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옹지마 >
구왈기야 오보이.
원래 역사에서는 순치제 사후 다른 보정대신들을 제치고 실권을 장악한 인물.
바로 그 유명한 강희제의 첫 숙적이 될 자였다.
그러나 순치제나 강희제의 존재와 함께 원래 역사 같은 것은 저편으로 사라져버렸고, 스물 네살의 오보이는 지금 목숨이 이자원의 손아귀에 놓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살고 싶은가?"
이자원은 우선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직 탐욕스런 권신(權臣)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위기에 처하자 망설임없이 옥쇄(玉碎)가 아닌 항복을 선택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생존욕구가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능력만큼은 쓸만한 자였으니, 협조한다면 살려놔서 손해볼 것은 없을 터였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겠소."
오보이는 의외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청의 장수. 조선군의 앞잡이가 되어 싸울 수는 없으니, 모쪼록 장군의 자비에 기댈 뿐이오."
나름의 충정은 보이고 있지만 끝끝내 제 입으로 죽여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 오보이였다.
"내가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는다면 어떡할테냐?"
이자원이 오보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끌어내서 베어라. 도움이 되지 않겠다면 굳이 살려놓을 이유가 없다."
"잠깐, 그럴거라면 내 손으로······."
기야하찬이 이자원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직 적비의 칼이 목에 닿아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단지 호소만 할 수 있을 뿐인 그였다.
"자, 장군! 우리 대장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만주 제일의 용사입니다! 이대로 허망하게 죽이기엔 실로 아까운 분입니다!"
기야하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같이 꿇어앉아 있던 오보이의 부하들이 소리쳤다.
'제법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서는군.'
오보이가 이끌던 부대는 팔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닝구타에서 끌어모은 병력일 것이다.
따지고보면 오보이와도 그리 깊은 정은 없을텐데도 강함을 숭상하는 이들로서는 바투루라는 칭호를 받은 오보이를 죽이는 것은 너무한 처사로 보인 것이다.
"그대들 또한 마찬가지 생각인가?"
직접적으로 충돌이 있었던 기야하찬을 제외한 나머지 여진 족장들을 둘러보며 이자원이 물었다.
"화근은 뿌리뽑아야 한다지만, 아직 나이가 젊은데다 그리 높은 위치도 아니니 우리와도 직접적으로 맺은 원한이 없습니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와르카 출신 한 족장이 나서서 그렇게 말하고 다른 자들도 찬동하자 이자원은 한발짝 물러섰다.
"좋다. 그럼 묶어서 가두어라. 전쟁이 끝난 후 처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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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이군을 격파한 조선군은 계속해서 닝구타를 향해 진군했다.
더는 발목을 붙잡는 상대도 없었으니 발걸음은 한결 편했다.
청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오보이가 패하고 조선군은 거침없이 닝구타로 나아오고 있다······."
보고를 받은 아민이 중얼거렸다.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구나. 나였다면 최소한 백자령(柏子嶺)까지는 놈들을 붙들어두었을 것이다."
백자령은 잣나무와 전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이 60리에 걸쳐서 빽빽하게 펼쳐진 곳으로, 햇빛조차 잘 들지 않으니 매복과 기습을 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곳은 없었다.
아민은 이 일대에서 최대한 조선군의 전력이 깎여나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조선군의 계략에 걸려 매복군이 패주하고 오보이마저 사로잡히고 말았으니, 이제는 결전(決戰)만이 남아있었다.
"어디서 싸움을 벌일지를 정해야 할터인데."
아민이 말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곳 닝구타가 가장 좋소."
사르후다가 이미 생각해놓은 바를 꺼내놓았다.
닝구타는 해랑강(海浪江)·이도하(二道河)·삼도하(三道河) 등 세 하천을 끼고 있어 수로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자주 드나들고 방어가 쉬웠다.
발해가 이곳에 도읍하여 번영을 누린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성 인근에만 1천 호나 되는 민가가 있는데다 땅이 비옥하여 밭농사도 잘되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민은 닝구타에서 싸울 수 없었다.
'잠시 얻어서 세력을 일으키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아민은 눈을 빛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까마득한 오촌조카인 호거에게 머리까지 조아리며 심양을 떠나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자신을 가둔 우리를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호거가 주는 먹이 따위에 만족하며 살지 않겠다.'
아민의 계획대로 되려면 우선 닝구타의 민심을 얻어야 했다.
그런데 바로 이 근처에서 싸우겠다 하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성을 끼고 싸우는 것은 한인(漢人)들이 우리를 상대하던 방식이오. 언제부터 대청(大淸)이 조선군을 그렇게 두려워 했소?"
아민이 사르후다를 비난하며 물었다.
비꼬는 식으로 찍어눌러 할 말이 없게 하겠다는 공산이었다.
"이자원, 그 자는 다른 조선군과 다르오. 그는 여러 차례 간계를 부려 우리를 깨뜨려왔으니, 이번에는 여지조차 주지 말자는 말이오. 우리가 패배하면 바로 닝구타를 잃을 것이고 그럼 대청은 동만주를 상실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사르후다가 강하게 말했지만 아민은 이미 그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앞서 말했듯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청군이 개활지(開豁地)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함은 상식이 아니던가.
'군사에 대해 별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는구나.'
사르후다는 청 내부에서 동해여진의 전문가로 꼽히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행정적 능력이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일 뿐, 군재 자체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한때 양람기주로서 그의 상관이었던 아민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주장(主將)은 나요. 그러니 그대는 더 말하지 마시오."
그렇기에 이리 강하게 나가는 아민이다.
사르후다가 아민의 감시역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지휘권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바로 대청의 실질적인 1인자인 좌섭정왕 호거가 쥐여준 권한이었다.
"이동시간을 감안해볼 때 조선군은 지금쯤 백자령을 넘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는 석암진(石巖鎭)을 건너야 닝구타에 다다를 수 있소. 석암진에서 도강을 저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소?"
아민이 말했다.
석암진은 마련하(馬蓮河)가 지나가는 큰 나루로, 조선군이 반드시 도강해야 하는 곳이었다.
강이 있는데다 일대는 평야이므로 이곳에서 싸우면 넉넉히 조선군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네놈이 준 이 지휘권으로 다시 한번 날개를 펼쳐보마. 내가 조선군을 격파하고 닝구타로 돌아오는 그 순간이, 이 만주땅에 내 깃발이 다시 세워지는 순간일 것이다.'
아민이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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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지날수록, 닝구타를 향해 조선군이 올라갈수록 추위는 심해졌다.
하루종일 행군한 탓에 녹초가 되어버린 병사들조차 누가 시키기도 전에 진을 치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모닥불을 피웠다.
지루함을 잊고자 병사들은 잡담을 나누었다. 대개 사로잡힌 오랑캐 군대나, 그들이 지나온 웅장한 숲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와중에도 때때로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병사들은 몸을 웅크렸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초겨울 날씨라 다행이구만."
"남한산성에서 보낸 겨울보다는 낫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래도 여기 북쪽 땅은 한번 바람이 몰아치면 언제 날씨가 바뀔지 모른다던걸."
"하루이틀만에 끝날 전쟁도 아닌데 지금 날씨가지고 뭘 그러나. 손발 멀쩡히 돌아갈 생각은 버렸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리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아무리 단기간 많은 훈련을 받았다 해도 서서히 기세가 꺾여들어가고 있는 조선군이었다.
그나마 오보이의 별동대를 잡아내는데 성공하며 그 시점이 늦게 찾아온 것이 다행이었다.
"쉿. 황가 놈이 온다."
떠들던 병사들은 멀리 황익의 모습이 보이자 입을 닫았다.
순시를 돌며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하던-물론 그리 도움은 되지 않았다-마병별장 황익은 마지막으로 훈련대장의 막사에 찾아들었다.
"충성! 무슨 용무시오이까?"
막사 앞을 지키던 병사가 경례를 올렸다.
"훈련대장 영감을 뵈러 왔네."
황익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저것도 예의 훈련들처럼 '임금에 대한 충성을 항상 되새긴다'는 명목으로 대장이 도입한 군례(軍禮)였는데, 그는 어째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대장 영감, 날이 무척 추워지고 있사오이다."
막사 안에 들어선 황익이 말했다.
"알고 있다."
딱히 거리낌 없이 하대하는 이자원이다.
예전같으면 한번 대어들기라도 했을테지만, 이미 이자원에게 목줄이 잡혀버린 황익은 그저 공손한 표정으로 물을 뿐이었다.
"슬슬 강이 얼 것 같은데, 그리 되면 어찌 해야겠소이까?"
그가 현대어로 표현하면 똥별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장이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황익 또한 속이 탔다.
'작게나마 승리를 거뒀으니 이쯤되어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은가?'
황익이 생각했다.
기야하찬이 도망온 것을 구경만 했다면 모를까, 적의 별동대를 격파하고 그 대장까지 사로잡았으니 이만하면 체면치레를 한 셈이었다.
아니, 애초에 야춘으로 가서 야인 몇놈 목만 베어다 바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도 될 일이었다.
조정 대신들이 그 많은 비용을 들이고 수급 몇 개 가져왔다며 불평은 조금 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부득불 영고탑까지 진격하는 것은······."
"그간은 함경도 등에서 징발해온 소선(小船)을 통해 물자를 운반했지만 강이 얼면 쓰지 못하겠지."
황익이 슬쩍 운을 띄우던 그때, 이자원이 그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해법이 있다."
"무엇이오이까?"
"영고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곳을 점령하면 된다."
닝구타는 식량도 넉넉하고, 그곳을 장악하면 육로로 운반할 용도의 말을 징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적을 쓰러트리면 된다'는 무식한 해결법에 황익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닝구타를 점령하고 무사히 귀환하든, 아니면 패배해 적에게 물어뜯기며 도망치든 둘 중 하나다.
중도 퇴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황익은 점차 생각에 빠져들더니 끝내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자원의 말에 황익이 납득해버린 것이다.
"원래 보급은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사오이다. 적의 식량 1종은 나의 식량 20종과 같은 것이니(食敵一鐘, 當吾二十鐘), 이것이야말로 손자가 말한 병법의 기본. 오늘 대장 영감에게 좋은 가르침을 얻었소이다."
머리가 벗겨진 후세 어느 장군의 모습이 황익에게서 언뜻 비쳐진 것을 본 이자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항우가 황하를 건널 적에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던(破釜沈舟) 일화가 더 가깝지 않을까 싶었지만, 황익이 납득했다는데 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어보였다.
황익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소식이 들어오기도 했고 말이다.
"대장 영감! 적들이 나루 저편에 몰려오고 있사오이다!"
그 말에 이자원이 표정을 굳혔다.
"······빌어먹을."
청군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냥 강을 건너는데도 이틀은 족히 잡아야 한다.
그러나 석암진을 건너기도 전에 적들이 강 건너편을 장악했으니 도강을 시도하면 감당하기 힘든 피해가 쏟아질 것이었다.
"당장 강이 얼어야 한다."
이자원이 말했다.
"걸어서 건널 수 있도록."
그리고 한파가 몰아쳤다.
작가의말
사르후다는 홍타이지로부터 동해여진의 전문가라는 극찬을 들었지만, 신류의 북정록에 나오는 ‘오랑캐 두목(사르후다)은 영악한 인상이며, 이 자가 해마다 군사를 일으켜 태반을 잃으니 영고탑 오랑캐들 중에서 원망하지 않는 자가 없다’라는 언급을 볼 때 군사적 능력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시선임을 감안해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