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50화 (50/213)

< 기초공사 (2) >

각읍월과군기법(各邑月課軍器法)은 지방의 속오군에게 지급할 조총과 화약, 연환(탄환) 등을 지방 읍에서 생산하도록 한 법이다.

본래는 이를 군기시에서 전담하였으나, 전란이 잦아지며 수요가 폭등하기 시작하자 군기시의 부담을 줄이기 내린 조치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각 읍은 조총을 공급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조총은 동리의 철장(鐵匠) 몇 을러댄다고 튀어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재료도 없거니와 기술자도 적다.

그렇다면 이를 방납(防納)하는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을 포착한 서울의 부민(富民)들이 앞다퉈 야장들을 끌어모아 사사로이 조총과 연환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들은 방납을 인질로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러댔고, 수령들은 이를 백성들의 부세(賦稅)로 떠넘겼다.

"이처럼 방납업자들이 어마어마한 폭리(暴利)를 취하니 훈국 영감들도 욕심이 생기신 모양이오이다."

"짐작이 가는군."

각 군문에서는 병사들에게 지급할 무기를 자체 제작하고 있다.

훈련도감 또한 마찬가지다. 본영 한켠에도 제법 큰 총약환 제조장이 있으니, 난다긴다 하는 부민들 가운데서도 이들의 생산량을 따라갈 자가 없을 것이다.

중군과 천총들은 이를 이용, 필요 수량보다 많은 군기를 제작해 각 읍에 팔아넘겼다.

민간 제조업자들과 달리 시설을 새로 구축할 필요도 없었고 중간중간 원료도 티 안나게 해먹었을테니 거기서 생긴 이익이란 실로 막대할 것이었다.

"이거 참, 나라의 군영이 방납쟁이들과 똑같은 짓거리를 자행하고 있었으니······."

박철균이 푸념했다.

"그렇게 취한 이익을 국고에 넣었을리는 없고, 중군과 천총들이 죄다 착복했겠군."

이자원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사오이다. 훈련도감의 점고라는 것은 장부상의 수량과 실제 수량을 비교하는 것 정도니 문제가 딱히 생길 여지가 없고, 만든 군기를 방납하는 일도 적당한 친인척을 내세우면 되니 누가 감히 의심을 하겠사오이까? 이만큼 수월하게 돈을 만질 수 있는 길이 없지요."

이정건의 말이었다.

"이 초관은 어찌하여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는가?

"그것이······."

이정건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소관은 오랫동안 군졸 노릇을 하면서 이런 일들을 보고 봐왔으나 직위가 낮아 위에 말을 전할 길도 없거니와, 어느 영감들까지 가담하였는지 모르니 그저 밥줄이나 보전하자 싶어 입을 다물고 있었사오이다."

"······."

"하지만 대장 영감께서는 소관과 같은 성산(星山) 본관이라 들었고, 또 부정(不正)을 한치도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소관 같은 비루한 초관을 직접 불러 물어보시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이정건의 말에 박철균이 제가 칭찬이라도 받은 것마냥 헤벌쭉 웃었다.

이자원은 담담히 말했다.

"장성한 아들이 있는가?"

이정건은 이제 완연한 중년이었다.

아들이 성년을 넘겼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예, 대장 영감과 나이가 같은 아들놈이 하나 있사오이다."

"이번 무과에 응시하라 해보게."

이자원이 말했다.

무과는 전란으로 입은 상처를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공을 세운 병졸이나, 그 직계를 대상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정건의 아들이라면 얼마든지 응시할 수 있었다.

"입격을······ 할 수 있겠습니까요?"

"그거야 자네 아들이 하기에 달린 것이지."

병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강서(講書)보다는 무예 위주가 될 것이다.

게다가 상대평가였으니, 일신의 재주가 쓸만하다면 불리할 것은 없었다.

"만약 무거(武擧)에 붙는다면 아들을 훈국에 입직할 수 있게 해주지."

이것이 이정건에 대한 나름의 보답이었다.

훈국 내의 흐름이 확실하게 보이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의 마음에 들기 위해 충성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자원이 노린 것은 그것이었다.

===

"중군 영감. 지금이라도 신임 대장에게 인사를 올리러 가야 하는 것이 아니외까?"

일이 있다던 천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군 이현달(李顯達)의 집에 찾아들었다.

좌부천총과 별파진 차치천총이 걱정스럽게 말하자 이현달이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대장은 원래 별파진의 초관이었고, 좌부의 파총에 불과했네. 그런데 자네들은 까마득한 후인에게 그리 인사를 가고 싶은가?"

"하지만 이미 어명이 내려졌으니 어쩔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이까? 과거에 소관들의 부하였다 하나 주상 전하께서 대장의 뒤에 계신데 이리 뻗대는 것도 좀······."

"조금만 기다려보시게."

이현달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천총들의 생각은 이해가 갔지만 대장이 새로 왔다 하여 곧장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은 하책(下策)이었다.

지금처럼 얽힌 것이 많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신임 대장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홀로 훈국을 다스릴 수는 없는 법일세."

중군과 천총들이 똘똘 뭉쳐 있으면 쉽게 건드릴 수가 없다.

기존 업무를 맡아 처리해오던 자신들을 배제한다면 당장 누구를 시켜 영(令)을 세울 것인가.

조직을 다스리는 것은 장(長) 한 사람만 잘나서 되는 일이 아니다.

다 아랫사람들이 협조를 해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대장이 주상 전하의 신임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원활히 훈련도감을 틀어쥐고 싶겠지."

어린 나이에 대장에 올라 빠르게 훈국을 장악하고 싶을 것이니, 자신들이 쉽게 대장을 찾지 않는다면 애가 타는 것은 그쪽이다.

그러다 숙이고 들어오면-자신은 칭병 중이니 몸소 문병(問病)을 온다든지 하며- 협조해줄 것은 협조해주고, 용인받을 것은 용인받는 것이 상수였다.

'제길······ 도원수가 훈련대장으로 왔으면 이런 일도 없이 넘어가지 않았겠는가.'

심기원의 물욕은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것이니 오히려 한술 더 뜨면 더 떴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대장은 그가 아닌 이자원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심기원에게 밀어넣은 뇌물을 생각하자 아직도 배가 아픈 이현달이었다.

"하지만 신임 대장은 전장에서 성정이 사납기로 유명하지 않았소이까. 과연 순순히 숙이고 들어올지······."

"그러면 이대로 방납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자는 말인가?"

이현달이 소리를 꽥 질렀다.

"잘 듣게. 훈련도감 같은 꿀단지를 되도록 오래 쥐고 있어야 한몫 챙겨서 나가지 않겠는가. 어디 수령으로 나가서 치부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길임을 왜 모르느냔 말이야."

수령으로 나가서 백성들을 착취하면 소문이 아니 돌 수가 없고, 재수 없으면 암행어사 육모방망이를 뒤통수에 맞고 파직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적당히 뜯어내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조총의 방납을 대기 위해 백성들에게 부세를 쥐어짜는 것은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도 수령이니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욕먹을 일도 적었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방납의 건 또한 들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사오이다. 대장이 이것을 물고 늘어지면 어떡하오이까?"

"이미 사정을 알 만한 초관들은 단단히 입막음을 해두었네. 대장이 아무리 날뛴다 해도 쉽게 입을 열 사람은 없음이야."

"그래도 어찌될지 모르지 않사오이까? 초관이 아니라도 훈국에 오래 있던 자들이······."

"이 사람, 어쩐다 어쩐다 소리만 계속할 것 같으면 그냥 관두게. 저 새파란 대장에게 가서 미주알고주알 알려바치라는 말이야."

사람 마음은 신기한 것이라, 이렇게 불안해하면서도 이미 같은 목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나니 쉽게 발을 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았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것이다.

일종의 군중심리라고나 해야할까.

게다가 중군만 믿으면 그간 누리던 이익도 계속 얻을 수 있다 하지 않는가.

"중군 영감, 우리는 곧 무장이니 의리가 쇠처럼 굳은 사람들이오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한지가 오래 되었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이까?"

"참으로 섭섭합니다. 설령 대장 영감이 반발하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중군의 편이오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래서 중군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천총들은 그러면서도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지만, 만족스런 웃음을 짓던 이현달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이자원이 중군 이현달의 문병을 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왔구나!'

사람을 시키지 않고 직접 대장이 발걸음했다는 것은 분명한 의사표시였다.

"가슴에 병이 났다더니 멀쩡해보이는구려, 중군 영감."

한기가 감도는 말투였지만 이현달은 그것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것 때문에 불퉁한 것이리라 짐작했다.

"병마라는 놈이 본래 어떨 때는 괜찮다가 어떨 때는 또 사람을 옥죄고 드는지라, 영 종잡을 수가 없사오이다. 그래도 의원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하니 이리 누워 있사오이다."

그러면서 이현달은 고개를 숙였다.

"대장 영감의 부름을 여러번 받았으나 병이 심해 받들지 못하니 송구하오이다."

"송구할 것 없소."

이자원이 말했다.

"그리 병이 심하다면 더는 등청할 필요도 없겠지. 중군은 계속 집에서 쉬시오."

"예······?"

이자원의 발언에 이현달이 크게 놀랐다.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말인가.

"대, 대장 영감!"

"방납의 건을 모를줄 알았소?"

어지간히 초관들의 입을 잘 틀어막아놨더군.

이자원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처럼 이정건이 아니었다면 실체를 잡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꽉 닫힌 초관들의 입도 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건의 증언을 토대로 실제 훈련도감이 보유한 군기의 수량과 그간 훈국 제조장에서 만든 군기의 수량을 대조하자 하나둘씩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부에야 당연히 장난질을 쳐놨지만, 야장들은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량을 제조했는지 그날그날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들도 중군이 던져주는 돈은 받아챙겼지만 이자원이 칼을 뽑아들자 곧장 이리로 붙었다.

"거기다 필요 이상으로 염초와 납 등의 망실율을 높게 기록했더군. 어차피 그 정도를 빼돌려봤자 중군이 버는 돈에 비하면 거스름에 불과한데 지독하게도 챙겼소."

이자원이 말했다.

"빨리 명의(名醫)를 만나 병을 고치는게 좋을거요. 병든 몸으로 옥살이를 견뎌내긴 힘들테니까."

이현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처, 천총들이 모두 멋대로 한 짓이오이다. 천총들에 더해 소관도 쫓아내면 당장 대장 영감 아래로 파총들까지는 모두 자리가 비게 되는데 어찌 훈국을 다스리시려고······."

"천총들은 중군의 명에 따랐을 뿐인데 어찌 죄를 묻겠소?"

이자원이 말했다.

천총들은 이미 자신이 방납의 실체를 잡아낸 사실을 알자마자 납작 엎드렸다.

이 정보가 중군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파직되는 것은 중군, 당신 뿐이오. 천총들은 남아있을 터이고."

물론 그들도 때가 되면 적당히 치워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횡령과 배임, 방납에 손을 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중군이 날아간 이상 더는 이자원에게 뻗대는 일이 없을테니 말이다.

"좋은 명분을 만들어줘서 고맙군."

그렇지 않아도 슬슬 여기에 관해 말을 꺼내볼까 싶던 차였다.

===

"신이 오래도록 훈련도감의 일을 보살폈으나 이러한 비리는 알지 못했으니, 면목이 없나이다. 재상으로서 자격이 없사오니 부디 사직을 허락해주소서."

좌의정 신경진이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전임 훈련대장이었고, 지금도 도제조를 맡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딱 잘라 말했다.

"가납하지 않겠소."

신경진이 사직을 한번 청하고, 임금은 거절한다.

이런 요식행위가 끝난 후 임금은 이자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훈련대장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용케 부정한 자들을 찾아서 잘라냈구나. 그대의 공로가 크다."

"황공하옵니다."

이자원이 말했다.

그러나 그가 직접 임금을 찾은 것은 단순히 칭찬이나 한마디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임금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구태여 입궐하여 이것을 고한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전하."

임금의 물음에 이자원이 답했다.

"훈국의 비리에서 보듯 군관과 부민들이 방납에 나서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감당하고 있사옵니다. 이런 폐단은 결코 공의로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민생을 피폐케 하여 군비를 갖추는데도 큰 어려움이 될 것이옵니다."

그 말에 임금이 얼굴을 굳혔다.

방납의 폐단이 곧 북벌(北伐)의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그 방안을 아뢰었을 것이옵니다."

이자원은 약간 시간을 두고 입을 열었다.

"공납을 폐하시고, 사대동(私大同)을 공인하소서."

작가의말

이 시기 훈련도감 중군 이현달에 관한 승정원일기의 기사를 살펴보면 군마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동료에게 떠넘겼다, 과거에 급제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질과 인망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평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훈련도감 편제상으로는 좌부와 우부를 천총이 맡아 지휘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숙종기 금위영의 ‘별파진절목’을 살펴보면 별파진을 담당하는 천총이 따로 있었다 하니 마찬가지로 별파진이 있던 훈련도감도 담당 천총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번 에피 메인은 이 양반들 비리가 아닌지라 빠르게 전개했습니다. 과연 이자원이 노리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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