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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130화 (130/213)

< 수싸움 >

도발을 벌이다 진노를 사 하옥된 잉굴다이와 사절단이었으나, 그 밖의 위해는 아직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고신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라 옥 안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태평관(太平館)이나 남별궁(南別宮)이라면 몰라도, 최소한 사신이 머물만한 곳은 내주었으면 했습니다만."

누군가 씁쓸하게 그런 말을 던졌다.

인조 시기 후금은 조선에 명나라 사신과 같은 관례를 요구하였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옛 병조의 건물을 내어 유숙케 하였지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후금의 기세를 엿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숫제 하옥되는 신세가 되었으니 실로 격세지감이 아닌가.

"배부른 소리 하지 말게.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판인데."

"사신을 죽이지 않는 것은 고금의 법도인데 설마 저들이 그리하겠습니까?"

"······."

사절단은 잉굴다이를 원망스런 얼굴로 쳐다보았다.

잉굴다이는 명령을 충실히 따른 죄밖에 없었지만 사절단의 원망을 묵묵히 감수해야만 했다.

"그 흉포한 오랑캐들도 이리 붙잡아놓으니 독 안에 든 새앙쥐 신세가 아닌가."

"오랑캐들은 호랑이처럼 기운이 세다던데 파옥(破獄) 쯤 하지 않고 무얼하는고."

한편 바깥에서 옥리들이 조선말로 던지는 은근한 조롱에 정명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절단은 무어라 하는지 궁금한 눈치였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채근하여 통역시켜보았자 정명수만 곤란할 뿐, 십중팔구 조롱이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장군, 대왕께서 따로이 더 남기신 말은 없으셨습니까?"

부하의 은근한 물음에 잉굴다이는 고개를 저었다.

도르곤의 냉혹한 성정이라면 말만 하지 않을 뿐 자신들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한때 잉굴다이는 회한은 없었다.

"태종께서 붕어하실 때 함께 죽지 못했으니 이미 죄인이다. 이대로 죽는다 하여도 억울할 것이 무어가 있겠는가?"

부하들은 몹시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잉굴다이는 그것을 모른체했다.

"호대장(胡大將)은 나오시오."

옥리의 말에 잉굴다이는 몸을 일으켰다.

부하들은 끌려가 죽임이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잉굴다이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다 같이 끌려갔을 터.

아마 한껏 겁을 주고 나서 정보를 캐내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잉굴다이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

"구왕에게 가서 전하라. 이미 이간책은 간파되었다고."

잉굴다이는 이자원의 말에 대접받은 차향(茶香)을 느낄 새도 없이 얼굴을 굳혔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이다. 공주를 우리 한의 측실로 보내는 것과 명을 쳐서 천하를 나누어 갖는 것, 모두 양국의 우호를 위해 제안한 것이온데."

"지난 싸움에서 너희는 한이 죽었고 우리는 인조대왕께서 훙서하시었다. 우리가 화친하려 해도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데, 그런 얕은 거짓말이 통할 것 같은가?"

잉굴다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자원은 조선과 명을 이간하려는 계책임을 간파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더는 속여보았자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그렇다친다면, 막으실 수 있겠소이까."

"그대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 경사로 보내면 천조의 의심을 벗어날 수 있겠지. 백명이든 천명이든 모조리 죽여 없애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숭정제의 성정상 그렇다 해도 믿지는 않을 것이다.

명에 살려서 보낸다면 이들이 무슨 소리를 황제 앞에서 지껄일지 모를 일이고.

'원래라면 적비를 통해 그 의심을 풀겠지만.'

이자원이 간자인 적비를 곁에 두는 이유도 숭정제의 의심병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원문필이 조선에 와있다는 소식과 겹치면 적비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설마 청이 적비의 존재까지 간파하고 일을 벌인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꼬인 셈이다.

하지만 이자원은 우선 그 부분은 제쳐놓기로 했다.

명은 얼마 가지 않아 망할 나라니까.

"뜻대로 하십시오."

잉굴다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한체 말했다.

이자원은 잉굴다이를 협박하는 것은 관두고, 곧장 의표를 찔러 들어갔다.

"구왕이 조선의 시선을 돌리는 사이 무엇을 꾸미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

잉굴다이는 침묵을 유지했다.

"진강에서는 패했고, 동만주로 나아가봤자 이 일로 얻을 수 있는 이득과는 별 연관이 없다. 애초에 조선은 명에 원조를 하면 했지, 받고 있는 입장은 아니니 말이다."

이자원은 말을 이었다.

"금주는 우리군이 지키고 있으니 남은 곳은 몽골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무리를 해서라도 재차 군사를 일으켜 몽골에 나아가려 하는 이유.

도르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확실한 승산을 보았을 것이다.

"준가르겠군."

호거가 위기에 몰린 것이 틀림없었다.

===

인류 최후의 유목제국인 준가르 제국이 흥기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러니 따지자면 아직 이 시기 중앙아시아에는 제국(帝國)이라 일컬을 만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태(母胎)는 이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준가르와 두르부드, 호쇼드, 토르고드의 4오이라트 연합이 그것이었다.

준가르 제국을 세운 갈단의 아버지 바투르 홍타이지는 연합을 주도하며 왕성한 군사 활동을 벌이는 한편 작년인 1640년에는 오이라트 법전을 제정하는 등, 훗날 준가르 제국의 토대를 조금씩 쌓여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4오이라트 연합은 1642년과 1643년에 걸쳐 카자흐와 키르기즈를 향해 원정을 벌인다. 지금은 그것을 위해 세력을 비축해놓고 있을 시기였지만, 이미 뒤틀린 역사는 오이라트가 동몽골로 향하게 만들었다.

바로 조대수의 반격으로 대동을 빼앗기고 마시마저 끊어져버린 호거 때문이었다.

에제이를 재차 내세워 몽골의 대칸으로 옹립하였으나 그가 꼭두각시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자칭 만주 한과 허수아비 대칸을 물리치고 몽골을 정복한다!"

바투르는 회맹을 열어 정벌을 결의하고 스스로 선봉에 섰다.

사위인 호쇼드의 오치르투 타이지, 그리고 동생인 추후르 타이지 등이 합류한 5만 군대가 몽골을 향해 진군했다.

이 소식을 접한 도르곤은 놓칠 수 없는 호기라 여겼다.

호거의 발이 서쪽에 붙잡혀 있는 사이 몽골의 도읍인 응창부로 나아가 그 숨통을 끊겠다는 생각이었다.

"예친왕께서 벌인 이간계가 오히려 장군에게 실마리를 주었군."

잉굴다이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래서, 조선은 이를 알아챘으니 군사를 움직일거요?"

"그리한다면 구왕은 묵던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겠지."

진강에서의 싸움으로 재정의 소모가 심하지만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진다면 북벌의 좋은 기회라 여겨 무리를 해서라도 군대를 일으킬 것이다.

도르곤은 심양을 지키기 위해 귀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실제로 연산관만 넘으면 요양이 떨어지고, 심양이 지척이다. 북벌을 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준비가 덜 끝났지만 몽골로 주력이 빠진 청나라 정도라면 충분하다.

심양을 빼앗으면 그걸로 끝.

'북벌'은 완수될 것이다.

잉굴다이의 눈이 흔들렸다.

이자원은 그것을 보고 확신했다.

청의 목적은 명과 조선을 이간하는 것.

그리고 몽골을 칠 시간을 버는 것이 맞다.

기회를 포착한 이자원의 눈이 빛났다.

===

도르곤이 집무를 보는 우익왕정.

이곳에는 단 세 사람만 배석하고 있었다.

도르곤, 도도, 아지거.

누르하치의 후처 울아나라 씨 소생 동복형제들이었으니 도르곤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들만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몽골을 수복해야 한다."

도르곤이 말했다.

몽골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청의 국세가 절반으로 줄어버렸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몽골의 군사와 자원을 이용하기는커녕 호거와 싸우느라 팔기의 발이 묶여 있어야 했으니.

그리고 어쩌면 그만큼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도르곤은 진강에서의 패배 후 무력으로 심양을 장악했다.

정홍기와 양홍기를 이끌고 있는 와그다와 아다리도 패배에 책임이 있었던터라 그 과정 자체에는 방해가 없었다.

범문정이 무어라 정치 공세를 펼치기도 전에 심양에 입성해 범문정과 범문채 형제를 유배보내고 숙청의 칼날을 휘둘렀지만 여전히 그는 불안감을 느꼈다.

"두두와 니칸을 비롯한 황족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곱지가 않다."

그간 최대한 정쟁으로 해결을 보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피를 뿌리며 청녕궁(淸寧宮)을 장악하고 강덕제를 협박해 조서를 받아냈으니 종친과 신하들의 여론은 극히 좋지 않았다.

'예친왕은 병자년 이래로 조선과 싸워 이긴 적이 없고, 숙친왕과 불화하여 나라를 반토막냈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한을 겁박하는가?'

'칼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 하나 예친왕은 정도를 넘었다.'

도르곤은 이를 빠득 갈았다.

"응창을 쳐서 호거를 참하고, 다시금 몽골을 회복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도르곤은 뒷말을 삼켰다.

비록 듣는 이는 동복형제인 도도와 아지거 뿐이었지만 함부로 꺼내도 좋을 말이 아니었다.

'저 쇼서를 끌어내리더라도 반발이 적지 않겠는가.'

단순히 코흘리개인줄 알았더니 범문정에게 붙어 수없이 사단을 일으킨 황제다.

그렇기에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쇼서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든, 아니면 적당히 멍청한 종친 가운데서 골라 앉히든지.

'다시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도르곤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왕, 조선이 움직인다면 어찌합니까?"

도도가 걱정스레 물었다.

온정평 싸움에서 봤듯이 조선군의 전투력은 결코 청군에 밀리지 않았고 되려 훈련도감은 압도했다.

그런데 초상집에 도발까지 감행했으니 조선이 무리를 해서라도 북상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조선은 움직일 수 없다."

도르곤이 말했다.

원문필을 보냈고, 사신을 통해 명을 쳐서 땅을 나누자는 제안까지 전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저 명 황제의 의심병이 극에 달할 터.

설사 잉굴다이를 비롯한 사절단의 목을 죄다 베어 바쳐도 핑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번만 더 흔들어놓으면 조선은 제 앞가림부터 해야할 것이다."

도르곤이 말했다.

===

"적이 달단을 칠 생각인듯 하옵니다."

이자원은 잉굴다이 뿐만 아니라 사절단을 심문한 결과 확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군사를 일으키기 위해 병력과 물자의 소집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방향은 명백히 조선이 아닌 몽골을 향하고 있었다.

"달단을?"

대비가 의아하다는듯 물었다.

화친을 운운하며 실상 전쟁을 유도하는 듯 하더니 모두 속임수였단 말인가.

"허면 명과 우리를 이간하던 이유도······."

대비의 말에 이자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주력이 달단을 치기 위해 빠진다면, 제아무리 연산관이 높고 튼튼하다 하나 우리군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이자원이 말했다.

"우선 사절단을 계속 붙잡아두고 있어야 하옵니다. 구왕이 우리가 이 사실을 눈치챈 사실을 알게 되면 출진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옵니다."

그리되면 호거야 구사일생하겠지만 조선으로선 득이 없다.

'이런 기회가 올 때까지 조금만, 조금만 버텨주시었으면 될 것을.'

대비는 안타깝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말했다.

"상중에 군사를 일으킴은 효가 아니나, 선대왕께서 남기신 유조를 생각한다면 지금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대비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자원은 곧장 준비에 나섰다.

오군영부터 출진을 위해 서두르고, 북방으로 떠날 파발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때쯤 되어,

북경의 숭정제는 표문을 보며 진노를 토해냈다.

< 수싸움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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