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공사 (4) >
'북방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자원은 서찰을 읽으며 생각했다.
가도에 가있는 장현이 보낸 것이었다. 명과 어떤 것을 교역해야 장차 이익이 될지 살펴보라며 보냈더니 무슨 끈으로 들은 얘기인지 이런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조만간 일이 터지겠군.'
"대장 영감, 소관 박철균이오이다."
이자원이 근무하는 대청 바깥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
이자원의 말에 박철균과, 그 뒤로 키큰 서양인 셋이 들어왔다.
조선인과는 확연히 다른 외모였다.
"앉게."
상석에 앉은 이자원이 말하자 서양인들은 엉거주춤 교의(交椅, 의자)를 꺼내 앉았다.
"조선에 온지 몇 년이나 되었나."
"정묘년에 왔으니,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개중 가장 직급이 높고 조선말이 능숙한 벨테브레가 나서서 답했다.
"10년이면 아직 너희 말은 능숙하겠군."
세 사람은 그 말에 서로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들끼리는 조국의 언어로 줄곧 소통해왔으니 10년 정도로 까먹을 일이야 없었지만 갑자기 이 사람이 왜 그것을 묻는 것인가.
"조만간 너희를 나가사키(長崎)로 보내주겠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이자원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예?"
벨테브레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히아베르츠와 피에테르츠도 마찬가지였다.
나가사키의 히라도(平戸)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이 있다.
그곳으로 자신들을 보내준다는 의미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은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비록 그들도 홍이포를 다룰줄 안다는 것 때문에 조선에서도 안정된 생활을 보내고 있긴 했으나 고향에 대한 꿈은 언제나 꾸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생전에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생각해 포기했지만.
"소, 소관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이오이까?"
그러나 이 서양인들은 이제는 강산이 한번 변할 세월만큼 조선에서 살다보니, 이런 제안을 듣자 문득 두려움이 앞섰다. 자신들을 그냥 추방하려는 것이 아닐까.
특히 벨테브레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자원은 곧장 그들의 두려움을 불식시켜주었다.
"전하께서는 조선과 네덜란드가 수교하기를 원하신다."
그들 고국의 이름을 대장 영감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조선인들은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존재도 모르고 오로지 남만(南蠻)이라고만 부르는데, 어떻게 훈련대장이 그것을 알고 있는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것을 위해 너희가 나가사키로 좀 가주어야겠다."
이자원이 말했다.
수교라니.
도대체 조선 조정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있었단 말인가.
"거, 걱정 마십시오! 훈련대장의 명은 충실하게 수행하겠습니다!"
"예, 분명히 말씀드리겠나이다!"
그러나 이 서양인들에게 그런 것이 중요할리는 없었다.
히아베르츠와 피에테르츠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장 영감, 반드시 귀국을 해야하는 것이오이까?"
그때 벨테브레가 물었다.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자원은 그런 그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돌아가기 싫은가?"
"소관은 지금의 초관 신분에도 만족할 뿐더러 이미 조선에서 혼인해 처자도 있사오이다."
혼자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데리고 가자니 한평생 조선에서 살아온 안사람과 자식들은 처음 표류했을 때의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게 뻔하다.
"자식들 나이가 몇인가?"
"아들은 다섯 살, 딸은 세 살이 되었사오이다."
"한창 귀여울 때군."
이자원은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강요하진 않겠다.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남을 사람은 남도록, 어차피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수교 뿐이니."
정확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임금은 대국을 거치지 않고 함부로 통교(通交)하는 것에 대해 꺼림칙해했지만, 오랑캐와 교린하는 도가 예전부터 있어온데다 그들의 기술이 북벌에 도움이 된다는 이자원의 말에 끝내 설득되었다.
"예, 영감!"
서양인 세 사람은 그렇게 답했다.
"대장 영감."
바깥에 있던 호위병이 뛰어들어와 말했다.
"모하당(慕夏堂)이라 하시는 어른께서 대장 영감을 찾아 오셨사오이다."
"새로운 중군께서 오셨군."
모하당 김충선(金忠善).
이현달의 후임으로 이자원이 청한 인물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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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께서 청하시니 도성까지 올라오긴 했소만, 이 늙은 몸을 어디에 쓰시려고 그려오?"
호란이 끝난 후 김충선은 곧장 그가 원래 살던 대구 우록동으로 낙향했다.
이자원이 그를 훈련중군으로 천거했다는, 뜬금없는 소식만 아니었다면 그는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야 전쟁이지요."
김충선의 물음에 이자원이 딱 잘라 말했다.
"역시 또다른 전쟁이 시작될 모양이구려."
"군부의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 말에 김충선은 이자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호란이 끝났을 때 허완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돌았다.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팔자.
"오랑캐들의 분열과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지요. 청의 핵심인 요심(遼沈) 지역에서는 두 섭정왕이 대립하고 있고, 옛 상경 터에서는 북금(北金)이 들어섰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말이오이다."
이자원은 김충선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았소. 워낙 머니 조정에서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오."
여진이라는 족속은 다들 금나라의 후예나 마찬가지이니, 나라를 세울 때 그 국호를 가져다 쓰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청의 국호가 금이 아니었던가.
후후금(後後金)이나 계금(季金)으로 불러줄까 고민하던 그였지만, 이자원은 북금으로 칭하기로 한듯 했다.
"청에 비해 수효도 적고 무기도 변변찮은데다 정예하지도 않으니 금방 진압될 것으로 여겼지만,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 들었소."
"그 모습을 본 다른 오랑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소이까?"
북금이 거점으로 삼은 하얼빈 일대는 조선으로부터 워낙 머니 연계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혼란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만간 청의 중심에서 떨어진 동만주 전역이 다른 생각을 품으리라.
이자원은 거기에 낄 생각은 없었지만, 혼란을 파고들 틈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미 전쟁은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오이다. 문제는 얼마나 잘 싸우는가지요."
이자원이 말했다.
"왜 하필 나요?"
김충선이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는 쌍령에서 함께 싸웠지요. 그때 영감께서 적시에 나서지 않았다면 소관도 경상도군도 모두 무너져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오이다."
항왜들의 개별적인 전투력에 힘입은 바도 컸지만, 김충선이 제대로 된 지휘에 실패했다면 청군의 허를 찌르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왜란 때부터 활동해온 숙장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사오이다."
정충신은 죽었고 이순신의 조카였던 이완(李莞)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선군에서 손꼽히는 숙장인 유림도 따지자면 왜란 이후 세대다.
"영감의 조국은 이미 조선이오이다. 그렇지 않소이까?"
"물론이오. 조선에 귀부한 후로 한번도 그리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소."
"하지만 여전히 항왜를 어찌 믿느냐며 떠들어대는 자도 많지요."
이자원은 김충선의 아픈 구석을 찌르고 들어갔다.
그 말이 맞았다.
임진왜란이 이 나라에 남기고 간 상처는 너무나 컸다.
그렇기에 자신을 따라 조선에 정착한 자들과,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왜놈이라며 멸시를 받았다.
전공을 세우고 조선에서 벼슬을 받아 양반이 된 자신은 그럴 일이 없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어리석은 자들의 목소리를 한번에 잠재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오이다. 중군의 소임을 받드신다면 호란 때 공을 세운 자들 또한 훈련도감에 들어오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소이까."
"······."
이자원의 말에 김충선은 침묵했다.
'계속 두려움과 멸시를 받으며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훈련도감에서 전공을 세워 출세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다들 어느 정도 상급을 받기는 했지만 휘하에 있던 병사들은 그것보다는 다른 것에 목말라 있었다.
그들을 향한 이질적인 시선과 차별이 사라지는 것.
그러자면 김충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쓸모를 증명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자원이 그 기회를 제공해주겠다 하지 않는가.
끝내 김충선은 침묵하던 입을 열었다.
"알겠사오이다, 대장 영감."
김충선이 일어나 상관에게 허리를 숙였다.
허완은 전쟁에 지쳐 물러나는 길을 택했지만 그는 이 나라가 부른다면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곧 벌어질 전쟁이라면, 그는 다시 그곳에 발을 들여야만 했다.
조국을 위해서.
그리고 그 조국에서 차별받지 않을 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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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조선의 화제는 단연 대동법이었다.
예조판서 김집과 호조판서 심열-실질적으로 논의를 주도하는 이는 참판 김육이었지만-의 대결은 더욱 가속화되어 가고 있었다.
훈련도감의 방납 비리라는 명분을 쥔 찬성파 쪽에서는 이런 폐단이 전국적으로 성행하고 있고, 수령들은 사대동을 실시하는 판이니 이를 법제화하여 감독이라도 용이하게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반대파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지 못하고 실시했던 삼도대동법의 실패를 끌어와 공안을 개정해서 공납의 양을 감하고 지역에 맞게 종류를 수정하자는 주장이었다.
'양쪽의 말이 다 옳은 것 같지만······.'
임금은 우선은 이런 논의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언제든 적절할 때를 노리고 있을 뿐.
'선대왕께서도 삼도대동법을 시행하셨다 효과가 없으니 이를 혁파하지 않으셨던가.'
존경하는 부왕도 실패한 일이었으니 임금으로서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뒤집은 것은 바로 월과군기를 방납하는 폐단이었다. 이를 해소하자는 이자원의 주장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어차피 호조의 말대로라면 대동법에 앞서 양전(量田)부터 실시해야 할 것인데, 전란도 한 차례 있었던 터라 하기는 해야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언제쯤 나서는 것이 좋을까······.'
임금이 시기를 재고 있을 때였다.
잠시 대동법의 논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승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장계를 공손히 바쳤다.
"전하, 함경감사 민성휘(閔聖徽)로부터 들어온 장계이옵니다."
"함경감사에게서?"
임금은 승지가 받쳐든 장계를 펼쳐보았다.
"이것은······."
임금의 눈이 커졌다.
「신 함경감사 민성휘가 아뢰옵니다.
요즘 오랑캐의 정세가 대란(大亂)하여 동쪽 야인들의 민심이 심상치 않사온데, 마침내 고이객(庫爾喀, 후르카)족의 경하창(慶河昌, 기야하찬) 및 그의 아들 기라라지(其羅羅只)·둔아(屯阿) 등이 공물을 거두러 온 청의 사자를 베고 거병하였사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 경흥부(慶興府)와 가까운 까닭으로 부윤에게 서신을 보내기를, 다시 조선의 번속(藩屬)이 될터이니 함께 맞서자 청하였습니다. 부윤은 신에게 사람을 보내 물었으나, 신이 또한 스스로 처결할 바가 아니라 여겨 치계하오니 모쪼록 전하께서는 비답을 내리시어······.」
두만강 너머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조선에 도움을 청했다.
'설마 이리도 빨리 때가 왔는가!'
가슴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기분에 임금은 외쳤다.
"당장 훈련대장을 불러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