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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7화 (7/213)

〈 7화 〉 쌍령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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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부터 시작된 청군의 공세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는데 성공한 조선군은 사기가 충천해 이어진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전열을 지켰다.

"아이고, 삭신이야."

"오랑캐 놈들은 쉬지도 않나."

긴장 탓에 뻣뻣해진 몸을 풀며 군사들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들 전반적으로 지친 기색이긴 했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자원은 별말않고 차분히 상황을 살폈다.

"나쁘지 않군."

청군은 몇 차례의 교전에서 피해를 보자 전략을 바꿨는지 소수의 궁기병을 동원해 멀리서 활만 깔짝댔다. 조선군의 총격을 유도해 화약의 소모를 유도하고 돌입 타이밍을 열기 위한 조치였지만, 다행히도 그 사이 조선군은 사격 명령이 있기까진 총을 쏘지 않을 정도로는 전장에 적응해 있었다.

거기에 본영에서 지원온 선세강의 병력이 더해지자 조선군의 수비선은 더욱 두터워졌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청군에게 좋을게 없을텐데."

목책 뒤에 숨은 조선군을 상대로 스웜 전술을 펼쳐봤자 실질적인 피해는 별로 크지 않다.

화살이 날아드는 상황에도 어느 정도 적응한 조선군에게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할 것이었다.

"참이요!"

주먹밥이 가득 든 광주리를 든 병사들이 돌아다니며 그렇게 외쳤다.

하루 두끼만 먹는 조선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아침과 저녁 사이에 아무것도 안먹는 것은 아니었다. 농사일만 해도 참을 먹는데 하물며 전투에 힘을 써야할 상황임에야.

몇시간을 내리 싸운 조선군들은 허기진 얼굴로 흙먼지 묻은 주먹밥을 와구와구 씹어 삼켰다.

"파총도 드시게."

선세강이 주먹밥 두 개를 들고 와 하나를 이자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감사하오이다."

보리가 드문드문 섞인 주먹밥은 찰기가 없고 깔깔했다.

그나마 소금을 쳤는지 짠맛은 났고, 이자원 본인이 현대인치고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기에 망정이었다.

"이대로 버티면 적들이 후퇴하지 않겠는가?"

선세강이 주먹밥을 먹으며 희망섞인 말을 던졌다.

"팔도에서 남한산성을 향해 근왕군이 달려오고 있지요."

그러나 이자원은 차분히 반론을 펼쳤다. 조선군도 남한산성으로 진군해야 했지만, 좀 더 시간에 쫓기는 것은 청군이었다.

'청군이 물러나면, 곧바로 우리 군이 봉우리를 점거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조선군 좌우병영이 든든하게 조이고 있는 대로로 직공하는 방법 밖에 없다.

아예 후방의 탄벌로 물러나 회전을 걸 수도 있지만, 조선군이 바보도 아니고 거기에 응해줄리 없지 않은가.

청군에겐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지금 승부를 보는 선택지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대로 된다면 청군이 온힘을 다해 공세에 나서는 그때, 그들의 심장에 비수가 꽂힐 것이다.

"헌데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온다는건······."

오히려 시간을 끌고 있다는 뜻.

무엇을 위해서?

원래 쌍령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요토는 군재와 지모가 뛰어난 장수였다.

명과 몽골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에도 산성을 포위하고 근왕군을 격퇴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미 홍타이지도 끝장나버려 역사가 크게 뒤틀린 판이지만 인선마저 변동이 일어났을지는 알 수 없는 일.

이자원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가 청군의 의도를 읽으려 고심에 잠겨있을 때,

바람이 바뀌었다.

===

산의 바람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에는 계곡에서 산 정상으로, 밤에는 산 정상에서 계곡으로 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처럼 낮은 산지에서는 계곡풍 현상이 별반 의미가 없거니와, 겨울에 내려오는 시베리아 고기압은 바람의 방향을 천변무쌍하게 만든다.

청군이 기다린 것은 바로 이 순풍이었다.

“지금이다. 공격을 감행하라."

요토가 명령했다.

===

"오랑캐 놈들이 또 접근한다!"

또다시 소수의 청 기병들만이 활을 들고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선군 포수들은 침착하게 이자원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지만 곧 경악을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 화르륵!

청군들의 화살에서 불꽃이 일었다.

등 뒤의 바람을 타고 거세게 달려온 청 기병들은 일제히 목책 안으로 불화살을 쏘아 넣었다.

"불이다!"

열기를 내뿜으며 타오르는 화살들이 순식간에 조선군 사이를 헤집었다.

"제길, 이걸 노린거였나!"

이자원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화시(火矢), 즉 불화살이란 단순히 화살에 불만 붙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시를 쓰고자 하면 기름이나 송진 등 인화물질을 충분히 바른 화살을 따로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사거리와 명중률의 저하까지 감수해야 하니 시대가 흐를수록 불화살의 사용빈도는 줄어만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청군이 쏜 화시는 조금 달랐다.

"이 파총! 적들이 화약을 쓴 것 같네!"

총과 대포에 의해 빠르게 밀려나면서 후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에는 인화물질로 화약을 쓰는 불화살이 존재했다.

화살촉에서 2, 3치 되는 곳에 약통을 달아매고 불을 당기는 구조인데, 이미 명나라가 평양성 전투에서도 써먹은 경력이 있었다. 당연히 여러가지 경로로 청군도 입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으아아악! 부, 불이야!"

"눈이, 눈이!"

화공이래봤자 불이 번지는 정도는 크지 않다.

그러나 불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함께 화약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시야를 가리자 조선군의 진형은 빠르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토는 바로 이때를 노리고 있었다.

"청군이 몰려온다!"

그동안 전력을 아껴둔 것은 바로 이 최후의 돌격을 위해서라는 듯, 청군 기병 수백 기가 일제히 돌격했다.

바람마저 그들의 편이었으니 거칠 것도 없었다. 이자원이 병력을 수습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청군이 목책에 맞부딪혔을 때, 그 결과는 오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청 기병은 간단히 목책을 부수고 짓밟았고, 조선군은 뒤로 나동그라지며 아우성이었다.

아까 전의 사기 높은 조선군은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며 서로를 짓밟았다. 도저히 이자원이 어찌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난전(亂戰)이다."

이자원은 환도를 뽑아들었다.

도저히 바라지 않던 바였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영장 영감!"

이자원의 외침에 황망하게 진형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있던 선세강이 고개를 홱 돌렸다.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지금 적들이 전력을 다해 우리 진을 들이쳤으니, 뒤통수가 환히 열려 있습니다. 영장 영감은 좌병사와 합류해 어떻게든 병력을 수습해주십시오!"

"자네는?"

"소관은 이곳에서 버티겠습니다!"

마침 도감군들이 제 몸 하나는 어떻게 빼내 이자원에게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들도 지금 믿을건 이자원 뿐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원앙진을 펼쳐라!"

훈련도감의 훈련은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원앙진은 바로 그 기효신서에 나오는 진법으로, 1개 분대는 애패(挨牌, 오각형 방패) 1명, 등패(籐牌, 원형 방패) 1명, 낭선 2명, 창 4명, 당파(삼지창) 2명으로 구성된다.

당연히 병사들도 원앙진을 펼칠줄 알았다. 마침 인원도 얼추 맞았다.

애패는 아예 없어 대신 등패 2개를 들었고, 낭선과 창과 당파도 구분되지 않았지만 급박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전방의 조선군이 도륙당하는 동안 훈련도감군은 자리를 맞춰서는데 성공했다.

"히이익, 저리 비키시오!"

"오랑캐가 오고 있소!"

그러나 완성한 진은 도주하며 밀려오는 조선군에 의해 깨질 위기에 처했다. 꾸역꾸역 밀려온 속오군 하나가 방패수의 어깨를 밀치려는 찰나였다.

- 촤악!

이자원의 환도가 그의 팔을 베어버렸다.

"이리로 몰려오는 자가 있거든 조선군이냐 오랑캐냐를 따지지 묻지 말고 찔러라!"

"예, 파총 나리!"

이자원의 외침에 도감군들은 독기서린 눈빛으로 창을 들이댔다.

뒤에는 청군이 밀려오고, 앞에서는 이들이 결연한 태도로 막아서고 있으니, 패주하는 조선군으로서는 나동그라지면서도 그들을 피해 도망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자원은 그들을 구태여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공포에 잡아먹혔으니 같이 어깨를 맞대어봐야 방해만 될 것이었다.

그럴 바에야 지금은 뒤로 빠졌다가 허완과 선세강이 수습하는 편이 나았다.

- 다그닥, 다그닥.

어느새 물밀듯이 도망치던 이들은 사라지고, 목책 인근의 조선군을 모두 정리한 청군 기병만이 보였다.

저쪽도 여길 봤는지 청군들은 천천히 말을 몰아오기 시작했다. 명백히 포위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원앙진은 가만히 죽치고 앉아있는 진법이 아니다. 척계광이 이른 것처럼, 적을 죽이고 승리하는데 효과가 있는 대형이었다.

"패를 엄호하라!"

방패를 든 두 명의 살수가 선두로 나아가고, 옆의 낭선수들이 방패병을 엄호했다. 움직이는 진에 놀라 청군 하나의 말이 튀어오르자, 창병이 놓치지 않고 말의 목을 찔렀다.

"컥!"

이자원은 낙마한 청군의 목에 환도를 찔러넣었다.

"한줌도 안되는 놈들이!"

알아듣기 힘든 여진어로 외치며 포위한 기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도감군은 악에 받혀 창을 들이댔다.

"크아악!"

"죽어라!"

"엄마!"

비명이 울려 퍼졌다. 청군 수명이 낙마했지만 도감군의 피해도 있었다.

가슴이 창에 꿰인 청군 하나가 기어이 칼로 옆에 서있던 창수의 손목을 베어낸 것이다.

"아마이 초초(애비 좆같은 놈)!"

그는 단말마를 지르며 쓰러졌다.

"어서 자리를 채워라!"

손목을 부여잡은 도감군이 진형 안쪽으로 빠지고, 창수 하나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자원의 원앙진은 계속해서 발맞춰 이동하며 공격을 받아내고 들이쳤다.

이대로라면 일 각은 버티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쐐애액 소리를 내며 날아온 화살 한 대가 방패를 직격했다.

"윽······."

분명히 막아냈건만, 방패수는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했다.

들고 있던 나무방패는 화살 한대에 빠개진 후였다.

'난전 중에 화살을 쓴다고?'

이자원은 의아함을 느꼈다. 웬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더라도 이렇게 뒤엉켜 싸우는 와중에 망설임없이 활을 쏘다니.

게다가 쏜 화살은 육량시(六兩矢)가 분명했다.

촉이 두껍고 무거워 여섯 냥이나 나가는 화살로, 파괴력은 상당하지만 반대로 용력이 없으면 쏠 수도 없었다.

화살을 쏜 이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자원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높은 자로군.'

그러나 지금은 잡기는커녕 시간을 끌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가 이곳을 주목해 활까지 쏘았으니 싸움이 더 어려워질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청군 여러 기가 추가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그때였다.

청군의 후방이 혼란스러워졌다.

===

"자네 말대로 청군이 상봉에 올랐구만 그래."

"소관이 아니라 저희 파총의 생각이오이다."

김충선은 옆에 시립한 초관 박철균을 바라보았다.

어제 이자원이라는 훈련도감 파총이 보낸 이였다.

'황태극을 죽였다더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로구나.'

경안천 너머의 청군은 진군해오는 척 기만만 할뿐이었다.

이자원이 미리 알려준 사실이지만, 몇십인가 깔짝대는 청군을 벤 뒤에야 김충선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자원이 요청한대로, 때를 기다리는 것.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정(正)으로 대치하고 기(奇)로써 승리를 거둔다 했었지."

흔히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알려져있는 그것이었다. 청군도 이번 전투에서 그것을 십분 활용했다.

경안천 너머의 청군이 망치요, 남산을 넘어 좌병영을 친 청군이 모루다.

공교롭게도 조선군 입장에서는 지금 청군과 맞서고 있는 좌병영이 망치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루는─

청군이 아직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김충선군일 것이다.

"김계충, 김계수, 김구인, 김구성! 너희는 지금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상봉의 호진(胡陳)을 들이쳐라! 수급을 많이 얻는 자는 무겁게 포상하겠다!"

김충선은 왜갑(倭甲) 토오세이구소쿠(当世具足, 당세구족)를 갖춰입은 네 사람에게 명령했다. 갑옷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모두 김충선과 같은 항왜였다.

"우리군과 청군. 어느쪽 칼 끝이 예리한지 겨루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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