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100화 (100/213)

< 냇물이 향하는 곳 (4) >

임금은 세자 시절부터 속이 허약하여 신경증이 도지면 토사곽란을 앓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구토 증세를 느끼는 사람이야 현대에도 흔하지만, 임금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즉위한 후 속병이 날로 심해졌다.

그때 중용받은 사람이 인조가 침을 잘 놓는다하여 신임하던 어의 이형익(李馨益)이었다.

"그래서, 전하의 환후는 어떠하신가? 예의 그 토사곽란인가?"

임금이 갑작스럽게 구토하며 쓰러졌다는 소식에 신하들은 전부 놀라 달려왔고, 임금의 증세를 살피던 이형익은 졸지에 그들에게 붙들려 아는 것을 모조리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전하의 병증은 학질(瘧疾)인듯 하오이다."

"학질?"

영의정 최명길이 놀라 물었다.

그의 뒤에 서있던 이자원은 임금의 환후를 전해듣자 표정을 찌푸렸다.

'여기서도 학질인가.'

학질, 즉 말라리아라면 원래 역사에서 소현세자의 목숨을 빼앗아갔던 질병이 아닌가.

물론 시기도 다르고, 역사가 뒤틀린지 오래이니 순전히 우연이기는 할 것이다.

이형익의 말에 신하들은 장탄식을 내뱉었다.

조선에서 도는 말라리아는 본래 열대성보다 치명적이진 않다. 그러나 조선에는 이를 마땅히 치료할만한 기술이 없고, 임금의 몸상태가 이전에도 정상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원래 옥체에 병이 있으셨던지라 기력이 크게 떨어지신 상태이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학질에 걸리셨으니 환후가 걷잡을 수가 없는 상태오이다. 우선은 침을 쓰고 약재를 달여 올리고는 있사오나······."

"침인가."

이자원이 내뱉었다.

학질에 침을 쓰는 것이 이 시대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그리 돌팔이같은 처방은 아니었지만, 이자원은 별 효과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형익에게 놔두어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이다.'

이형익의 진료를 받고 원래 역사의 소현세자는 죽었다.

그가 돌팔이고 아니고를 떠나, 조선의 의술로는 살아날 확률이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는?

'원자는 아직 어리다.'

임금이 죽는다면 원자를 옹립하고 중전 강씨가 수렴청정을 하든, 예종이나 성종 때의 전례를 따라 봉림대군이 즉위하든 북벌에는 차질이 빚어진다.

둘 중 누구도 그에 대한 신임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임금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자원이 나서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병참 영감, 어디 가시오?"

"당장 들러야할 곳이 있소."

이자원은 이미 역사를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바뀐 역사에 임금을 살릴 해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박 파총."

"예, 대장 영감!"

궁궐에서 물러나온 이자원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철균을 보고 말했다.

"예수회 수사들과 만나야겠다. 훈국으로 들라 하도록."

===

한때 성당 역할을 할 곳이 없어 훈국 건물을 빌려 예배를 보아왔던 예수회지만, 이자원의 '호의'에 힘입어 조촐하게나마 얼마 전 조선 최초의 성당-남만사-이 훈련도감 본영 인근에 들어섰다.

원래 예수회 수사들은 노비와 백정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 반촌에 첫 성당을 짓기를 원했으니, 곧 가장 낮은 곳에 임해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들의 다짐이 묻어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자원은 언제든 부르기 편하게 훈국 근처에다 세울 것을 강권했다.

성당을 지을 돈 대부분이 이자원이 심세괴에서 빼앗은 비자금과, 이자원의 인맥을 통해 전해진 중인들의 희사금에서 나왔으니 도저히 예수회로서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자원이 예수회를 부르기가 무섭게 그들은 훈련도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장군."

게오르크 리프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상 이자원이 베풀어준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그와 예수회였지만 그 뒤엔 항상 이렇게 불러 그 호의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던 훈련대장 아닌가.

지금은 또 무엇을 요청하려나 싶어 그가 묻자 이자원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귀한 분의 용태가 좋지 않으시다."

"귀한 분이라면······?"

게오르크가 슬쩍 물어봤지만 이자원은 그 질문을 무시했다.

대신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키니네가 있는가?"

키니네, 혹은 퀴닌(Quinine).

말라리아의 열원충을 죽이는데 효과가 있는 약물로, 남미의 키나나무에서 추출한다.

이를 최초로 소개한 이들도 예수회 신부들이고, 그 시점은 1620~30년이었으니, 지금 예수회 수사들이 조선에 지니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키니네······ 말씀이십니까? 그 귀한 분이 말라리아에 걸리셨습니까?"

"그렇다."

이자원이 게오르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게오르크는 잠시 주저하며 말했다.

"그, 있기는 있습니다. 아담 샬 신부님께서 마카오를 통해 조금 사들여 놓으셨는데, 그 중 일부를 저희가 조선에 갖고 왔습니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바로 뒤이어 말했다.

"하, 하지만 아직 유럽에서도 효과를 의심하고 있는 물건입니다. 아담 샬 신부님께서도 약효를 검증하기 위해 사들이신 것 뿐, 그토록 귀하신 분이라면 차라리 다른 방도를 쓰는 것이······."

게오크르의 말에도 이자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키니네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이미 검증된 지식이었던 것이다.

"키니네를 발견한 예수회 쪽에서 그런 소리를 할줄은 몰랐군."

하기야 17세기 후반은 가야 유럽도 본격적으로 키니네의 효능을 인정하니, 직접 발견한 당사자도 아닌 게오르크가 몸을 사리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모두 책임질 것이다."

이자원이 말하자 게오르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양도 얼마 없습니다. 겨우 한 사람 분이나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한 명만 살릴 수 있으면 된다."

이자원은 덧붙여 말했다.

"그분께서 효험을 보시면 더 많이 수입해와줄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차도만 보이신다면 걱정이 없겠습니다만······."

게오르크는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높으신 분을 건드렸다가 벌집을 쑤시는 꼴이 되지나 않을지 우려스러운 것이다.

한편 이자원은 이번에는 다른 쪽으로 질문을 던졌다.

"봉림대군 대감이 그대들 성당에 다녀갔다고 했었지?"

"예, 예. 그러셨습니다."

미리 알리지 않고 방문했으나 이들 입장에선 이제껏 그만큼 높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게오르크도 왕의 친동생인 공작이 왔다며 기뻐했던 기억이 났다.

"관심은 좀 보이던가?"

"그분보다는 공작 부인께서 더 흥미가 계신 것 같았지만, 나름대로 신기하게 보고 가신듯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며 게오르크가 물어보려 했으나 이미 이자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

임금이 쓰러졌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에 봉림대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혀, 형님께서!"

어찌나 놀랐는지 '전하'가 아니라 아주 어렸을 적, 잠저 시절에나 쓰던 형님이란 호칭까지 튀어나온 대군이다.

"이럴 때가 아니오. 어서 입궐해야겠소."

봉림대군이 아내 장씨의 도움을 받아 다급히 의복을 차려입고 있을 때였다.

바깥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군 대감, 병조참판 영감께서 오셨사오이다."

"병조참판이?"

노복의 보고에 봉림대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자신과 사이가 썩 원만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을 터인데, 이 중차대한 시기에 갑자기 찾아오다니.

"······다음에 찾아오시라 일러라."

"헌데 전하의 환후에 관한 일이니 반드시 뵈어야겠다고 막무가내이신지라, 쇤네들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나이다."

그러자 봉림대군의 머릿속에 불경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주상께서 위급하신 이때에 나를 찾아와 전하의 환후를 논한다라. 이자원, 이 자가 설마.'

봉림대군은 이를 악물었다.

원자는 아직 어리니, 사이가 나쁜 자신이 임금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찾아온 것인가.

물론 자신이 왕이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실제로 논의를 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만약 그런 소리가 나온다면 한껏 꾸짖어주리라 결심하며 봉림대군은 이자원과 마주앉았다.

"전하께 남만승들의 진료를 받게 도와주십시오."

"남만승이라니."

봉림대군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간 것에 대해 어딘가 미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보다 이자원의 요청이 더 충격적이었다.

"아니, 전하께서 저리 위급하신데 어찌 외인의 손에 옥체를 맡긴단 말이오?"

"어의의 손으로는 전하를 구해낼 수가 없소이다."

폭탄발언이었지만 이자원의 어조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봉림대군은 그 당당한 태도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저 남만 사람들은 이미 기나나무 껍질에서 약을 추출하여 학질을 다스리는데 쓰고 있으니, 남만승들이라면 병마를 떨쳐낼 수 있겠지요."

"그럼 병참께서 그리 간하면 되지, 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소관만이 나선다면 중전께서 그리하라 허락하시겠습니까?"

그 말이 맞았다.

"부부인과 함께 남만사에 들르셨다 들었사오이다. 직접 보시기에 어떠셨소이까?"

이자원의 물음에 봉림대군은 그때를 떠올려보았다.

부인은 방문 목적에 충실하게 남만승에게 아들 낳을 비법을 캐물었지만, 그들은 '자녀는 상제께서 점지하는 것이지 인간이 손댈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부인은 실망했으나 오히려 그 대답은 대군의 마음에 들었다.

상제 운운은 그네들이 믿는 바이니 차치하더라도, 아들 갖고 싶어하는 어미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부류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만인들에게도 그 나름의 도가 있어 보였소."

적어도 혹세무민하거나 해를 끼치고 다닐 자들은 아니겠구나, 하는 감상을 느낀 것이다.

봉림대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이 잘못되면 이자원 뿐만 아니라 자신도 같이 죽게 된다.

단순히 돌팔이를 데려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종친과 군문의 대장이 오랑캐 승려에게 임금의 진찰을 맡겼다가 훙서에 이르게 했다.'

그 한줄의 문장이 조선 전체를 뒤흔들 피바람이 될 수도 있었다.

이자원처럼 껄끄러운 사이를 위해서 같이 죽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반면······.'

반면 그가 나서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형의 목숨 외에는 말이다.

갈등은 길지 않았다.

"이것이 전하를 구할 방도라면, 나는 따르도록 하겠소."

===

"아니 되오! 어떻게 전하를 정체도 모르는 오랑캐들에게 진찰을 받게 한단 말이오!"

중전 강씨의 호령이 울려퍼졌다.

임금보다 한살 위인 그녀는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듯이 대단한 여걸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자원과 봉림대군은 발 너머로 보이는 중전에게 고개를 조아려 고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어의가 학질을 잡지 못할 가능성이 크옵니다. 어의 이형익 또한 번침과 탕약 외에는 별다른 수를 쓰지 못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그러나 그래도 오랑캐들인데."

"중전 마마."

이자원이 말했다.

"단순한 오랑캐가 아니오라, 대국 황제께서 곁에 두고 총애하신 이들이옵니다."

숭정제를 들먹이자 중전도 할말이 없었다.

감히 명나라 황제가 신임하던 자들을 일개 오랑캐로 치부할 수가 있겠는가.

"하옵고 이미 조선땅에 있으면서 의술을 베풀어 치료한 백성이 수없이 많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이옵니다."

이자원의 말에도 못내 저어되는 부분이 있었던 중전이 슬쩍 물었다.

"남만승들이 밤마다 절을 나와 간을 빼어먹는다는 소문은 무엇이오?"

"궁중에 도는 허언을 믿으시면 아니되옵니다, 마마."

평소라면 그런 소리가 들리면 경을 쳤던 중전이지만 이 상황이 되니 그런 헛소문마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을 봉림대군이 딱 잘라 정리하자 중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봉림대군은 그녀에겐 시동생이요, 이자원은 제부(弟夫)가 되니 실상 그들 내외에게 있어 이보다 가까운 친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남만승들의 치료를 청하자 중전 강씨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임금의 용태는 척 보기에도 좋지 않았지만, 어의들이 손도 못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중전은 끝내 결단을 내렸다.

"대군과 병조참판께서 이리 권하시니 내 허락하겠소. 단, 어의들이 함께 지켜보아야 하오."

중전이 결단을 내리자 이자원과 봉림대군은 엎드려 사의(謝意)를 표했다.

작가의말

소현세자는 10대 때부터 스트레스성 위장질환을 앓아왔습니다.

이런 증세는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졌는데, 청에 볼모로 끌려가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중압감을 느끼는 자리에 있을 지금 임금의 병이 더 심해졌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라리아에 걸렸다면...

1692년 강희제가 학질에 걸렸을 때 그를 구한 사람들 또한 중국에 들어와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구사일생한 강희제는 키니네를 성약이라고까지 부르면서 통크게 보상해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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