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호란의 끝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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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예친왕 애신각라(愛新覺羅) 대선(代善)은 조선국왕 전하에게 글을 올립니다.
옛일을 돌이켜보건대 우리나라는 개국 이전부터 교린(交隣)의 도를 지켜왔으니 조선국과 털끝만한 원한도 가질 이유가 없으나, 기미년(1619년)과 정묘년(1627년)에는 시세가 불운하여 끝내 칼을 맞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정묘년에 화약을 맺어 양국이 우의롭게 지내고자 약조하였지만, 명국이 화친하는 길을 막고 간신(姦臣)이 눈을 가리는 까닭에 다시금 의심하는 마음이 솟아났으니 이것이 양국의 불행입니다.
바야흐로 전쟁이 일어나 생민(生民)이 도탄에 빠지고 해와 달 같은 두 군주가 스러짐에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다 하오리까.
경솔히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와 지내는 도리를 온전히 하지 못한 것은 한을 보좌하는 우리들의 잘못이니 깊이 뉘우칩니다.
이에 사죄하는 글을 보내 화친을 청하오니 모쪼록 양국이 이전처럼 정답게 지내기를 간원(懇願)하는 바입니다······.」
"천세, 천세, 천세!"
"조선 천세!"
최명길의 낭독이 끝나자마자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조선 관리들은 환희를 지르며 기뻐했고, 반면 청군 쪽은 이보다 더 굴욕적일 수는 없다는 표정이었다.
최명길은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트집잡을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의 책임을 명이나 간신에게 돌리는 것도 그렇다.
명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간신도 어느 나라의 신하를 지칭하는 것인지 두리뭉술하게 적어놓았지 않은가.
또 수취인인 세자는 아직 즉위도 하지 않았으니 엄밀히 따지면 조선국왕 전하라고 불릴 수 없다.
심지어는 홍타이지와 인조 중 어느쪽을 해로, 어느쪽을 달로 비유한건지 집요하게 캐물을 수 있었지만 최명길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런 일에 심력을 소모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뻐하는 조선측이나 인상이 구겨진 청측이나 모두 다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있겠지만, 아직 많은게 남아있다.
'게다가 청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이만한 굴욕이 없을 터다.'
청나라 장수들의 침통한 표정만 봐도 그랬다.
자기들이라고 제 손으로 요토 등의 전범(戰犯)들을 잡아바치고 친왕들이 수결한 사죄문을 내어주고 싶겠는가.
저들은 한시바삐 이곳을 뜨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거짓말로 이루어진 화친이고, 이 일이 끝나면 관직에서 쫓겨날 게 뻔한 최명길이지만 그 모습을 보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곳에 비석을 세워도 좋겠군."
최명길이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이샨이 보낸 사죄문을 탁본으로 떠서 돌에 새겨놓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하면 어떨까.
삼전도비(三田渡碑)라 하여 말이다.
아마 이 땅을 침략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좋은 경고문이 될 것이다.
===
삼전도에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점철된 화약이 맺어지던 그 시각.
이자원은 안주(安州)를 향해 말을 달리고 있었다.
'청군이 어떤 화약을 들이밀더라도, 설혹 능원대군을 가지고 협박을 하더라도 절대 길을 열어주지 말라는 교지다.'
능원대군을 보낸다는 결정을 내리던 날.
물음에 답하고 나서 퇴궐하려던 그에게 세자가 교지를 건네주었다.
'화친이 적을 속이기 위한 계책임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 중에서 원지(遠地)까지 보낼 수 있는 이가 너뿐이니 이해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이자원은 단지 묵묵히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두 사람 다 방금의 문답(問答)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유학을 국시(國是)로 삼은 나라의 세자가 자신이 한 말을 이해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 뿐인 일이다.
"끔찍한 광경이오이다."
이자원은 박철균의 말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이자원과 훈국군 1개 초는 청군을 피해 북상하느라 양주(楊州) 근방을 지나고 있었다.
분명 전화(戰火)가 크게 번진 고을은 아닐텐데도 군데군데 시체가 널려있다.
"시절이 수상하니 죄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갑니다."
박철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역병이 돌테지."
사또에게 빨리 조치에 나서라 할 시간도 권한도 이자원에게는 없다.
다만 보고 들은 것을 추후에 고할 뿐.
"가자."
이자원은 차마 눈을 돌리지 못하는 박철균과 훈국군들에게 말했다.
"파총 나리께서는 저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으시오이까?"
"더한 난세도 보았다."
이자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자 박철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파총 나리, 왜란 시절에도 계셨소이까? 아닌데, 분명 춘추(春秋)가."
"스물여섯이다."
"헌데 언제 이보다 더한 난세를 겪으셨소이까?"
이자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역으로 물어보았을 뿐이다.
"네 나이는 어찌 되느냐?"
그러고보니 자신은 박철균의 나이도 모른다.
박철균은 이자원이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의외였는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약관을 갓 넘겼소이다."
"······."
이자원은 그 말에 솔직하게 놀랐다.
'그 얼굴로.'
텁시부리한 박철균의 얼굴은 좋게 보아주어도 서른 밑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자원 그보다 나이가 적다니.
'나보다 연상인줄 알았군.'
부방살이까지 하다왔으니 십대에 무과에 급제한 인재인 셈인데 전혀 소문이 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가 저 얼굴을 약관이라 생각하겠는가.
"파총께서도 놀라실줄 알았소이다. 좌우간 이놈의 홍안(紅顔) 때문에 종종 소년(少年)취급을 받아서 곤란할 때가 많소이다."
박철균은 이자원의 당황을 뭐라고 해석한건지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알았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이자원은 구태여 면박을 주진 않았다.
그래야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본신의 고향이 이 일대라고 했었나.'
아버지되는 이가 양주로 낙향한 후 그를 얻었다고 했으니 고향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현대인 이자원의 고향집도 아니고, 본신도 이미 처자식을 잃은 이래로 발걸음을 끊은 곳이다.
구태여 그를 꺼려한다는 적모(嫡母)를 뵈려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서둘러라! 한시 바삐 서북군에 교지를 전해야 한다!"
===
청군은 되도록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순차적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군량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열흘도 남지 않은 군량. 협상을 하느라 끈 시간까지 감안하면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퇴각해야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판이었으니 침공 당시 끌고 온 우마(牛馬)와 수레며 화포 등도 제대로 챙길 형편이 아니었다.
청군도 최대한 화포를 망가뜨리고 소와 말은 끌고 가거나 도축하여 군량으로 삼고자 했으나 거기에 쏟을 시간조차 부족했다.
"노획한 홍이포가 20여 문에 소와 말은 130여 두, 수레는 30량이옵니다."
원상들이 세자에게 보고했다.
"조종(祖宗)과 백성의 피해는 없는가?"
"그간 청군이 머물며 행패를 부린 탓에 백성 여럿이 상하고 수탈당했으나, 화약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하옵니다. 또한 적들이 궁궐과 종묘사직이며 선대왕들의 능은 건드리지 않았사옵니다."
"다행이로다."
청군도 약속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으니 예상은 했지만, 사람은 늘 합리적인 선택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청군은 도성에서 물러났다.
세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은 즉위일을 맞추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옵니다."
동양위 신익성이 곁에서 말했다.
본래 선왕이 훙서한지 엿새 후에 즉위하는 것이 관례로, 전쟁이 길어졌다면 세자는 날짜에 맞춰 남한산성에서 즉위했으리라.
하지만 도성에서 즉위할 수 있는데 구태여 행궁에서 그럴 필요는 없으니 청군이 모두 철퇴할 때까지 시일을 늦춘 세자였다.
"이것도 예법을 임시로 변통하는 도리이니 선왕께서도 이리 하기를 원하셨을거요."
세자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남한산성은 부왕을 지키지 못한 회한이 담겨있는 장소고, 도성은 그런 자신이 싸워 찾아낸 장소다.
자신은 그곳에서 즉위하고 싶었다.
그때 바깥에서 내관의 말이 들려왔다.
"저하, 강화도에서 대군과 빈궁들이 도착했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들여라!"
세자가 황급히 외쳤다.
"저하!"
"세자 저하, 아바마마께오서······!"
동생 봉림대군과 인평대군, 그리고 세자빈 강씨와 원손이 울면서 입시(入侍)했다.
이미 인조의 부음을 전해진지 여러날이라 눈물이 다 말라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그들은 세자를 보자마자 기어코 또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가장 분루(憤淚)를 흘리는 이는 맏동생 봉림대군 이호였다.
"저하, 오면서 오랑캐와 화친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사옵니다. 이 동생은 아둔한 탓인지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봉림대군이 분해서 말하자 세자는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 안다. 나는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데 너희는 어떻겠느냐······."
세자의 목소리에도 울음이 섞였다.
"하지만 정사는 백성을 위한 것이니 하루도 임금이 없을 수 없고 만기(萬幾)는 하루도 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 도성으로 나아가 즉위할 것이다. 너희는 이를 깊이 지켜보고 이 아비의, 남편의, 형의 마음을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이를 말씀이겠사옵니까, 저하."
이미 세자는 즉위하라는 신하들의 요청을 형식상 몇차례 사양한 바가 있었다.
이제 궐 앞에 엎드린 신하 몇몇이 마지막으로 고하면 못이기는 척 나아가 수락하고, 도성으로 향하면 되리라.
"원상들은 나가서 내가 수락했노라고 전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저하!"
1637년 1월 16일.
세자 이왕(李汪)은 한양 도성에 입성하고,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즉위했다. 문무백관이 그 뒤를 따랐다.
후대에 소현세자(昭顯世子)라고 불리울 불운한 왕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청을 물리치고 한양을 되찾은 젊은 군주만이 있을 뿐.
그가 즉위 교서를 반포하니, 내용은 이와 같았다.
"왕은 말하노라. 불쌍한 이 소자(小子)가 덕도 없으면서 외람되이 세자의 자리에 있은 지가 이제 12년이 되었다.
늘 근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천명(天明)을 저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하늘이 돕지 않으시어 오랑캐가 임금에게 흉험한 짓을 저지르니 기어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 이에 산천(山川)이 울부짖고 초목(草木)이 통곡하노라.
고생하시며 길러주신 은혜를 어느날에나 갚겠으며, 아버지의 자식을 가르치시는 말씀을 다시 어디에서 듣겠는가.
생각건대 계승의 도는 예로부터 유국자(有國者)가 소중히 여긴 바이니 열성(列聖)들께서 슬픔을 누르고 즉위식을 거행했던 것이 어찌 아무 뜻이 없이 하신 것이었겠는가. 이에 금년 정월 병진일에 인정문에서 즉위하고, 빈 강씨를 왕비로, 원손을 왕세자로 삼았다. 화려한 이 의식을 돌아보건대 비통한 마음만이 더할 뿐이다.
내 깊이 생각건대 우리 돌아가신 임금께서는 난을 평정하여 태평으로 되돌려 놓으신 공이 실로 이전의 임금들보다 훌륭하시다. 막혔던 인륜이 다시 신장(伸張)되고 위태로웠던 종사(宗社)가 다시 편안해졌으며 끊겼던 백성들의 생명이 다시 이어졌다.
이것은 인을 베풀고 의를 따른(施仁服義) 공덕으로, 생각하건대 대행 대왕의 묘호로 인조(仁祖)보다 적합한 것이 없다. 또한 시호는 헌문 열무 명숙(憲文烈武明肅)으로, 능호를 장릉(長陵)으로 올리니 모두 돌아가신 임금의 행적에 합당하다.
아, 소나기가 쏟아지면 젖지 않는 물건이 없고 해와 달이 비추는 곳에는 빛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 법이니, 선왕의 덕을 계승하는 것이 이에 있어서이지 나에게 감히 사사로운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교시(敎示)하니 만백성은 잘 알기 바란다."
인조의 묘호는 열조(烈祖)와 무조(武祖) 등이 올라왔으나 세자가 모두 거부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부왕의 묘호로는 성군 중의 성군이 받을 수 있는 인조만한 것이 없었다.
'폐주 광해를 몰아내고 나라를 보살폈으며, 대명(大明)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끝내 성을 사수하다 목숨을 거두셨으니 이만한 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인조는 그대로 인조가 되었다.
세자 딴에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었지만 이자원이 들었으면 쓴웃음을 지었으리라.
"이제 종묘에 즉위한 것을 고하셔야 하옵니다."
"그래, 알겠다. 다만 그 전에 내려야할 명이 있다."
세자, 아니 임금은 허리 숙인 문무백관을 보고 외쳤다.
"교서에서 일렀듯이, 인조대왕께서 돌아가신 것은 모두 오랑캐가 입힌 화이다. 저들이 형세가 불리해지자 간악한 말로 화친을 말했으나, 받아들이는 것은 종사에 다시 없을 치욕이다.
상고해보건대 한 고조도 화친을 맺고 가족을 돌려 받자마자 철군하는 항우의 뒤를 쳤다. 하물며 개돼지 같은 오랑캐들이겠는가?"
"전하!"
봉림대군을 비롯한 신하들이 그 말에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얼마 전까지도 화친을 극렬반대하던 대군사부 송시열도 마찬가지였다.
"도원수 김자점은 전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적을 쳐라!"
임금은 외쳤다.
"단 한 마리의 오랑캐도 살려보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