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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37화 (37/213)

〈 37화 〉 마지막 황제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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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조선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셨지요?"

아담 샬(Adam Schall).

중국식으로는 탕약망(湯若望)이라 불리는 사내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한어(漢語)는 약간 독일스러운 악센트가 묻어있는 것을 빼고는 훌륭했기에 이자원이 데리고 온 역관은 무리없이 통역해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온건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삭발례(削髮禮)를 거친 그의 머리를 보니 정말 이 시대 사람들이 승려라고 인식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 싶은 이자원이었다.

"반갑소."

이자원이 말했다.

"교구(敎區)가 제법 번성한 것 같소이다."

대뜸 이자원이 건넨 말에 아담 샬은 놀랐다.

교구라 함은 가톨릭에서 신자를 관리하기 위해 설정하는 구역이다. 중국의 변방 속국에서 온 군인이 이를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사실 원나라가 멸망한 이후로 북경의 대교구는 폐지되었으니, 정식 교구는 아니지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곧 다시 부활되리라 믿고 있습니다만."

놀람도 잠시, 아담 샬은 그리 설명했다.

이자원으로서는 나름 성당의 규모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말이었으나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실록에는 천주당(天主堂)이라 기록된 건물이다.

"그래서······ 어쩐 일로 저희를 찾아주셨는지요?"

아담 샬은 명에서 숭정역서(崇禎曆書)를 편찬하기도 하였고, 홍이포 제작에도 관여했으니 고관들과도 제법 안면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저 무서운 타타르의 군주를 단칼에 죽였다는 한 군인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장본인이 교회에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담 샬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싸움에 지친 나머지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주님을 받아들이려는 것일까?'

이런 순진한 생각은 포교를 위해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나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도, 일본도 아담 샬과 선교사들이 가진 기술과 지식을 원했다.

그것이 포교에 도움이 되기에 그들 예수회 또한 협력했고 말이다.

"혹시 장군님께서 저희에게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렇소."

이자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임금을 설득한 편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대들은 같은 천주(天主)를 섬기는 무리 중에서 전통을 존중하고 유학을 배척하지 않는 일파라고 들었소."

"중국에도 지켜야할 전례와 관습이 있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아담 샬의 말에 이자원이 피식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가 예수회에 가지고 있던 피상적인 지식이 맞아 떨어져 만족했을 뿐.

"그렇다면 포교를 용인해도 문제가 없겠군. 조선 조정에서 보기에 불승(佛僧)이나 그대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여겨 꺼려할지언정 반대하지는 않을테니 말이오."

이자원의 말에 아담 샬이 얼굴을 굳혔다.

아무리 그래도 당장 포교 허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그것이 진짜입니까?"

길잃은 어린 양을 한 명이라도 더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

그것이 모든 목회자(牧會者)의 목표다.

그러나 포교란 험난한 길로, 새로운 곳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판에 포교를 허용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담 샬이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전하께서 허락하신 일이오."

정사 구굉도, 부사 윤휘도 대강은 들었겠지만 그들은 이 일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는 못했다.

오로지 이자원만이 이 접촉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조선왕 전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그러나 절대 공짜일리는 없다.

조선왕이 프레스터 존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리고 아담 샬은 그런 것을 믿기에는 너무 오래 살았다.

"그대들이 명에 전해주고 있는 것과 같은 것. 서학(西學)이라 하던가."

"역시······."

아담 샬이 말했다.

이자원은 천주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성당은 기껏해야 누구 결혼식 때 가본 정도가 전부다.

그가 원하는 것은 천주교가 아니라 그에 따라올 지식과 사람들이었다.

"역법과 화포술, 의학, 건축술, 수학······ 그대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그것을 가르칠 사람들이 필요하오."

이자원이 줄줄이 읊자 아담 샬의 표정이 굳었다.

마치 자신들과 비교해봤을 때 조선에 뭐가 없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이곳 예수회에도 사람이 부족한터라 그만한 인원을 당장 보내기에는 힘이 듭니다."

"얼마가 걸려도 좋소. 성직자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그렇다면 마카오에서도 기술자를 구할 수 있을테니 말이오."

이자원이 말했다.

아담 샬은 그의 흔들림없는 눈동자를 보고 말했다.

"장군께서는 우리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오셨군요."

"물론."

"알겠습니다."

아담 샬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할일이 많아질 것이다. 조선에 보낼 인선을 결정하고, 확실히 포교가 허용될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조선이 얼마 전까지 타타르와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대대적으로 순교를 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덜한 위협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한 가지 더."

이자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해받는 형제들의 목숨을 구하고 싶지 않소?"

===

'이자원이 황명을 받들기로 했다.'

유흥치가 가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조선은 토벌 준비를 했으니, 아마 이번에도 지금쯤 조선은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자원이 할 일은 숭정제의 칙서를 받들고 귀국해서 가도를 치는 것 뿐이었다.

'우리 반란군조차 조선의 손을 빌려 토벌해야한다니.'

적은 많은데 아군은 적고, 돈은 더더욱 없다.

조선에 고작 10만 냥을 내리는데도 입술이 떨리지 않던가.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청보다는 각지의 반란부터 진압하여 세수(稅收)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반란만 억누른다고 회복될 재정이 아니었지만 숭정제가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그것 밖에 없었다.

그동안 조선이 가도를 재건해서 이자원 같은 명장이 청의 뒤를 노려주면 좋고 말이다.

"폐하, 금의위독동지 입시이옵니다."

내관의 말이 들려왔다.

동창과 금의위는 전통적인 명나라의 첩보기관이다.

그러나 양자는 수평적 관계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역사를 따지자면 금의위가 동창보다 오래되었으나, 오랜 환관의 득세로 인하여 그들은 동창의 부속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이런 구도가 뒤바뀐 것은 숭정제가 환관 위충현을 숙청하고 즉위한 직후.

황권에 들러붙어 국사를 농단하던 환관들의 세를 억누르기 원했던 숭정제는 금의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숭정제가 사람을 뽑아올리라 명한 쪽도 동창이 아닌 금의위였다.

"알아보았는가?"

"예, 폐하. 조선말에 능하고 실력이 있는 자들만 추렸나이다."

금의위의 수장은 도지휘사 오맹명(吳孟明)이지만, 숭정제가 자주 부르는 이는 금의위독동지 낙양성(駱養性)이었다.

그는 대대로 금의위에서 봉직한 집안의 자손으로, 증조부 낙안(駱安)과 부친인 낙사공(駱思恭)에 이어 곧 금의위의 대권을 장악할 것으로 평가받는 자였다.

숭정제가 비밀리에 의논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상대는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붙일 필요는 없다.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황제는 조선 또한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이적(夷敵)들은 언제나 중원이 약해질 때 그 이빨을 들이밀었으니까.

청과 적당히 상잔해준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지만, 만약 그 이상의 흉계라도 꾸민다면 즉각 알아챌 수 있도록 경계할 필요는 있었다.

"가장 실력 있는 자만 하나 뽑아 이자원의 옆에 붙이도록 하라."

===

심양궁.

두 섭정왕이 만사(萬事)를 맡아 처리하게 된 이래로, 의례적으로 열리는 조회를 빼놓고는 쇼서의 근처에는 하급 관리와 내관 몇만이 있어 시중을 들 뿐이었다.

호거와 도르곤은 어린 황제에게 관심도 없었으니, 자연히 그들의 정치적 타협으로 결정된 사안들에 도장을 받는 것은 내각 대학사 범문정의 몫이었다.

드디어 삼차하를 넘은 명군을 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소오하이와 삼시카를 보내 봄보고르의 난을 진압하는 것도,

차하르 친왕 에제이를 심양으로 데려오는 것도,

아민을 사면하는 것도.

모두 쇼서의 뜻 한 마디 물어보지 않고 두 섭정왕이 결정한 사안이었다.

'하기야······ 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알아 오늘의 환란에 대처하겠는가.'

범문정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황제를 대신해 조서(詔書)에 옥새를 찍고 있는 내관을 바라보았다.

홍타이지 시절이라면 감히 품을 수도 없었던 생각이지만 그런 불경한 말을 떠올릴 정도로 범문정의 마음은 복잡했다.

"지, 짐도······."

그때 쇼서가 입을 열었다.

"국사에 대해 알아야할 것이 있지 않은가?"

혀 짧은 목소리로 내는 말에 범문정은 당황했다.

당연히 섭정이 있다 한들 황제 또한 보고를 받기는 받아야 한다.

범문정도 예법은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반쯤 체념한 상황이었기에 이제 와서는 그저 십왕정에서 작성된 조서를 늘어놓고 도장이나 받아오고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쇼서가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범문정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깊게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모후가 바람을 불어넣은 것인가?'

하지만 쇼서의 어머니인 예허나라 씨는 권력을 다투기 위해 수를 쓸 성정이 아니었던데다, 선황 홍타이지의 정궁황후였던 보르지기트 저르저르가 멀쩡히 살아서 황태후의 존호를 받았으니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었다.

'혹 스스로 생각한 바라면······.'

범문정은 눈을 부릅떴다.

만약 그렇다면 황제는 더욱 몸을 낮추어야 한다. 두 섭정왕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좌우섭정왕들께서 정사를 처리하고 계시니 폐하께오서 더 살피실 필요는 없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하오나 결정된 일이라 하더라도 아뢰지 않은 것은 신의 잘못이니 용서해주시옵소서."

"죄를 묻지 않을테니 다음 안건은 무엇인지 말해보라."

쇼서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범문정은 무언가 가능성을 본 듯한 심정에 가슴이 두방망이질쳐 제때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으로 올라온 안은 가도 지원에 관한 것이옵니다."

"가도?"

쇼서가 어린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가 모르는 곳이었다.

"정홍기 일부가 군사를 일으켜 투항의 뜻을 표한 심세괴에게 호응하겠다 했사온데······."

범문정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부타를 심세괴에게 보내 내투하라 권한 것은 청의 사방이 혼란스러우니 한 곳이라도 전선을 줄여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심세괴를 오히려 지원하러 병력을 내야겠다는 말에 범문정은 기가 막힐 수 밖에 없었다.

'쇼토, 이 자가 생각이 짧구나.'

쇼토는 조선에 포로로 보내져 죽은 요토의 동생으로 그를 대신해 아버지 다이샨의 후계자가 되었다.

중립을 지켰던 다이샨과 달리 그는 명백히 친도르곤파였는데, 범문정이 파벌 수장인 우섭정왕 도르곤을 통해 재고를 요청했음에도 막무가내였다.

'가도는 항상 우리 대청의 근심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통째로 우리 품에 안기게 되었소. 잘만 유지한다면 오히려 조선과 명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소. 또한 지금 나라 안의 물자도 떨어져 가고 있으니, 가도를 구해 그 물자를 취해서 위난을 넘겨야 할 것이오. 조선 정복이 목표인 것도 아니니, 충분히 할만한 싸움이 아니겠소.'

범문정도 그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기가 시기 아닌가.

군공을 세우거나 그 와중에서 떨어질 떡고물을 노리는 것 따위의, 아주 개인적인 이유라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안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호거와 도르곤의 반대를 넘겼다는 뜻.

최소한 도르곤은 반대했을 것이나 그는 쇼토의 주군이 아니라 정치적 협력자에 불과했다.

섭정왕들은 홍타이지가 그랬던 것처럼 각 기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섭정왕들이 통과시켜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으니 범문정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쇼서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황제께서 더 장성하시어 세력을 갖추게 된다면 이런 상황이 뒤바뀔까.'

그때까지 청이 유지될 수 있을지.

아주 잠깐 재수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범문정은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마침내 조서에 옥새가 찍히고, 정홍기는 출병 준비를 시작했다.

가도를 향해 각 세력이 얽혀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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