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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129화 (129/213)

< 조문 >

다른 곳도 아니고 청나라에서 조문을 온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임금을 죽였으니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지간이 아니던가.

"부원수 임경업이 치계하기를, 오랑캐가 조문을 하겠다며 사절을 보냈다 하는데 도성으로 들여야겠사옵니까?"

승지가 물었지만 수렴 너머의 대비는 답이 없었다.

어린 임금 이백은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으니, 자연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뜻이었다.

"이미 인조대왕께서 오랑캐의 손에 돌아가신 마당에, 조문 운운하며 이따위 수작을 벌이는 것은 필경 오랑캐가 우리를 업신여기기 때문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자전께서는 전교를 내리시어 사절의 목을 베고 이런 무도를 엄히 꾸짖으소서."

인조의 죽음으로 양국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사실이나,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을줄 알고 도성에 들인단 말인가.

만약 사절을 받자고 나섰다가 그놈들이 망언이라도 뱉으면 책임을 온통 뒤집어쓸수도 있었다.

그때 이자원이 말했다.

"우선 도성으로 들이시지요."

"병판! 그 무슨 말씀이외까!"

병조판서까지 올랐으니 감히 말을 놓지 못했지만 공서와 청서를 가리지 않고 이자원의 말에 반발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자원은 차분히 말했다.

"세가지 이유가 있사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오?"

대비가 묻자 이자원이 답했다.

"위 무제가 죽자 한 소열이 부증(賻贈, 조의품)의 예물을 보내 조문한 것은, 비록 원수의 상례라 하나 따라야 할 도리가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조선은 예의가 지극한 나라요, 청은 배우지 못한 오랑캐의 나라이거늘 조문 사절을 내침은 옳지 않사옵니다."

이자원은 말을 이었다.

"또 우리 조선은 삼전도에서 인조대왕의 훙서에 대해 사죄를 받았으나, 역으로 저들은 노추의 죽음에 대해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오랑캐가 먼저 머리를 숙여 고종대왕의 조문을 청하였으니 실로 전하의 위엄이 오랑캐마저 굴복시킨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조문을 받아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정말 굴복을 위해 왔을리는 없겠지만, 오랑캐가 먼저 조문 사절을 파견했다는 것은 국내에 선전하기 좋은 소재였다.

어린 임금의 정통성을 강화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대비는 그런 의도를 읽으며 다시 물었다.

"마지막은 무엇이오?"

"만약 도성에 들어오는데 성공했을 때를 대비해 내린 구왕(九王)의 궤계(詭計)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를 알아내 역으로 이용해야하지 않겠사옵니까."

이자원의 말에 대비는 수렴 너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부이다.

원한을 따져가며 사절을 받네 마네 하는 신하들보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파악한다.

따지고 보면 대비 강씨가 이 시대 조선인치고는 지나치게 실리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로서는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처음 아끼는 여동생을 무반가의 얼자에게 시집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아팠지만 지나고보니 이만치 잘시킨 혼사도 없다 싶은 대비였다.

'역시 전하의 혜안은.'

이 혼사를 주도한 것은 남편인 선왕이었으니, 자연 먼저 떠나보낸 남편 생각이 떠올라 강씨의 가슴이 아파왔다.

"신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영상 최명길이 나서서 바람을 잡고 강석기가 찬동하자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이자원의 의견에 조정 여론이 움직인 것이다.

"저들이 우리의 허실을 넘보면 어찌하외까?"

이런 반론이 나왔지만 이자원은 거꾸로 받아쳤다.

"오히려 저들은 두려움을 느끼겠지요."

서북은 유림, 임경업의 지휘 아래 축성(築城)과 군영의 정비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절이 그 광경을 본다면, 중앙군 뿐 아니라 대로를 따라 접한 모든 고을들이 병자년 시절에 비해 진일보했음을 깨달으리라.

대비와 대신들의 뜻이 일치하자 결국 조문을 받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대비가 물었다.

"사신은 누구라 하던가?"

"이전에 자주 아국을 찾은 적이 있는 청장(淸將) 용골대라 하옵니다."

===

용골대 - 즉 잉굴다이는 한양 도성에 들어섰다.

조선군의 호종은 호종이 아니라 호송이라 여겨질만큼 거칠었다. 숫제 포로로 대하듯 끌려와 제대로 허실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나마 목이 떨어지지 않고 이곳에 온 것에 감사했다.

수년전 원정 때 팔기에 의해 대대적으로 약탈당했던 한성이지만 이제 그 상흔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물자가 모자라 시들시들 죽어가는 심양과 달리, 이곳까지 오며 보였던 조선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병자호란의 피해가 원래 역사보다 적었다거나, 가도와 벽란도 등을 통해 진흥된 무역으로 물자가 많이 돌게 되었다거나, 아니면 대동법의 이른 확대로 인하여 농민의 삶이 안정된 측면이 있다거나.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청에게서 잇따라 거둔 승리였을 것이다.

청이 아직 후금이던 시절부터 사절로 다녔던 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쿠툴러들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조선인들은, 이젠 도성으로 가는 사절단을 보고도 거침없이 구경을 하러나와 혀를 차댔다.

군사들이 엄중히 지키고 있었으니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진 못했지만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그러고도 남았으리라.

"그러나 그 조선왕도 죽었소."

잉굴다이가 말했다.

호란 당시 조선과의 화의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그 뒤 이렇다 할 중용을 받지 못한 그였다.

그 굴욕적인 화친에 동의한 것은 이후 집권한 호거나 도르곤도 마찬가지였지만 책임을 질 사람은 필요했으니.

따지고보면 도르곤의 동생 도도가 기주로 있는 정백기 출신이지만, 그는 홍타이지의 심복에 가까웠던 터라 끈떨어진 그를 챙겨줄 사람도 없었고.

하지만 저기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있는 굴마훈(????????, 정명수)을 보면 차라리 자신의 처지가 나았다.

뭘 잘못 먹었는지 진강 싸움에서 청을 배신한 한윤과 한택 때문에, 그나마 눈치보며 자리보전이나마 하고 있던 정명수마저 노예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역시 조선인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

잉굴다이는 입을 쩝쩝 다셨다.

"이제는 유주(幼主, 어린 임금)가 왕위에 올랐으니 조선도 망조가 든 셈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어허, 그 입!"

이제 왕위에 오른 아이는 고작 여섯살에 불과하다니, 부하는 싱글벙글하여 건넨 말이었지만 정작 처음 조선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꺼낸 잉굴다이는 주의를 주었다.

그들의 주군인 쇼서도 비슷한 나이에 황위에 올랐고, 또 지금도 어리지 않은가.

비록 그들이 예친왕의 사람이라 하지만 언제 말이 새어나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죽은 조선왕의 아내가 여군(女君) 노릇을 하고 있다는데 일이 어찌 될런지.'

잉굴다이는 한양 도성을 바라보았다.

지난 조선 원정 당시 입성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입장으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사절단은 성문을 지나 창경궁에 입궐했다. 예법에 따라서 외정(外庭)에 마련된 자리에 나아가 부복하고 곡하여 소리를 내기를 열 다섯 번. 이후로 조문 절차를 마친 사절단은 곧 임금과 대비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귀국이 전란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리 천붕의 슬픔을 당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한께서 이 소식을 듣고 외신(外臣)을 보내어 상주를 위로케하셨으니 모쪼록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잉굴다이가 그렇게 쿡 찌르고 들어왔다.

그 전란은 죄다 청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이니, 말에 은근한 가시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국의 곤란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터인데 이리 많은 예물을 받아도 될런지 모르겠소."

대비는 그렇게 말했다.

너희가 소출이 적고 교역이 끊겨 쪼들리는걸 다 알고 있는데, 어려운 살림에 수고했다는 식으로 받아친 것이다.

이를 알아듣지 못할 잉굴다이가 아니었지만 그는 얼굴을 짐짓 환히 밝히며 말했다.

"여군께서 마음을 받아주시니 실로 양국에 화복이 있음입니다. 마침 외신이 두 나라의 관계를 회복할 우리 한의 뜻을 받들고 왔사온데 모쪼록 깊이 듣고 비답을 내려주소서."

잉굴다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새로 즉위하신 조선왕께 적출 손아랫누이가 있다 들었사옵니다."

"그렇소."

임금보다 한 살 아래, 대비 강씨 소생의 공주가 있었다.

잉굴다이가 그 아이를 언급하자 대비의 얼굴에 불쾌감이 스쳤다.

"우리 한께서는 아직 황후와의 사이에서 자손이 없으십니다. 하오니 이참에 여군께서 공주를 보내어 두 나라의 원한을 풀고 관계를 회복하심이 어떠하나이까."

"어리석은 소리!"

대비가 노하여 외쳤다.

쇼서는 즉위 당시 측비 예허나라 씨 소생이라는 약점을 보완하고 몽골의 이탈을 보완하고자 보르지기트 씨로부터 아내를 맞아들였다.

아직 그도 연소한지라 아이가 없었는데 그것을 핑계로 공주를 측실로 보내라 요구한 것이다.

"오랑캐가 자못 예를 흉내라도 낼줄 아는가하여 조문을 받아주었더니 감히 이따위 수작질을 벌이는 것이냐?"

흉노가 한나라를 욕보인 것과 같은 꼴이 아닌가.

한나라는 그러고도 흉노에게 패하여 잔뜩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작금의 조선은 달랐다.

그러나 잉굴다이는 이미 거절을 예상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리 없는 요청이 아닌가.

그는 긴장을 티내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하오면 이는 어떠하십니까? 이미 조선에서 보낸 가도 부총병이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금주를 지키고 있다 들었습니다. 금주는 중원으로 들어가는 목줄기이니 여군(女君)께서 한번 마음만 먹으신다면 저 허약한 남조(南朝)는 일거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되면 대청과 조선이 넉넉히 천하를 나누어 가질 수 있을 터. 공주를 보내기 싫으시다면 이쪽을 생각하여 보시지요."

대비 강씨는 소리를 질렀다.

"그따위 소리는 더 들을 것도 없다. 너희나라는 이미 수없이 크게 패하여 꼬리를 말고 도망갔거늘 어디 이따위 수작을 거는 것이냐? 조문을 허락하였더니 오랑캐가 진정 조선과 단금지교(斷金之交)라도 나누게 된줄 알았더냐? 금군은 뭣하는가!"

잉굴다이와 사절단은 대비의 명에 의해 전부 옥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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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임금을 욕보이고, 나를 욕보이고, 조선을 욕보였소. 병판이 조문을 받으라 하였으니 그대에게 물어보겠소. 어찌 해야겠소?"

끌려나간 사절단을 보며 대비가 물었다.

"덕분에 적이 의도한 바를 알 수 있었사옵니다."

이자원은 차분히 말했다.

면피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원문필을 보낸 건부터 지금 사절단까지. 도르곤의 노림수가 읽혔다.

"적은 천조와 우리 사이를 이간하려 하고 있나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발, 격장지계(激將之計)가 아니다.

공주를 보내라느니, 명을 쳐서 천하를 나누자느니 하는 헛소리는 분노로 조선의 눈을 가리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이런 말로써 말이오?"

대비 강씨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지만 이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숭정제는 지독한 의심병 환자이고, 왜란 때도 그랬듯 명은 조선의 야심과 군사력을 과대평가한다.

"적이 원문필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이옵니다."

선왕이 쓰러지고 난 뒤 모든 조정의 상황은 그의 병환과 국상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원문필에 대한 공식적인 결론은 늦어지고 있었다.

명에서도 지금쯤 이 소문을 접하고 책봉사에게 알아보라 하였을 터.

"일이 잘못 꼬인다면 심각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요."

조선은 명에 해명하는데만 상당한 시일을 소요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번 시간을, 도르곤은 어느 곳에 사용할까.

"신에게 맡겨주소서."

이자원이 말했다.

< 조문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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