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상 (4) >
"원지(遠地)에서 오느라 수고하였다. 그대들이 이 조선에서 최초로 남만에 다녀온 이들이구나."
두 송씨가 어전(御前)에 서자 임금이 입을 열어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수년만에 뵙는 임금이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스승인 김집도 이미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해버린지 오래였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친분이라 할만한 것이 있는 이는 봉림대군 뿐이다.
"정학(正學)이 정학임을 증명하기 위해 남만으로 갔다고 들었다. 그 답은 얻었는가?"
임금은 그리 물었다.
이자원은 차분히 그들을 응시했다.
원래 역사에서는 주자학의 적극적인 수호자로 이름을 남긴 그들이다.
이미 크게 뒤틀려버린 역사의 물길로 인해 자신이 별다른 손을 쓰지 않았음에도 유럽으로 향한 두 송씨지만, 과연 지금도 그럴까.
송시열은 천천히 답했다.
"신들은 오로지 주자의 말씀만이 사람이 받들어야 할 바이며, 이 나라가 계속 지켜나가야 할 사상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비단 인간의 도리에 관한 부분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는 작금의 국난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것인가.
그 방법론으로서 성리학을 숭앙하던 송시열이었다.
그러나 유럽을 다녀오며 그의 생각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홀란도란 나라는 서반아의 속국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줄로 알고 있는데 이리도 융성하단 말인가?'
네덜란드는 조선과 비교해도 나라가 크지 않고, 그 백성은 적었다. 물산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둑을 쌓고 바닷물을 빼내 땅을 만들고, 그 위에는 남만의 누구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나라를 세웠다.
게다가 그 조그마한 나라가 남만의 천자국-이들이 합스부르크 가를 본 바로는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인 서반아를 물리치고 계속해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만약 오랑캐에게 정복당했다면 그리 할 수 있었을까.'
정묘년 때 인조대왕께서 허리를 숙이고 동생을 칭한 것은 잠시 사세가 불리하여 그랬다 치자.
그러나 조선은 와신상담하기는커녕 병자년에 다시금 남한산성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하마터면 그날로 사직이 끝장날 뻔하지 않았는가.
'천운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서반아 치하의 홀란도 같은 꼴이 되었겠지.'
북송이 망한 뒤 그랬던 것처럼, 인조와 세자 등이 모두 심양으로 잡혀가고 이 땅에 오랑캐의 나라가 들어섰다면 도대체 언제 오랑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홀란도의 땅은 척박하나 그 백성이 개간에 힘쓰고, 조선과는 달리 이재에 밝아 치부한 사람이 많았사옵니다. 서반아를 물리치고 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힘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니, 마땅히 우리 조선이 본받을 바이옵니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주자의 가르침은 사람간의 도리를 궁구하는데는 지극한 묘용이 있사오나, 치국(治國)의 비법으로는 홀란도에서 물건을 사고 팔며, 예리한 병기를 갖추고, 여러 나라와 관계 맺는 법에 미치지 못하옵니다."
주자처럼 비록 강토는 빼앗겼으나 중원의 문화를 간직했으니 스스로 정통이라 자부할 것인가.
아니면 네덜란드를 본받아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할 것인가.
두 사람은 유럽에서 머물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이자원이 나섰다.
"전하, 원자 마마의 교육을 두 사람이 맡게 하소서."
이자원의 말에 송시열과 송준길의 눈이 흔들렸다.
임금이 물었다.
"원자의 교육을?"
"원래도 학문에 이름 높기로 소문났던 두 사람인데다 천하를 주유해보기까지 하였으니 이보다 적합한 이들이 없을 것이옵니다."
이자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조선에 시작된 변화를 비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자에게 직접 가르치는 편이 나으리라.
"음."
송시열은 이미 떠나기 전에도 천거를 받아 대군사부를 맡을 정도로 학식이 뛰어난 이였으니 크게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리고 강직함 하나는 예전부터 알아주던 자들이니 혹 문제가 생기더라도······.
생각을 마친 임금은 원자에게 말했다.
"원자는 어서 스승들에게 계수배(稽首拜)를 올려라."
"마, 마마!"
원자가 아버지의 말에 절하는 시늉을 하자 송시열과 송준길이 황급히 맞절하며 말했다.
"그대들이 원자를 잘 가르치도록 하라. 알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르치고, 잘못된 일이 있거든 엄히 꾸짖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의 본분을 다하라."
"아뢸 말씀이겠사옵니까!"
송시열과 송준길이 엎드려 그렇게 외쳤다.
그리 말하는 임금은 어쩐지 쓸쓸한 표정이었다.
"원자가 장차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금은 그 말을 남기고 피곤하다며 환궁(還宮)을 명했다.
그러나 일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군영의 합동훈련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문제가 터졌던 것이다.
"저, 전하!"
창경궁에서부터 황급히 말을 달려온 선전관이 외쳤다.
"가도로부터 소식이 들어왔사온데, 명나라 대동(大同)이 달단군에게 함락당했다고 하옵니다!"
"뭐라?"
임금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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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이 맨땅에 비오듯 꽂혔다.
간발의 차로 그것을 피해낸 오보이는 등을 돌려 활을 쏘았다.
"커억!"
그를 추격하던 청군 하나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청군은 거세게 말을 달려 오보이를 추격해오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부하들은 쓰러진지 오래였다.
"제길······. 여기까지가 끝인가."
만주 제일의 용사라며 칭송받았던 것도 옛말.
기야하찬의 반란군을 단 50명으로 토벌했던 것이 그가 올린 마지막 전과였다.
그 뒤로는 이자원에게 패하고, 아민에게 트집잡혀 갇혀있었던 것이다.
어찌어찌 겨우 심양으로 되돌아와 호거의 화북원정군에 종군했더니 도르곤이 정변을 일으켜 돌아갈 고향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변경의 초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운명이란 말인가.
"이 도르곤과 범문정의 개들아! 진정한 한의 군대가 왔노라!"
그때 오보이를 추격하던 청군의 옆구리를 한무리의 부대가 몰아쳤다.
허서리 소닌이 이끄는 호거의 구원군이었다.
"고맙소, 소닌 공! 덕분에 살았소!"
구사일생한 오보이가 외쳤다.
"별 말씀을."
허서리 소닌은 회군을 명했다.
오늘도 피가 초원을 적시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시체들이 그 위에 쌓였다.
청의 내전이 시작된 이래로 매일 같이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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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창부(應昌府).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침공할 즈음 옹기라트부의 자손들을 노왕(魯王)에 봉하여 땅을 갈라준 뒤로 원대에는 대대로 노왕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시간이 흘러 원말(元末).
주원장이 보낸 북벌군을 피해 상도(上都)로 달아났던 원나라 순제가 그곳마저 위험해지자 더 북쪽에 있는 응창부로 도망오며 잠시 북원의 도읍이 되었다.
하지만 명은 기어이 이곳을 점령하고 폐성해버렸으니, 몇년 전까지는 그저 황량한 옛 터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호거가 대칸으로 내세운 에제이를 데리고 이리로 들어온 후로는 상황이 제법 바뀌어, 나름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저 역적놈들을 쓸어버리고 만주로 돌아가려 해도 쉽지가 않구나."
그러나 응창부의 성세 따위는 호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이 모래바람 몰아치는 몽골 땅이 아니라 고향인 만주와 중원을 향해 있었다.
청과 맞닿은 경계에서는 끊임없이 소규모 교전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지루한 소모만 일어날 뿐, 양쪽 모두 심대한 타격을 주진 못하고 있었다.
"조금 더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말인가?"
호거는 투구를 벗어던지며 욕설을 뇌까렸다.
그가 에제이를 대칸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만주의 한과 몽골의 타이시를 자칭한지 벌써 3년.
그때도 들었던, 힘을 기르라는 말을 아직까지 듣게 되다니.
게다가 그것조차 녹록치가 않았다.
"명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가?"
호거는 소닌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시(馬市)의 금품을 줄인 것은 한조(漢朝)의 황제가 직접 지시한 일이라니 쉬이 거둘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옵니다."
"빌어먹을 돼지놈 같으니."
명나라는 호거가 청과 분열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격적으로 마시를 제안했다.
이는 이자원의 헌책에 따른 것이었다.
'영락 황제 시절 달단이 강성해지면 와자(오이라트)와 교역을 열고, 와자가 강성해지면 다시 달단과 손을 잡았으니 이이제이의 묘책이 바로 이런 것이옵니다. 여진이 몽골을 점령했사오나 이미 여진조차 갈라졌으니 몽골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터. 마시를 열어 몽골을 지원하소서.'
숭정제는 이것을 보고 옳다 여겼다.
과연 몽골이 다시 독립하자-비록 호거가 실권을 쥐고 있어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숭정제는 칙사를 보내 호거를 태사회왕(太師淮王)에 봉하고 마시를 열어 비단과 식량 등을 거래토록 했다.
처음 몇년간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호거가 명의 지원을 받아 청과 싸우는 사이 명은 내부 안정에 주력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호거의 욕심이 문제였다.
"저들 말로는 우리측 물품의 양을 부풀리는 행태가 심하여 이 이상으로 거래품을 줄 수 없다 하온데 조금 사정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열렸던 마시가 그랬듯이, 호거는 말과 모피의 양을 허위로 뻥튀기하고 그 품질도 좋지 않을 것을 내어주면서 명에서는 더많은 물자를 챙기고자 했다.
그런데 날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명나라의 사정으로는 이런 식으로 마시를 계속해서 유지하기가 어려웠으니, 숭정제가 칙명을 내려 규모를 축소하라 명한 것이다.
"어리석은 소리! 명나라 놈들이 화북을 전부 불바다로 만들고 싶어 작정을 하였구나!"
호거는 하지만 그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려 들지 않았다.
명은 잠시 놓아둔 먹이일 뿐이요, 청과 싸우기 위해 물자를 내어주기만 하면 되는 쌀창고였다.
그렇지 않아도 싸움이 지지부진한데 마시까지 줄이겠다니 호거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이시여, 부디 고정하십시오. 지금은 명과 싸울 때가 아닙니다."
호거는 명목상으로나마 매제인 에제이의 신하를 자칭했으나 본인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부하들은 항상 그를 독립된 지위인 한으로 칭했다.
소닌은 애써 호거를 말렸지만 그는 들은체하지 않았다.
"우리가 명나라 놈들 대신 싸워주니 배가 부른 모양이군! 놈들의 머리 위를 두들겨 감히 내 말을 거역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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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회왕 호격이 대동을 공격해서 우리 군사를 함부로 죽이고 마시를 다시 열라 엄포를 놓고 있사옵니다."
"뭐라?"
숭정제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오랑캐들이 정직하지 않은데다 우리 조정의 부담이 심하기에 마시를 줄이라 한 것인데 되려 침공을 해왔다? 옛날 야선(也先, 에센 타이시)이 하던 짓 그대로구나!"
예부상서는 쩔쩔매며 물었다.
"어찌 하오리까?"
"어찌하긴 무얼 어찌하느냐? 군대를 보내 막아야지!"
숭정제가 소리쳤다.
"하오나 금주의 조대수나 반란을 진압 중인 홍승주나 둘 모두 자리를 비울 수는 없을 것이온데······."
병부상서의 말에 숭정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국경의 부담은 덜어졌지만 내정은 답이 없었다.
지난 3년간 나라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아등바등 매달렸지만 돌이켜보니 허송세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최소한 이자성의 멱이라도 따고 큰불은 잡은 것처럼 보였던 3년 전이 나을지도 몰랐다.
"장헌충(張獻忠)을 아직 잡지 못했단 말이냐?"
장헌충은 이자성과 함께 유력한 반란군 두목이었다.
이자성이 죽고 나자 관군에 항복했던 그는 2년 전 다시 반기를 들고 양양을 격파한 후 양왕(襄王) 주익명(朱翊銘)을 죽였다.
구심점을 잃은 각지의 반란군은 죄다 그 밑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지룡(鄭芝龍)이라는 수적도 강남에서 날뛰고 있사온데 여기에도 군사를 갈라 보내야 할 것이옵니다."
원래 역사에서는 명에 제법 협조했어야할 인물까지도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 변화상 (4) > 끝
ⓒ 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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