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심가들 (3) >
이산(尼山)은 오늘날의 논산으로, 남으로는 전라도와 통하고 북으로는 공주와 맞닿은 곳이다.
나름 지방의 요지로 감사도 제법 신경을 쓰는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산현의 양반집 한 곳을 찾아든 권대용은 곧장 사랑방으로 안내되었다.
이미 기별을 받은 듯 양반 여럿이 모여 있었다.
"어찌 되었는가?"
옆 고을인 연산(連山)의 교생(校生) 이지혐(李之馦)이 권대용의 얼굴을 보자마자 캐물었다.
그는 권대용과 동문수학한 사이로, 향교에 이름은 올려놓았으되 학문이 대성하지는 못하여 관직에 나서지 못한 자였다.
다만 연산에 뿌리내린 집안의 자손인만큼 충청도의 양반들과 혈맥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그 점에 주목한 권대용이 그를 끌어들였다.
"이자원 장군의 이름을 판 것이 주효했네."
권대용이 말했다.
"명장 중 명장이요, 백성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져있으니 어찌 부민들이 넘어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금씩 내려보낸 조총이 천 자루에 화약이 수백 근인데, 받아보지 못했는가?"
"어허!"
이지혐이 무릎을 탁 쳤다.
"군기의 관리야 여기 있는 유 선생이 하니 나는 정확히는 알지 못했네. 혹 조정에서 눈치챈 낌새라도 있던가?"
"전혀. 지금 주상의 관심이 모두 북쪽에 가있는 탓인지 조정의 눈과 귀가 생각보다 어둡네."
권대용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부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군기들을 모아들인 그다. 이제 화력으로만 따지면 한판 붙어볼만하지 않을까 싶은 그인 것이다.
"병력의 초모는 제대로 되어가는가?"
"물론일세. 내가 아우와 함께 우리 연산 고을의 양반들을 대거 끌어들였네. 못해도 연산에서만 5~6백 명이 일어나겠지."
이지혐이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이산의 유학(幼學) 유탁(柳濯)에게 눈짓하자 이번에는 유탁이 험험, 하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유탁은 그의 6촌 형제 홍영진(洪榮振)이 이지혐의 자형인 까닭으로 이 모의에 끼어들게 된 이였다.
"수많은 친지들이 가담했으니 우리 이산에서도 5, 6백 명을 족히 모을 수 있을 것이오."
"게다가 우리 자형께서 공주 속오군을 끌어들이기로 하지 않았는가."
이지혐이 은근히 권대용에게 자랑하며 말했다.
그의 자형이자 유탁의 친척인 홍영진은 얼마 전부터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거둔 최대의 성과가 바로 공주의 속오군 기총(旗摠)인 김예상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기총은 정8품 잡직으로 비록 직급은 낮지만 김예상 본인이 속오군 사이에서 제법 인망이 있어 일이 잘 풀리면 족히 1천 명을 끌어모을 수 있다 하였다.
"연산과 이산, 그리고 공주에서 2천 명. 용담(龍潭, 현 전북 진안) 등 다른 고을에서도 속속 의군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최대 3천 명 정도인가."
"지금은 3천이라 하여도 한번 바람을 타면 1만 명은 금방 채울 수 있을 것일세."
권대용의 말에 이지혐이 말했다.
당장 3천 군사가 일어나면 충청도 전역에서 난리가 터질 것이다.
쉽게 가라앉지 않으면 대동법에 불만을 품은 충청도 지주들이 대거 가담할 터이니, 1만이라는 숫자가 그의 눈에는 그리 허황되어 보이지 않았다.
권대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지혐의 말에 찬동했다.
"나는 계해년(1623년)부터 뜻을 세우고, 정묘년(1627년)부터 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았네. 지금이야 금상이 들어서며 나라가 조금 안정되었다지만, 사족부터 무지렁이 백성들까지 은근히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
"어허, 우리가 내세운 명분은 일단은 청군측(淸君側)이 아니오."
유탁이 역성을 암시하는 권대용의 말에 짐짓 주의를 주며 말했다.
"다른 양반들도 아니고, 우리끼리 있는 판에 숨길 것이 있겠소?"
그러나 유탁의 지적에도 권대용은 당당했다.
애초에 역성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정진인이니 최영의 후예니 하는 말도 퍼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잘 통하니 말이다.
그러나 먹물 좀 먹었다는 양반들을 꾀려면 대놓고 역성을 논할 수는 없었다.
대동법에 반대하며 간신들을 쓸어내자는 명분이나, 아니면 이 전주 이씨 왕조 자체를 갈아보자는 명분을 내세우나 역적 모의인 것은 똑같지만 사족들이 느끼는 바는 달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현실적인 청군측을 내세우고, 이자원의 이름을 팔았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끼어들었고 말이다.
"이런 때에 이자원과 같은 장수가 군병을 일으켜 거사한다면, 하삼도의 인심이 아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름을 판 것은 기가 막힌 수였다.
권대용은 스스로 내심 감탄하며 이지혐과 유탁을 바라보고 말했다.
"논의도 적당히 끝났는데 거사의 성공을 위해 술이나 한잔씩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고 보니 슬슬 자형이 오실 때가 되었네. 자형께서 도착하시면 넷이서 한잔하는 것이······."
이지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 하나가 사랑방에 들어섰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이지혐이 찾던 그의 자형 홍영진이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째 비실비실해보이는 청년 하나가 옆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분은 뉘신지······?"
권대용이 물었다.
이산, 연산, 은진, 공주, 석성 등을 오가며 사람들을 포섭하던 홍영진이었으니 아마 십중팔구 새로 들어온 가담자일 터였지만, 거사의 핵심 수뇌부가 모여있는 이곳까지 데려온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부여(扶餘)의 양반인 박씨 집안 자제요. 품고 있는 뜻을 들어보니 행수(行首)께서 요긴히 쓰실 호걸인듯 하여 데려왔소이다."
아무리 봐도 호걸이라 불릴만한 인상들은 아니었지만, 권대용은 간신히 그런 감상을 눌러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한양의 진사 권모라는 사람이오."
"박성균이라 하외다."
청년이 말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것이 무엇이오?"
보아하니 나이도 젊고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자다.
김예상처럼 속오군을 동원할 수 있는 인간이면 모를까, 이런 양반 자제 하나하나까지 자신이 만날 이유는 없었으니, 자연히 말에 가시가 돋친 권대용이었다.
'이런 자들은 홍영진이 알아서 해야할게 아닌가.'
그러나 박성균의 대답에 권대용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동생은 훈련도감의 파총이오이다. 헌데 이번 원정에는 따라가지 않고 도성에 남았다 하지요. 이자원 장군이 군대를 몰아오실 때 동생으로 하여금 안에서 호응케하면 도성은 금방 의군의 손에 떨어질 것이오."
"훈국 파총!"
권대용이 외쳤다.
파총이면 휘하에 600명을 거느린 지휘관이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정예인 훈련도감이라니.
'이자원이 실제로 가담했다는 말은 거짓부렁이지만······ 이놈들이 훈국 파총을 끌어들인다면 도성에서도 일을 도모해볼만 하지 않을까?'
그가 이산으로 내려온 것은 도성에서는 소요를 일으키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만약 훈련도감이 조금이라도 움직여준다면 적어도 시선을 끌 수 있고, 크게는 정말 하기에 따라 도성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조금 더 사정에 밝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촌부의 망상이라 혀를 찼겠지만, 이 자리에는 그런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생에게 이리 편지를 보내도록 하시오."
권대용이 몸이 달아 박성균에게 앉은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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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용의 자세한 지시를 듣고 나서 본가로 돌아온 박성균에게 첫째 동생 박중균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이런 논의에 가담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뭐가 말이냐."
박성균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말이 나라를 바로잡자는 것이지, 실상은 역모가 아닙니까?"
박중균은 박성균이 꾸미는 일을 대충은 알고 있었고, 그에 협력도 했지만 아직 마음 한켠에서는 영 내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게야?"
박성균이 동생을 꾸짖었다.
"한때 신동 소리를 들었던 우리 형제다. 그런데 둘 다 사마시(司馬試, 소과)에 번번이 미끄러지니, 추켜올리던 동네 사람들 눈길이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더냐."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돌머리 막내놈은 그깟 무과 좀 붙었다고 으스대고 말이다. 제길······."
유복한 향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무수한 사람의 기대를 받았던 그다.
어릴 때는 공공연하게 정승이 될거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여러 차례 낙방한 끝에 그런 기대감과 꿈은 고스란히 열등감으로 바뀌어 박성균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시하던 막내동생은 무과에 한번에 붙고, 전란에 공을 세워 승승장구하더니 이제는 그 나이에 종4품의 참상관(參上官)이었다.
"그래도 막내는 제 힘으로 다 이룬 것인데······."
"그러니까 그 잘난 막내 덕 좀 보자는 말이다. 이자원 장군도 가담을 했다니 그놈도 거기에 붙어서 움직이겠지. 도성이 의군 손에 들어오면 우리 형제가 단숨에 일등공신이 되는 것이야."
때문에 박성균은 알음알음 퍼져가던 모의를 듣자마자 결단을 내리고 홍영진을 찾아간 것이다.
그가 보기엔 실패할 확률은 적고 성공하면 모든 것을 쥘 수 있는 도박이었다.
"잔말말고, 철균이 놈한테 편지를 써야하니 옆에서 먹이나 갈거라."
형의 말에 박중균은 머리를 긁적이며 벼루에 물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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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과 협상이 끝난 후 이자원은 둔아를 풀어주었다.
"어디든지 가도 좋다. 네 고향인 야춘으로 가도 좋고,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조건 하에 가족들과 조선 경내에서 살아도 좋다."
이미 둔아의 부족은 씨가 말랐으니 당연히 가족을 데리고 조선 안에서 살아가겠다 말할줄 알았던 이자원이지만, 둔아는 의외로 눈에서 불꽃을 태우며 말했다.
"죽으나 사나 고향땅에 묻히겠습니다. 그리로 보내주십시오."
둔아는 그렇게 경흥에서 제 가족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넘어가버렸다.
"제 세력없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사오이다."
황익이 말했다.
"조만간 야춘에서 개시가 열리면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겠지."
"둔아가 생각 외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력을 재건하면 어떻게 하오이까? 우리에게 복수하려 들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글쎄."
테무진이나 누르하치 정도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자원의 눈에 둔아는 그정도 인물은 아니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의 때가 그보다 더 먼저 찾아올 것이다.
한편 남하하던 훈련도감 병력은 임금이 보낸 선전관을 맞닥뜨렸다.
"충청도에서 반란의 움직임이라······."
토벌을 해야하니 서둘러 복귀하라는 어명이었다.
"북정에 이어 반란 토벌인가."
이자원의 말에 황익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대, 대장 영감. 우리 마병들은 호란과 가도 정벌, 그리고 이번 북정까지 계속 끌려다녔사온데······."
"마병은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이자원이 툭 내뱉었다.
그 말에 황익의 표정이 확 펴졌다.
"저, 정말이오이까?"
황익으로선 더할 나위없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었다.
"마병의 쓰임이 전장의 형세를 결정하는 법인데, 데리고 가지 않아도 괜찮겠사오이까?"
황익이 말을 꺼낸 적비를 죽일듯이 노려보았지만, 적비는 아랑곳않고 이자원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속오군이 중심이 되었다고는 하나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병력들이다. 마병들까지 꺼낼 것도 없다."
황익의 말처럼 쉴새없이 움직여온 훈국 마병들이다.
소모가 심한 것도 사실이니 이번에는 데리고 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하오면······."
"훈국 좌부는 가도 정벌 후부터는 쭉 쉬었으니 그들을 데리고 간다."
좌부와 우부를 번갈아가면서 전장에 데리고 나가게 된 이자원이었다.
그렇게 임금의 선전관이 이자원과 충청 감사에게 도착하고,
다시 박철균에게 형들의 편지가 날아든 그때.
권대용은 기어이 이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작가의말
주모자인 안익신은 추국 과정에서 이산, 연산 일대의 반란군 병력이 각각 5, 6백 명이라 실토했습니다. 여기에 공주의 속오군이 수천이니, 유력자가 동원하면 1천은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주모자들은 자신들의 모의에 당시 백성들의 인망을 얻고 있던 임경업의 이름을 끌어들였고(물론 사칭), 정진인과 최영의 후예라는 가상인물들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제법 효과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진압 후 이것이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게 되는데, 이 역모에 가담한 정진인이 사실 강빈의 형부였던(강석기 첫째딸의 남편) 정태제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태제가 귀양을 가게 된 것입니다.
같은 혐의가 씌워졌던 예조판서 정태화가 불문에 부쳐진 것을 보면 인조의 의도가 과연 어디 있었을지는 명확하지요.
정태제는 결국 효종 2년에야 사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