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41화 (41/213)

〈 41화 〉 정축옥사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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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류는 옥사가 일어난 뒤로 집안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임금은 마치 당과(糖菓)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나중에 먹는 아이처럼, 당장은 그를 건드리진 않았지만 머지 않아 칼날이 목에 와닿을 것은 명약관화했다.

임금을 찾아뵈려 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하고 아들마저 잡혀가고 나자 김류는 모든 희망을 버렸다.

"기어코 이 김류의 목을 챙기시려는 심산이신가······."

인조대왕을 모신 정을 생각해서라도 살려달라 빌어볼까 싶었으나, 김류는 곧 포기했다.

이미 주상은 마음을 굳혔다. 한번 결정한 일을 자신의 애원 따위로 뒤집을 사람이라면, 군왕의 자격조차 없을 터였다. 김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딸아이를 불러오너라."

김류가 행랑아범에게 말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탓인지 하인들은 평소처럼 나다니며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곁에 수발드는 이라 해봐야 이 행랑아범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무지렁이 같은 아랫것들이라지만 모시는 집안이 흥하는지 망하는지 정도는 읽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인 그도 순식간에 영락(零落)해버리고 나자 하인들조차 주인을 마주치기 꺼리는 것이다.

"아버님."

"이리 와 앉거라."

딸의 고운 얼굴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비록 서녀라지만 슬하에 외아들 경징을 빼면 자식이라고는 이 딸아이 하나 뿐이라 대갓집의 적녀와도 다를 것 없이 길렀다.

귀애하던 이 아이가 집안이 망하고 나면 남의 노복이 되어 어찌 살아갈까 걱정을 하다보니 김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네 오라비가 옥사에 연루되어서 잡혀간 것은 익히 알고 있겠지?"

"예, 아버님."

"곧 나도 연좌되어 죄를 받을 것이요, 그리되면 역적의 집안이라 하여 가산은 적몰당하고 처자는 노비가 되는 것이 상례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보지 않은 네가 어찌 그런 고생을 감당하겠느냐."

김류의 말에 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를 진작에 시집보내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그랬다면 너의 안위를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을······."

김류의 말을 들은 딸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버님······."

"하지만 이리된 이상 어쩔 수 없느니라. 조금이라도 너에게 사람 대접을 해줄 곳에 의탁시키는 수 밖에."

그러면서 김류가 말했다.

"좌의정 신경진의 집을 찾아가거라. 그 집안은 우리에게 빚이 있으니 서녀 하나 쯤은 받아줄 것이다."

신경진이 무시해버리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공서에 몸담은 세월이 있는데다 그 또한 자신에게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다.

옥사가 끝나면 신경진 또한 무슨 공신 하나가 더 추가될 터이고, 그 과정에서 딸을 자기 노비로 빼놓았다가 속량시켜주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겠는가.

"어서 가서 이런 내 뜻을 전해라."

김류는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어떤 예감이라도 했는지 딸이 몹시도 흐느껴 울었지만 김류는 그저 딸을 안아 달래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장옷을 입고 행랑아범에게 업혀 떠나는 딸의 등을 바라보며 김류는 잠시 아찔함을 느꼈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이리도 허망하게 가는구나!'

권력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선대왕의 총애를 받아 이 자리까지 올라왔고, 잡은 권력을 계속 쥐어보려다 일이 어긋나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처음 권력을 잡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언젠가 이자원이 던진 질문이다.

권력을 쥐려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아버님······."

환갑이 넘었지만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억은 또렷하다.

도순변사 신립의 오판으로 일어난 탄금대의 패전. 왜군에 밀려 결국 남한강에 뛰어들어 자결한 아버지.

언제부턴가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어있었기에 잊어버렸지만, 어쩌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결심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은 어리석은 윗사람에게 끌려다니다 함께 침몰하지 않겠노라고.

뭐, 다 지나간 이야기다.

김류는 허탈하게 웃으며 붓을 들었다.

한 자 한 자 써서 내려간 소명문, 혹은 유서를 앞에 두고, 김류는 서랍에서 비상(砒霜)을 꺼냈다.

그것을 삼킨 김류는 어딘가를 향해 사배(四拜)했다.

"주상 전하, 곧 뒤따라 가겠사옵니다."

김류의 말이 향하는 이는 금상(今上)이 아니라 인조대왕이다.

자신의 모든 영광은 그의 치세와 함께 했으니, 마지막 충성은 그에게 바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을 열어라!"

"영상 김류를 추포해오라는 전하의 명이시니라!"

독기가 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신음하던 김류의 귀에 대문 너머 금부도사의 호령이 들렸다.

헐레벌떡 뛰어나온 하인들이 대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며 김류는 왈칵 피를 토했다.

고통은 짧았다.

===

"전하, 김류가 자진했사옵니다!"

"뭐라?"

금부도사의 말에 임금이 소리쳤다.

"이, 이미 신이 도착했을 때에는 피를 쏟고 죽어 있었사옵니다."

변명을 늘어놓을 기미를 보이자 임금은 인상을 찌푸렸다.

"되었다! 혹 남긴 말은 없느냐?"

"유언은 듣지 못하였고 죽기 전에 글 하나를 남긴 것으로 보이옵니다."

임금은 금부도사가 공손히 내민 글을 낚아채서 펼쳐보았다.

내용인 즉슨 자신과 심세괴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나, 임금의 뜻을 몰라보고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했으니 죽음으로 사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에는 더욱 몸을 낮추어 가솔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달라 절절하게 적어놓았지만 임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김자점을 비롯해 소위 관당 무리들의 공초(供招)를 들으니 역당의 수괴는 김류가 분명하거늘, 어찌 주절주절 이따위 변명을 늘어놓는단 말이냐?"

임금은 유서를 갈가리 찢으며 말했다.

"김류의 시신을 목베고 그 집을 적몰(籍沒)토록 하라!"

그리 명령을 내린 임금은 옥좌에 등을 기댔다.

'모시는 임금을 제대로 쟀어야지.'

이제 관당은 공중분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류와 김자점 등이 공서에서 나와 도당을 결성한지 반 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공서든 청서든 자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정국이 되었으니, 슬슬 북벌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그 준비를 위해 모든 비상한 수단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누가 감히 방해하겠는가.

'이자원이 빨리 돌아와야 할 터인데.'

임금은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북벌은 그가 없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과연 그는 어디쯤에 머무르고 있을까?

===

김류는 자결, 김자점은 사약, 김경징은 참형.

인조 시절만 하더라도 권세를 누렸던 이들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관당은 뿌리가 뽑히고 말았다.

최명길을 비롯한 공서의 문신들은 물갈이되었으되 죽은 이가 거의 없음을 아는 사람들은, 헛된 권세를 탐하다가 집안까지 풍비박산이 났노라고 수군대었다.

더하여 청서에서도 대간 여러 명이 사약을 들이키니, 역적질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으되 그들의 손에 놀아났다는 것이 그 죄목이었다.

그렇게 정축옥사(丁丑獄事)가 끝이 나고, 이른바 삼사의 폐단을 뜯어고치자 하여 조정 신료들이 입방아를 찧어댈 무렵.

이조판서 정온이 백수(白手)의 몸이 된 김상용을 찾았다.

"이판께서 오셨소이까."

"예, 대감."

"안으로 드십시다."

김상용은 정온을 사랑채로 들였다.

한때 청서의 회합이 있을 때마다 북적북적하던 집이었지만, 영수 자리가 국구 강석기에게 넘어간 뒤로는 참 적적하던 차였다.

스스로 권력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 여기던 김상용도 막상 이리 되자 나름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수전(壽全)아, 거 찬방에 일러 다과를 좀 내오거라."

"예, 할아버님."

김상용이 손자 하나를 불러 말했다.

"이 사람이 물러나면 꼭 그 뒤는 이판이 이을줄 알았는데 말이오."

김상용이 위로랍시고 던진 말에 정온이 한숨을 쉬었다.

"관당이 저리되는 꼴을 보니 영수를 해봤자 좋을 것이 없다 싶소이다."

말은 그리 해도 진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했다.

"우리 청서는 이만하기를 다행이오. 영수가 바뀌고 사람 몇 죽고 귀양가는 선에서 끝났으니······."

"대감의 공이 아니겠사오이까."

정온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김상용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소."

"최소한 언로는 지켜냈어야 하오이다."

삼사는 청요직으로서, 사론의 평판이 비교적 좋은 청서 일파가 많이 진출해 있었다.

그들을 쓸어내고 다른 이들을 앉힌다 해도 공서는 대개 무신들 밖에 남지 않았으니, 임금의 입장에서는 그냥 이빨을 뽑아내는 편이 편했다.

하지만 청서로서는 폭거로 여겨질 따름이었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직간(直諫)을 벌하지 않는 것은 고금의 법도이외다. 주상 전하께 불경한 언사가 있었다 하나 대간이 과격하게 간쟁하더라도 죄를 물을 수 없거늘(臺諫不可罪), 하필이면 심적(沈敵)과 연관되어 일이 커진 것 뿐이니 어찌 삼사의 권한을 폐할 수 있다는 말이오이까."

정온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성종대왕께서 대간에 대하여 언근(言根, 말의 근거)을 묻지 않겠다 하신 이래로 열성조들께서는 그 뜻을 따르셨거늘······."

"이미 끝난 일이오."

김상용이 강하게 말하자 정온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상용 또한 임금의 행보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흉흉한 상황에서 당파를 지키기 위해 물러섰을 뿐.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려는지······.'

임금은 전쟁을 겪은 탓인지 무신들을 총애했다.

이자원 같은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신경진도 임금이 원상으로 삼았다가 좌의정으로 발탁한 이 아닌가.

거기다 봉림대군까지 어영청 도제조로 삼아 군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청서마저 거기에 부화뇌동한다면 이 나라가 그야말로 전조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김상용이었다.

나만갑(羅萬甲) 같은 이는 아예 '기세가 오른 무인들이 문신들을 종이나 하인들처럼 여긴다'고 불평하지 않던가.

"산림(山林)을 끌어들입시다."

한참을 숙고하던 김상용이 내린 결론이었다.

"산림을 말이오이까?"

"그렇소. 대군사부 송시열이 지금 제 스승 곁으로 돌아가있다 들었는데, 그를 통해 연락을 넣어보면 되겠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은 기존 청서와 달리, 청서로 분류는 되지만 지금까지 재야에 묻혀있던 선비들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예학(禮學)과 청빈함으로 이름 높으니 임금이라 해도 쉬이 그들을 내치지는 못할 것이다.

"신독재(愼獨齋) 그 사람은 선대왕이 내리는 관직도 번번이 사양했는데 과연 출사를 하겠사오이까?"

"그 또한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을 터. 고고(孤高)한 체하려는 산승(山僧)이라면 모르되, 신독재도 선비이니 조정의 상황을 알면 분연히 초야에서 뛰쳐나올 것이오."

임금이 그를 들어쓰느냐 또한 문제지만, 김상용은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신독재가 펼치고 있는 주장은 임금의 마음에 쏙 들어 맞을테니까.

"이판께서는 그와 잘 협력하여 주시오."

김상용은 손자가 내온 유과를 집어들며 말했다.

"이 나라 조선의 법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

한편 의주(義州).

배 여러 척이 이곳 포구에 다다랐다.

한선(韓船)과는 다른 양식으로, 접경지인 의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근래 들어 뜸한 배기도 했다.

영원위에서 출발한 이자원과 명군들이 탄 사선이 드디어 조선에 도착한 것이다.

"가도에는 걸리지 않아 다행이군."

이자원이 말했다.

심세괴가 청과 연계를 꾀하는 만큼 연락도 자주 주고 받을 터인데, 요동의 해안가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에도 가도는 눈치를 채지 못한 듯 했다.

몇 차례 청군의 눈에는 띄었지만, 그들은 수군을 운용할 인력이 없었고.

"이제 어디로 가실 작정이십니까?"

옆에 서있던 무사 하나가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역관 하나가 시장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할 때 구해준 조선인이라고 하던가. 그것이 인연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라며 따라왔다.

"의주부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이자원은 아직 임경업이 의주부윤을 맡고 있을지 생각했다.

상관 없었다.

그가 심세괴에게 저자세로 나간 것은 단지 심세괴가 명의 장수였기 때문일테니.

"적비(赤比)라고 했던가?"

"예, 장군."

이자원의 말에 무사가 답했다.

"조선말이 능숙하군."

"······."

"기대하마."

이자원의 시선은 여전히 다른 곳을 향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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