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움직임 (1) >
반란은 진압되었다.
권대용과 유탁, 이지혐, 홍영진 등 주모자들과 반란에 가산과 사람을 내어놓은 양반들은 모조리 도성으로 압송되었다.
이자원이 그들을 굴비 엮듯이 잡아 돌아오자, 백성들은 앞다퉈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저런 썩을 놈들이 있나."
"때가 어느때인데 역모를 하느냐고 나서냔 말이야."
호란 후 조선의 민심은 빠르게 안정되어갔다.
싸움을 하는 족족 대승을 거두고, 내치에서도 그럭저럭 선방 중인 임금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권대용은 대동법으로 도성의 일부 부민(富民)들과 충청도 향반들 여론이 조금 흔들리던 기회를 잘 파고들긴 했으나 그뿐이었던 것이다.
"자칫 오래 놔두었으면 두고 두고 골치가 되었을 자들이니, 잘 처리했다."
임금은 이자원을 치하하며 말했다.
"군공이 끊이지 않으니, 무슨 상을 주고 어떤 벼슬을 더 높여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볼 터이니 모쪼록 기대하고 있으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돈을 주자니 이자원은 별 관심이 없어보이고, 여색도 그리 즐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임금을 위해서나 이자원 본인을 위해서나 벼슬을 높여주는 편이 좋겠지만, 몇 계단을 건너뛰어 승진한지 반년도 되지 않았으니 반발이 따르리라.
임금은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서안 위에 놓인 문서를 들어올렸다. 이자원이 올려보낸 사건의 전말이 담긴 장계로, 임금은 몇번이나 그것을 읽어보았다.
"제놈들은 조용조의 옛 법을 지키고자 기의하였다 일컬었지만, 실상은 제 욕심이나 채우려는 이들이었다."
괘씸하다는 듯이 그리 내뱉은 임금은 이내 실소를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권대용은 마지막에 이르러 아예 왕까지 칭했다지! 이자의 머릿속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그런 궁지에 몰려서 자칭하는 왕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냐?"
"그렇게 일그러진 형태로라도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이자원은 웃지 않았다.
그의 진중한 표정을 본 임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가셨다.
"권대용의 꿈은 망상에 불과했고, 그 자신은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던 제왕병(帝王病) 환자였을 뿐이옵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 백 명이 되고, 천 명이 된다면 사직이 실제로 뒤집어지는 법이지요."
"정말······ 그리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혹 충청도에서 민심이 이반하는 광경이라도 보았는가?"
이자원이 또다른 반란의 기미라도 감지한 것인가 싶어 임금은 놀라 물었다.
하지만 이자원은 임금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전하께서 선정을 베푸신다면 어찌 그런 흉참한 일이 있겠사옵니까. 다만,"
이자원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현재의 대국(大國)이 딱 그러한 형세에 있사옵니다."
"명나라가······."
임금의 눈빛이 흔들렸다.
실제로 명나라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이자원이나 다른 신하들에게 많이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처럼 은근한 뉘앙스로라도 명이 천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은 접한 바가 없었다.
때문에 임금의 충격은 컸다.
"천조의 위세가 사해를 덮었던 영락 연간에도 당새아(唐賽兒) 같은 자가 난을 일으켰고, 그 뒤에도 반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천명이 뒤집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겠는가?"
임금은 필사적으로 이자원의 말을 부정했다.
지금의 명나라는 임진년과 달리 조선을 도와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사람들의 관념상으로는 여전히 조선의 든든한 대들보였다.
북벌을 준비하는 지금 명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은, 임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고,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천조가 무너진다면 청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느냐?"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자원은 한발 물러나 운을 띄웠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지 않겠사옵니까. 북벌을 완수했을 때, 마침 대국이 망극한 일을 당한다면 어찌 하시겠사옵니까?"
이자원의 물음에 임금은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마땅히 신하된 도리로서 군사를 보내어 도적들을 토평하고, 주명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 대답에 이자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어쩐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에 임금이 화제를 돌렸다.
"네 부탁대로 이번에 출발한 통신사(通信使)에는 훈련도감의 남만인(南蠻人)들이 따라갔다. 가도에서 온 승려도 마찬가지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임진년 직후에야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조일 양국 모두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있었다.
조선은 후방의 안정을 위해서, 일본은 청을 막기 위한 방파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호 관계를 증진시켜 온 것이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이번 5차 조선통신사는 5년 뒤에야 파견되었겠지만, 조선이 북벌을 계획 중인 영향 때문인지 앞당겨지고 말았다.
"헌데 남만과 통교를 하기 위해 그 나라 백성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승려는 제발로 조선에 온 이인데 어찌 일본으로 보내는 것이냐?"
임금의 물음에 이자원이 답했다.
"그는 그쪽에서 맡아야할 일이 있나이다."
지금쯤 일본은 진탕 홍역을 겪고 있을 것이다.
조선통신사가 융숭한 대접을 받기에는 영 좋지 않은 시기겠지만, 그렇기에 일을 도모하기엔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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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옥사로 삼사에 앉아있던 일부 청서파들이 사약을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청서는 세력 자체가 지리멸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신 일색인 공서가 확고한 여당(與黨)의 지위를 굳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정의 지분을 반 정도는 지키고 있는 그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임금이 청서가 주로 장악하던 청요직의 특권을 빼앗고, 왕당파인 강석기를 중심으로 재편한 것 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름 관대한 조치에도 청서 내의 소수파로 전락해버린 이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국구는 입만 열면 협치, 협치하지만 결국 공서에 끌려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하다못해 이번 대동(大同) 문제에서는 소북의 심열에게조차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니, 말이 청서이지 실상은 소공서(小功西)나 다름없지 않은가?'
대개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 이조판서 정온의 집에 몇몇 신료들이 찾아든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대부분의 청서들은 대세를 따라 영수인 강석기의 편에 섰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면면 또한 제법 화려했다.
우선 이조의 2인자인 참판 이식이 말을 꺼냈다.
"이번 무과에서 입격한 자들이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많이 세웠다 들었소이다. 적괴 홍영진을 잡은 이도 신출내기 초관이라던가, 그렇다더군요."
주제는 역시나 반란이었다.
공주까지 넘어간 대반란에다 마지막엔 역적이 왕까지 칭했다 하니 화제에 자주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허, 그런 일까지 어찌 아시오?"
집주인인 정온이 묻자 이식이 대답했다.
"허득량 그 사람이 계옹(溪翁, 김상용의 호) 대감과 청음(靑陰, 김상헌의 호) 대감의 제자 아니었소이까. 이번에 도성에 올라왔기에 환담을 나누었는데, 홍영진을 잡은 이가 그의 재종동생이라 하더군요."
"허허, 그 사람. 그렇게 안보았는데 집안 사람 잘봐달라는 뜻인가."
정온이 이식의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식은 어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하지만 우리로서도 손해볼 것은 없는 일이오이다. 금상께서 들어서시고 난 뒤로 북벌을 국시로 삼으며 무관들이 크게 힘을 받는 판이니, 우리도 이런 조류에 끼어들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이식의 생각에는 지금 청서는 겉보기엔 강석기의 영도 아래 세력을 지켜나가고 있었지만, 사실상 서서히 말라죽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석기가 영수로 들어선 이후로 어심에 어긋나는 일은 단 한가지도 하지 않으니, 공서의 신경진이 하는 말이나 그가 하는 말이나 다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공서의 문신들이 체급을 키우거나 아니면 인조대왕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들의 역할을 대신 맡으면서, 청서라는 붕당 자체를 해체시키기로 작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도는 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우리 당의 세를 조금이라도 더 키워서······."
"참판, 그만하시오."
정온이 이야기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이식을 제지했다.
이 자리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 계속 그들만 말하는 것은 실례였다.
동맹 관계인 다른 쪽의 말도 들어보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예판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예조판서 김집.
청서 내의 세 파벌 중 산림계의 좌장(座長)을 맡고 있는 그에게 정온이 묻자 김집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런 논의까지 끼어들게 되는구나.'
그가 본래 품고 있던 생각에 따르면, 임금의 망극한 죽음을 당하여 조정이 일치단결해 북벌을 이뤄야 했지만 그가 나아온 현실 정치는 그런 이상론을 늘어놓을 정도로 녹록치 않았다.
당장 대동법만 해도 그 시행을 놓고 호조의 심열, 김육 등과 얼마나 다투었던가.
그 탓에 호서의 민심이 흉흉해져 반란까지 일어났지만 끝끝내 주상께서는 이를 철회하지 않으시니, 김집은 답답함과 함께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말(唐末) 우이(牛李)의 죄를 범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겠으나, 참판 영감의 말에는 대체로 동의하오."
당나라는 그 말기에 이르러 우승유(牛僧儒)와 이길보(李吉甫)의 당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렇기에 김집은 우려의 말을 먼저 꺼냈으나, 이식의 말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 무신들을 끌어들인다 해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일터. 학맥이 닿는 신출내기 무관들을 위주로 포섭하기에는 그들이 우리 힘이 되어줄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소?"
정온의 말에 김집이 답했다.
"인망이 있고 영향력도 상당한 이가 나서준다면 좋을테지만, 그런 자들은 대개 공서에 줄을 댔지요."
나름 이름이 있는 유림이나 임경업 같은 자들도 호란 전부터 김류, 심기원 등 공서파들과 결탁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서가 그간 여당으로서 지니고 있던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 판서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때 김집의 뒤에 얌전히 앉아있던 청년이 문득 입을 열었다.
"대감, 적절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명보(明甫), 어디라고 끼어드는게냐."
스승의 호통에 방금 말을 꺼낸 청년, 송준길은 움찔했다.
중진급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니 성균관 학유(學諭) 벼슬에 불과한 그가 끼어들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김집의 제자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도 따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판 대감의 제자들은 모두 시대의 준재(俊才)라 들었는데,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소이다."
그러나 정온이 송준길을 스승의 꾸지람으로부터 구해주었다.
"말해보게. 자네가 말하는 적절한 사람이 누구인가?"
"예, 대감. 소관은 훈련대장 영감을 끌어들일 것을 권하는 바이오이다."
송준길의 말에 정온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정온 뿐만 아니라 좌중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의 얼굴에 꽂혔다.
놀라지 않은 사람은 옆에 앉은 송시열(宋時烈) 뿐이었다.
"훈련대장을? 그 사람은 우리와 악연이 있음을 잊었는가?"
가도 건과 정축옥사로 이자원은 청서와 척을 졌다.
적어도 정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청서의 영수이신 우상 대감의 사위이기도 하지요. 또한 인조대왕께서 항전을 고민하고 계실 적에, 청음 대감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대장을 보호했으니, 그 은혜를 안다면 생각해보지 않겠사오이까?"
"가능한 일이 아닐세."
정온이 잘라 말했다.
이자원이 강석기의 사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온의 눈에는 강석기 본인부터가 미덥지 않은 터였으니, 이름만 청서로 걸어놓는다 하여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가 정온, 이식 등과 손을 잡기 위해 나설리도 없었다.
그때 가만히 앉아있던 송시열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