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145화 (145/213)

< 대청종언 (2) >

"다탁(多鐸)의 목을 베어왔사오이다."

유림과 김충선은 심양에서 도르곤이 패하고 나자 곧장 행동에 나섰다.

도도가 이끄는 정백기는 필사의 각오로 조선군에 맞섰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있었다.

부지런히 후방을 찌르고 다니던 도도였으나 상황이 완전히 정리된 상황에서 더이상 버틸 수는 없었다.

조선의 숙장인 유림과 김충선이 대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서자 끝내 도도는 패해 죽었다.

"최후는 어떠하던가."

"제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사오이다. 몸을 숨기지도 않고 돌격을 감행하더이다."

이자원은 조용히 함을 덮었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은 심양의 황궁이었다.

쇼서를 데리고 함께 심양성으로 귀환한 것이다.

이자원은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황제가 계속 황궁에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지만, 실상은 가둬놓고 감시하기 위한 것.

따라서 이자원과 조선군 장수들은 정전 옆 십왕정에 머물며 요동을 통치하고 있었다.

"장군."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요양에 머물고 있던 이솔태였다.

"들어오라."

그간 이솔태가 백방으로 뛰어다닌 덕에 후방의 민심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었다.

아낌없이 사재를 풀고, 요양을 구한 명성을 이용해 조선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거기에 아울러 한인 사족들의 민심도 수렴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 그가 심양까지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오면서 들으니 장군께서 만주 귀족들의 창고를 열어 심양을 위무하셨다지요."

이솔태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

부족한 물자를 보충하고 심양성의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자원은 창고에 봉해져있던 만주 귀족들의 물자를 대대적으로 풀었다.

포목과 식량, 건초와 장작에 이르기까지 전부 심양 백성들에게 베풀자 조선군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그러워졌고, 반면 만주족을 향한 증오는 심해졌다.

"여진 오랑캐놈들! 우리는 굶어가고 있는데 제놈들만 호의호식했단 말이야!"

"저런 놈들을 위해 전쟁에 끌려갔다니!"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이 될수록 힘을 가진 조선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솔태가 찾아온 것도 그 떄문이었다.

"여진인을 더이상 요양과 심양에 발을 붙일 수 없게 하여주십시오. 본래 이곳은 한족의 땅이 아니었습니까."

만주의 중심은 요심 일대다.

후금이 이곳을 점령한 후 만주족들은 대거 이곳으로 이주했는데, 더는 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쫓겨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최소한 한인 사족들은 그리 믿었다.

"한족의 땅이라. 연원을 따지자면 이곳은 옛 조선과 고려로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는가."

이자원의 서늘한 시선에 이솔태는 당황했다.

"하, 하지만 민심을 살펴주십시오. 수십년간 오랑캐의 치세가 끝나고 모두 '광복(光復)'의 두 글자를 내걸고 환호하는데 어찌 만주족과 한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수 있나이까."

"그대들은 애초에 바로 그 오랑캐의 다스림에 순응하는 자들이 아니었던가."

얕은 속셈이다.

자신들 머리 위에 있던 만주 귀족들이 세를 잃었으니 그들을 몰아내고 요양과 심양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속셈.

애초에 계속 만주족에게 붙어 권세를 유지하다 배신한 한인 사족들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일이었고, 조선에 있어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통치를 용이케하자면 계속 만주족과 한족이 갈등하는 것이 옳았다.

이자원이 단호히 거절하자 이솔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어서 이자원이 말했다.

"한인들 가운데도 이성량의 집안처럼 본래 고려 출신이었던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희망한다면 조선인의 신분을 회복하게 해주지."

이솔태의 표정이 굳었다.

확실히 원나라 시절 요동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무척 많았고, 대부분 한족으로 흡수되었으되 조상이 반도 출신이라는 희미한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성종대의 양성지 같은 이는 아예 3할이 이런 고려, 조선 출신이라고 기록하였으니 이런 명을 내려놓으면 아마 본적을 회복하려 하는 이들이 넘쳐날 것이다.

"이제 조선이 요동을 점령했으니 그자들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대의 집안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요동의 조선인과 한인, 그리고 만주인.

궁극적으로는 이들 모두가 뭉쳐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조선에 흡수되게 하는 것이 이자원의 전략이었다.

이솔태는 결국 이자원을 더 설득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섰다.

조선군 장수들은 그런 이솔태를 보다 이자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여진족은 국초부터의 근심이고, 불공대천의 원수가 아닌가. 게다가 구태여 요동 조선인의 뿌리를 찾게 하는 이유도······.'

임경업은 생각을 지워버린 후 이자원에게 물었다.

"슬슬 요동의 병력을 감축하고 철군해야하지 않겠사오이까?"

전쟁은 끝났지만 이 군세를 계속 유지할수록 조선의 부담은 커진다.

청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렸으니 이만 군대를 거두고 물러남이 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자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군대를 이끌고 도망친 상지신 같은 자도 있고, 요동의 정세가 불안해 함부로 전군을 빼낼 수는 없소. 우선 삼남군부터 내려보내겠소."

삼남군은 직업군인이 아니라 북벌을 위해 끌어모은 속오군이다.

머릿수는 북벌군의 반 가까이 되는 반면 정예함은 크게 떨어졌으니, 굳이 요동에 머물게 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벌써 시간은 1641년 말. 겨울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가에는 손이 많이 필요했다.

"그럼 소관이 이끌고 가겠사오이다."

줄곧 삼남군의 통솔을 맡아오던 김준룡이 말했다.

그러나 이자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가게 하고 감사께서는 남아주시오."

이자원은 김준룡을 붙잡았다.

도원수 겸 병조판서 겸 삼군부제조 겸 훈련대장이라는 전무후무한 병권을 쥐고 있으니만큼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허면 금주의 심 부총병을 불러들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제 청도 평정이 되었으니 요동으로 물러나게 하면 될 것인데······."

심기원에게 명을 내려 서쪽에서 군사를 몰아오게 했면 일은 훨씬 쉬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자원은 그리 하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몽골과도 통하는 요지이니 혹시 모를 적군의 침입에 대비해야한다 했지만 진상은 달랐다.

'심기원은 금주에서 빠지면 안된다.'

금주는 만주에서 중원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중원이 만주에 손을 뻗는 통로기도 하다.

결코 열어둘 수 없었다.

그러니 이자원은 임경업을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임경업의 입을 다물게 한 그는 남은 일로 신경을 돌렸다.

"준비는 끝났는가?"

이자원이 옆에서 붓을 놀리던 이암을 보고 물었다.

"예, 장군. 지금 결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암의 말에 이자원은 벌떡 일어서서 명령했다.

"청주(淸主)를 보러 가겠다."

잠시 뒤 쇼서와 청의 유신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이자원이 입을 열었다..

"여러 군졸들이 내게 알려오기로 남쪽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 하니, 곧 조선과 청이 한 집안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하늘의 뜻임이 틀림없다. 나와 청주가 그리로 행차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자원의 명을 감히 누가 거역하겠는가.

쇼서는 어두운 얼굴로 이자원의 뒤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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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불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호거는 선방했다.

바투르가 이끄는 4오이라트 연합은 말 그대로 연합군이었고, 먼 곳에서 원정하여 크게 지쳐있었다.

서몽골에서 일대 회전을 벌여 크게 이긴 호거였으나 수도인 응창이 도르곤에게 털린 후부터 전세는 반전되었다.

대칸 에제이가 사로잡히고 응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기는 바닥을 쳤고, 휘하의 몽골군이 이반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호거군은 퇴각하던 중 오이라트군에게 참패, 병력은 뿔뿔이 흩어졌다.

구왈기야 오보이와 허서리 소닌은 한갈래 군사만 거느리고 마치 도적떼와 같은 모습으로 몽골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본대는 어디쯤 있을꼬. 아니, 지금은 남아있기는 할런지."

오보이가 투덜거렸지만 소닌은 말이 없었다.

호거가 몰락한 후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그였다.

처음에는 무언가 생각이 있겠지 싶어 놔두던 오보이는 이제 와선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허서리 공, 이대로 가면 우리에게 방법이 있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한가지 밖에 없소."

소닌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금 묵던에 의탁하는 수밖에."

호거는 스스로를 만주의 한이라 일컬었으므로 쇼서의 청나라를 가리켜 묵던의 위조(僞朝)로 칭했다.

즉 소닌의 말은 다시 청나라에 귀부하자는 뜻이었다.

"비록 숙친왕 밑에 있었다 하나 묵던의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할 터이니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가면 기꺼이 받아줄 것이오."

몽골에 계속 머물러있어봤자 잘해봤자 도적이나 될 것이고, 재수없으면 몽골 토후들에게 토벌당하는 꼴이리라.

그러니 청에 가서 몸이라도 건지자는 것이 소닌의 답이었다.

오보이와 소닌은 그리하여 심양을 향해 먼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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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원의 목적지는 바로 집안(集安)이었다.

압록강에 맞닿은 지방으로, 요심에 비하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곳이었기에 쇼서는 이런 곳으로 자신을 끌고 온 것이 의아했다.

오색창연한 무지개가 피었으니 상서로운 징조 운운하긴 했으나, 무지개에 언제든 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자원은 천연덕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내가 이곳에 와보니 과연 예사롭지가 않다. 인근에 옛 사람의 능이라도 있는가."

쇼서가 보기엔 그냥 벌판에 불과했기에 헛소리라 여겼으나, 누군가가 냉큼 나서서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근처에 금나라 황제의 비석이 있다 하오이다."

"그리로 가보자."

이자원의 말머리가 그리로 향하고, 쇼서의 어가가 다시 뒤를 따랐다.

정말 안내를 받아 가보니 큰 석비가 하나 세워져있었다.

그 웅장함에 사람들은 다들 놀랐다.

이자원은 말에서 내렸고, 쇼서 또한 어가에서 내려 비석으로 다가갔다.

'우리 만주인들이 이런 큰 비석을 세웠다니.'

그는 비통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어 비석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구었다.

'청은 금을 이은 나라이니 바로 한 집안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느 황제이신지는 모르겠으나 모쪼록 자손을 굽어살펴주십시오.'

그때였다.

쇼서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자원이 말했다.

"전해지기로는 금나라의 비석이나, 진짜 그러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고증해보아야 할 터인데, 누구 글에 밝은 사람이 있는가?"

"소인이 학문을 하면서 금석문도 약간 읽은 바가 있습니다."

이자원의 말에 이암이 나서서 답했다.

후대의 추사 김정희 같은 사람이 금석학자로 유명하지만, 본래 금석학은 원래 중국에서 발생한 학문이다.

송대 이후에는 이미 독립된 학문으로 존재하였고, 특히 이암의 고향인 하남은 후한 시대 화상석이 많았으므로 그 제자(題字)를 분석하여 학문을 뽐내기도 했다.

이암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자 이자원은 명령했다.

"누가 사다리를 가져와서 탁본을 떠보라!"

그 말에 군졸들이 6m가 넘는 비석에 일사불란하게 달라붙었다.

쇼서와 만주족 유신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대청종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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