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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40화 (40/213)

〈 40화 〉 정축옥사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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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괴가 은자를 풀어 명나라 중신들을 매수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신료들 또한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심세괴가 역란(逆亂)을 꾸미고자 마음먹었다면 분명히 조선의 끄나풀들에게도 출진을 방해하라 명했을 것이니, 이는 역도에 내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는 논리에 따라 임금은 성토에 앞장선 삼사의 신료들을 하옥하라 명했다.

"전하, 신들이 그것을 어찌 알았겠사옵니까?"

"신들은 그저 상국에 적대해서는 안된다고 간언했을 뿐이옵니다! 심세괴의 꿍꿍이는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그거야 친국(親鞫)을 해보면 알 수 있을 일이다!"

임금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조사를 해보겠다는 뜻이니 쉬이 반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것이 조선의 친국이 아니던가.

고신에 못이겨, 혹은 회유에 넘어가 심세괴와 통했다고 자복(自服)할 사람이 과연 없을까.

"책봉주청사의 장계만 믿고 심세괴의 반역을 확신할 순 없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닥쳐라! 구굉이 이르기를, 심세괴 휘하의 독보가 이런 사실을 낱낱이 밝혔고, 황상께도 그를 데려가겠다 하였다. 이자원 하나를 위해서 구굉과 독보가 입을 맞췄다는 말이냐?"

홍익한(洪翼漢)의 말은 임금의 분노만을 살 뿐이었다.

곧 금군(禁軍)들에게 윤집(尹集)과 오달제를 비롯한 청서 신하들이 끌려나갔고, 유생들 또한 강제로 해산당했다.

순식간에 몰아닥친 옥사(獄事)의 바람을 김상용은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렇게 넋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청서의 선봉대 역할을 한 것은 삼사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들만 끌려나간 것이지만, 옥사가 확대되면 어디까지 화가 미칠지 모른다.

'기껏 조정의 흐름을 쥔 우리 청서가 완전히 궤멸될지도······.'

김상용의 머릿속에 문득 두려운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는 곧 그것을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임금이라고 공서의 무부들만으로 조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리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보듯이 심계(心計)가 깊은 주상이니 그 정도 이치는 알고 있을 터.

과연 임금은 삼사의 관료들을 끌어내라 명한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지긋이 쏘아볼 뿐이었다.

김상용은 그 시선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것은 주상 전하께서 보내시는 신호구나.'

그의 손으로 임금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바치라는 신호.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임금은 청서 전체를 엮어 버리겠다고 나설 것이다.

'아뿔싸!'

김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이 김류가 살아나려면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 생각했거늘······. 모든 것이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였단 말인가.'

이자원이 명군을 죽이고, 임금이 은밀히 가도를 칠 준비를 한다는 첩보는, 그것이 진실이라면 임금의 권위에 타격을 주기에 더할 나위없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처참히 실패해버리고 말았으니 김류는 이제 목숨이라도 구할 방도를 생각해야 했다.

"······전하, 신이 사리를 잘 분별하지 못해 심세괴의 흉악함을 알아채지 못했나이다. 조정에 이처럼 늙고 어리석은 몸이 있는 것이 혹 누가 될까 두려우니 직을 내려놓고 초야로 돌아가고자 하온데, 모쪼록 가납해주소서."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었지만 임금은 그마저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오늘 이 같이 흉악한 일이 드러났으니 오히려 영상이 자리를 지키며 조정의 중심을 잡아야 하지 않겠소? 사직을 허하지 않겠소."

임금은 김류의 퇴로마저 차단해버린 셈이었다.

애초에 김류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논공이나 잘 처리한 후 순순히 은퇴했다면 모르되, 이빨을 드러낸 그를 쳐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끄, 끝났구나······!'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리가 없는 김류는 머리가 팽 도는 기분이었다.

"친국은 명정문(明政門)으로 나아가 행하도록 하겠다. 과연 무슨 뜻에서 심세괴를 옹호하였는지 친국해보면 알 수 있으리라!"

가도 침공 준비를 극렬 반대한 것은 심세괴에 대한 옹호로 둔갑하고, 그들이 내세운 대명의리(對明義理)는 역으로 그들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었다.

그러나 옥사는 원래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신하들의 결백함이 아니라 임금의 뜻이었다.

===

이후의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다.

국사를 돌보는 일보다 심세괴와 내통한 자들을 가림이 우선이었다.

오전에 옥에 갇혔던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관리들은 밤이 되자 화롯불을 피운 명정문에 끌려나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실토해야 했다.

그러나 정말로 심세괴의 역모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아는 것이 없던 대간들로서는 도대체 무엇을 자백해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그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직접 겪은 일 뿐이었다.

"신은 오로지 풍문거핵(風聞擧劾)의 법도에 따라 간했을 뿐이옵니다! 아아악!"

이렇게 끝까지 강변하는 자가 있는 반면,

"시, 신은 우의정 김상용의 집에 가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사온데, 도당끼리 모여 논하기를 이것은 전하께서 잘못 정하신 일이니 삼사가 탄핵하고 유생들이 상소해야 한다고 했사옵니다."

기어이 동료들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자가 있었다.

"우상이 이 논의를 주도했단 말이냐?"

"그. 그렇사옵니다, 전하. 신은 몰랐던 일이오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역적과 내통한 자의 손에 놀아난 것 같사옵니다."

임금이 내심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전하, 이미 축시(丑時, 새벽 1~3시)가 넘었사옵니다. 오늘은 이만 친국을 파하소서."

좌승지 박로의 말에 임금이 못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죄인들을 다시 옥에 가두어라!"

친국이 마무리되고 임금은 처소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전하, 우의정 김상용이 면대를 청하였사옵니다."

'과연.'

칠순이 넘은 김상용이 이 시간까지 그를 기다렸다는 것은 반드시 해야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김류 또한 그러한지 논의가 파하자마자 여러번 면대를 청했지만 임금은 번번히 거절했다.

"함인정으로 가자."

창경궁에서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는 함인정이 애용되었다.

김상용은 그곳에서 임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상은 친국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일렀거늘, 어찌하여 퇴궐도 아니하고 나를 기다린 것이오?"

"신이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 전하를 뵙고자 하였나이다."

김상용은 한시가 급한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하, 대간들이 비록 본의 아니게 심세괴를 진압하는 일을 방해하게 되었으나 그들의 본의는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대간들이 결백하다는 말을 하러 왔다면 듣지 않겠소."

임금은 김상용에게 겨우 그런걸 아뢰러 왔냐는 투로 말했다.

김상용이 그나마 걸고 있던 한 가닥 희망이 끊어진 셈이다.

"······늙은 몸이 괜히 조정에 나아와 어심을 어지럽혔으니 죽어 마땅하나이다. 신의 병이 심하여 더 이상 국사를 보기가 힘드니 영명한 사람으로 하여금 신의 후임을 삼으소서."

결국 그는 원래 했어야 하는 말을 꺼냈다.

"우상만한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 후임을 찾겠소?"

"공조판서 강석기는 위인이 온화하고 근신하며 행검이 맑고 검소한데다가, 청요직(淸要職)에 있으면서 바로잡은 일이 많으니 재상의 소임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자신은 물러나고 임금의 장인인 강석기를 청서의 영수로 세우겠다는 항복 선언이었다.

"또한 대간들은 모두 잘못된 사론(士論)에 휩쓸린 것 뿐으로, 흉계를 퍼뜨린 자는 따로 있으니 모쪼록 선처해주시옵소서."

"그게 누구요?"

"이조참의 김경징이옵니다."

강화도 검찰사였던 김경징이 청서가 장악한 이조에 들어온 것은 관당과 협력을 위해 쥐여준 당근이다. 하지만 지금 연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애초에 관당과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잠시 같이 움직인 것 뿐이었으니 말이다.

강석기를 영수로 옹립하는 대신 청서라는 붕당은 보존할 수 있게 해주고, 관당을 희생양으로 삼으라는 뜻.

"김경징을 당장 잡아와 하옥하라."

임금은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삼사가 결백한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겠소. 하지만 이번 일로 느낀 것이 있소."

또 무엇을 요구하려 하는 것일까.

김상용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대간들이 풍문거핵이니 불문언근(不問言根)이니 하는 권한만 믿고 함부로 관리를 참소하며, 간쟁을 할 때에도 임금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경한 말이나 일삼으니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오."

풍문거핵은 소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이요, 불문언근은 자기 주장의 근거를 대지 않아도 되는 권한이다.

언로를 지킨다는 대의명분에 힘입어 삼사의 대간들은 말도 안되게 강력한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임금은 이 참에 그들의 칼을 빼앗아 버릴 셈이었다.

'북벌을 막힘없이 추진하려면 저런 이들 따위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공서든 청서든 자신의 말에 복종하고, 온 조선이 일치단결하여 준비에 나서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삼사를 장악한 청서가 자신에게 목줄이 잡힌 이 때가 아니면 대간들의 입을 틀어막기란 요원할 터였다.

'전하께서는 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 하시는 것인가.'

삼사의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상용은 그런 임금을 보면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영수 자리를 강석기에게 넘겨주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어차피 동생이 죽은 후 붕당을 안정시키기 위해 잠시 맡은 것에 불과했고, 권력에 대한 욕심 따위는 내려놓은지 오래되었으니까.

하지만 언로는, 언로는 막혀서는 안되었다.

삼사의 폐단이 심하다 해도 열성조께서 놔두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평소라면 연산군의 예라도 들어보겠지만 지금 주상 전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간들의 자백을 얻어내 청서를 쓸어버릴 수 있으시지.’

그러지 않는 것은 단지 임금의 목표가 청서를 장악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김상용은 갈등했다.

"생각이 길어지는구려, 우상.”

“전하······.”

대간들이 힘을 잃고 공서와 청서까지 임금의 손에 떨어지고 나면 혹 걸주가 된다 한들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김상용은 그렇기에 갈등했다.

===

문초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은 자들은 있었다.

윤집, 오달제, 홍익한.

원래 역사에서는 마지막까지 청에게 절의를 굽히지 않아 처형당한 삼학사(三學士)가 될 인물들이었으니 심세괴와 내통했다는 따위의 자백을 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갖은 고신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비견될 정도로 빠르게 뜻을 꺾은 사람도 있었다.

"신은······ 가도의 토벌을 막으라는······ 심세괴의 밀명을 받았나이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김경징이 힘겹게 말했다.

사실 잡혀온 그 순간부터 그는 자백을 시도했지만 임금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이리저리 수정 과정을 거쳐야했고, 그 과정에는 고신이 더해질 수 밖에 없었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훈련도감이 가도를 칠 채비를 한다는 사실은 누구를 통해 들었느냐?"

"병조판서 김자점이 신에게 말하였사옵니다."

"혹 김자점도 한패였더냐?"

"예, 예. 그렇사옵니다."

김경징은 망설임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더 이상의 고문을 견디고 싶지는 않았다.

"네 아비도 이를 알고 있느냐?"

임금의 물음에 김경징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옵니다. 아버님께서는 결백하시옵니다. 오로지 신이 꾸민 일이옵니다."

아무리 용렬한 그라 할지라도 부친에 대한 사랑은 있는 것일까.

김자점은 쉽게 고변한 것과 달리 이어지는 고신에도 김경징은 끝까지 부정했다.

"아들이 역적인데 어찌 아비가 가담치 않았겠느냐! 금부도사는 당장 김류와 김자점을 끌고 오라!"

임금이 외쳤다.

'김류는 그렇다 쳐도 김자점은 조금 아깝지만······.'

전쟁 당시 근왕하러 오는데 시간을 조금 끌었더라도 그 뒤 김자점의 전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갑사창 전투 당시 백봉산 일대로 이동해 청군의 시선을 붙잡기도 했고, 북상할 때는 비록 굶주리고 패주하던 적이라지만 공유덕과 상가희의 군대를 격파하기도 했다.

이자원은 이상하게 그를 꺼리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관당 따위를 결성해 김류에게 붙은 이상 어쩔 수 없다.'

김자점만 능력을 고려해 빼놓으면 옥사의 명분 자체가 퇴색된다.

'그러게 모시는 임금을 제대로 쟀어야지.'

이 정도 명분만으로도 당파 하나를 풍비박산 낼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자신이다.

김류는 임금이 가진 힘 정도는 알았겠지만 상상도 못한 명분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고.

"전하! 김자점을 잡아왔사옵니다!"

"좋다! 이 앞에 대령하라!"

친국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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