선과 교역하는 홀란도는 나라가 작으나 군사가 강하고, 상업이 발달하여 흥성하였사오이다. 그런 까닭에 서반아라는 대국을 상대로 백전백승하여 지금은 독립하였지요."
송시열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은 까닭으로, 잠시 태평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차로는 배겨나기 힘들 것이니, 종래에는 인접한 나라의 침노를 받아 몰락할 것입니다."
"남만은 춘추시대와 같다더니 실로 그러하구려."
"조선의 상황도 다르지 않겠지요."
송시열은 봉림대군을 바라보았다.
그는 남만에 다녀오는 동안, 그가 본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나라와 사람들을 보았다.
개중에는 도덕을 알지 못하는 토인들도 있었고, 세력은 흥성하나 마구 사치하고 음란한 자들도 있었으며, 성리학은 아니지만 나름의 질서와 사상을 갖추고 살아가는 자들도 있었다.
송시열과 송준길은 그 모든 것을 관찰하고 혀를 찼으나, 한가지 사실만은 똑똑히 꺠우칠 수 있었다.
명은 천하의 중심이 아니다.
오로지 둥근 땅의 한 조각일 뿐.
물론 지리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문물로서 사방 오랑캐를 교화하였기에 중국(中國)을 자처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양명학 같은 폐단에 물든 그들이 조선보다 나을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조선이 중심이 되어서 안될 이유가 있을까.
송시열은 봉림대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원으로 나아가야 하오이다."
===
「아버님 전 상서.
조선의 기세가 강맹하고 여진마저 그 발 아래 놓였으니 어찌 한갓 10만 군대로 금주와 요동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조선인들은 여느 오랑캐와 달라 예도에 밝고 중화를 존숭합니다. 그러기에 누대 황제들께서도 순이(順夷)라 부르며 특별히 취급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천자께서는 간신에 눈이 가려져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시니, 이자원 장군은 조만간 청군측(淸君側, 군주의 측근을 청소함)의 대의를 내세워 정사를 다시 바른 곳으로 돌리고자 하십니다.
저는 이미 이자원 장군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창칼을 내려놓고 대의에 함께 하신다면 이자원 장군 또한 아버님을 친부처럼 모실 것이니, 어찌 집안과 후사를 보전할 수 있는 좋은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모쪼록 영단을 내려주십시오.」
영원총병 오양은 얼빠진 표정으로 오삼계의 서찰을 내려놓았다.
"도련님께서 무어라 하십니까?"
가도 부총병까지 올라 일군을 이끌고 있는 오삼계지만 가신들에게는 여전히 도련님이었다.
그들의 물음에 오양은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쓸었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지만 어찌 이리 뻔뻔하단 말이냐?'
서찰에 적혀 있는 것은 분명한 아들의 필적.
보아하니 아예 저쪽에 붙은게 분명해보였다.
이자원이 아직 조선의 일개 군관에 불과하던 시절, 그에게 아들을 맡긴 것이 실수였다.
그 덕에 숱한 전공을 세우고 청을 멸망시킨 공신이 되었지만 졸지에 역적패당에 가담해버렸으니.
오양은 서찰을 탁 덮고, 내용을 궁금해하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삼계는 조선군에게 억류당해있다고 한다! 함부로 몸을 빼내기 힘들어 저들의 간계에 맞춰주고 있는 중이니 힘껏 동이를 쳐부수어 삼계를 구하자!"
"예, 총병 대인!"
오양은 영원성에 입성하는 조대수군을 내려다 보았다.
홍승주와 조대수는 반란 진압을 위해 흩어진 군대를 끌어모아, 보병 10만에 기병 4만을 이끌고 오고 있다 들었다.
북벌에 참여한 조선군은 5만을 넘지 않는다 했으니 혹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오양은 당장은 아들의 간절한 편지를 무시하기로 했다.
저쪽에 찰싹 달라붙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나중에 조선군을 패퇴시키고 구해주면 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진다면······
'그때는 삼계가 나를 구해주겠지.'
오양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아들의 편지를 화로에 던졌다.
===
홍승주와 조대수의 명군은 영원에 도달했다.
그 소식이 금주를 거쳐 심양에까지 닿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금주의 부총병 심기원이 아들을 보내왔사오이다."
"무슨 일인가?"
심기원은 벌써 몇번째 사람을 보내 이자원에게 간청했다.
"아버님께서는 언제쯤 구원군을 보내실지 여쭈셨사오이다. 아무래도 금주의 민심 역시 그리 좋지는 않은지라······."
심석경(沈碩慶)의 말에 이자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심은 핑계고, 심기원이 이끄는 반쪽짜리 가도군으로는 14만에 달하는 명군과 맞서기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하는 말일 것이리라.
그러니 하루가 멀다하고 이자원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정에서는 소식이 없는가?"
이자원이 묻자 박철균이 답했다.
"아직까지 없사오이다."
이자원은 서안을 톡톡 두들겼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병력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전부다. 기왕이면 조정의 추인을 받아내고 싶었지만······.'
지금쯤이면 조정도 상황을 파악했을 터.
그럼에도 답이 없다는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뜻인가.
그때였다.
"도원수 대감!"
황급히 달려온 파발이 이자원을 알현하기를 청했다.
"조정에서 장군께 이것을 전하라 하셨사오이다!"
조서를 받든 이자원은 그 내용을 확인한 뒤 등채로 서안을 내리찍었다.
"전군은 출진 준비를 하라! 조정의 명이 내려왔다!"
드디어 명과의 싸움이 결정되었다.
내려진 군령에 부하들이 물었다.
"목적지는 어디오이까?"
"송산(松山)."
이자원이 말했다.
"그곳에서 적을 맞는다."
도원수의 명이 떨어지자 훈련도감, 어영청, 정초군의 삼군문(三軍門)과, 서북군, 가도군과 녹영, 그리고 키리시탄과 만주군에 이르기까지.
수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요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자원이 말했다.
"원문필을 불러와라."
< 사대(事大) > 끝
ⓒ 핏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