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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17화 (완결) (317/317)

317화

우리는 빠르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혼다크는 설마 내려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단숨에 일을 처리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듯, 다음 차원으로 보내달라는 말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 일단 파티누스로 향하는 문은 폐쇄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어째서… 입니까?”

“자세한 것은 가이아 님과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제가 요청했다고 하면 아마 별달리 문제 삼지는 않으실 겁니다.”

“…확실히 신뢰하실만한 실력이시기는 하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차원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혼다크는 곧바로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문에서 느껴지는 힘에 가이아의 신성력이 섞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빌린 거군.’

사제가 말했던 대로, 혼다크는 현재 힘이 많이 부족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거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덤빈 대가인가…….’

성국의 국민들이 우리를 그토록 환영한 이유가 있었다.

그를 섬기는 지성체가 약해지고 수가 줄어들자 안 그래도 크게 세력이 줄어든 상태인 혼다크는 간섭력과 신성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략 3~5일, 길게는 7일에 한 차원꼴로 청소했고, 장기간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석 달도 걸리지 않아 모든 거인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휴식 기간이 있었기에 저 정도 걸린 것이었다. 아무리 대부분 수월하게 승리했다고 해도, 지구가 위험한 것도 아닌데 전투 이후 스트레스 관리 정도는 해주는 것이 좋았다.

대다수의 차원에 파견된 거인은 20개체. 많아도 30개체를 넘는 경우는 없었고, 그런 만큼 우리가 큰 피해를 입는 일 없이 무사히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가이아의 모든 일을 처리하기 무섭게 나는 곧바로 혼다크를 통해 가이아에게 연락을 넣었다.

“어쩐 일이더냐?”

“일이 끝났습니다.”

“…벌써?”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더군요.”

“…….”

가이아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무척이나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지구의 미래가 밝구나. 그대와 같은 계약자를 얻은 것은 내 평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우리의 대화를 혼다크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파티누스로 향하는 차원 문을 닫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왜 그런 부탁을 했느냐? 어차피 거인들에게 차원 좌표가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배를 갈아탄 이상 그 문은 폐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편이 시간을 끌기에 더 좋으니 말이다.”

“그 시간, 더 끌어보려고 합니다.”

“…무슨……?”

“운에 맡기며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제 성미에 맞지 않더군요.”

기왕이면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들어 보니, 아직 센터빌이 버티고는 있더군요. 1차 하위 차원과 2차 하위 차원들 또한 포기하지 않고 말입니다.”

“…시간문제다. 그래도 나름 거대 차원이었던 전적이 있으니 년 단위로 버티기는 하겠지만, 길어 봐야 10년이다. 결과는 사실상 정해진 상태지.”

“그 시간. 최대한 늘리려 합니다.”

“무슨 생각이더냐?”

“저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센터빌 차원을 말이냐? 그런 위험한 짓을…! 허락할 수 없다.”

가이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도 좋지 않고, 본차원은 이런 곳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그런 곳에서 오래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해!”

내가 죽기라도 한다면 지구에는 어마어마한 손해로 돌아온다. 그건 내 길드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고, 발전해야 하며, 지구와 휘하로 들어온 차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었다.

가이아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허락할 리가 없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희 정체를 숨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3차 하위 차원에서 급하게 얻어온 용병 영웅으로 위장하면 그만입니다. 마침 여러 차원들이 무너지는 상황이니 관리자가 되기 위해 협력한다는 식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관리자가 되기 위해 타 차원에 침략하는 침략자들도 있는 마당이다. 그런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고작 3차 하위 차원에 쳐들어온 거인들을 처리한 것이 다다. 그런 것에 취해 본차원으로 넘어갔다가는…….”

“살아는 남을 수 있습니다. 정 위험하면… 이걸 쓰면 되니까요.”

나는 탐욕을 들어 올렸다.

“…차원을 넘어 도망칠 셈이더냐?”

“예. 물론 지구로 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거인들도 좌표를 아는 1차 하위 차원이나 2차 하위 차원으로 도망칠 생각입니다. 이거,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는 하더군요. 상상했던 것보다 더 희귀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본차원까지 지원갈 생각은 없습니다. 알아보니, 1차나 2차 하위 차원도 3차처럼 공격을 받고 있더군요. 본차원에 지원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할 목적으로요.”

“…그렇겠지.”

“그들에게 협력할 생각입니다. 저희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더군요.”

“…….”

“잘만 하면 10년 버틸 것을 20년 버티게 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저희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저희가 더 성장하게 된다면… 그 시간을 더 늘릴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거인들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시간이 없을 터였다.

“게다가 성과가 있습니다.”

“남은주와 정진현 말이냐?”

“예.”

“확실히… 성장을 하기는 했구나.”

약 석 달에 걸친 전투 결과, 남은주가 벽을 넘을 실마리를 발견했고, 길드원 중 검사들을 이끌던 정진현이 벽을 넘어서 버렸다.

‘게다가 나 또한…….’

전투를 거듭할 때마다 감각이 더더욱 살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카스시나 차원에서, 처음 거인들과 싸울 때 느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강해졌고, 이후 전투를 통해서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물론 탑에 있을 때처럼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구에 연결된 차원이 늘어나고 가이아의 힘이 강해질수록 직접 계약한 우리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했다.

단순한 가만히 있어서 성장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한계치와 잠재력이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게 빠르게 쌓여가고 있었다.

“실전도 필요하고, 거인들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적극적인 방어라고 생각해 주시죠.”

“…그런…….”

내 설명을 들은 가이아가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멀쩡히 돌아올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참여할 생각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지구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가족들도 봐야죠.”

전쟁이 격해진다 싶으면 당연히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당연하지만 우리의 고향인 지구가 1순위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남의 전장이었다.

“…자신 있느냐?”

가이아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내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싸우는 나고, 이제껏 이뤄놓은 것들이 있는 만큼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을 모양인 듯했다.

“처음에는 저를 포함해 직속 파티원들만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확실히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사람만 가겠다는 뜻이구나.”

“저희는 확실히 빠져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자신있는 내 말에 가이아가 입술을 깨문다.

“…알겠다. 한번 해 보거라. 하지만 하나만 약속해다오. 직접 겪어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는 즉시 포기하거라.”

“약속드리죠.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

흔들림 없이 말하는 내 말에 가이아가 힘겹게 대답했다.

“믿겠다.”

나는 불안함에도 내게 강요하지 않고 내 의견을 존중해 준 가이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이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혼다크를 향해 통보했다.

“그렇게 되었으니 당분간 배를 갈아탔다는 사실은 숨기거라.”

“알겠습니다. 가이아 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혼다크는 가이아의 선택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따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저 이제는 자신이 모시게 된 상위 차원의 주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이다.

잠시 지구로 복귀해 가족들을 만나본 뒤 직속 파티원과 프레드, 아멜리아, 정진현을 포함한 일행을 뽑아 곧바로 파티누스 차원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파티누스 차원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어떻게 거인들의 봉쇄를…….”

“혼다크 님과 거래를 했습니다. 살아만 남는다면 4차 이하의 하위 차원 중 한 곳의 관리를 제게 맡기겠다고 하시더군요. 운이 좋았죠.”

그런 나를 파티누스 차원의 관리자는 병x을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긍정했다.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지. 공만 세운다면 관리자 하나 못 만들어 줄까. 게다가 그만한 힘이면… 충분히 도움이 되기는 하겠어. …좋다. 잘 부탁하지, 용병.”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 * *

이후 첫 전투에서 우리는 괜찮은 공적을 세웠고, 주기적으로 2차 하위 차원들을 돌아다니며 거인들을 베어내었다.

차츰 내 힘이 강해지고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김에 따라 차례차례 길드원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2차 하위 차원에서 1차 하위 차원으로, 1차 하위 차원에서 마침내 본차원에 진입할 기회를 얻었고, 거대 차원이었던 센터빌 쪽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거인들이 우리들을 성가셔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한들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센터빌이 무너지기까지 15년이 걸렸다.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다. 둥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1차 하위 차원들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는 무척이나 바빠지기 시작했다.

1차 하위 차원들은 5년을 채 버티지 못했고, 2차 하위 차원으로 거인들이 진입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과의 연계를 끊어버렸다.

둥지는 점령한 차원들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3차 하위 차원을 노리며 우리의 존재와 지구를 알아챈 거인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즉시 우리를 목표로 차원의 문을 열었지만, 이미 지구는 평범한 거대 차원이 아니었다.

본차원, 지구의 좌표를 통해 찾아왔지만, 센터빌처럼 피라미드 형태가 아닌, 대부분의 하위 차원이 본차원과 직접 연결된 미친 형태를 보고 그들은 기겁했고,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뚫기 힘들다고 판단, 지구로의 침공을 뒤로 미뤄버렸다. 사실상 포기 선언. 둥지의 힘이 더 강해지거나 상대하는 세력이 다수 줄어들지 않는 한 지구를 침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모양새였다.

확실히 본차원에 집결된 엄청난 수의 세력과 병력은 그들로서도 당황할 만한 수준이었던 모양이었다.

격이 오른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차원이, 둥지가 포기할 정도의 세력을 갖췄다는 소식이 온 차원계에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지구는 유명해졌고, 동시에 한 가지 제의가 우리에게 들어왔다.

“…그러니까, 연합에 끼워주겠다, 이겁니까?”

“그래. 들어 보니 나쁘지는 않더구나. 거대 차원들 중에서도 그 세력을 인정받은 이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연합이란다. 거인에 의해 센터빌이 멸망한 것에 위협을 느꼈는지 몇몇 거대 차원이 연합을 결성하려고 하더구나.”

“그냥 방어만 한답니까?”

“글쎄. 기본 방침은 그렇기는 하다만, 가능성이 있다면 공격을 할지도 모르지. 최근 둥지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커다랬던 놈들이 센터빌을 잡아먹고 덩치를 기괴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우리도 계속해서 성장하기는 하겠지만, 보험 하나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느냐. 그래서 일단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란다.”

나는 가이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결국 당초의 목적은 모두 이루었구나.”

“…예.”

“너는 지구로 돌아왔고, 가족들과 재회했으며, 이제는 새 가족도 만들었지.”

“…….”

“나 또한 결국 둥지의 위협에서 반쯤 벗어났으니, 그때의 도박은 성공했구나.”

가이아의 말에 과거가 떠올랐다.

1회차 시절의 마지막 기억.

거인 하나를 향해 검 한 자루 들고 달려들었던, 반쪽짜리 마스터였던 기억이.

그때의 목표는 모두 이루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목표를 이루었으면 그다음 목표가 있는 법이죠.”

“진짜 할 생각이더냐?”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둥지의 위협에서 반쯤 벗어났다고. 즉,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아직 신생 차원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 힘이죠.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수명도 지겹도록 길겠다. 도전 못 할 것은 없죠.”

내 당당한 말에 가이아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도전 못 할 것은 없지. 어디 한번 해 보거라.”

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회차 시절, 꿈꾸었던 목표는 이루었다. 가족들은 안전해졌고, 그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다. 그들이 수명을 다해 죽는, 그날까지. 그날이 왔을 때, 슬프기는 하겠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가족들도 생겼고, 새로운 목표도 있으니 결국 다시 일어설 터였다.

새로운 목표. 그것은 단순했고,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저는 언젠가, 둥지를 박살 내고 말겁니다.”

(나만이 지구를 선택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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