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심가들 (1) >
"남강(南崗), 훈춘, 야춘."
이자원이 지도에서 세 곳을 짚었다.
남강은 현대의 연길이다.
"이곳들이 어쨌다는 거지?"
아민이 물었다.
"험준한 동북에서 그나마 평야가 펼쳐져 있고 살만한 땅들이다."
조선과 인접한 곳 중에선 이 세 곳이 가장 풍요로웠다.
그렇기에 반농반목을 하는 여진인들도 이곳에 많이 모여 살았고 말이다.
"이곳들에 호시(互市)를 열도록 하자."
"호시? 세 곳에서나?"
아민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물론 조선과의 교역을 통해 물자를 수급하는 것은 염두에 둔 일이었지만, 세 곳에 호시를 제안할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회령(會寧) 같은 곳에서나 교역을 허락해주겠다 할줄 알았던 것이다.
"개시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청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변경 주민들이 벌이는 사시(私市)로 위장하기 위해선 세 곳에 분산하는 편이 좋겠지."
"물론이다."
아민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가 대놓고 조선과 교역을 벌인다면 의심의 눈초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은 오히려 아민이 반겨야 하는 것이다.
"반면 남강과 훈춘, 야춘은 본래 우리 조선과 밀접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여진인들도 우리와 곧잘 장사하니 규모를 늘린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자원의 말에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이 세 곳은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공동으로?"
아민이 눈을 흠칫 떴다.
그는 이자원을 노려보았다.
"엄연히 그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은 만주인이고, 만주의 땅이다. 그런데 어찌 조선과 함께 경영하겠는가?"
"어디까지나 공평한 교역을 위해서다. 서로를 속이려 질 떨어지는 품목들이 오고가면 호시를 연 보람도 없이 곧 교역이 끊어지고 말겠지."
실제로 청은 조선과의 호시에서 조악한 품질의 면포로 대금을 치뤄주었기 때문에 원성을 샀다.
이를 방지하려면 조선의 관원이 주재해야 한다는 것이 이자원의 설명이었다.
"물론 일부 병력이 호위를 위해 따라갈 것이다."
"······."
아민은 침묵했다.
조선의 식량과 소금, 철기는 그로서도 간절했다.
그것을 틀어쥐면 군대를 키우고 동해여진을 제 밑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테니 말이었다.
조선도 대가로 말과 초피, 인삼을 가져갈테지만 그것은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교역을 넘어 조선이 연길과 훈춘, 야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면?
'그리 쉽게 당하지야 않겠지만······.'
아민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을 때, 이자원이 반대급부를 던졌다.
"대신 향화호인(向化胡人)들을 돌려보내주지. 원하는 자에 한해서."
===
향화호인은 조선에 귀순한 여진족을 말한다.
조선은 이들을 각지에 분리하여 정착시켰는데, 청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자연 향화호인과 조선인 간의 분쟁도 빈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병자호란 때는 향화호인들이 청군에 붙어 길잡이 노릇을 하기도 했었으니, 이들 문제는 더이상 방치해놓을 수 없었다.
"원하는 자들은 아민에게 보낸다. 적어도 스스로 선택해서 남아있는 자들은 더이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적겠지."
이자원이 말했다.
만주땅에서 사람은 곧 힘이다.
아민은 이자원의 제안을 듣자 어렵사리 결단을 내렸다.
세력을 굳히기 위해선 조선과의 교역이 필수적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제 남강, 훈춘, 야춘은 우리에게 종속될 것이다."
통치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조선의 세력권 안에 넣는다.
처음에는 교역에 관해서만 조선의 입김이 닿을테지만, 점차 그 정도가 심해지겠지.
"아민이란 자는 언뜻 보아도 효웅이었습니다. 장군의 예상 이상으로 단단히 세력을 굳힌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적비의 물음에 이자원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바로 세월이지."
하늘은 가슴이 탁 트일만큼 청명했다.
그러나 아민이 보고 있는 광경은 조금 다르리라.
"아민은 쉰이 넘었다."
스스로는 아직 정정하다 여길지 모르나,
그렇기에 여생을 야망을 위해 불태우고 있을지 모르나,
아민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3년 뒤였던가.'
원래 역사에서 아민은 1640년 사망한다.
사인은 모르나 이미 유배된지 오래되어 죽은 것이었으니 암살은 아닐테고, 아마 수명이 다 되었던 것이리라.
물론 역사가 바뀐 지금은 약간의 시간차가 있겠지만 아마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아들과 손자는 모두 심양에 있지. 그에게 후계자가 될 인물 따윈 없다."
아민이 열심히 동만주에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해놓은 후 죽고 나면, 조선은 연길, 훈춘, 야춘에 뻗어놓은 손을 다시 한번 움직일 것이다.
아민은 조선을 위한 가마우지가 되는 셈이다.
===
"어찌 생각하시오?"
호거는 범문정의 앞에 상주문 한 장을 툭 던지며 말했다.
좌섭정왕으로서 그가 맡은 업무는 군사(軍事)에 관한 것이었기에, 호거는 명목상으론 내정에는 간섭할 권한이 없었다.
그것은 우섭정왕인 도르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호거가 아니었다. 팔기는 군 편제이자 행정 단위이기도 했으므로, 그 핑계로 내정을 주물럭거리거나, 아니면 내각대학사인 범문정을 불러 '지시'를 내리곤 했다.
쇼토를 숙청하면서 주도권을 잡고부터는 아예 그런 눈치도 보지 않았고 말이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호거는 제 나름대로는 범문정을 제법 신임하게 된 모양이었다.
「장군 아이신기오로 아민은 반란을 일으킨 기야하찬의 목을 베고 그 부락의 뿌리를 뽑았으며, 닝구타까지 나아온 조선군을 물리쳤으니 그 공을 크게 치하하여 주십시오.
또한 변방의 형세가 어지러워 명장 한 사람을 두어 변란을 진압케하는데는 아민만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모쪼록 닝구타의 모든 가샨이다와 할라이다들이 청하건대, 닝구타총관(寧古塔總管)의 직을 신설하여 그로 하여금 맡게 하여 주십시오.」
아민은 과연 숙장답게 기야하찬의 반란을 순식간에 진압해버리고 그 이자원의 조선군마저 격퇴했다.
과연 자신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구나 싶은 호거였다.
사르후다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말이다.
"닝구타총관의 직을 신설해달라는 청은 가납할만 합니다. 혹 생각해놓은 사람이 있으신지요?"
잠시 눈치를 살피던 범문정이 말을 꺼냈다.
이 혈기방장한 섭정왕의 의중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렇기에 우선 총관을 임명하는데는 찬성하되, 아민에 대한 언급을 꺼내는 대신 호거의 의사를 먼저 물어본 것이다.
"니칸이 몽고아문 승정에서 물러났으니 그를 보내면 어떨까 하오만."
호거가 말했다.
그러나 범문정이 그것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임을 알고 있었다.
제 파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승정에서 내쫓고 에제이를 후임으로 앉힌 장본인이 바로 호거가 아니던가.
에제이는 아무런 실권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정황기 출신의 허서리 소닌(赫舍里 索尼)이 참정으로 임명되어 만사를 관장할 예정이었다.
범문정으로선 그나마 현인으로 소문난 소닌이 참정이 된 것에 안도했지만, 또한 호거가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은 자기가 쥔 상삼기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좌섭정왕은 모든 인사를 제 파벌이냐 아니냐로 따져서 결정하고 있다. 그런 판에 니칸을 닝구타로 보내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
마음에도 없는 니칸을 언급한 것은 역설적으로 호거가 이미 생각을 굳혔다는 뜻이었다.
"니칸은 지체 높은 황족인데 어찌 변방의 총관으로 삼겠습니까? 반면 아민은 이미 황적(皇籍)에서 이름이 지워진 몸이니 총관 정도로도 좌섭정왕의 은혜에 감읍할 것입니다. 또한 능력으로 따져보아도 니칸이 아민에게 미치지는 못하겠지요."
범문정의 말에 호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모두의 생각이 대학사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또한 그리 생각했소. 조선도 조선이지만, 봄보고르 놈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오."
아무래도 심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보니 봄보고르 토벌은 대명 전선이나 몽골보다 그 중요도에서 밀려나있었다.
소오하이와 삼시카를 보내 토벌케 했으나 그들 또한 패하고 나자 당장 신경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
봄보고르 또한 감히 더 남하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상경성 터에서 황제놀이나 하며 지내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더 놔둘 수는 없었다.
"아민을 총관으로 삼고 놈의 토벌을 맡기도록 하지. "
호거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부총관은 적당히 자신의 사람을 하나 붙이고 말이다.
"그나저나······ 한께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오?"
호거가 문득 생각났다는듯이 물었다.
"폐하께선 옥체는 건강하십니다만, 공부에 곧잘 흥미를 붙이지 못하셔서 큰일입니다."
범문정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생각해놓은 답을 읊었다.
"한께선 아직 보령이 어리시니 당연한 일이지. 정무나 공부를 강요하기보다는 뜻대로 지내도록 놓아두시오. 본왕이 그 나이 때는 활 한 자루 들고 사냥을 다니기 바빴다오."
호거가 슬쩍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섭정왕 전하의 말씀, 깊이 새겨두겠나이다."
범문정 또한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
훈련도감이 출진한지 벌써 여러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이자원이 오랑캐들을 깨부수러 간다는 소문에 백성들의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원지(遠地)에 나간 군대가 제때 소식을 전달할리도 없고, 또한 그것이 조정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일도 드물었던지라 어느새 백성들의 기억 속에서는 잠시 가라앉은지 오래였다.
그러나 지금 도성 한켠에서는 뜻밖에도 이자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대장께서 오랑캐들을 물리치고 나면 도성을 향해 군대를 몰아오실 것이라고?"
한껏 낮춘 목소리가 사랑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집도 으리으리하고 세간살이도 잘 갖춰놓은 집안이었지만, 그 주인은 딱히 조정의 중신이라 할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번번이 과거에 낙방했으되 물려받은 재산도 있고 이재(理財)에 밝아 한 재산을 모인 사람일 뿐이었다. 즉, 소위 부민(富民)이었다.
"이 대장께서도 가담을 하셨는가?"
"가담을 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분을 중심으로 일어나기로 한 것이외다. 최영 장군의 후예와 정씨 진인(眞人) 두 사람을 얻어 그런 계획을 세우셨지요."
갓을 푹 눌러쓴 선비 하나가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권씨성 쓰는 진사라 하던가.
그 당당함에 집주인은 기가 눌렸다.
"지금 대동법이니 뭐니하며 성상의 총기를 흐리고 옛 법도를 폐하려는 간신들이 조정에 그득하니 청군측(淸君側, 임금의 주위를 청소함)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사오이까?"
"그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집주인은 담뱃대를 꼬나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일어날 지경이었다. 대동법이 조정의 화두로 떠오르며 월과군기를 사사로이 방납하는 일이 금지되고, 각 군영이 이를 도맡게 되니 자신 같은 사람은 꼼짝없이 손해를 보게 생긴 것이다.
지금도 창고에는 재고가 되어버린 조총과 화약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조정에 헐값을 받고 넘기기엔 분통이 터져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동법 때문에 충청도의 민심도 그리 좋지 않으니 그곳 양반들도 대거 가담할 것이오이다. 북쪽에서는 이자원 장군이, 남쪽에서는 충청도 의군이 일어선다면 간신들이 손을 쓸 수나 있겠사오이까?"
권 진사의 말에 집주인은 잠시 승산을 재어보았다.
정말 그 이자원이 가담했다면 분명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좋네. 어차피 쥐파먹을 물건, 내 의군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놓도록 하지."
집주인의 말에 권 진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거사가 성공하면 어르신의 이름이 공신록의 가장 윗자리에 오를 것이오이다."
진사 권대용(權大用)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다섯 명째.
의군을 일으킬 기반은 충분히 갖추어졌다.
'임금의 위엄이 이 나라 조선에 우뚝 선 것 같아 보여도 항상 이런 불만분자들은 있기 마련.'
사세를 보건대 지금이 아니라면 오래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한낱 이름없는 선비에 불과한 그였지만 시운을 잘탄다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작가의말
조선은 국초부터 경원과 경성 일대에서 호시를 열어 여진을 통제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누르하치가 흥기해 여진을 통합하고 명과 대립하고 나서부터는 조선 또한 개시에 대해 소극적이 되었는데, 정묘호란 후 후금의 압력에 의해 의주 건너편 중강에서 개시를 열었지만 회령에서도 열어달라는 요청은 거부하였습니다.
원래 역사에서 병자호란이 청의 승리로 끝난 후에야 회령에서도 개시가 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