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마지막 황제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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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명재상.
조선사 최대의 개혁이라 불리는 대동법을 밀어붙인 것으로 유명한 김육이지만 이 시점에는 아직까지 중진이라 할 정도의 위치는 아니었다.
그러했으니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김육이 아닌 책봉주청사 일행이었다.
"경사의 분위기는 어떠하오?"
구굉이 묻자 김육이 답했다.
"황태극이 죽었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고 기뻐하는 분위기오이다. 민간에서는 오랑캐들의 명운도 다했다며 이리저리 소문이 돌고 있으니 우리 조선 사람을 보는 눈도 많이 우호적이올시다."
"모두가 여기 있는 이 종사관의 공이오."
구굉이 소개하자 김육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황태극을 죽였다는 군관이 바로 그대요?"
"그렇사오이다."
이자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로서도 여기서 김육을 마주칠 줄은 몰랐던 터였다.
위인(偉人)을 만났다는 감상보다 앞선 것은 다른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효종의 북벌에 대해 소극적인 인물이었지.'
훌륭한 행정가긴 하나 그렇기 때문에 민생을 우선시한 인물.
과연 이자원과 임금이 그리는 그림에 그가 들어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할 일이었다.
감탄을 흘리던 김육에게 윤휘가 말했다.
실질적으로 모든 외교 업무를 맡은 이는 부사 윤휘였다.
주화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물러나야 했던 최명길이 대신 추천했던 인사로, 외교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니 당연했다.
"심세괴가 명 조정에 많은 은자를 풀었다 들었는데 혹 우리나라를 공박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는 않소이까?"
"음······ 그것이······."
김육은 가도의 명군을 참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몇번 나왔지만 정작 황제는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황제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군.'
조선과 가도의 파워게임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전적으로 황제의 뜻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사신단이 내놓은 정보를 듣고도 답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이자원은 확신했다.
===
흔히 임금의 얼굴을 일러 용안(龍顔)이라 한다.
군주란 그 위엄이 얼굴에 서려 있으므로 용의 얼굴에 빗댈만하다는 인식 때문이리라.
그러나 현재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의외로 평범했다.
마른 얼굴에 피곤해보이는 인상.
대단한 영웅의 관상도 아니고, 그저 그 자리에 있어야 하기에 황제가 된 것 같은 남자.
하지만 이자원은 저 얼굴 너머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의심암귀(疑心暗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당당히 독보를 데려와 심세괴의 반역에 대해 고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청장(淸將)이 심세규(沈世奎)를 만나러 온 것을 보았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심세규는 그를 내치지도 않았고?"
숭정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기는커녕 둘만 앉아 소승도 알 수 없는 밀담(密談)을 나누었사옵니다."
"하."
독보의 말에 숭정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전쟁에서 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청장과 밀담을 나누었다······ 도대체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벼락같은 숭정제의 호통에 신하들이 몸을 움츠렸다.
"그대들은 이런 말을 듣고도 심세규를 옹호할 생각인가?"
"폐하, 일단 진위 여부부터 판단하셔야 하옵니다. 저 중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찌 알겠나이까?"
심세괴는 조정에 많은 양의 뇌물을 뿌렸다.
이미 의심에 사로잡힌 숭정제 앞에서 신하들이 이런 말을 꺼낼 수라도 있는 것은 그 덕분이었다.
"고 태감."
숭정제의 말에 고 태감이라 불린 이가 고개를 숙였다.
"저 독보란 자를 본 일이 있는가?"
"심세규의 막하에 있던 자이기는 하나이다."
숭정제의 물음에 태감이 대답했다.
"무슨 검증 말이냐? 심세규의 밑에 있던 자의 증언만큼 확실한 것이 있는가?"
숭정제가 날카롭게 말했다.
원숭환을 숙청했던 그의 의심병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하오나 독보 또한 조선인. 지금 심 총병과 조선이 패전의 책임을 두고 다투는 중이니 독보가 제 나라의 안위를 위하여 거짓을 고할 수도 있는 노릇이옵니다, 폐하. 부디 통촉하여 주소서."
'책봉주청사를 앞에 놓고 이런 말을 할 정도라니.'
대놓고 '너희는 못믿겠다' 선언까지 나온걸 보면 다급하긴 한 모양이었다. 심세괴가 명 조정에 들인 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숭정제는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지만 말이다.
"신 조선국 종사관 이자원이 황상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이자원을 본 숭정제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새로 즉위한 세자의 표문에 적혀 있던 그 자로구나. 황태극을 포로 쏘아 죽였다던."
"천신(賤臣)의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그래. 심세규는 조선이 멋대로 화친을 맺은 것을 꾸짖고 지휘권을 넘겨 받으려 했으나 협조하지 않아 패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천병까지 멋대로 죽였으니 그 죄가 더욱 크다 하였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숭정제가 물었다.
"청과 화친을 맺은 것은 단순한 책략으로서, 이후 청천강을 가로막고 전군이 북상해 적을 쳤으니 이것으로 조선의 진의는 분명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조선의 백성들도 천자의 다스림 아래에 있으니 이를 함부로 약탈하는 자들을 어찌 가만히 두겠나이까?"
이자원의 말이 역관을 통해 옮겨져 나왔다.
"오히려 진정한 역적은 가도 총병 심모로, 구태여 강 한 군데를 점거하고 지휘권을 내놓으라 강짜를 부렸다가 거절당하자 적이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이제는 청장과 불궤를 도모했으니 처음부터 그 뜻이 천조를 배신하는 것에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사옵니다."
이자원은 숭정제의 의심병을 더욱 자극했다.
가도의 명군은 질만해서 진 것이 아니다. 오로지 심세괴가 역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라고.
"그래, 그랬단 말이지······."
숭정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아울러 소방(小邦)의 깨끗한 마음은 황태극을 죽이고, 역적 경중명의 목을 벤 것으로 충분히 드러났다 생각하옵니다."
이번에 나선 이는 부사 윤휘였다. 그러면서 그는 숭정제에게 공손히 함을 바쳤다.
그것을 열어본 숭정제는 썩어들어가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 불한당이 드디어 죗값을 치렀구나."
함 안에는 소금에 절여진 경중명의 잘린 목이 들어 있었다.
숭정제는 그것을 신하들에게 내보였다.
"이래도 잘못을 저지른 것은 조선이라 할 셈인가?"
설령 조선이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적당히 눈감아주고 넘어가야 할 상황에, 경중명의 목까지 보았으니 숭정제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선과 가도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조선인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있겠지만.'
처음에는 실리를 위해 머리를 숙였더라도 그것이 지속되다 보면 상대와의 눈높이를 잘 재지 못하게 된다.
조선과 명, 조선과 가도 사이가 그랬다.
반정을 일으켜 즉위한 인조는 명에서 원활히 책봉을 받기 위해 철저한 저자세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책봉을 중재한 이는 가도의 모문룡이었고, 이후 그는 책봉을 도왔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수시로 지원을 요구했다. 당연히 조정으로서는 다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임금은 다르다.
선왕의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사(繼祀)했고, 쳐들어온 청군을 박살내서 돌려보냈으니 오히려 명이 조선에 매달려야 할 판이었다.
이전까지의 가도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조선이 큰 공을 세웠다. 과연 열성조께서 누대에 걸쳐 은혜를 베푸신 이유가 있노라."
마침내 나온 숭정제의 말.
"오랑캐가 천조의 큰 근심이 되고 있던 차에 조선이 병의 뿌리를 제거했으니 짐(朕)은 기쁨을 감출 수 없구나."
그러더니 숭정제는 잠시 입을 떨면서 말했다.
"······하여, 조선에 은 10만 냥을 하사한다."
은 10만 냥.
적다면 적지만, 파탄나버린 이 시기 명나라의 재정을 감안할 때 숭정제로서는 이마저도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즉위년부터 섬서에 큰 기근이 들어도 1631년이 되어서야 10만 냥을 내어 진제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번국인 조선에까지 이런 사정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사신단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신종황제(神宗皇帝, 만력제) 시절을 생각하면 안되오이다."
이자원이 작게 윤휘의 뒤에서 속삭였다.
하지만 윤휘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전쟁은 농한기인 겨울에 벌어졌기에 한해 농사를 몽땅 망치지는 않았을 뿐더러, 조선 농업의 핵심인 삼남은 무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서북을 구제하기는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조선에서 나올 돈이라는 것을 뻔했기에, 은근히 임금은 명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었다.
"대국의 사정도 좋지 않음은 감안을 해야하오이다."
먼저 북경에 도착해 상황을 살펴봤던 김육이 말했다.
"만력 연간에는 1냥에 두 섬했던 곡가가 치솟아 지금은 100냥으로 한 섬을 사기 힘든 지방도 있다 하오이다."
17세기 초부터 발생한 기후 이상은 대륙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기근이 든 자리에는 도적이 들끓고, 이것을 진압하느라 또다시 병력과 재정이 소모된다.
청의 위협을 제하더라도 조선보다도 심각한 것이 명이었다.
"황은(皇恩)이 망극하옵나이다."
그러니 별 수 없이 사신단은 길게 읍하며 감사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가도 문제는 탈 없이 해결이 된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선대왕께서 오랑캐의 손에 불행히 돌아가시고 새로이 세자께서 보위에 오르셔 대국의 고명을 받들고자 하옵니다. 모쪼록 허락해주시옵소서."
숭정제로서는 돈 안드는 책봉이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조선 국내의 상황이 빨리 안정이 되어야 청이라도 물고 늘어질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내린 칙서의 내용도 전례없이 조선에 우호적인 것이었다.
인조가 죽은 경위를 탐문하여 쓰인 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여진이 반역하여 천조를 능멸한지 오래되었으나 왕은 공순히 충심을 지켰다. 한순간 전쟁이 일어나 왕이 곤궁한 처지에 처하고 마침내 성이 떨어졌을 때 오랑캐가 왕을 잡아 천조를 버리고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하자, 오히려 용포를 찢고 혈서를 써서 필문으로 꾸짖으니 청장(淸將) 용골대 등이 심히 놀라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러나 금수 같은 저들 오랑캐가 어찌 진실로 사람의 도리를 알랴! 끝내 흉험한 일을 당하여 영원히 서거(逝去)하고야 말았다.
돌이켜보건대 왕의 품성은 옛 성인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고, 충심 또한 뭇 신하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이에 시호를 충문(忠文)으로 내리고, 사람을 보내어 유제(諭祭)하고, 아울러 그대의 아들 이왕(李汪)에게 명하여 왕의 작위(爵位)를 습봉(襲封)케하니 왕은 혼령으로라도 영총(榮寵, 임금의 은총)을 받들라.」
본래라면 명이 망하고도 5년을 더 살아 청으로부터 장목(莊穆)이라는 시호를 받는 인조였다. 그러나 전장에서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고로 경애하는 명나라로부터, 그것도 유교적 세계관 하에서 가장 격이 높은 충문(忠文)이란 시호를 받게 되니 이 또한 역사의 비틀림이었다.
과연 죽은 인조가 어느쪽을 더 원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책봉 조서를 작성할 것을 명한 숭정제의 시선이 한번 사신단을 휩쓸더니, 이내 이자원의 얼굴 위에 멈추었다.
"짐은 천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이 해낸 것에 크게 놀라울 따름이다. 병법을 부리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재를 얻고 쓰는 일이 실로 중하다."
명 최후의 명장인 원숭환을 제 손으로 죽인 황제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짐이 조선왕의 표문을 본 즉 사신 가운데서도 쓸만한 자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