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청종언 (3) >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나라를 세우셨는데, 곧 북부여에서 나신 천제의 아드님이고 그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문은 지금 시점에선 나름 거칠게 해석될지언정, 한가지는 명확하게 밝혀내고 있었다.
이것은 금나라 황제의 비석이 아니다.
옛날 고구려가 만주를 아우르던 시절,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인 것이다.
"이미 조선이 청을 격파하였는데 이 비석이 발견되었으니 더없이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실로 하늘의 안배가 아니겠사오이까."
"광개토왕이 싸우면서 진 적이 없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이만한 성세를 구가했을줄은 몰랐사오이다."
이자원을 따라나선 조선 장졸들이 수군거렸다.
그들도 옛날 고구려의 대왕이 이만한 비석을 세우고 요동을 점유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보였다.
승전에 이어 민족 의식이 한껏 고양된 조선 장졸들과 달리, 쇼서와 청의 유신들은 멍하니 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나라 황제의 비석이라 하여 애통하고, 그 와중에도 옛적에 이만치 큰 비석을 세웠다는 점에 나름 뿌듯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건만 실상 조선인의 조상들이 세운 비석이란 말인가.
"하, 하······."
쇼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생 동안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지만 이건 실로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자원은 사방의 조선군을 둘러보며 외쳤다.
"광개토왕은 웅위(雄偉)하고 특출한 재주가 있어, 능히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취하였다. 광개토라는 시호도 땅을 크게 얻은 이유로 올려진 것이니, 마땅히 우리가 요동에 나아와 싸움을 할 때에 신령께서 도우셨음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우리 임금께서 광개토대왕 같은 위업을 이루신 것이 아니겠는가."
어린 왕 이백이 실상 북벌에 기여한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장수가 공을 세운 바는 모두 임금의 덕으로 돌리는 것이 옳으니 그리 말할 뿐이었다.
이자원은 이어서 말했다.
"마땅히 내가 부절을 받은 팔도 도원수로서 제사를 아니 지낼수가 없으니, 모두 준비하도록 하라."
조선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임금에 대하여 모두 제사를 지냈다.
남한산성에 갇혀 있을 때도 인조가 신하를 보내 온조에게 제사를 올렸지 않은가.
북벌의 성공에 대한 감사를 드리기 위해 제사를 준비하는 조선군을 보며 쇼서는 허탈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이자원이 말했다.
"청주도 이리 와서 제주(祭酒)를 올리도록 하라."
나라가 망한 것도 모자라 남의 조상에게 술까지 올리라니.
쇼서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속은 굴욕감에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부할 용기는 없었다.
쇼서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본 공부승정 뭉가투(孟阿圖)가 외쳤다.
"한께서 비록 망국의 임금이라 하나 절하고 술을 따르게 하는 것은 장군이 쉬이 명할 바가 아닙니다. 어찌 한께 이런 치욕을 준다는 말입니까."
쇼서는 모욕감에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이자원은 뭉가투를 돌아보며 태연히 물었다.
"이것을 치욕이라 생각하는가?"
"당연한 일이 아니외까!"
요동을 평정한 광개토왕의 비석에 청 황제가 직접 술을 올리게 한 것은, 아예 크나큰 모욕을 줘서 기를 꺾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모든 만주족 조신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대들은 금사(金史)도 읽지 못하였소?"
하지만 그때 이암이 나서서 말했다.
"금 태조는 발해인 양복(梁福)과 알답자(斡答剌)에게 여진과 발해가 본시 한 집안이라 밝히었고, 그 발해는 다시 옛 고려를 이은 나라요. 고구려는 말갈을 아울렀으니 실상 그대들의 한 조상이나 다름이 없소. 자손이 조상에게 술을 올리는 것이 무슨 놈의 치욕이란 말이오?"
이암의 말에 뭉가투가 멈칫했다.
청은 금을 이었고, 금은 발해를 이었으며 발해는 고구려를 이었으니 지금 술을 따르는 것도 치욕이 아니라는 논리에 할말을 잊었던 것이다.
"허, 허면 진정 그런 뜻으로 한께 술을 올리라 한 것입니까?"
뭉가투의 물음에 쇼서도 눈물이 맺힌 채로 이자원을 쳐다보았다.
이것이 이자원과 조선이 자신을 모욕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청이 고구려로부터 이어지는 한 갈래이기 때문인 것일까.
이런 이야기는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진실 여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쇼서로서는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물론이다. 이미 요동이 평정되었거늘 어찌 괜한 모욕을 가하겠는가."
이자원의 말에 쇼서는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래, 나는 조선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술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본래 우리의 뿌리를 향해 제주를 올리는 것일뿐.'
6.25 전쟁 당시 미군 포로들은 사탕 하나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독후감을 썼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 생각하게 되었다던가.
쇼서는 말없이 절을 올리는 와중에도 그렇게 맹렬히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절을 올리던 만주족 유신들 가운데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자원의 곁에 서있던 수크사하가 슬쩍 귀띔했다.
"울라부의 족주(族主)입니다."
울음을 터뜨린 남자는 이자원을 보고 외쳤다.
"우리 울라나라 씨의 조상은 완안 씨로, 곧 대금(大金)의 황성이오. 대금 시조황제(始祖皇帝)는 본디 고려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오늘 장군의 말씀을 들으니 울음을 감출 수가 없소."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는 옛 문헌에서 모두 한반도 출신으로 일컫고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케케묵은 족보를 파헤치는 것은 무언가 의미가 있으리라.
"또한 청나라의 조상인 택왕(澤王, 먼터무)도 조선의 번리(藩籬)였소. 청이 조선을 친 것은 부모를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고 배기겠소?"
이자원은 그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금나라 황실의 후예를 자칭하며 조선과의 친연성을 강조하고, 조선과의 전쟁 책임은 청 황실인 아이신기오로 씨에게 떠넘긴다.
청은 이미 망해버렸으니, 과거 명이나 조선을 등에 업기 위해 벌이던 충성 경쟁이 다시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엄연히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 만주족들이지만, 이자원이 새삼 친연 관계를 강조하자 어떻게든 끈을 만들어보려 나선 것이다.
부족의 이익을 위해서든 아니면 망국의 한을 달래기 위해서든, 조만간 만주족은 스스로를 조선인의 곁가지로 자칭하고 나설 것이다.
모든 것이 이자원이 의도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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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군 장졸들에게도 광개토대왕릉비의 발견은 하나의 강력한 시그널이었다.
도원수가 직접 비석에 제사까지 지내고 나자 그들은 당연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가 요동을 다스리는 것인가?"
"원래 우리 조상들이 다스리던 땅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해왔던 고생은 다 무엇이었겠는가."
"햐, 오면서 보니 너른 들이 끝도 없던데 농사 짓기는 좋겠군."
조선군이 삼삼오오 모이면 그 이야기 뿐이었다.
그러나 이 원정의 목적을 알만큼 아는 고관들의 입장은 달랐다.
"도원수 대감께서는 월권을 하고 계시오이다."
임경업은 강하게 소리쳤다.
이솔태를 사면해준거야 요양의 민심을 다독거리기 위해 그랬다 치자.
하지만 인조대왕의 원수이자 천조의 대적인 여진인들을 모조리 쓸어내지 않고, 오히려 본래 조상은 하나 운운하다니.
"그저 옛 역사를 상고해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요. 그럼 청북방어사는 저 야인들을 모조리 죽이자는 말이오?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오?"
"그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요심에서는 여진인들을 내쫓고 인조대왕의 죽음에 관계된 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야 하오이다."
"물론 청주와 그 일가는 도성으로 보내 조정의 처분에 맡길 것이오."
이자원의 말에도 임경업은 물러서지 않았다.
"누구의 명도 받지 않고 멋대로 요동에서 일을 벌이고 계시니, 이것이 알려지면 천조의 심기가 반드시 불편할 것이오이다."
"나는 이미 군을 일으키기 전에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말하였소."
이자원이 말했다.
임경업은 그러나 답답한 표정이었다.
북벌의 목적은 인조대왕의 원수를 갚는 것이었으니, 관련된 자들을 남김없이 압송해 물러나면 될 일이 아닌가.
어째서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조정의 중론이 모아졌는데 설마······.'
도성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숭정제의 칙서가 날아들고 있다 들었다.
황제가 이리 신경을 쓰는 사안이니 조정으로서도 감히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이자원은 임경업이 그러거나 말거나 수크사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항복한 종실 중에서 귀영개(貴永介, 다이샨)만 나를 맞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가?"
"왕께서는 중풍에 걸려 시름하신지 오래입니다. 거동하기 힘드신지라 장군을 뵙지 못하신 것입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이자원이 말했다.
"하찮은 핑계로군. 좋다, 내가 찾을 터이니 미리 전해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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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은 승승장구하는 북벌군 소식에 계속 분위기가 들떠있었다.
그러다 오늘 이자원의 장계까지 도착하니 그 기쁨은 절정에 달했다.
"도원수가 치계하기를, 드디어 심양을 함락하고 청주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오. 이 어찌 천지신명이 아니도운 결과겠소?"
대비 강씨는 감탄하며 말했다.
"허면 이제 전쟁이 끝난 것이옵니까?"
수십년간 이어진 전란의 시대가 드디어 끝났다.
조신들은 상하를 가릴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천하는 다시 안정을 찾고, 평화로웠던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천조에도 어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할 것이옵니다."
우의정 강석기가 나서서 말했다.
북벌의 성공에도 조정에선 요동을 돌려주지 않을 수가 없다는 여론이 대세였다.
이자원이 청군과 싸우는 동안 숭정제는 여러 차례 칙서를 내려 땅을 돌려받는 것을 확답받고자 했다.
흔쾌히 유군(幼君)을 책봉해준 은혜를 기억하라는 명분론적 압박에다, 이제 반란의 불길이 차츰 잦아들어가고 있으며, 명의 국세도 빠르게 회복 중이라는 암시까지 더해진 때문이었다.
황제가 그리 얘기했으니 조선으로서는 황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명이 그렇게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면 병자호란 직후 그러했듯, 백성을 구휼할 재물을 청해보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주로 김육이 꺼낸 이야기였지만.
명에 보낼 사신까지 정하고 나자 대비는 국사를 파하고 물러났다.
그녀에게는 다른 해야할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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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는 회임을 하고부터는 굳이 궁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거동이 이전보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언니인 대비가 특별히 명을 내린고로 실로 오랜만에 입궐한 터였다.
모처럼 동기간 담소를 나눌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혼인, 이라니요."
그러나 대비가 꺼낸 말은 영특한 그녀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아직 안세의 나이가 열살도 채 되지 않았사온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들을 혼인을 시키다니.
난세가 지속되며 조혼이 많아졌다지만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나도 조금 더 미루어두었으면 좋았겠지만은, 상황이 이러하니 조금 이르게 말하는 것이니라."
대비가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대비는 동생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며 외쳤다.
"들어오게."
문이 스르르 열리며, 여인 한명이 들어왔다.
화사하고 어여쁜 미인이었지만, 눈매가 위로 치고올라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유주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인조대왕께서 남기신 옹주가 하나 있네. 이 사람은 그 아이의 친모일세. 그간 내명부에 있으면서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었지."
대비가 말했다.
"그렇지 않은가, 조 소용(昭容)."
"과찬이시옵니다, 대비 마마."
소용 조씨가 살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유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대청종언 (3)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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