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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11화 (11/213)

〈 11화 〉 재는 재로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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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야습을 기획한 사람은 아이신기오로 요토였다.

그간 조선 조정은 산성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러 차례 수백명 규모의 병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포위망을 뚫으려 했다.

조선군을 유인해낼 단초는 여기에 있었다.

한양 도성에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관원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은 강요에 의해 경상도 근왕군에 속한 관원들의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장계도 대필해야만 했다.

계제사 장인들이 만들어낸 관인이 더해졌다.

남은 것은 조선군 상당수를 성 밖으로 유인하는 한편 야습을 감행해 왕을 사로잡는 것 뿐.

그리 믿었건만─

"왜 아직 놈들을 몰아내지 못하는 것이냐!"

요토는 조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그 말대로 수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청군은 좀처럼 조선군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건물이 밀집한터라 청군의 우세한 백병전 실력이 반감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싸움은 너무 질질 끌리고 있었다.

"너희는 빨리 행궁 쪽으로 가서 조선왕과 세자를 잡아와라!"

경사가 급하고, 성벽을 타고 넘어오느라 청이 자랑하는 기병은 성 안에 들여놓을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병력은 바야라를 포함해 전부 보병. 그러나 바삐 움직이면 충분히 붙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 나타난 것이 이자원이 이끄는 기병이었다.

"청군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역설적으로 시가전이었기에 기병들의 기동성이 제약되고, 또한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의 소수 병력이었지만 이자원은 영리하게도 중심부를 우회해 행궁으로 바로 진격하려는 바야라들부터 차단하고 나섰다.

번천 옆의 공터에서 이자원과 박철균의 기병이 막아서자 제아무리 정예인 바야라들이라 한들 나아갈 수 없었다.

"저놈은······."

요토는 그 와중에 달빛에 비친 이자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분명, 한을 자신이 죽였다 외치던 자가 아니던가.

그 진위를 믿을 수 없었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시르투에게 잡아올 것을 명령했지만 끝내 불귀의 객이 된 것을 기억했다.

그런 이자원의 얼굴을 보자 요토는 일이 꼬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라도 공을 세우기 위해 직접 나섰거늘······.'

이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한의 사망으로 청의 정국은 요동칠게 뻔했다.

그 소용돌이에서 우뚝 서려면 쌍령에서의 패배를 만회할 공로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트집을 잡아서든 그의 휘하에 있는 양홍기를 빼앗으려 들테니까.

그러나 자칫하면 나서지 않는 것만 못한 상황으로 보였다.

한편 이자원 또한 요토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자원은 곧장 박철균을 불러들였다.

"박 초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통역하도록 해라."

그러면서 이자원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 훈련도감 좌부중사 파총 이자원은 노추 황태극을 포로 격살한 장본인이다! 애신각라 요토, 너는 너희 추장의 녹을 많이 먹은 종친인데 쌍령에서 나를 보고도 도망쳤으니, 어찌 장부라 하겠느냐! 이제 나와 한번 정정당당히 겨루어보자!"

요토는 그 말을 듣고 이를 갈았다.

'저건 나를 겨냥하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옆에 있는 바야라들은 박철균의 통역을 듣고 당황하더니, 요토를 곁눈질했다.

바야라는 홍타이지의 친위 금군으로 그 충성심을 따라갈 자가 없는 부대다. 그들이 이 말을 들은 이상, 반드시 보고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보고를 받는 대상이 아버지인 다이샨이 되었든, 아니면 다음대의 한이 되었든 간에.

'이렇게 된 이상 조선왕만 잡아서는 안된다. 저 이자원이란 놈도 같이 잡아 바쳐야 한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고려놈을 잡아오지 않고!"

요토가 외치자 바야라들이 기세 좋게 이자원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이자원은 정면으로 승부해줄 마음 따위 없었다.

뒤돌아 말을 달려 거리를 벌린 그는, 환도 대신 꺼낸 활로 달려오는 바야라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저따위 장난질을!"

요토는 말이 성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통탄스러울 수가 없었다.

철기(鐵旗)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병이 되어버린 바야라들은 말탄 이자원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나마 수은갑(水銀甲)으로 몸을 보하고 있으니 처음 화살에 맞은 자를 제외하고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한시바삐 행궁으로 가야하는 청군으로서는 이렇게 농락당하는 것 자체가 손실이었다.

그때였다.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무덤덤하던 이자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발견된 암문(暗門)을 통해 드디어 청 기병이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창과 칼이 휘둘러지고 화살과 총탄이 날아다닌다.

아예 지붕 위로 올라가 총을 쏘아대는 조선군을 청군의 화살이 꿰뚫었고, 가옥 뒤편으로 섣불리 돌아나온 청군의 가슴팍에 조선군의 창이 꽂혔다.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본 이자원은 활을 집어들었다.

퉁,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은 넘어진 조선군에게 칼을 내리꽂으려는 청군의 머리통에 박혔다.

화살촉이 비집고 나온 뒤통수로 흘러나온 피와 뇌수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죽기 직전 입을 크게 벌린 것으로 보아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을 법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에 들리지 않는다.

이자원은 침착하게 다음 목표를 찾았다. 그의 눈에 한번 벗겨진 것을 급한 마음에 대충 올려놓았는지 투구를 거꾸로 둘러 쓰고 창을 휘두르는 적병 한 명이 보였다. 이자원은 목표로 삼은 적병을 겨냥하고, 시위를 놓았다.

다음 순간, 적병이 쓰러졌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청군은 꾸역꾸역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기병을 통한 차단도 막히자 아예 이쪽을 무시하고 행궁으로 바로 진격하는 청군의 숫자도 셀 수 없었다.

이자원은 그나마 벌어준 시간 동안 인조가 무사히 몸을 뺐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칫 왕이 사로잡히기라도 하다간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조심하십시오!"

지형을 활용하는 것은 조선군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달려든 청군을 박철균이 황급히 편곤으로 후려쳤다.

"아까 외치신 말 때문에 놈들이 파총 나리를 노리고 집요하게 달려드는 것 같소이다!"

"잘된 일이다."

이자원은 골목에서 달려오는 청군들을 보며 환도를 끄집어냈다.

"적어도 내게 신경이 쏠린만큼 다른 병사들이 수월하게 버틸게 아니냐."

지금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근왕군이 산성에 진입할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우리군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이자원은 병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손가락 끝이 향하는 먼 곳에는 조선 군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근왕군이 왔다!"

드디어 뒤에 남겨놓고 온 근왕군이 포위를 뚫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민영이 이끄는 근왕군은 동문을 통해 들어와 전투가 벌어지는 성 중앙부로 내달렸다.

청군들 또한 계속해서 성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지만 근왕군이 진입함으로써 이제 성 내에서 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렇게 짓밟히고, 부숴진 시체들 위에서 양군은 격돌했다.

"살았네."

병조판서 신경진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적지 않은 나이에 직접 칼을 들고 싸웠으니 심신이 멀쩡하다면 거짓이리라.

"근왕군이 왔지만 쉴 시간은 없습니다. 행궁으로 병력을 보내 전하의 안전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 싸움이 있기 전에 이판 대감이 전하를 모시는 것을 보았네. 아마 지금쯤이면 무사히 난리를 피하셨을게야."

할아버지인 선조와는 달리 도망도 치지 못했다고 후세에 비난을 받는 인조이지만, 다행히 이번엔 너무 늦지 않게 움직인 듯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소관이 가보겠나이다."

"······맡기겠네."

그러나 신경진도 정확히 인조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워낙 서로가 경황이 없었던 탓이다.

이자원과 박철균은 우선 서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 화르륵

가는 길에 어디선가 불꽃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허탕친 청군들이 행궁에 불을 지른 것이다.

"이놈들아!"

분노한 박철균이 외치며 휘두른 편곤에 청군 몇의 안면이 함몰되었다.

그러나 이자원은 침착하게 외쳤다.

"지금은 궁궐에 신경쓸 시간이 없다! 어서 전하의 행선지를 찾아야 한다!"

종횡무진하던 그때 근처 신료들의 처소를 살펴보러 갔던 부하가 노인 한 사람을 둘러업은 사내를 데리고 왔다.

등에 업힌 노인은 이자원이 한번 보았던 얼굴이었다.

"예판 대감······."

바로 김상헌이었다.

그의 피부는 미동없이 창백했다.

"이게 무슨 일이오?"

눈물을 흘리며 시체를 둘러맨, 아들로 보이는 남자에게 이자원이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오랑캐에게 차마 치욕을 겪을 수가 없다하여 조금 전에 목을 매셨습니다."

"아."

박철균이 안타까움에 신음했지만 이자원은 표정에 미동도 없었다.

"예판 대감께서 혹 전하의 행방에 대해 말하시지 않았소?"

"······이판께서 서문으로 같이 가자하셨지만 따라가지 않았다 하셨습니다."

"알겠소. 삼가 조의를 표하오."

이자원은 대답을 듣자마자 말 위에 올라탔다.

김상헌은 척화파의 거두로서 그가 홍타이지를 죽였을 때 싸움을 주장했던만큼 이자원도 도움을 받았다면 받은 입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조의 안위가 급했다.

인조에게 대단한 호감을 품어서가 아니다. 그가 잡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죽는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세자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은 극심한 내홍에 빠질 뿐이니까.

===

말은 지쳤고 서문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결국 이자원 일행은 말을 매어둔 채 걸어서 서문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인조와 신료들이 걸어올라갔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 말인즉슨 자연히 그들이 지나쳐가는 길에는 국청사가 있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

그 근처까지 다가갔을 무렵이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자원은 그 소리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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