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원상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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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院相)이란 왕이 모종의 사유로 국정을 처리할 수 없을 때 몇몇 신하들이 대신 국정을 돌보던 관직이다.
예종이나 성종 등 어린 왕이 즉위할 때는 수년간이나 원상이 유지될 때가 있었으나, 점차 의례화되고 인원도 줄어들어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에나 잠시 임명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삼정승이 원상을 맡아 국정을 한달 정도 돌보는 것으로 정리가 될 일이었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들으니 졸속제를 치르기까지의 27일 내에는 원상(院相)이 모든 관사를 총괄하여 보살핀다고 하였다. 누구를 원상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비록 임금의 침전인 상궐은 불탔으나 정무를 보는 하궐은 남아있었다.
그곳에 모인 세자 이왕(李汪)이 파리한 얼굴로 묻자 신료들이 엎드려 답했다.
"본래는 삼정승이 맡거나 혹은 정승 중 한 명이 맡는 것이 관례이옵니다."
"'본래는'이라 함은?"
석연찮은 태도에 세자가 묻자 누군가가 나섰다.
"저하, 대행왕(인조)께서 오랑캐의 침노를 받아 끝내 천붕(天崩)을 당하였는데 어찌 삼정승에게 죄를 아니 물을 수 있겠나이까?
영의정 김류와 좌의정 홍서봉, 우의정 이홍주는 모두 헛되이 화친을 말하던 무리들로 어리석은 오랑캐의 주구나 다름이 없사옵니다! 우선 파직하고 졸속이 끝난 후에 죄를 물어야 할터인데 어찌 원상의 대임(大任)을 맡기겠나이까."
바로 척화파인 홍문관 교리 윤집(尹集)이었다.
그는 훗날 결사항전을 주장하다 청나라로 끌려가 처형된 삼학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미 삼사가 한 자리에 모여 주화(主和)한 사람을 참할 것을 청하려 할 때 논의를 주도한 골수 척화파였다.
무려 청군의 습격에 임금이 죽어버린 초유의 사태다.
죽으면 죽었지 화친은 안된다고 펄펄 뛰던 척화파는 이 기회에 주화파를 조정에서 모조리 쓸어내고자 했다. 그 시작이 주화파가 원상을 차지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다만 홍서봉은 모르되 김류는 회색분자에 가까웠고, 이홍주는 화의는 찬성해도 출성항복은 반대하던 인물임에도 모조리 주화파로 싸잡아 버렸으니 당사자는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조판서 최명길 이하 여러 신료들은 대행왕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으니 엄히 형문을 받아도 모자라옵니다. 즉각 삭탈관직하고 옥에 가두소서."
윤집이 분노에 찬 얼굴로 간했다.
"그 자리에 나(余)도 있었거늘 나 또한 의자에 앉아 태(笞)를 맞아야 한다는 말인가?"
세자는 윤집을 노려보며 말했다.
"애초에 지난 밤에 대행왕(인조)을 모셨던 자들이 불충이라면, 모시지 않은 자들은 뭐란 말인가? 화를 당하기 전에 최명길 이하로 일부 신하만 대행왕을 따라 호종하였는데 과연 사간은 어디 있었는가?"
청군은 야음을 타 쳐들어왔고, 상황을 파악한 최명길이 곧장 인조와 세자를 데리고 피난했으니 따라나서지 못한 자들이 많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원칙적으로 따지고 드니 윤집도 할말이 없었다.
"호종한 자도 죄인이요, 호종하지 못한 자도 죄인이다. 더는 이 일을 말하지 말라."
세자는 여기에서 딱 잘라 끝내버렸다.
'아바마마를 잘 모시지 못했음을 구실로 신하들을 쳐내자니. 혹 나까지도 문제로 삼으려 드는 것이 아닌가? 이자원이 수비군 장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겠구나.'
저들의 분노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비를 잃은 자신만 하겠는가.
망극한 슬픔이 물러가자 간신히 이성이 돌아온 세자로서는 저들이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서도록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원상 문제는 남아있었다.
최명길 등을 벌하는 문제는 세자 본인과도 연관이 되어 있기에 쳐냈지만 결국 정국을 척화파가 주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
"저하, 신이 늙고 어리석어 오랑캐와의 화친을 함부로 논했으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모쪼록 사직을 허락해주소서."
끝내 홍서봉은 주화파였던 원죄로 인해 직을 내어놓았다.
우의정인 이홍주도 지난밤에 칼을 맞고 쓰러졌기에 원상을 맡을 수 없었고, 남은 사람은 영의정 김류 뿐이었다.
척화파들은 김류 또한 물러나게 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간하려던 찰나, 김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저하, 신 영의정 김류가 아뢰겠사옵니다."
"말해보시오."
"선묘조(宣廟朝, 선조) 시절에는 이준경, 오겸, 홍섬 등 3인이 원상을 맡았고, 또 지금은 위태로워 일이 많을 시절이니 반드시 여러 사람이 중지(衆智)를 모아 서무(庶務)를 재결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이에 청하건대, 동양위 신익성(申翊聖)과 대사헌 김수현(金壽賢)을 원상으로 삼으소서."
신익성은 선조의 딸 정숙옹주의 남편이요, 김수현은 선조대부터 관직을 지낸 원로인데,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강력한 척화파라는 것이었다.
"신익성은 본래 실직(實職)에 오르지 못하는 부마요, 김수현은 그 직급이 대사헌 밖에 되지 않는데 어찌 원상으로 삼을 수 있겠소?"
세자의 말에 김류는 엎드려 말했다.
"본래 원상이라는 자리는 임금의 정무를 20여 일 정도 맡는 것에 불과하니 부마가 원상이 된다 하여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또한 김수현은 나이가 70이 넘고 관직에 나아온지가 오래 되었으니 예법에 밝습니다. 모쪼록 두 사람을 원상에 세우소서."
척화파의 대표격이라 하면 예조판서 김상헌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밤에 절의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였으니, 문제는 김상헌이 죽으면서 그만큼 중량감 있는 인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관록이 있고 골수 척화파라 할만한 인물은 저 두 사람이었는데, 각자 결점이 있던 것을 오히려 김류가 변호하며 천거한 것이다.
'이자가 전향(轉向)을 하려는 것인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신하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임금의 사망으로 주화파는 전부 조정에서 쓸려나갈 것이 명약관화한 터였으니 말이다.
선조 때는 세 사람이 원상을 맡았다 말해놓고 척화파 두 사람만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했다. 숫제 제 자리는 비워달라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척화파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저하, 영상의 말이 옳사옵니다. 모쪼록 영상과 함께 그 두사람을 원상으로 세우소서."
"원상으로 세우소서!"
전 지평(持平) 조한영(曺漢英)이 그리 외치자 척화파들이 이어 말했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똥씹은 얼굴이었지만 당장 관직이 날아가고 투옥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터에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때 세자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닌가. 한 사람 정도는 군문(軍門)에 든 사람이 원상을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명분인즉 타당했다.
청군이 포위를 풀고 물러나긴 했지만 그것은 저들의 다른 갈래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서일뿐.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허면 누구를 원상으로 삼아야 하오리까?"
유력한 사람은 병조판서 이성구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문신에다 주화파라는 약점이 있어 불가했다.
그렇다면 밖에 나가있는 두 도원수 중 한 사람을 불러들여 원상을 맡길 셈인가?
그러나 세자의 입에서 나온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훈련대장 신경진은 어떤가?"
신경진은 병조판서를 지냈으니 품계도 낮지 않다.
"허나 그리되면 훈국의 지휘는 누가 맡아야 하오리까?"
"어차피 훈련도감의 병력은 어가를 지켜야 하니 신경진이 겸하면서 지휘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오."
병자호란 당시 성을 지키던 무신들은 주로 주화에 가까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아직까진 갈등이 심각할 정도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젠 주화라는 것이 의미도 없어진 마당이 아닌가.
"영의정 김류와 동양위 신익성, 훈련대장 신경진이 원상을 맡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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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 세 사람은 모여앉았다.
"당장 조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올시다. 간밤의 흉사로 여러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관직을 내어 놓은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니 업무를 대행케 하지 않겠소이까."
김류가 말했다.
당장 좌의정인 홍서봉이 사직했고 이조판서 최명길과 병조판서 이성구도 곧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예조판서 김상헌과 형조판서 심집도 죽었다. 그외 피해가 정확히 확인도 안된 부처가 무수했다.
"각조 판서가 죽은 자리는 참판으로 하여금 대행케 하고, 그 이하로 채워야 하는 관리들은 세자께 아뢰어 임명을 청하여야 할 것이외다. 비록 상중에 긴요하지 않은 공사는 역시 출납하지 않고 대간이 아니면 역시 임명하지 않는다 하였으나, 지금은 권도를 따라야 할 때가 아니겠소?"
김류의 말에 신익성과 신경진이 이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신익성이 나섰다.
"또 한가지 시급한 것은 도성의 수복이외다. 조선이 개창한 이래로 도성에서 즉위하지 않은 임금이 한분도 없었으니, 세자께서 즉위하실 엿새 뒤까지는 반드시 도성을 얻어야 하지 않겠소? 이제 두 도원수가 모든 군을 맡아 도성으로 진군케 하는 것이 옳을듯 한데 대감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의례대로라면 훙서가 있은지 엿새 뒤에 성복(成服)이 있고, 세자가 즉위하고 뭇 신하를 거느리고 시호와 묘호(廟號)를 올려야 한다. 다시 상을 당한지 27일이 지나면 졸곡이 끝나 아침 저녁으로만 곡을 하며, 왕은 익선관을 쓰고 친정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전란의 와중이니 행궁에서 즉위한다 하여도 예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요, 도성을 찾는 일은 사세를 잘 살펴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청군이 기세는 꺾였으나 여전히 정예한데 공연히 시간을 정해놓고 공격을 감행하려 들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신경진의 말에 신익성이 반박했다.
"바야흐로 영남과 호남, 관서(평안도)와 관북(함경도) 등지에서 근왕을 위해 모여들어 그 수효가 6만을 헤아리니 적들도 겁을 먹고 물러난 것 아니겠소?"
"청군은 쉬운 도강을 위해 압록강이 언 후에 넘어왔으니 역시 강이 녹기 전에 돌아가려 할 것이오이다. 넉넉잡아도 한달이 되기 전에 적들이 돌아갈 터인데 함부로 싸우러 나가서는 될 일이 아니외다."
그러자 신경진의 말을 들은 신익성이 벌컥 화를 냈다.
"오랑캐가 본조를 범했는데 눈치를 살피고 그냥 돌려보내자 하는 것은 장부의 말이 아니오! 그대는 무신이 되어 적과 싸우기를 겁내는 것이오?"
"각 도의 근왕군이 급히 올라와 군량을 끌어올리기 바쁜데 도성을 탈환하러 진격할 여력이 있을 것 같소이까? 또한 도원수가 두 사람이 되어 양서 원수(兩西元帥) 김자점과 삼남·강원도 원수 심기원이 따로 병권을 쥐는 판이니 이것을 정리하기 전에는 반격은 절대 불가하오이다."
신경진과 신익성이 싸우는 사이 김류는 조용히 침묵했다.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느라 바쁜 그였다.
'신경진의 손을 들어준다면 기왕 화해한 척화파가 돌아서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동양위의 말을 따르자니 패한다면 그만한 책임도 질 수 밖에 없을 터······.'
결론을 내린 김류는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보니 원상들끼리 의견을 모으지 못하는 것 같소. 어차피 세자 저하께 하관들의 임명도 주청을 드려야 하니 어찌해야 할지 비답을 내려달라 청하는 것이 어떻소이까?"
바로 책임 떠넘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