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각살우 (1) >
유구가 일본, 그것도 일개 제후에게 침략당하여 그 속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명의 위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명의 천조질서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내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조선을 돕기 위해 파병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유구의 위조(僞朝, 거짓 조정)에서 올라오는 조공을 모두 끊음은 당연하고, 본래부터 존재하던 해금(海禁) 또한 재차 강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타격을 받은 이가 바로 오호유격장군 정지룡이었다.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하다니, 우리더러 다 굶어죽으란 소리가 아닙니까?"
조정에서 유격의 관직을 받긴 했으되 정지룡은 본래 복건 출신의 해적이다.
배가 무려 3천 척, 군사가 20만이라 일컬으며(號曰), 그 휘하 장졸들은 한족 뿐만 아니라 조선인과 일본인, 동남아인과 흑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한편 그는 기민(饑民)을 VOC 치하의 대만에 들여보내 개간토록 하는 등의 사업도 벌였지만 주 수입원은 교역이었으니, 그것도 일본과의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저 멀리 경사에 있는 황제가 우리가 일본과 교역함을 어찌 알 것이며, 단속은 또 어찌하하겠는가? 이제까지 그랬듯이 우리는 하던 일만 잘하면 된다."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는 부하들에게 정지룡은 느긋하게 그리 대처했다.
네덜란드인과 왜구, 경쟁 해적들, 관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적이 그를 가로막았지만 그는 끝끝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물며 제 앞가림하기 바쁜 조정이 어찌 정지룡을 막아세우겠는가?
지방관들은 모두 정지룡에게 매수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정지룡도, 부하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복건 일대를 순무하던 첨도어사(僉都御史)의 존재였다.
"이번에 복건을 감독하러 온 첨도어사는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아무리 인정(人情)을 건네주려 해도 마다하지 않습니까?"
명나라가 망할 때가 되었어도 충신 여럿은 남아있는 법이다.
호부우시랑 겸 우첨도어사 사가법(史可法)이 그랬다.
강남 일대를 순무하며 독량도(督糧道, 곡물의 운송을 관장하는 관직)를 세 사람이나 파면시킨 그는 복건의 대해적 정지룡의 진중에 와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국이 만력 연간 조선을 침략한데 이어 다시 대명(大明)의 번방에 마수를 뻗쳤기에 황상께서 모든 통교를 금하신지 오래거늘 어찌 너희 유격은 아직 잠상(潛商) 노릇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냐?"
"어, 어사 대인. 우선 고정하시지요. 세상사가 모두 순리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라······."
"시끄럽다! 경사에 이를 낱낱이 고하여 정 유격의 지위를 거두라 청할 것이니라!"
원래 역사에서 남명 정권의 충신으로서, 도도의 항복 요구를 거절하고 양주에서 전사한 성정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사가법이 숭정제의 앞에서 이것을 고하니, 숭정제는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지룡이라는 자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데 괜히 벼슬을 떼었다가 화근이 되면 어찌하나.'
장헌충 같은 도적도 투항을 받아주는 형편이다.
'조정에 바치는 돈도 만만치 않으니 되도록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강남을 순찰하며 부정을 낱낱이 밝히라는 명령은 숭정제가 직접 내린 것이었으니, 감히 황명을 거역하고 일본과 교역한 정지룡을 그냥 놓아주기도 애매했다.
"직접 입조하여 해명을 하도록 하라. 들어보고 판단을 하겠다."
황제가 보낸 첨도어사의 탄핵을 받았으니 정지룡도 직접 올라와 해명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숭정제로서는 나름 관대한 타협안이었지만 문제는 정지룡이 그것을 받아들일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 병부상서 원숭환을 죽인 수법 그대로가 아닌가!"
정지룡이 외쳤다.
명의 다른 장군과 달리 정지룡은 독자적인 세력을 가진 군벌이었고, 이미 원숭환을 죽인 전적이 있는 황제가 자신을 불러들인다는 것은 이것을 빌미로 숙청을 벌이려는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첨도어사를 보내 들쑤시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여겼다!"
이미 썩어문드러진 명조에 충성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이 또한 뚫고 나갈 뿐이다.
정지룡은 그렇게 거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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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룡이 복건을 움켜쥐고 남경마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실로 가슴의 병과 같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숭정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도대체 날더러 어찌하라는 것인가?"
정지룡이 입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장헌충도 다시 조정의 품을 빠져나갔다.
잔불이 바람을 타고 다시 크게 일어나듯이, 명나라의 실정도 그러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홍승주를 뺄 수는 없었다.
"······태사회왕 호격에게 사람을 보내어 요구를 들어주겠다 하라."
오랑캐가 먼저 횡포를 부린 것인데도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호거가 기어이 대동을 함락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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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명나라 놈들은 약해빠졌다! 이참에 화북을 얻는 것이 어떻겠는가?"
호거의 사기가 오랜만에 충천하여 그리 외치자 허서리 소닌이 그의 말고삐를 잡아끌며 말했다.
"옛날 에센 타이시가 명나라 임금을 사로잡고, 다시 다얀 칸이 중원을 침공했으며, 또 알탄 칸이 북경 인근에 불을 놓았으나 끝내 한조를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대적(大敵)은 묵던의 허수아비 한과 그의 뒤에 있는 도르곤, 범문정 등이지 명이 아닙니다."
소닌의 말은 옳았다.
이정도로 무력시위를 해놓았으니 다시 마시에 대한 권리를 얻어내고 초원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좋다. 그러나 대동을 돌려주는 것은 아니된다. 옛날 다얀이 그랬던 것처럼 선화(宣化), 대동에 군대를 둘 것이다. 언젠가는 저 중원도 정복해야할 터인데, 그러려면 이런 요지들을 쥐고 있어야 쉽지 않겠는가?"
호거의 선언에 소닌은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의 결심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호거는 한번 마음을 굳히면 무르는 경우가 없었으니 말이다.
'공연히 적을 만드는 버릇 때문에 만주를 잃어놓고도 아직 성질을 고치지 못했구나! 시세가 이상하게 흘러 이런 자가 우리 상삼기(上三旗)를 이끌게 된 것이 불운이로다. 하기야, 나 또한 호거를 돕기 위해 나라를 두동강낸 죄인이니 무어라 변명할까.'
소닌은 속으로 그렇게 탄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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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격에게 사람을 보내 마시를 다시 열겠다 하였는데도 대동에서 군사를 빼지 않는다는 말이냐?"
숭정제가 경악해 소리치자 병부상서는 고개를 바싹 움츠린채 말했다.
"한때 달단이 점령했던 땅이니 그대로 영유토록 하겠다는 것이 저들의 말이옵니다."
"말도 안되는······!"
숭정제는 열을 내려다가 옥좌에 털썩 팔을 떨어트렸다.
"칼날을 위에 달고 어찌 사직의 안전을 논하겠는가? 역시 홍승주를 불러와야 하겠는가?"
하지만 신하들은 말이 없었다.
홍승주가 호거를 물리치더라도 그 사이 반란군이 세를 불려 요지를 점령하기라도 한다면 황제는 자신들을 향해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닌가.
"폐하, 차라리 천도를······."
누군가 눈치없이 말을 꺼내자 그에게로 비난의 눈길이 쏟아졌다.
"싸워보지도 않고 경사를 떠나자 하는가? 당장 조정이 떠나면 화북이 그대로 함몰될 것은 뻔하거늘!"
아니나다를까 숭정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게다가 양양에서 장헌충이, 복건에서 정지룡이 날뛰는 지금 상황에선 남경도 안전하지 않았으니 고려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폐하."
그때 금의위도지휘사 낙양성이 숭정제에게 소근거렸다.
그는 원래 금의위독동지를 맡아보다 전 도지휘사 오맹명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였다.
숭정제의 측신이었으니 책임을 피하면서 간할만한 자는 그 밖에 남지 않았다.
"차라리 조선에서 군사를 빌리시지요."
"조선에서?"
숭정제가 낙양성에게 물었다.
"우리 천병은 계속된 싸움에 지친데다 오랑캐에게 미치지 못하니 홍승주가 설령 북상하여 대동을 치더라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사옵니다.
반면 조선은 이미 여러번 여진과 싸워 대파(大破)하였지 않사옵니까."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자'에게서 계속 들어오는 보고로는 조선이 군병 키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데다, 몇년간 싸움이 없어 충분히 병력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뜻을 읽어낸 숭정제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직접 조선에 다녀오라."
금의위의 수장이자 황제의 측근.
그를 보내야할 정도로 숭정제의 마음은 다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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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이 대동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갖고 가도에 도착하자, 부총병 심기원은 기겁해서 조정에 이 이야기를 전했다.
막 오군영의 훈련을 끝내고 심기원의 장계를 받아든 임금은 얼마 뒤 칙사 낙양성을 영접하기 위해 모화관(慕華館)으로 나아갔다.
"전하께서 친히 문무백관을 나와주시니 소인은 감읍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과연 조선이 예의의 나라라 하더니 이제야 이 어리석은 머리로도 알겠습니다."
조선왕이 칙사를 맞이하러 모화관에 거둥하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온 예법이다.
그러나 낙양성은 거북할 정도로 임금을 추켜세웠다.
'속이 보이는군.'
이자원은 그런 낙양성을 보며 생각했다.
임진왜란 이후, 행패를 부리고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던 칙사와는 달리 황제의 측근인 낙양성이 몸을 바짝 낮추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역시나 이자원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천자께서 칙서를 내려 말씀하시기를, 오랑캐를 치는데 조선의 힘이 필요하다 하시었습니다."
"소방(小邦)이 나라를 보전한 것은 모두 천조의 덕인데 어찌 받들지 않겠습니까. 기회를 엿보아 반드시 출병할 터이니 칙사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금은 낙양성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그 뜻이 아니었다.
"조선왕 전하께오서도 들으셨겠지만 대동이 달단에게 무너졌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해서, 천조에서는 어찌 대처하실 작정이신지요?"
임금이 대답했다.
"황상께서 저들이 일개 오랑캐라 하나 천자의 신하를 자칭하는만큼 도타운 사랑을 베푸시어 마시를 다시금 크게 열라 명을 내리셨는데, 오히려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대동에 군사를 두니 실로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낙양성은 숭정제의 황명을 애써 그리 포장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호거를 힘으로 몰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명의 힘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군."
마시를 열어 호거, 정확히는 몽골을 지원하라고 한 장본인이 이자원이었지만 되려 이리 명이 무력하게 나갈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에 나올 말은 뻔했다.
이자원은 멀찍이 호위병-훈련도감에서 차출되어 왔다-들 틈에 섞인 적비에게 시선을 던졌다.
"황상께서는, 임진년 만력 황제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얼마간 병사를 보내어 대동을 되찾는데 힘을 보태달라 하시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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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불가합니다."
이자원이 말했다.
{@PIC:561628}
< 교각살우 (1)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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