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아갈 곳 (1) >
"아버님, 정말 이런 짓을 벌여도 괜찮겠사옵니까?"
"이런 짓이라니?"
부족의 수장 기야하찬은 아들 기라라지의 물음에 모르는 척 그렇게 되물었다.
초피 공납을 거두기 위해 찾아온 사자를 단칼에 죽여버린 뒤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토벌군이 들이닥칠게 뻔한데도 기야하찬은 태연했다.
"솔론의 봄보고르 같은 놈도 주제 넘게 금나라 한을 칭하는데 나라고 안될 것은 뭐냐?"
기야하찬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여전히 기라라지는 근심스런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래도 봄보고르는 샤하란 우라(흑룡강)의 부족들이 다 자기에게 귀부해 마음만 먹으면 남자 1만 명을 동원할 수 있다 큰 소리를 치니, 우리 부락과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차라리 웅도(熊島) 같은 곳으로 들어가 항전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웅도는 녹둔도 인근의 섬이다.
이곳 야춘(耶春, 현 러시아 포시예트)에서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기야하찬은 이런 소극적인 전략을 딱 잘라 거절했다.
"비빌 구석이 없으면 모르되, 왜 그런 궁벽한 섬에 들어가야 하느냐?"
"비벼볼 구석이라니······ 조선 말씀이십니까?"
기라라지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물론 조선이 나서준다면야 일은 쉬워질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인줄 알았더니 실상은 발톱 하나를 감추고 있지 않았는가. 무려 그 홍타이지를 참살하고 전쟁을 손쉽게 승리로 이끌었다 들었다.
"하지만 조선이 쉽게 우리를 도와줄지······."
문제는 그것이다.
조선이 적극적으로 나서려 할까?
무엇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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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창을 지원해야겠다."
임금이 말했다.
"오랑캐놈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반란이 빈발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힘을 보태면 청은 금방 무너질 것이다."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는 논리에 충실하게 그런 주장을 펼치는 임금이었지만, 그가 장계를 받자마자 급히 불러들인 이자원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전하, 북벌의 대의를 기억하소서."
이자원이 말했다.
"지금은 일거에 심양을 들이치기 위해 전력을 비축할 때이지, 하잘것없는 부족 몇을 지원하려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니옵니다."
동해여진 쪽에서 추가적으로 청의 질서로부터 이탈이 발생할 것은 예상했지만, 거기에 개입하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던 이자원이었다.
청 내부의 반란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이자원이 보기에 조선이 거기에 끼어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경하창이라는 자가 어느 정도 세력을 보유했는지도 모르고 그들이 있는 야춘과 심양은 너무나도 머옵니다. 군사를 일으켜보았자 어떠한 실익도 없사옵니다."
동맹도 동맹 나름이다.
청이 반란에 묶여 국력을 소진하는 것과 조선이 이 심양과는 한참 떨어진 부족을 지원하기 위해 국력을 소진하는 것.
둘 중 후자의 부담이 압도적으로 앞설 것이었다.
"그저 내버려 두소서. 나아갈 곳은 심양이지 야춘이 아니옵니다."
이 경하창이란 놈이 동해여진을 모조리 흡수하는 정도는 되어야 청을 압박할 체급이 될 것이다.
동맹이란 그때쯤 논해도 될 문제였다.
"그렇다면 귀부는 받되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옆에 있던 형조판서 구굉-책봉주청사로 돌아온 후 임명되었다-이 슬쩍 운을 띄웠지만 곧 반론에 부딪혔다.
"아니될 말이오! 우리가 번신의 예를 다한 까닭으로 임진년에 대명의 지극한 도움을 받았는데, 번속해온 경하창을 돕지 않으면 이러한 의리를 깎아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조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 아니겠소이까. 전하, 경하창의 투항을 받으시려면 군사를 내어 도우시고, 그렇지 않으시려면 단호하게 거절하소서!"
예조판서 김집이 외쳤다.
임금은 갈등했다.
군사에 밝지 않은 그가 보기에는 청에게서 팔 하나를 떼어 조선에 붙일 수 있는 호기(好期)로 보였지만, 이자원의 반대가 워낙 심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청이 경하창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다면 과연 조선의 변경을 건드리지 않겠는가?"
"경흥부 정도는 침노(侵擄)를 받을 것이옵니다."
경흥부와 야춘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맞대고 있으니, 청군이 온다면 야춘까지 몰려간 김에 경흥부를 건드려보기는 할 것이다.
"전하."
임금이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자원이 나지막이 말했지만 임금은 말을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결국 지원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확답을 내리지는 않은 것이다.
"대동법을 우선 충청도로 확대하고, 이에 앞서 전국적으로 양전을 실시하겠다. 호조와 각지 수령들은 차질없이 준비토록 하라."
그러면서 아까 전까지 논의하던 대동법을 끌어다 결론을 내린 임금이다.
공안 개정론과 대동법 실시론의 싸움에서 후자의 편을 든 셈이었지만 김육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어심이 어디 가있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조회가 파한 후 임금은 이자원을 다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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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으로 돌아간 쇼토는 곧 패전의 책임을 한윤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택이 살아돌아와 이것은 모함이라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니, 그 진위여부를 놓고 청에서는 치열한 정쟁이 일어났다.
도르곤은 자신의 만류도 뿌리치고 조선으로 출병했다 깨져 돌아온 쇼토가 마뜩찮았지만 어쨌든 자기 파벌이었으니 쇼토의 입장을 옹호했고, 호거는 반대로 쇼토의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 주장했다.
"한니(한택)가 돌아와 이미 내통한 적이 없음을 고하였소! 버이서 쇼토는 패했을 뿐만 아니라 한을 속이기까지 했으니 반드시 처형해야 하오!"
"한윤과 한니는 본래 조선인으로서 한번 제 나라를 배신하고 대청에 귀부했으니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으리란 법이 없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자원, 그 자가 서찰을 보내어 인증했지 않소?"
한택이 정말 배신자라면 왜 다시 청으로 돌아왔겠는가.
호거는 그렇게 도르곤을 공박했지만 그는 끄떡하지 않았다.
애초에 진실이 중요한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친도르곤파인 쇼토를 정홍기와 양홍기에서 밀어낼 이런 기회를 호거가 순순히 놓칠 수 있겠는가.
결국 호거는 독단적으로 쇼토를 체포, 엉어투의 조언에 따라 한윤과 한택에게 내통 혐의를 뒤집어씌웠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황명도 받들지 않고, 같은 섭정왕인 나를 거치지도 않고 황족을 잡아 문초하다니! 좌섭정왕은 제정신이오?"
당연히 도르곤은 그렇게 항의했지만 호거는 귓등으로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이미 쇼토의 죄가 낱낱이 드러났소. 한을 속인 죄인을 옹호하다니, 우섭정왕도 같이 벌을 받고 싶은게요?"
숫제 도르곤을 협박하는 그였다.
그렇다고 도르곤이 실력으로 맞서기엔 시기가 좋지 않았는데, 동복형제 중 아지거는 조대수의 명군과 싸우러, 도도는 몽골에서 일어나는 불온한 움직임을 사전에 억누르러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기군망상의 죄를 저지른 정홍기 구사 어전 엉어투는 목을 베고, 쇼토는 친족의 정을 감안하여 목숨은 살리되 평민으로 강등한다."
끝내 이런 황명마저 떨어지니, 호거의 뜻대로 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두고 호거와 도르곤의 골은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이자원이 바랐던 대로.
"좌섭정왕 전하, 우섭정왕이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습니다."
"흥, 그 따위 놈이 성을 내든 말든 내가 알 바가 무어냐?"
측근인 양샨의 말에 호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쇼토를 날려버린 일로 호거는 권력다툼에서 승기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요토는 조선에 넘겨져 처형당했고, 쇼토는 평민으로 강등되었으니 정홍기와 양홍기는 황백부왕 후처 소생의 네 아들 중 둘이 물려받겠지."
요토와 쇼토는 각각 다이샨의 전처 소생이다.
지금 그의 정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인은 나라 하라씨였는데, 아들만 넷을 낳았다.
"그 여자만 적당히 구슬릴 수 있으면 정백기와 양백기를 제외한 팔기 중 6기가 내 휘하에 들어온다. 그리되면······."
지금 황위에 올라가있는 조그만 녀석은 치워버리고, 자신이 원래 있어야 했던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섭정왕이라니, 웃기는 노릇 아닌가.'
도르곤과 그가 권력을 나눠서 다투는 사이 대청의 적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몽골은 발빠르게 차하르 친왕-즉 에제이 칸-의 신병을 확보한 덕인지 아직까지는 눈치만 살피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할 수 없었다.
당장 올라온 보고도 그랬다.
"후르카의 기야하찬? 이놈은 또 누구인데 반란을 일으켰단 말이냐?"
호거는 이젠 별의별 잡놈이 창 끝을 돌리는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그간 청군 주력은 금주에서 때때로 공격해오는 명군과 싸우느라 솔론의 봄보고르도 제대로 토벌하지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 채 진압도 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소오하이, 삼시카처럼 싸울줄 모르는 자를 보냈더니 봄보고르 하나도 꺾지 못했다. 이 반란은 번지기 전에 진압해버려야 한다."
소오하이와 삼시카에게는 억울한 평가였지만 호거는 그렇게 단정했다.
의복이나 겨우 두른 야만족 솔론 놈들에게 패했으니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각 기 황족들과 구사 어전들은 더러는 죽거나 근신 중이고, 대명 전선에 나가있거나 아니면 불온한 움직임을 억누르려 몽골에 가있는데 누구를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호로호이의 말에 호거는 잠시 머뭇거렸다.
스스로도 약간 고민한 인선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쓸 수 있는 지휘관으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민을 보내겠다."
독립을 꿈꾸다가 홍타이지에게 트집잡혀 숙청당한 자.
지금은 간보는 지르갈랑에게 목줄을 채워놓기 위해 호거가 유배에서 풀어놓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황족 신분도 양람기의 기주 자리도 회복하지 못한채 소일하고 있었다.
"좌섭정왕, 아민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날개가 모두 꺾인 그가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소유의 전사 하나 없는 아민이 반란을 일으키려 들면 도대체 누가 따르겠는가.
그리고 그의 아들과 손자는 모두 이곳 심양에 묶어놓을 작정이었으니, 마음놓고 아민의 능력만 거두어 쓰면 된다.
호로호이와 양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느꼈지만 호거를 말릴 수는 없었다.
"아민을 불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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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죄인을 풀어주는 은덕을 베푸셨는데, 이리 대임을 맡겨주시니 신은 좌섭정왕의 후의에 감동할 따름입니다."
아민은 홍타이지의 사촌형이었으니, 호거는 자신의 조카뻘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않고 호거의 앞에 조아려 수없이 감사를 표했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하는 것은 덤이었다.
이러한 자세에 호거가 몹시 흡족해했음은 물론이다.
'보라. 한때 부황만큼이나 야심을 품었던 이 자도 유배 생활이 오래되어 꺾이고 말았다. 이미 굴복해버린 자가 무슨 정신으로 칼을 거꾸로 들겠는가.'
오히려 아민을 포용함으로써 자신의 관대함을 널리 내세우고, 다른 종친들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기야하찬을 토벌하고 돌아오시오. 그리되면 황족으로 복권되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오."
호거, 그가 누려야할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면 황족 복권이고 뭐고 얼마든지 시켜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민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듯 다시 연거푸 고개를 조아렸다.
얼마 후 아민은 후르카 원정의 지휘관이 되어 심양을 떠났다.
아이신기오로 아민.
원래 역사에서는 몇년 뒤 유배지에서 쓸쓸히 사망했을 효웅이었지만, 바뀐 역사는 이렇게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작가의말
기야하찬은 후르카 부락의 수장으로, 봄보고르가 반란을 일으킨 것과 비슷한 시기인 1638년 공납을 거부하고 도망가 웅도를 점거한 인물입니다(참고로 누르하치의 사위였던 양구리가 이 후르카부 출신).
청의 진압군이 봄보고르 토벌 때 수천의 호구를 얻은 것과 달리 기야하찬을 격파하고서는 적은 호구를 데리고 온 것으로 보아 세력이 그보다 약했던 모양입니다.
웅도는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외교부에 올라와있는 칼럼에 따르면 녹둔도 근처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실록에도 경흥부와 가까워 교역한다고 나와있고요.
병자호란 때 청의 셔틀이 된 조선은 이 웅도 토벌 때도 원군을 보내 협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